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소설가ㅣ경향신문
입력 : 2010-08-31-21:47:59ㅣ수정 : 2010-08-31 21:47:59
ㆍ“여자들은 참 이상해요, 만나면 대뜸 가진 게 뭐냐 물으니”
요즘 남도에 가면 심심치 않게 베트남이나 몽골 혹은 필리핀의 새댁들이 눈에 띈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이제 꽤 자라나고 있어서 새로운 문화가 탄생될 것이 예상되기도 한다. 아마도 우리나라가 다민족 사회라는 것을 가장 실감할 수 없는 곳이 서울 한복판이지 싶다. 하지만 가끔 내게 드는 의문, 이렇게 많은 농촌의 총각들이 결혼을 못할 정도로 성비가 불균형하다는 말일까 싶은 것이다. 일전에 신영복 선생이 책에 쓰신 대로 가진 자들이 여러 여자를 소유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한 여자도 곁에 두지 못하는 비극이 느껴지곤 한다. 그리고 거기서 태어난 가난한 여자아이들은 다시 유흥가로 흘러들어가고….
지리산 자락의 모텔에 한번 들어가면 온갖 다방의 성냥들이 즐비하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길 다방’ ‘고향 다방’ ‘88다방’ ‘모정 다방’이라는 명칭이 고색창연하더니, 요즘에는 대놓고 ‘꽃다방’ ‘오빠다방’ ‘팡팡다방’ ‘자기 다방’을 거쳐 ‘센스다방’ ‘날 불러줘요 다방’도 있다. 이 다방들은 주로 배달 서비스를 주업으로 한다.
가게 바로 앞에 커피 자판기가 있어서 몇 백원이면 커피를 마실 수 있는데도 사장님들은 손님이 오면 다방 커피를 시킨다. 사모님이 이런 사실을 알았는지 예쁜 바구니에 녹차, 현미차, 율무차, 옥수수수염차 다 넣어서 전기 포트와 컵을 가져다 놓았는데도 사장님들은 오늘도 성냥갑을 들어 전화번호를 확인하고-너무 오래되어서 번호를 다 외우겠지만 그렇게 되면 품위를 의심받을 수도 있고 또 특별대우라는 생색도 낼 수 없으므로 꼭 이렇게 전화번호를 오래 들여다보는 것이다-전화를 걸어 커피를 주문했다. 낙시인이 다니는 바이크 정비소 주인도 마찬가지다. 아니라고 아무리 손을 저어도 “그라믄 나가 섭섭하제이” 하기에 지금은 모두가 그냥 내버려두는 편이다. 어쩌면 그는 이 기회에 부인에게조차 합법적으로 젊은 처자와 차를 한잔 마실 심산일지도 모른다. 실상 그런 일이 아니면 시골바닥에서 젊은 처자 얼굴을 볼 일이 평생 없기 때문이다. “거기 커피 두 잔 가져와봐라. 이왕이면 이쁜 아그가 가져다 주면 좋제. 거 그때 왔던 아그가 이쁘던디 이름이 머간디 … 있자녀 왜 먼양이냐 갸가? 어? 아, 안다고? 지금 마침 있어? 거 잘 되앗네 그려 커피 두 잔 이?”
바이크 정비소 주인이 전화를 끊자 잠시 후 젊은 총각이 운전하는 빨간색 모닝이 다가와 서고 거기서 아가씨가 내렸다. “요즘 차 배달하는 아가씨들 오토바이 안 타? 스쿠터였나?” 내가 묻자 카센터 사장님은 가당찮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예전에야 아가씨들이 걸어서도 가고 오토바이 뒷자리도 타고 다니지만 21세기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선진국 대한민국 아가씨들은 요즘은 카!-그는 차를 이렇게 발음했다-로 배달을 하제” 한다. 그런데 차에서 내리는 아가씨는 조금 노숙한(?) 축에 속해 보였다.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카센터 주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나가 말한 사람이 그쪽이 아닌디” 그러자 아가씨는 당연하다는 듯 보온병을 열며 대꾸했다. “누구 찾으시는지 모르지만 제가 먼양이에요.” 김양, 이양, 박양, 정양, 공양은 들어보았지만 우리 세 사람에게 먼양이라는 성은 처음이었다. “참말로 성이 먼씨여?”
