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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규의 길인생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길·人·생](9) 남원의 ‘칼 만드는 여자 대장장’ 정길순
이원규 | 시인 ㆍ“시린 세상과 사람을 살리는 나만의 활인검 만들고 싶어”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무색하다 못해 처참한 시절이다. 칼은 언제나 위험하다. 그렇다고 아예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다. 칼자루를 쥔 자의 정신 상태에 따라 애국자가 될 수도 있고 요리사가 될 수도 있는 반면, 위험천만한 망나니나 망국의 역적이 될 수도 있다. 일찍이 고려왕검의 제조명장 이상선 선생은 “왜놈의 칼은 사람을 죽이는 칼이지만, 고려의 칼은 나라를 지켜내고 사람을 살리는 칼”이라고 했다. 두꺼운 장갑을 끼고 화덕에서 붉게 달아오른 쇠를 꺼내 커다란 쇠망치로 내려치며 담금질하는 여자 대장장이 정길순씨. 강철을 마치 떡 주무르듯 해 부엌칼·생선회칼·꼬막칼·낫·도끼·작두·곡괭이를 만들어낸다. 그녀가 벼려내는 칼은 여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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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규의 길인생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길·人·생](6) 슬로시티 악양면의 ‘동네밴드’
이원규 | 시인 ㆍ서로의 아픔 보듬는 어우러짐… ‘전설 속 청학동’이 여기더라 아무리 험하고 힘든 세상일지라도 살아남을 만한 이유는 반드시 있을 것이다. 굳이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던 폴 발레리의 시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날마다 화려한 꽃의 날들은 아닐지라도 한번쯤은 누군가의 따스한 손길이 되어 환한 억새꽃처럼 덩실덩실 춤을 추는 날도 있을 것이다. 누구라도 절망과 아픔과 슬픔의 맨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짜낸 뒤에 오는 희열의 순간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열망의 사람들이 모여 아무 말 없이 서로의 눈빛을 확인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위안이 될까. 바로 그런 날이 있었다. 지리산과 섬진강의 늦가을, 형제봉 노을이 대봉감 홍시처럼 주렁주렁 내걸리던 11월13일 저녁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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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뒤를 돌아보니...
담배가게 아저씨를 위하여!
다만 흘러다닐 뿐, 흐르고 흐르다 보면... — 임실 담배가게 아저씨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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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규의 길인생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길·人·생](11) 순천 중앙시장 구두수선공 황충식씨
이원규 | 시인 ㆍ“한쪽 눈으로도 비뚤어진 세상 다 보인당께… 순리대로 살어”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어느 의사가 낡은 구두 한 켤레를 들고 네거리 모퉁이의 수선공을 찾아갔다. 구두수선공은 이리저리 살펴보아도 도저히 고칠 수가 없었다. 뒤축을 갈거나 꿰맨다고 될 일이 아니었으니 결국 구두를 돌려주며 “2천원만 주시오” 했다. 의사가 버럭 화를 내며 “거 참, 고치지도 못하면서 뭔 돈을 받는 거야?” 소리쳤다. 그러자 의사의 두 눈을 빤히 쳐다보던 그가 말했다. “바로 당신에게 배운 거요. 병을 고치지도 못하면서 꼬박꼬박 진찰비는 받지 않소?” 한자리에서 38년째 구두수선을 하고 있는 황충식씨. 그는 노거수처럼 붙박여 먼 길을 걸어온 이들의 닳은 구두 뒷굽을 갈아주고, 터진 곳을 꿰매준다. “신발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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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과의 대화
[고은과의 대화](1) 논쟁은 수컷, 대화는 암컷이니 달빛 같은 대화를
※ 고은 시인의 삶과 문학, 철학을 대화 형식으로 풀어내는 ‘양 세기의 달빛’이 오늘부터 매주 토요일 연재됩니다.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김형수씨가 진행하는 고은과의 대화에서 우리 사회를 넘어 역사·세계·우주·미래로 펼쳐지는 고은 사상의 정수와 함께, 그가 아니면 불가능한 한국어의 참된 유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삽화는 임옥상 화백이 맡습니다. 소설가·평론가 김형수 = 바람이 분주해졌습니다. 여름내 무성하던 신록이 이제 귀로에 접어들었나 봅니다. 감춰진 나뭇가지들이 곧 종아리를 드러낼 테지요? 오랜 농경문명의 흔적인지 가을이 오면 우리의 몸은 불가피하게 결실에 대한 상념을 품게 됩니다. 선생님께서 언젠가 저무는 들길로 늙은 것과 어린 것이 돌아오듯이 돌아오라고 쓰셨던 기억이 나는데, 그런 탁월한 은유의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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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의 그림철학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25)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ㆍ번뇌는 별빛이라 마음 안에 번민이 없을 수는 없지요? 그렇지만 또 번민이 있으면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번민을 모르고는 인간이 될 수 없고, 번민에 사로잡혀서도 제대로 살 수 없는 거지요. 번민이 자유롭게 흘러 빛으로 태어날 수 있도록 길을 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조지훈 시인의 ‘승무’처럼 세파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고백할 수 있을 테니까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보면 진짜 번뇌는 별빛, 아닌가요? 고흐는 어떻게 그렇게 거침없는 붓 터치로, 마음을 다 담은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요? 지금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오르세 미술관전에서 가장 빛나는 작품은 역시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었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을 보고 있으면 분명히 느낍니다. 고흐에게 그림은..
