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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민의 음악편지

[이종민의 음악편지]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곡- 비탈리의 ‘샤콘느’

[이종민의 음악편지]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곡- 비탈리의 ‘샤콘느’
이종민|전북대 교수·영문학
날씨가 풀리자 비바람이 어지럽고 꽃 피자 황사가 부옇고. 나들이 하기에 좋겠다 싶으면 꽃가루 날리고 꽃구경 호시절은 꼭 중간고사 기간과 겹치고. 봄 오는 꼴이 꼭 이렇습니다. 게다가 방사능 공포까지. 그래서 홀로 사는 시인은 아내와 아이들에게 버림받아 홀로 사는 사내의 입을 빌려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봄비는 오고 지랄이야/ 꽃은 저렇게 피고 지랄이야.”

‘세상에 가장 강력한 것이 슬픔’이라더니 슬퍼할 일이 올 봄에도 지천입니다. 테러리즘에 맞선 오만방자한 또 다른 폭력, 방사능 공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원전 중심의 에너지정책, 소통을 모르는 4대강 삽질. 새만금과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 목매는 전북이 슬프고 10년 후에나 실현될까 말까한 삼성의 양해각서에 호들갑떠는 모습이 애처롭고, 밀려오는 관광객 수에 취해 (전통) 문화정책을 손놔버린 전주한옥마을은 더 안타깝고. 명문대 못가는 것도 서럽지만 거기 가서 스스로 목숨 버리는 것은 더 서글프고. 취직난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입학하자마자 취직타령에 빠져있는 모습은 정말 아니다 싶고. 참으로 안타까운 일들이 슬프게 지속되는 싱그러운 ‘잔인한’ 계절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곡’에 취해보렵니다. 이렇게라도 해서 이 찬란한 슬픔의 계절을 기리고 싶은 것입니다. 비탈리의 ‘샤콘느’. 인터넷에 이와 관련한 많은 글들이 올라와 있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널리 사랑을 받고 있는 곡입니다. 대부분의 글에서 슬픔에 탐닉하고 싶은 마음을 읽을 수 있는데, 음악평론가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하이페츠의 음반에 실려 있는 해설이 이렇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빛바랜 풍경 하나가 이 곡에 있다. 때는 봄이었고… 창밖으로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무언가, 모든 대화나 시나 철학을 넘어, 다른 그 무엇을 통해 울어버리고 싶었다… 오르간의 저음이 흘러나오고, 마침내 그 카랑카랑한 바이올린의 절규가 쏟아졌다. 그 날, 우리는 술 한잔 걸치지 않은 맨 정신으로 말 한마디 없이 울 수 있었고, 그럼으로써 이 곡이 지상에서 가장 슬픈 곡이라는 것을 긍정한 셈이 되었다.”



샤콘느는 라틴아메리카에서 흘러들어와 17, 18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4분의 3박자 춤곡입니다. 그것이 변주곡 형태로 발전하여 바로크시대 중요한 음악양식의 하나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이 양식의 곡으로는 바흐와 비탈리의 것이 유명한데 흔히 바흐의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의 샤콘느를 ‘아폴로적’이라며 비탈리의 ‘디오니소스적’ 샤콘느와 대비하기도 합니다.

워낙 유명한 곡이라 내로라하는 명반도 하나 둘이 아니며 칭송의 내용도 연주에 따라 다양합니다. 오르간 반주의 하이페츠 연주가 주는 ‘폐부를 찌르는 처절한 비장미’를 최고로 내세우는 이도 있고, 관현악 반주를 곁들인 지노 프란체스카티의 ‘화려한 애잔함’을 칭송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피아노 반주의 티보 연주가 주는 ‘부드럽고 오묘한 음색과 기교를 부리지 않는 품격’을 소중하게 여기기도 하고 우리의 사라 장 연주에 더 큰 박수를 보내기도 합니다.

굳이 비교해 감상할 일은 아닐 듯합니다. 그냥 즐길 수 있으면 좋겠지요. 슬픔이 주는 카타르시스, 그런 정도를 기대한다면 무리가 없을 듯합니다. 슬픔의 미학, 슬픈 분위기가 자아내는 아름다움, 이를 통해 세상을 지켜보는 마음에 조금이나마 여유를 회복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은 석탄일. 대자대비 부처님의 더없이 크고 끝없는 자비도 중생의 슬픈 운명을 전제로 한 것이겠지요? 피할 수 없다면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일, 기왕이면 기꺼운 마음으로 아름답게! 이런 음악에 자주 귀 기울이는 것이 그 방편일 수 있습니다. 애이불비(哀而不悲), 슬퍼하되 비탄에는 빠지지 않도록 예방주사를 맞아두는 것이라 할까요?

영국시인 아놀드는 문학의 힘을 삶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데서 찾았습니다. 음악 아니 모든 문화예술로 확대할 수 있는 말입니다. 점점 더 여유를 잃어가는 요즘 문화와 예술교육이 강조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싱그러운 계절 이 곡 들으시며 마음의 여유를 한껏 키워보시기 바랍니다. 황사로 더욱 화사한 저 철쭉들처럼!


※음악은 경향닷컴(www.khan.co.kr)과 이종민 교수 홈페이지 http://leecm.chonbuk.ac.kr/~leecm/index.php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