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 소설가ㅣ경향신문
입력 : 2010-09-14-21:19:01ㅣ수정 : 2010-09-14 21:19:02
ㆍ“버시인 형이 기타는 무슨 기타… 형은 가사 쓰면 좋겠네”
이렇게 비가 내리는 계절에는 밭에 나가기도 그렇고 산에 가기도 그렇다. 아르피엠여사는 오늘 비가 오는데 오랜만에 남편과 정자에 누워 두두두두 울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여보 당신은 노후 걱정 안 돼?”
낙시인이 대답했다.
“뭐하러 그런 걱정을 해? 노후를 안 오게 하면 돼.”
그러자 아르피엠여사는 역시 남편 낙시인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이렇게 옳은 말이 있다니.
“여보 당신 전에 화개장터에 책방 하나 내고 싶다고 했지. 엄선된 30권만 놓고 파는 책방.”
낙시인은 빙그레 웃었다. 정말 그의 꿈은 딱 30권만 놓고 파는 책방이었다. 그 대신 그가 읽고 정말 소장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책이어야 했다. 대신 차는 공짜란다. 그러자 아르피엠이 말했다.
“당연히 장사가 안 되겠지? 집세만 내면 되지 뭐. 당신은 거기서 책상 하나 갖다놓고 천천히 시를 쓰고…. 그러니 내가 그 책방 바로 옆에 식당을 내겠어.”
낙시인이 잠시 생각하다가 너무 놀라 벌떡 일어났다. “당신이 식당을?”
“응, 여보. 우리나라 식당들은 너무 반찬을 많이 줘. 사람들이 부담스럽잖아. 모두가 집 밥처럼 먹을 수 있도록 약간 타거나 선밥에 신김치, 먹다 남은 된장찌개 이런 거를 주 반찬으로 하는 거야. 얼마나 소박해, 그 이름은 ‘성의 없는 부인 식당’이야.”
“대박이다! 대박이야.” 낙시인이 웃었다. 거기에는 약간 어이없음이 있었는데 아르피엠여사의 눈은 꿈에 부풀었다.
“그 식당에는 부인 밥을 먹은 지 오래되는 노동자 농민 빈민 진보적 지식인들이 대거 몰려 올 거야. 그리고 그 식당의 특징은 절대 밥을 퍼주지 않고 국도 식어 있고 그리고 여주인은 매일 없는 거야 여보 어때? 집 밥의 극치지?”
낙시인이 뭐라고 하려는데 그들의 집으로 버시인과 기타리스트가 들어섰다. 그 뒤에는 옻칠 공예가 성광명(본명이다. 옻칠 공예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태어난 사람처럼)씨가 들어섰다. 그들은 셋 다 기타를 메고 있었는데 비장한 표정이었다. 버시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낙시인도 알다시피 우리들이 일찍이 섬지사(섬진강과 지리산 사람들)를 조직해서 생태를 고민하고 환경을 고민하고 귀농을 고민하고 아이들의 교육을 고민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그 고민의 결실로 밴드를 하나 조직하기로 했다. 그런데 여기 세명의 기타리스트가 있으므로 서로 오디션을 보려고 한다. 그래서 낙시인 부부에게 그 증인이 되기를 청한다.”
생태와 환경을 고민하는 그들이 ‘그래서, 왜’ 밴드를 조직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버시인의 말투는 장엄했다. 먼저 제일 자신 있는 기타리스트가 기타를 쳤다. 서울의 밤무대를 뛴 경력답게 그의 손가락들은 화려하게 줄 사이를 누볐고 음은 현란했다. 아주 멀리 밤안개 속에서 보면 약간 신중현씨의 기타 연주와 닮았다고 할 사람이 한명은 있을 것이었다. 낙시인 부부는 박수를 쳤다. 그러자 이번에는 성광명씨가 기타를 들었다. 그는 고교와 대학때 대학 밴드의 베이스 출신답게 소심하고 정확하고 그리고 느긋했다. 낙시인 부부는 이번에도 박수를 쳤다. 이제 버들치 시인 차례였다. 버시인은 잠시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다.
