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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민의 음악편지

[이종민의 음악편지]8월의 질주 ‘어거스트 광시곡’

이종민 | 전북대 교수·영문학

8월, 어디론가 질주하고 싶은 계절입니다. 꼭 해변일 필요도 없고 굳이 산을 고집할 이유도 없습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비 비 비, 이로 인한 산사태와 물난리에 씻겨간 허전함 채울 수만 있다면, 이 떨쳐버릴 수 없는 몸과 마음의 끈적거림 달랠 수만 있다면, 책이든 음악이든 영화든 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영화 <어거스트 러쉬>를 다시 보았습니다. 도시의 소음조차 음악으로 듣는 주인공 에반(혹은 어거스트 러쉬), 바람 속에서 우주의 숨소리를 듣고 엄마 아빠의 부름을 확인하려 하는 그의 절실함, 그 진정성을 닮고 싶었습니다. 달에게 말을 걸고 그것에 영감을 받아 음악을 만들고 사랑에 빠지기도 하는, 미친 놈 취급받기 딱 좋은, 젊은 시절의 낭만, 영화 열심히 보면서 되살리고도 싶었을 것입니다.

음악에도 귀를 기울였지만 그와 관련된 대사에 더 집중을 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늘 음악이 있다. 우리는 그저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된다.” “음악은 우주에 우리 말고 다른 무엇이 있음을 전하는 신의 말씀이다.” “음악은 살아있는 모든 것을 연결해주는 화음의 결합이다, 별까지도.” 등. 절실한 대사를 받아 적느라고 여러 번 ‘멈춤’을 눌러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귀국 소식을 전하는 김사인 시인의 전화를 받고 그의 시 한 편을 떠올렸습니다. “다리를 빨리 지나가는 사람은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이네”라는 시를 인용하면서 “하느님/ 가령 이런 시는/ 다시 한번 공들여 옮겨적는 것만으로/ 새로 시 한 벌 지은 셈 쳐주실 수 없을까요” 너스레를 떠는. 음악에 관한 멋진 말들 소개하는 것으로 음악편지 하나 띄운 셈 쳐주실 수 없을까요? 유혹에 끌리고 만 것입니다.

그게 징후라는 것인가 봅니다. 말하자면 이제 한계상황에 도달했다는 것을 주인이 느끼자 객도 눈치채게 된 것입니다. 다음날 바로 음악편지의 ‘안식년’을 알리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점점 더 버거워하는 모습을 어떻게 알아차리고 재충전을 명분으로 휴식을 제안한 것입니다. 기미를 살펴 조처를 취한다(見機而作)는 게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입니다.

당사자로서야 단순 징후가 아니라 구체적 통보를 받았으니 움직이고 말고가 없겠습니다만 감회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동안 문학과 음악의 조금은 생뚱맞은 넘나듦에 당혹스러워하는 낌새도 감지하고 있었습니다. 주어진 일정 지면이 막막하기도 했지만 답답할 때도 많았습니다. 낑낑거리다 보면 편지 통수가 시간의 흐름을 가늠하는 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힘겹지만 행복한 1년반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직도 공유하고 싶은 음악은 일자리만큼이나 많습니다. 하지만 적당한 사연 얹기가 실업률 떨어뜨리는 일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아직도 전하고 싶은 사연은 청년실업자만큼 넘쳐납니다. 그러나 적절한 음악과의 짝짓기는 구인난처럼 어렵기만 합니다. 묘한 모순이 여기에서도 확인됩니다. 계속 분발하고 더 고민해야 한다는 말이겠지요. “음악을 밥보다도, 너 자신보다도 더 사랑해야 한다!”는 영화 속 위저드의 말이 실감으로 다가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덕분에 전공과는 조금 더 멀어졌겠지만 더 다양한 음악에 눈을 뜰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깊이도 더해졌으리라 믿고도 싶습니다. 가르치면서 배우는 것처럼,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글로 푸는 것이 아니라 글로 옮겨가면서 더 깊이 깨닫게 되는, 그런 ‘동반성장’을 맛본 것입니다. 영화 속 주인공이 선보인 ‘마이클 해지스 연주법’도 이번 글쓰기를 통해 알게 된 것입니다. 회를 거듭할수록 공유하고 싶은 음악과 사연이 더 늘어난 것도 이런 ‘퓨전글쓰기’의 값진 수확이라 할 수 있겠고요.

감사하는 마음으로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한 음악 보내드립니다. 아들의 연주에 이끌려 루이스와 라일라가 다시 만나게 되는 감동의 장면 잠시 떠올리시기 바랍니다. 현실을 핑계로 음악이라는 소망을 접었다면 불가능했을 기적의 해후입니다. 간절해야만 통할 수 있습니다. 철들면서 너무 쉽게 포기해버린 우리들의 소중한 소망들, 이를 향한 ‘8월의 질주’(August Rush), 이들처럼 서서히 그러나 간절하게, 시작해보는 것입니다!

음악편지를 향한 질주도, 이제는 온라인을 통해, 쭉 지속될 것입니다. 안도현 시인의 말처럼, “간절하게 참 철없이!”


※음악은 이종민 교수 홈페이지(http://leecm.chonbuk.ac.kr/~leecm/index.php)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이종민 교수의 ‘이종민의 음악편지’는 이번호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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