바이크 정비소 주인이 다시 묻자 먼양은 이런 자신의 처지가 화가 난다는 듯이 입술을 앙다물더니 “어쨌든 먼양을 찾으셨다면서요? 왜 아니에요? 그리고 제가 그 먼양이에요” 하는 것이었다. 먼양의 서슬 퍼런 대꾸에 카센터 주인은 커피를 마시는 내내 말이 없다가 그녀가 돌아가자 무릎을 탁 쳤다. “참말로 나는 × 위에 거시기 하는 × 있더라고 머리가 어찌 저리 명석허게 돌아가까 이. 천재여 천재! 먼양이라고 아예 이름을 붙여 부렸구마. 안 그러면 지가 나이가 많아 아무도 안 찾은께. 우리 겉이 기억력 없는 사람들 맨날 먼양이냐 거시기냐 갸가 하니께 … 그걸 이용해 부렸다 … 하하. 대단하다 대단해. 우리는 선진국에 들어갈 머리들을 타고 났어 야….”
처녀(?)들이 그렇게 ‘자기 다방’ ‘오빠다방’ ‘센스 다방’ ‘미희 단란주점’ 등에서 화장을 고치고 있는 동안 지리산 장터에는 며칠 만에 노총각 하나가 나타났다. 낙시인의 오토바이를 보자 그가 손을 흔들었다.
“형, 나 전주서 노가다하고 돈 쪼깨 벌어왔소. 지금 가서 사우나 좀 허고 오늘 연애 좀 해보려고….”
그는 싱글벙글이었다. 대개 이곳의 총각들은 돈이 생기면 남원역 앞의 사창가로 가거나 이곳 장날에 매매춘을 한다. (가만, 우리나라 매매춘이 금지 아닌가? 에구 머리야. 이 매춘도 텔레비전에 나와서 그때 부모님이 연로하시고 아이가 왕따를 당하고 과거의 기억이 도무지 나지 않아서 얼결에 했으니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합법이 되나…) 그가 지나가고 나서 “내가 누구야” 하고 묻자 낙시인은 태연하게 “응 산에서 사는 애야” 하는 것이었다. “아니 뭐 하는 사람이냐고?” 내가 다시 묻자 낙시인은 곤란하다는 듯이 곰곰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응, 술을 많이 먹고 결혼은 안한 것 같고 그리고 스님은 아니야” 했다. 그는 그 사람이 지리산에서 뭘 하는지 그게 무슨 중요한 일이냐고 하면서 이 기회에 자기가 알고 있는 너무도 착실한 총각을 장가보내기 위해 내 힘이 필요하다면서 나를 카페 ‘소풍’으로 끌고 갔다. 가는 동안 이야기를 들으니 집도 있고 논도 있고 밭도 있고 게다가 한옥을 짓는 기술까지 겸비해 일당이 엄청 높은 청년이 여자들한테 이용만 당하고, 퇴짜 맞고, 양다리 걸치는데 당하고, 그러고도 장가를 가면 좋은데 아직도 못 가고 있어서 가여워서 못 보겠다는 것이다. 이 기회에 신문에다 소개를 해서 이 착실하고 기술 있는 젊은 총각을 장가보내 달라는 이야기였다.
얼마나 못생기고 성격 더러우면 그럴까 싶은데 마침 나를 기다리는 청년은 자그마한 키에 적당한 체격, 귀엽게 생긴 외모를 가진 아마 서울에 있었다면 그냥 평범하지만 성실한 회사원으로 소개받으면 딱 좋을 그런 청년이었다. 내가 무슨 힘이 될까 싶어 밍밍하게 앉아 있다가 직업적인 질문을 던져보았다. “한옥 지으려면 평당 얼마 들어요?” 그러자 이 동네에서 솜씨 좋은 목수로 소문이 자자한 그의 얼굴이 마치 들어서는 안될 질문이라도 들은 것처럼 귀까지 빨개졌다. 내가 의아해하자 낙시인이 대답했다. “에구 그런 걸 물으면 안돼. 저 목수는 다 잘하는데 두 가지는 안돼. 하나는 계산이고 하나는 지붕에 올라가는 거야.” 그러자 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소공포증이 있어요. 그래서 지붕은 제가 절대 못 올려요.” 곁에 있던 사람들이 와와 웃었다. 나는 왈칵 그에게 연민이 생겼다. “저는 추리소설을 쓰겠다고 십년 전부터 공언해 왔는데 시신 생각만 하면 무서워서 못 쓰고 있답니다. 비슷하네요.”