“내가 어제 어떤 여자가 찾아와서 가세횻! 해도 늦게까지 안 가는 바람에 조금 컨디션이 나빠…그러니 감안하고 들어라…이?”
버시인이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고요한 침묵이 정자에 앉아 있는 다섯 사람을 감쌌다. 기타리스트가 말했다.
“형님은 좋은 분이고 착하시고 훌륭하신 시인이시며 섬지사에서 활동하시면서 생태와 환경과 아이들 교육을 고민하시는 존경스러운 분이십니다. 그래서! 동네밴드 기타에는 좀….”
버시인의 예민한 얼굴이 순간 확 굳어졌다. 사람 좋은 아르피엠이 사태를 수습하려 나섰다.
“그래 형은 무슨 기타…형은 그냥 시 써…가사 쓰고 그러면 좋잖아.”
평소에는 사람 좋던 버시인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는 큰 기침을 하더니 가방에서 무언가를 조심조심 꺼냈다. 하모니카였다. 그가 말했다. “니들 말이야 꼭 밴드라고 기타 이런 것만 생각하는 게 바로 경직된 사고야.” 그의 하모니카 솜씨는 괜찮았다. 우리가 초등학교 때 시골에 가면 중학교 일학년 사촌오빠가 열심히 불어주던 정도…. 사람들이 대답했다. “괜찮네…그래 괜찮아.” 그러자 버시인의 순한 얼굴에 오기가 발동하는 듯 갑자기 거칠게 가방을 열고 다른 악기를 꺼냈다. “너네들 이 악기 이름 아냐? 카바사?” 그리고 그것을 흔들었다. 카바사….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노래방에 가면 탬버린 옆에 있는 그 모래 소리 나는 흔들이 악기이다. 버들치 시인은 어깨를 흔들며 흥을 내었다. “베싸메, 베싸메무초….” 일순 정자 안은 더욱 조용해졌다. 버시인은 다시 가방을 뒤졌다. 그의 손에는 탬버린이 들려 있었다. 그는 이번에는 정자에서 벌떡 일어나 탬버린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잊지 못할 빗속의 여인….” 정자는 더욱 더욱 더욱 고요해졌다. 그러자 버들치 시인은 노래를 다 부르지 못하고 앉더니 가방 구석을 뒤져 다른 악기를 찾아냈다. 그리고는 말했다. “내가 좀 다루는 악기가 많아서 미안하구나. 오디션이 좀 길어지제?”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캐스터네츠. 그는 그것을 짝짝 하며 노래를 불렀다. “나성에 가면 편지를 주세요. 뚜루루 뚜루루와.”
정자 위의 사람들이 더욱 조용해지자 민망한 아르피엠이 버들치를 돕기 위해 나섰다. “형, 정말 악기 많이 다룬다. 그럼 형은 트라이앵글, 큰북 작은북, 징, 심벌즈, 다 다루겠네. 와 모두 몇 개야? 몰랐어. 형이 10개도 넘는 악기를 다루는 줄은….”
기타리스트가 이 모든 광경을 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형님 그럼 노래라도 하쇼. 하는 수 없지.”
그래서 동네밴드는 결성되었다. 그날 밤 아르피엠은 잠 못 들고 뒤척이고 있었다.
“여보 내가 생각해보니까 우리 노후에 내가 빤짝이 옷 입고 당신 오토바이 뒤에 타고 노래 부르러 다니면 어떻까? 내가 노래 못한다고는 아무도 못 말하잖아. 내가 그래도 버시인보다는 낫잖아. 나도 하모니카는 못하지만 카바사, 탬버린, 캐스터네츠, 트랑이앵글, 큰북, 작은북, 징과 심벌즈 이렇게 여덟 개 악기를 다루잖아.”
그러자 낙시인이 말했다.
“그런데 당신은 악양이 아니라 구례 사람이잖아.”
