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 같은 어둠 속에 톱질하는 소리가… | |
[매거진 esc] 공지영의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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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신부님이 조용한 곳을 싫어하게 된 사연, 나이 드니 맘먹기 나름이라는 말이 와닿네 “왜 그렇게 얼굴이 밝아요?” 사람들이 요즘 가끔 내게 묻는다. 그렇게 묻는 그들은 대개는 친한 사이라서 흔히 모르는 사람들이 그렇듯, 책이 잘 나가니까, 라든가 근심이 없으니까, 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들은 가까이에서 내가 평범한 사람으로서 이런저런 고통들을 안고 산다는 것을 아는 이들이니까 말이다. 가끔 거울을 보면 내가 봐도 요즘 얼굴이 밝다. 그리고 내 지인들처럼 가끔 나도 내게 묻는다. “왜 그렇게 얼굴이 밝아? 이 와중에.” 걱정의 80%는 일어나지 않을 일 무슨 와중인지는 내 개인 사정이니까 꼭 밝히지 않아도 되지만 나도 왜 그럴까 곰곰 생각해 보니까 한 가지 짚이는 데가 있긴 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자고 결심한 것이다. 그리고 요즘은 무슨 일이 생기면 그 법칙에 충실히 따르고 있다. 아이들 공부? 그건 내가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니다. 내 수입? 글을 쓰는 것은 내 노력으로 어느 정도 되는 일이지만 수입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주가 폭락? 이건 더더군다나 내 맘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불경기? 것도 물론이다. 나는 성실하게 투표를 했지만(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많은 국민의 뜻이 그와 달랐고 나는 그 국민들과 더불어 사는 대가를 이렇게 치르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내 체중? 이건 내 맘먹기 따라 어느 정도 되는 일이지만 마음이 잘 먹어지지 않고 먹어진다 해도 몸이 안 따라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금주와 금연, 이건 마음은 잘, 그리고 자주 먹어지는데 몸이 안 따라준다. 그러니까 내 맘대로 안 되는 대표적 케이스라 하겠다. 이러다 보니 내 맘대로 되는 일의 숫자는 손가락으로 꼽는 정도 … 그나마 그 맘이란 것도 참 내 맘대로 안 되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맘 편히 먹기로 하고 느긋하게 지내려고 애쓰는 일만 남는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우리가 하고 있는 걱정의 80%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며, 나머지 20% 중에서도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대부분이며 (그러니까 내일 산에 가는데 추우면 어떻게 하지? 비가 오면 어떻게 하지? 우리 애가 저렇게 공부하다가 대학도 못 가면 어떻게 하지? … 뭐 이런 것들)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2%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결론은?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누가 세어봤는데 -이 사람 참 대단하다- 예수님이 성서에서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365번 했다고 한다.(정말일까 싶지만 그거 세고 있기에 나는 너무 게으르니까 그러려니 하는 수밖에) 그러니까 하루도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라고 한다. 오죽하면 인간에게 가장 오래된 두 가지 불치병이 있는데 하나가 어제 병이고 하나가 내일 병이라고 할까 싶다. 둘 다의 공통점은 아시겠지만 내 맘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말을 젊을 때는 그렇게 싫어했고, 지금도 젊을 때는 그러는 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나이가 드니까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말이 그렇게 와 닿을 수가 없다. 그런데 그게 나 같은 사람만의 이야기는 아닌가 보다. 얼마 전 존경하는 신부님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느 부자가 화가 신부님께 자신의 별장을 얼마든지 사용해도 좋다고 했단다. 