내가 좋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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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에 대하여
[낮은 목소리로]이정희와 이정희
강광석|전농 강진군 정책실장다음(daum)에 ‘이정희’를 입력하면 많은 ‘이정희’가 나옵니다. 대학교수, 현대무용가, 연극인, 스포츠 선수, 기업인 등 다양합니다. 흔한 이름이죠. 제 인생에는 이정희가 두 명 있습니다. 학생시절 같은 과에 이정희 선배가 있었습니다. 1학년 때, 한 시대를 풍미한 민중가요 ‘가야 하네’를 처음 가르쳐준 선배입니다. 그는 모르는 노래가사가 없었습니다. 그는 후배들에게 가사를 불러주는, 말하자면 가사 도우미였습니다. 가사 도우미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노래의 흐름과 분위기, 노래하는 사람의 감정상태까지 파악해 때론 축약하고, 때론 음률을 섞어가며 추임새처럼 넣는 고난도 기술의 소유자였습니다. 고향이 부산이었고 재수를 했던 것 같고 살집이 풍부하고 얼굴에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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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에 대하여
[낮은 목소리로]농민 울리는 비료값
강광석 | 전농 강진군 정책실장 며칠 있으면 3월입니다. 벌써 한 해 농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고추 모종은 하우스에서 잘 크고 있습니다. 논과 밭에 퇴비를 뿌리는 농민들도 있습니다. 보리를 간 농민들은 1차 웃거름을 주었습니다. 농기계 수리 센터에서 트랙터와 관리기를 손보는 농민들도 늘었습니다. 친환경 우렁이농법 신청도 마무리되었습니다. 아직 겨울 뒤끝인지라 마을회관은 붐빕니다. 후보자들 자신이 직접 쓴 것 같지 않은, 출판기념회에 동원되었을 책들이 나뒹굴고 명함이 수북이 쌓여 한 인물이 다른 인물을 보고 마냥 웃습니다.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이곳 시골에도 거센 정치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이라 말하는 민주통합당 후보와 ‘이제는 과거와 헤어져야 할 시간’이라 말하는 통합진보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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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에 대하여
[낮은 목소리로]사람이 사람에게 복무하는 세상
강광석 | 전농 강진군 정책실장 사람에게 가장 치명적인 아픔은 외로움입니다. 외로움은 사람관계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한 인생이 칭찬도 배려도 위로도 없이 메마른 잎사귀처럼 나부끼다 누구의 눈물도 없이 진다는 것입니다. 올해도 수없이 많은 어르신들이 자식들 없이, 친·인척들의 무관심 속에 설을 보냈습니다. 전화는 왔는지, 제사비용이나 용돈은 받았는지, 매년 받던 내복은 도착했는지, 이것저것 걱정하며 까치설날 저녁 8시, 안방 불이 꺼져 있는 이웃의 집들을 오랫동안 지켜보았습니다. 동네 선배의 집이, 후배의 집이 홀로 계신 어머니의 찬 신음소리를 삼키며 정월 한풍을 견디고 있습니다. 아무도 오지 않았고, 겨울밤은 잠들지 못했습니다. 한방에서 예닐곱명이 살던 시절, 싸래기 가래떡을 해서 서로 엉겨붙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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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에 대하여
[낮은 목소리로]‘농민 시름’ 먹고 크는 한우
강광석 | 전농 강진군 정책실장 한 해가 가고 있습니다. 동네 앞 밭에서 배추는 한 해를 보내지 못하고 얼차려 받는 자세로 찬바람을 맞고 있습니다. 지난해 배추파동에 놀란 정부가 한 포기 더 심기 운동을 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배추를 심은 농민은 된서리를 맞았습니다. 그런 식으로 대파, 양파가 흙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요즘 시골에서 가장 어영부영 돈을 까먹는 것이 소입니다. 하는 일 없이 팽팽 놀면서 주는 밥은 어찌 또 그렇게 잘 먹는지 모릅니다. 소가 사료를 먹는 것이 아니라 사료가 소를 먹고 있습니다. 한우가 어찌된 일인지 양식만 먹습니다. 사료가 거의 100% 외국산입니다. 사료값은 국제 금융위기 이후 선물시장에 자금이 몰리면서 올해만 30% 정도 올랐습니다. 내년 초 8% 인상될 요인도 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