그리하여 2009년 첫 동네밴드 공연은 기타리스트 둘과 건반 하나 그리고 버시인 보컬에 고아르피엠의 객원보컬로 시작되었다. 그들은 열심히 연습했다. 농사일이 끝난 12월 초 악양에 있는 매계초등학교 폐교자리에 선 청소년 수련원에서 열렸다. 결과는 대 성공. 사람들은 어수룩한 밴드를 생각했으나 연주는 수준급이었다. 동네밴드 멤버들은 너무 기뻤다. 소문은 퍼져 그들은 함양 상림숲에서 열리는 지리산 문화제에도 초대장을 받게 되었다. 그들은 의기양양 함양으로 떠났다. 그런데 무대가 생각보다 너무 컸다. 그들은 오돌오돌 떨며 무대에 섰다. 연주는 자꾸 틀렸다. 너무 큰 무대 탓이었다. 그나마 그 넓은 객석에 관객이 관계자 10여명을 빼고 30명 정도인 것이 다행이었다. 돌아온 그들은 논의를 거듭했다. 이게 다 연습실이 없는 탓이었다. 그래서 옻칠 공예가 성광명씨의 땅에 연습실을 하나 지었다. 이 동네에서 집을 짓는 일은, “집 짓는다” 하면 모두 모여 집을 지으면 되는 것이었다. ‘풍악제’ 현판식을 올리고 연습에 돌입했다. 연주가 끝날 때마다 기타리스트는 감격에 겨워 “오 하느님 진정 이게 우리가 연주한 것 맞습니까?” 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소문은 퍼졌고 면장이 동네밴드의 공연에 돼지 한 마리와 막걸리 두 말을 보냈다. 청소년 수련원 이층에서 뒤풀이로 술을 마시다 자고 갈 사람들에게는 미리 만원을 받고 숙소를 배정했다. 그날 꽁지작가가 <지리산 행복학교>를 연재한다며 처음 악양으로 왔다. 첫 공연에서 자극을 받은 귀농자의 아이들이 ‘구멍난 양말’이라는 밴드로 노래를 했고-이제는 아르피엠까지 긴장을 했다. 아이들은 몇 개월 만에 놀라운 연주와 가창 실력을 보였다-여자기타리스트 모임인 ‘필통’의 공연도 있었다. 부츠를 신고 선글라스를 낀 아르피엠은 그날의 히로인이었다. ‘청량리 부르스’는 그녀의 저음과 너무도 잘 어울렸다. 게다가 다음달이면 그녀는 구례에서 하동으로 이사를 온다. 그러면 이제 객원이 아닌 것이다. 긴장한 버들치 시인은 작사 작곡에 착수했고 그래서 마지막 피날레를 거머쥐었다. 버들치 작사 작곡인데 성광명 공예가가 아주 심한 편곡을 했다고 했다. 노래는 이렇게 이어졌다.
“난 악양에 산다/ 난 악양에 산다/ 섬진강가 은모래빛 반짝이는 지리산 자락/ 난 악양에 산다/ 악양에는 없는 것이 너무 많아/ 3층집도 없어/ 아파트도 없어/ 오락실도 없어/ 비닐하우스도 없어(요즘 좀 생기대)/ 악양에는 있는 것이 너무 많아/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 청보릿빛 맑은 햇살/ 나아아안 악양에 산다/난 악양에 산다”
마지막 후렴은 온 관객이 같이 불렀다. 난 악양에 산다. 난 악양에 산다 악양, 그것은 지리산의 다른 이름, 그것은 경쟁하지 않음의 다른 이름, 그것은 지이(智異), 생각이 다른 것을 존중하는 이름. 그것은 느림을 찬양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이름…. 공연 도중에 소주가 나누어지고 구수한 돼지냄새 퍼지는…그런 악양에 그들은 그렇게 살고 있었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계절에는 밭에 나가기도 그렇고 산에 가기도 그렇다. 아르피엠여사는 오늘 비가 오는데 오랜만에 남편과 정자에 누워 두두두두 울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여보 당신은 노후 걱정 안 돼?”
낙시인이 대답했다.
“뭐하러 그런 걱정을 해? 노후를 안 오게 하면 돼.”
그러자 아르피엠여사는 역시 남편 낙시인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이렇게 옳은 말이 있다니.
“여보 당신 전에 화개장터에 책방 하나 내고 싶다고 했지. 엄선된 30권만 놓고 파는 책방.”
