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민 | 전북대 교수·영문학
님은 갔습니다. 제자들의 애원의 눈길도 외면한 채 무슨 급한 볼 일이라도 생긴 양 서둘러 떠났습니다. 간절한 손짓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붙잡히면 큰일이라도 날까 싶은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갑게 술잔을 주고받던 제자들이 갑자기 저승사자라도 된 것일까? 2차로 노래방을 갈 분위기가 감지되자 불에 덴 듯 놀라 자리를 피한 것입니다.
종강 기념으로 한판 놀고 싶어 기회를 엿보던 제자들은 닭 쫓던 견공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번번이 그랬습니다. 개강 때에도 오랜만에 만났으니 한번 취해 봅시다! 하면 사부님은 어느새 종적을 감추어 버렸습니다. 개강이나 종강이나 그 중심에 사부님이 계셔야 제격인데 언제나 사라져 김을 빼는 것입니다.
종강할 때면, 제대로 예습 한번 한 적 없지만, 분주한 일상 쪼개어 일주일에 한차례 고전을 강독했다는 뿌듯함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일정에 쫓기지 않아도 되는 홀가분함과 방학 동안 만날 수 없게 된 섭섭한 마음이 교차되기도 합니다. 개강 때에도, 다시 만난 반가움과 새로운 시작의 설렘과 다짐이 엇갈리면서 노래방 같은 곳이라도 찾아 작은 잔치를 벌이고 싶은 것입니다.
종강 기념으로 한판 놀고 싶어 기회를 엿보던 제자들은 닭 쫓던 견공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번번이 그랬습니다. 개강 때에도 오랜만에 만났으니 한번 취해 봅시다! 하면 사부님은 어느새 종적을 감추어 버렸습니다. 개강이나 종강이나 그 중심에 사부님이 계셔야 제격인데 언제나 사라져 김을 빼는 것입니다.
종강할 때면, 제대로 예습 한번 한 적 없지만, 분주한 일상 쪼개어 일주일에 한차례 고전을 강독했다는 뿌듯함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일정에 쫓기지 않아도 되는 홀가분함과 방학 동안 만날 수 없게 된 섭섭한 마음이 교차되기도 합니다. 개강 때에도, 다시 만난 반가움과 새로운 시작의 설렘과 다짐이 엇갈리면서 노래방 같은 곳이라도 찾아 작은 잔치를 벌이고 싶은 것입니다.
사서삼경 강의하는 선비는 노래방 같은 곳 가면 안되나? 제자들에게 잠시 흐트러진 모습 보여주는 것이 그렇게 싫으실까? 매번 당하는 일이지만 섭섭하고 원망스러운 마음 추스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마지막 강의에서도 <중용> 제14장을 설명하시면서 ‘현재 주어진 자리에서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고 그 밖의 것을 원하지 말’ 것을 강조하셨거든요. ‘군자는 들어가는 곳마다 스스로 만족하지 않음이 없어 윗자리에 있으면서 아랫사람을 능멸하지 않고 아랫자리에 있으면서 윗사람에게 아첨하지 말아야 한다’며 <주역>까지 인용하면서 ‘지금 이 자리’의 중요성을 역설하시더니….
제자들이라고 노래방 꼭 좋아서 가는 걸까? 한데 어울릴 다른 방도가 없어 억지 춘향 노릇하는 것이지. 이렇게라도 해서 좀 더 가까이 모시고 싶은 제자들 심경을 정말 모르시는 것일까?
‘아는 것이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이 즐기는 것만 못하다’ 이에 덧대어 ‘즐기는 것이 미치는 것만 못하며’ 그래서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不狂不及)’는 말도 자주 인용하시면서, 정작 당신은 아는 것에만 머무르시는 건 아닌지. 물처럼 움푹 팬 곳을 채우며 흘러가는 밀착된 삶을 강조하시면서 당신은 번듯한 길만 가시려 하는 것은 아닌지. 일상의 정도에서 벗어나는 것이 기피할 일만은 아닐 터. 범인들의 삶은 컵 속의 물과 같아 크게 흔들려 넘치지 않으면 컵 밖의 세상은 영영 경험할 수 없는 법. 크게 벗어나 봐야 제대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래야 본연의 자리가 어디고 얼마나 소중한 곳인가를 깨달을 수 있지요. 고된 산행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술을 마실 때에도 가끔은 몸에 비상이 걸릴 정도로 취해야 합니다. 단식할 때와 마찬가지로 민방공훈련하듯 비상동원체제를 가동시켜보는 거지요. 그래야 몸의 각 부분들이 제 역할을 잊지 않게 된답니다.
그런 파격 혹은 일탈이 우리들 삶을 풍요롭게 해줍니다. 기암괴석이나 굽은 소나무가 그러하듯.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측 가능한 것은 따분함, 진부함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베토벤 음악이 주는 감동의 상당 부분이 바로 이런 예측불허의 파격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첼로소나타만 해도 그렇습니다. 저음 반주악기를 독주악기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첼로소나타의 새 형식이 정립되게 됩니다.
서운한 마음 달래보려고 그중에서도 특히 파격이 매혹적인 3번 2악장을 반복해서 듣습니다. 이 곡을 주문으로 사부님의 일탈을 유혹해 보려는 듯. ‘첼로의 신약성서’라 불리는 베토벤의 첼로소나타, 그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3번, 이 2악장 스케르초의 매력은 파격의 싱커페이션을 통해 1, 3악장을 돋을새김해주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때 아름다운 동반자였던 프레와 바렌보임, 고전 명반으로 꼽히는 푸르니에와 켐프의 연주 들으시며 여름날의 아름다운 일탈 한번 꿈꿔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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