우리는 그렇게 친해졌다. 어쨌든 눈앞에는 술이 있고 솜씨 좋은 ‘소풍’ 주인이 가격 생각 않고 비싼 재료로 만들어 내는 맛있는 안주가 있었다. 술이 좀 들어가자 수줍던 목수는 다시 말했다.
“여자들은 참 이상해요. 저보고 가진 게 뭐냐고 물어요. 이 몸뚱이밖에 없다 그러면 화를 내면서 다음부터 전화를 안 받는 거예요. 실은 부모님이 지으신 집도 있고 논도 좀 있고 밭도 있는데 없다고 하고 시집와서 있는 걸 알면 더 좋은 게 아닐까요?” 목수는 꿈을 꾸는 듯했다. 나로서도 그 방면은 시신보다도 더 무서워하는 바라서 더욱 모르니 할 말이 없었다. 목수는 이제는 맥주를 치우고 소주를 마시며 한숨을 쉬었다.
“여기 동네에 큰 당구장 주인이 있어요. 저보다 열 살 위인 총각인데 장가갈 생각을 안 해요. 돈만 주면 매달 새로 오는 20대 초반 여자애들하고 연애하는데 뭐 하러 한 여자랑 결혼을 하느냐는 거예요. 돈 좀 있는 그런 부류 총각들도 꽤 있어요. 여기 말이에요. 그리고 우리 같은 총각들이랑 … 그래도 결혼을 하려면 정이 좀 있어야 하는데 전 사진 보고 외국 가서 찍어다 결혼하는 -그것도 돈이 꽤 든대요- 그런 건 싫고 부모님들이 저 장가가기 바라시다가 병들고 늙으시는데 그땐 정말 내가 꼭 이곳에서 살아야 하나 싶어요.”
우리가 한숨을 쉬고 있는데 누군가 벌컥 카페 ‘소풍’의 문을 밀고 들어섰다. 아까 낮에 만났던 그 총각이었다. 그는 벌건 얼굴로 소주를 찾더니 ‘글라스’에 따라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곤 울먹이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형, 이럴 수가 있어? 내가 노가다해서 모은 돈으로 사랑 한번 해보려고 갔는데 이 기집애가 저녁 먹고 맥주 마시고 노래방 가자는 거야. 그래도 연앤데 싶어서 하자는 대로 다 하다 보니까, 그만 노래방에서 그 기집애가 최신곡을 다 부르는 바람에 티켓 끊은 시간이 다 되어 버렸어. 더는 돈도 없고 그래서 내가 이왕 이렇게 된 거 날도 좋은데 어디 대숲에서라도 한번 주라니까, 그 전까지 맥주 마시고 노래 부르고 애교 떨던 기집애가 눈을 부라리면서 억센 경상도 사투리로 그러는 거 있지 … 모기 물려서 엉뎅이 밤탱이 되라고 이기 미쳤나? 그러면서 가버렸어. 내가 한번 하려고 점심도 안 사먹고 꼬박 모은 돈인데, 엉엉.”
곁에 있던 목수가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듯 뭐라 말을 하려다 말고 술을 마셔버렸다. 여름은 가는데 그렇게 대숲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소풍’ 주인이 맛있는 청국장을 내어주며 그를 툭 쳤다. “괜찮다. 그래도 오늘은 뽀뽀는 한번 했나보네, 뭘.”
요즘 남도에 가면 심심치 않게 베트남이나 몽골 혹은 필리핀의 새댁들이 눈에 띈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이제 꽤 자라나고 있어서 새로운 문화가 탄생될 것이 예상되기도 한다. 아마도 우리나라가 다민족 사회라는 것을 가장 실감할 수 없는 곳이 서울 한복판이지 싶다. 하지만 가끔 내게 드는 의문, 이렇게 많은 농촌의 총각들이 결혼을 못할 정도로 성비가 불균형하다는 말일까 싶은 것이다. 일전에 신영복 선생이 책에 쓰신 대로 가진 자들이 여러 여자를 소유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한 여자도 곁에 두지 못하는 비극이 느껴지곤 한다. 그리고 거기서 태어난 가난한 여자아이들은 다시 유흥가로 흘러들어가고….