낙시인은 빙그레 웃었다. 정말 그의 꿈은 딱 30권만 놓고 파는 책방이었다. 그 대신 그가 읽고 정말 소장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책이어야 했다. 대신 차는 공짜란다. 그러자 아르피엠이 말했다.
“당연히 장사가 안 되겠지? 집세만 내면 되지 뭐. 당신은 거기서 책상 하나 갖다놓고 천천히 시를 쓰고…. 그러니 내가 그 책방 바로 옆에 식당을 내겠어.”
낙시인이 잠시 생각하다가 너무 놀라 벌떡 일어났다. “당신이 식당을?”
“응, 여보. 우리나라 식당들은 너무 반찬을 많이 줘. 사람들이 부담스럽잖아. 모두가 집 밥처럼 먹을 수 있도록 약간 타거나 선밥에 신김치, 먹다 남은 된장찌개 이런 거를 주 반찬으로 하는 거야. 얼마나 소박해, 그 이름은 ‘성의 없는 부인 식당’이야.”
“대박이다! 대박이야.” 낙시인이 웃었다. 거기에는 약간 어이없음이 있었는데 아르피엠여사의 눈은 꿈에 부풀었다.
“그 식당에는 부인 밥을 먹은 지 오래되는 노동자 농민 빈민 진보적 지식인들이 대거 몰려 올 거야. 그리고 그 식당의 특징은 절대 밥을 퍼주지 않고 국도 식어 있고 그리고 여주인은 매일 없는 거야 여보 어때? 집 밥의 극치지?”
여자 기타리스트 모임인 ‘필통’ 공연 모습 | 이원규 시인 촬영
낙시인이 뭐라고 하려는데 그들의 집으로 버시인과 기타리스트가 들어섰다. 그 뒤에는 옻칠 공예가 성광명(본명이다. 옻칠 공예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태어난 사람처럼)씨가 들어섰다. 그들은 셋 다 기타를 메고 있었는데 비장한 표정이었다. 버시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낙시인도 알다시피 우리들이 일찍이 섬지사(섬진강과 지리산 사람들)를 조직해서 생태를 고민하고 환경을 고민하고 귀농을 고민하고 아이들의 교육을 고민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그 고민의 결실로 밴드를 하나 조직하기로 했다. 그런데 여기 세명의 기타리스트가 있으므로 서로 오디션을 보려고 한다. 그래서 낙시인 부부에게 그 증인이 되기를 청한다.”
생태와 환경을 고민하는 그들이 ‘그래서, 왜’ 밴드를 조직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버시인의 말투는 장엄했다. 먼저 제일 자신 있는 기타리스트가 기타를 쳤다. 서울의 밤무대를 뛴 경력답게 그의 손가락들은 화려하게 줄 사이를 누볐고 음은 현란했다. 아주 멀리 밤안개 속에서 보면 약간 신중현씨의 기타 연주와 닮았다고 할 사람이 한명은 있을 것이었다. 낙시인 부부는 박수를 쳤다. 그러자 이번에는 성광명씨가 기타를 들었다. 그는 고교와 대학때 대학 밴드의 베이스 출신답게 소심하고 정확하고 그리고 느긋했다. 낙시인 부부는 이번에도 박수를 쳤다. 이제 버들치 시인 차례였다. 버시인은 잠시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다.
“내가 어제 어떤 여자가 찾아와서 가세횻! 해도 늦게까지 안 가는 바람에 조금 컨디션이 나빠…그러니 감안하고 들어라…이?”
버시인이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고요한 침묵이 정자에 앉아 있는 다섯 사람을 감쌌다. 기타리스트가 말했다.
“형님은 좋은 분이고 착하시고 훌륭하신 시인이시며 섬지사에서 활동하시면서 생태와 환경과 아이들 교육을 고민하시는 존경스러운 분이십니다. 그래서! 동네밴드 기타에는 좀….”
버시인의 예민한 얼굴이 순간 확 굳어졌다. 사람 좋은 아르피엠이 사태를 수습하려 나섰다.
“그래 형은 무슨 기타…형은 그냥 시 써…가사 쓰고 그러면 좋잖아.”