화가 신부님은 시끄러운 도시를 떠나 동료 신부님과 함께 외딴 산골, 조용하다 못해 괴괴한 산장으로 휴가를 간다. 도시의 소음을 싫어하던 신부님은 조용한 곳에서 머물 생각에 마음이 몹시 흐뭇하기도 했다. 해 질 무렵 산골마을에 도착한 그들은 주인의 말대로 담의 기왓장 밑에서 현관 열쇠를 꺼내려고 하는데 아무리 뒤져도 열쇠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늦가을 산골의 해는 일찍 저물어 가고 날은 춥고 당황하던 두 분은 혹시나 하고 집 현관으로 갔는데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고 커다란 자물쇠가 그 현관 바닥에 놓여 있었다. 인가가 하염없이 먼 외딴집에 대체 누가 이 자물쇠를 열어 놓았는지 알 수 없었다. 누가 있나 싶어 집안을 다 뒤져 보았지만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신부님은 그때부터 이 괴괴한 외딴 집이 불길해졌다. 그런데 동행한 신부님은 신앙심이 워낙 깊으신지, “누가 열어 놓았으면 어때? 열렸으면 된 거지” 하시며 이층으로 올라가시더니 바로 코를 골며 편히 주무셨단다. 두 신부님 별장으로 휴가를 떠나다 화가 신부님은 아래층을 서성이다가 그림을 한 점 발견했다. 황무지 위의 집 한 채를 그린 그림이었다. 그 그림의 황량한 분위기가 마치 이 집의 괴괴함을 설명하는 것 같아 더욱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게 된다. 그런데 살풋 자다가 깨어났는데 누군가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봐라 봐, 내 그럴 줄 알았어. 자고 있는 거지? 지금 자는 거지?” 소곤거리는 소리는 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런 말들이 토막토막 끊어진 채로 들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신부님은 놀라 일어나서 온 집 안에 불을 다 켜 보았다. 사람의 자취는 없었다. 속삭임은 뚝 끊어져 버렸다. 잘못 들었나 보다 생각하면서 불을 끄고 다시 누웠는데 속삭임은 다시 시작되는 것이었다. “이제 자니? 거 봐 잠들었어, 잠들었어.” 신부님은 다시 일어나 방 안의 불을 켰지만 역시 아무도 없고 창밖은 콜타르처럼 어두웠다. 신부님은 이번에는 방 안의 불을 약간 어둡게 하고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바싹 귀를 기울였다. 소리는 창가 쪽에서 나고 있었다. 가만가만 다가가 보니 늦가을 파리들이 창가에 붙어서 윙윙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신부님의 망상 속에서 사람의 속삭임 소리로 들린 것이었다. (내가 나중에 유리창에 붙은 파리들 소리를 잘 들어 보았는데 신부님의 통역처럼 들려왔다. 신부님은 대단한 귀를 가지신 것 같다.) 그런데 안심하고 잠이 든 신부님 귀에 이번에는 난데없는 톱질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문을 아예 톱으로 썰어 버리고 들어오려는 것 같았다. 벌떡 일어난 신부님은 온 집 안의 불을 다 켜고 현관 쪽으로 나갔다. “누구냐?!” 신부님은 현관문을 밀었다. 칠흑 같은 어둠뿐, 아무도 없다. 소리도 멎었다. 그래서 다시 잠을 청하는데 또다시 들려오는 톱질 소리. 이 산골에서 누군가 톱까지 동원해 집 안으로 침입한다면 … 신부님은 주변에 무기가 될 만한 것이 없나 살피다가 정신을 바싹 차리고 소리를 잘 들어 보니 맙소사, 소리는 늦가을 풀벌레의 마지막 비명 같은 울음소리였단다. 모든 것이 저절로 열린 자물쇠로부터 추동된 망상의 소리였던 것이다. 인적이 없는 산골이 너무도 고요했던 것이 그 원인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럼 자물쇠는? 다음날, 거의 간밤에 잠을 못 자고 약간 몽롱한 신부님 앞에 웬 아주머니가 문을 열고 들어오신다. 그러더니 태연하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잘 주무셨남유? 어제 자물쇠 따 드린다고 인사를 하는데도 담 옆에서 뭣들 연구하시는 거 같아서 지가 그냥 문만 따 놓고 갔어유.”
그제야 모든 것이 밝혀진 신부님 두 분은 하루 종일 웃으셨다는 이야기. 원효가 해골바가지 물 달게 먹은 일 이후로 진부한 이야기가 된 이 “마음먹기 나름”이란 말이 그러나 내가 겪으면 이렇게 생생해지는 모양이다. 그 뒤로부터 신부님은 조용한 곳을 아주 싫어하신다. (그리고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의 사족인데 파리들이 정말 그렇게 말했을 것 같다. 풀벌레가 톱질은 안 했어도 말이다.) 공지영 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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