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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민의 음악편지

[이종민의 음악편지]순수를 꿈꾸며 - 이니그마의 ‘순수로 돌아가기’

이종민 | 전북대 교수·영문학

‘봄’의 계절 잘 보내고 계신지요? 창밖 화사한 벚꽃 훔쳐보다가 혹 부장님께 지청구를 듣지는 않았는지요? 요즘 달이 참 좋던데 그 달빛 우두커니 바라보다가 혹 누구에겐가 전화를 하고 싶어 휴대전화 만지작거리거나,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혹 그런 전화 기다리며 매실주 홀짝이지는 않았는지, 괜히 궁금해지는 봄날 아침입니다.

매화 지면서 살구꽃 피고 진달래 교태 시샘하며 철쭉도 나들이 채비가 한창입니다. 볼 것이 지천인 이 ‘봄에는 자세히 들여다보게 하소서!’ 시인 흉내로 애를 써보지만 쉽지만은 않습니다. 주식이나 부동산 가격의 부침에 현혹되어 만물생성변화의 아름다움에는 마음 줄 여유를 잃어버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봄’의 계절이 왔는데도 보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떨림과 설렘과 감격을 잃어버린/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 신세랄까? 매사가 궁금하던 어린 시절의 호기심, 꽃에서 요정을 보고 새싹에서 천사를 읽어내던 그 순수의 상상력을 잃은 탓이겠지요.

영화 <툼 레이더>에서 고고학자 아버지는 딸의 순수함을 믿어 영국시인 블레이크의 ‘순수의 전조’라는 시 앞부분을 편지로 남깁니다. 우리의 매혹적인 여전사는 쌈도 잘하지만 시도 즐겨 읽었나 봅니다.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 작은 힌트로 비밀의 요체를 알아냅니다.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며/ 손바닥에서 무한을 거머쥐고/ 순간 속에서 영원을 붙잡은” 것이지요.


이니그마의 ‘순수로 돌아가기’가 실려 있는 음반 재킷.

이 시를 ‘순수를 꿈꾸며’라 옮긴 고 장영희 교수는, 이를 “티끌 하나가 온 우주를 머금었고, 찰나의 한 생각이 끝도 없는 영겁이라!” 일갈한 의상조사의 법성게(法性偈)와 연결시킨 바 있습니다. ‘우주의 모든 개체’에 ‘삼라만상의 조화’가 숨어 있으며 우리 개개인도 무한한 능력과 조화를 갖춘 ‘소우주’라는 것이지요. 그런 마음으로 하늘을 쳐다보면 지금 이 자리가 ‘아찔할 정도로 황홀한’ 곳(때)임을 느끼게 될 것이라면서. 이를 실천해보겠다고 이니그마의 ‘순수로 돌아가기’를 주문처럼 반복해서 듣고 있습니다. 원주민 추장의 기도와 같은 웅얼거림에 이어 들려오는 강한 비트를 동반한 여성 보컬 또한 주술적입니다. 겉에 사로잡혀 속의 진실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우리들 타성을 털어내기 위한 음악적 장치라 할까? ‘수수께끼’라는 의미의 연주단 이름만큼이나 묘한 음악세계를 펼치고 있는 이니그마는 이처럼 독특한 전자음과 음성의 결합을 통해 잃어버린 순수의 세계로 어서 돌아가자고 독려하고 있습니다. 사랑, 헌신, 감정, 정서를 내세우며 그것이 바로 본래의 자기로 돌아가는 길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노래는 ‘순수하지 못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1996년 하계올림픽을 홍보하기 위한 텔레비전 광고에 사용됨으로써 세계적인 유명세를 더한 이곡은 1998년 소송에 휩싸이게 됩니다. 원주민 추장의 기도 같다고 한 부분이 사실은 대만 출신 뮤지션들의 ‘흥겨운 술 노래’ 일부였습니다. 그들이 1988년 문화교류 프로그램의 하나로 파리에서 공연을 했는데, 그 실황음반에서 무단 추출하여 사용한 것입니다. 다행히 배상을 하고 저작권을 공식화하면서 법정공방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찜찜한 경력에도 이 곡의 인기는 그 이후에도 식을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루마니아 출신의 마이클 크레투가 이끄는 이니그마는 지난번에 소개해 드린 이어러 등과 함께 장중한 그레고리안 성가와 전자음악, 그리고 다양한 민속음악 등을 섞어 독특한 음악세계를 열어가고 있는 대표적 퓨전연주단입니다. 한국전통음악의 현대화, 세계화를 위해서라도 주목해봄직한 음악가들이라 하겠습니다.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봄이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볼거리는 넘쳐납니다. 순수의 상태로 돌아가, 접어둔 상상의 날개를 펴면 이 계절이 전하는 사랑과 생명의 풍성하고 다양한 복음을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이 주술의 노래가 메마른 나뭇가지처럼 굳어버린 우리들 마음을 뒤흔들어 그 회귀의 길라잡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꽃, 새순, 새싹! 들여다보아야 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