그룹사운드 ‘구멍난 양말’의 공연 | 이원규 시인 촬영
평소에는 사람 좋던 버시인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는 큰 기침을 하더니 가방에서 무언가를 조심조심 꺼냈다. 하모니카였다. 그가 말했다. “니들 말이야 꼭 밴드라고 기타 이런 것만 생각하는 게 바로 경직된 사고야.” 그의 하모니카 솜씨는 괜찮았다. 우리가 초등학교 때 시골에 가면 중학교 일학년 사촌오빠가 열심히 불어주던 정도…. 사람들이 대답했다. “괜찮네…그래 괜찮아.” 그러자 버시인의 순한 얼굴에 오기가 발동하는 듯 갑자기 거칠게 가방을 열고 다른 악기를 꺼냈다. “너네들 이 악기 이름 아냐? 카바사?” 그리고 그것을 흔들었다. 카바사….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노래방에 가면 탬버린 옆에 있는 그 모래 소리 나는 흔들이 악기이다. 버들치 시인은 어깨를 흔들며 흥을 내었다. “베싸메, 베싸메무초….” 일순 정자 안은 더욱 조용해졌다. 버시인은 다시 가방을 뒤졌다. 그의 손에는 탬버린이 들려 있었다. 그는 이번에는 정자에서 벌떡 일어나 탬버린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잊지 못할 빗속의 여인….” 정자는 더욱 더욱 더욱 고요해졌다. 그러자 버들치 시인은 노래를 다 부르지 못하고 앉더니 가방 구석을 뒤져 다른 악기를 찾아냈다. 그리고는 말했다. “내가 좀 다루는 악기가 많아서 미안하구나. 오디션이 좀 길어지제?”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캐스터네츠. 그는 그것을 짝짝 하며 노래를 불렀다. “나성에 가면 편지를 주세요. 뚜루루 뚜루루와.”
정자 위의 사람들이 더욱 조용해지자 민망한 아르피엠이 버들치를 돕기 위해 나섰다. “형, 정말 악기 많이 다룬다. 그럼 형은 트라이앵글, 큰북 작은북, 징, 심벌즈, 다 다루겠네. 와 모두 몇 개야? 몰랐어. 형이 10개도 넘는 악기를 다루는 줄은….”
기타리스트가 이 모든 광경을 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형님 그럼 노래라도 하쇼. 하는 수 없지.”
그래서 동네밴드는 결성되었다. 그날 밤 아르피엠은 잠 못 들고 뒤척이고 있었다.
“여보 내가 생각해보니까 우리 노후에 내가 빤짝이 옷 입고 당신 오토바이 뒤에 타고 노래 부르러 다니면 어떻까? 내가 노래 못한다고는 아무도 못 말하잖아. 내가 그래도 버시인보다는 낫잖아. 나도 하모니카는 못하지만 카바사, 탬버린, 캐스터네츠, 트랑이앵글, 큰북, 작은북, 징과 심벌즈 이렇게 여덟 개 악기를 다루잖아.”
그러자 낙시인이 말했다.
“그런데 당신은 악양이 아니라 구례 사람이잖아.”
버들치 시인의 하모니카 연주 | 이원규 시인 촬영
“난 악양에 산다/ 난 악양에 산다/ 섬진강가 은모래빛 반짝이는 지리산 자락/ 난 악양에 산다/ 악양에는 없는 것이 너무 많아/ 3층집도 없어/ 아파트도 없어/ 오락실도 없어/ 비닐하우스도 없어(요즘 좀 생기대)/ 악양에는 있는 것이 너무 많아/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 청보릿빛 맑은 햇살/ 나아아안 악양에 산다/난 악양에 산다”
마지막 후렴은 온 관객이 같이 불렀다. 난 악양에 산다. 난 악양에 산다 악양, 그것은 지리산의 다른 이름, 그것은 경쟁하지 않음의 다른 이름, 그것은 지이(智異), 생각이 다른 것을 존중하는 이름. 그것은 느림을 찬양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이름…. 공연 도중에 소주가 나누어지고 구수한 돼지냄새 퍼지는…그런 악양에 그들은 그렇게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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