총각 목수 박문수씨가 지은 섬진강변 박두규 시인의 집. | 이원규 시인 촬영
지리산 자락의 모텔에 한번 들어가면 온갖 다방의 성냥들이 즐비하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길 다방’ ‘고향 다방’ ‘88다방’ ‘모정 다방’이라는 명칭이 고색창연하더니, 요즘에는 대놓고 ‘꽃다방’ ‘오빠다방’ ‘팡팡다방’ ‘자기 다방’을 거쳐 ‘센스다방’ ‘날 불러줘요 다방’도 있다. 이 다방들은 주로 배달 서비스를 주업으로 한다.
가게 바로 앞에 커피 자판기가 있어서 몇 백원이면 커피를 마실 수 있는데도 사장님들은 손님이 오면 다방 커피를 시킨다. 사모님이 이런 사실을 알았는지 예쁜 바구니에 녹차, 현미차, 율무차, 옥수수수염차 다 넣어서 전기 포트와 컵을 가져다 놓았는데도 사장님들은 오늘도 성냥갑을 들어 전화번호를 확인하고-너무 오래되어서 번호를 다 외우겠지만 그렇게 되면 품위를 의심받을 수도 있고 또 특별대우라는 생색도 낼 수 없으므로 꼭 이렇게 전화번호를 오래 들여다보는 것이다-전화를 걸어 커피를 주문했다. 낙시인이 다니는 바이크 정비소 주인도 마찬가지다. 아니라고 아무리 손을 저어도 “그라믄 나가 섭섭하제이” 하기에 지금은 모두가 그냥 내버려두는 편이다. 어쩌면 그는 이 기회에 부인에게조차 합법적으로 젊은 처자와 차를 한잔 마실 심산일지도 모른다. 실상 그런 일이 아니면 시골바닥에서 젊은 처자 얼굴을 볼 일이 평생 없기 때문이다. “거기 커피 두 잔 가져와봐라. 이왕이면 이쁜 아그가 가져다 주면 좋제. 거 그때 왔던 아그가 이쁘던디 이름이 머간디 … 있자녀 왜 먼양이냐 갸가? 어? 아, 안다고? 지금 마침 있어? 거 잘 되앗네 그려 커피 두 잔 이?”
바이크 정비소 주인이 전화를 끊자 잠시 후 젊은 총각이 운전하는 빨간색 모닝이 다가와 서고 거기서 아가씨가 내렸다. “요즘 차 배달하는 아가씨들 오토바이 안 타? 스쿠터였나?” 내가 묻자 카센터 사장님은 가당찮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예전에야 아가씨들이 걸어서도 가고 오토바이 뒷자리도 타고 다니지만 21세기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선진국 대한민국 아가씨들은 요즘은 카!-그는 차를 이렇게 발음했다-로 배달을 하제” 한다. 그런데 차에서 내리는 아가씨는 조금 노숙한(?) 축에 속해 보였다.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카센터 주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나가 말한 사람이 그쪽이 아닌디” 그러자 아가씨는 당연하다는 듯 보온병을 열며 대꾸했다. “누구 찾으시는지 모르지만 제가 먼양이에요.” 김양, 이양, 박양, 정양, 공양은 들어보았지만 우리 세 사람에게 먼양이라는 성은 처음이었다. “참말로 성이 먼씨여?”
바이크 정비소 주인이 다시 묻자 먼양은 이런 자신의 처지가 화가 난다는 듯이 입술을 앙다물더니 “어쨌든 먼양을 찾으셨다면서요? 왜 아니에요? 그리고 제가 그 먼양이에요” 하는 것이었다. 먼양의 서슬 퍼런 대꾸에 카센터 주인은 커피를 마시는 내내 말이 없다가 그녀가 돌아가자 무릎을 탁 쳤다. “참말로 나는 × 위에 거시기 하는 × 있더라고 머리가 어찌 저리 명석허게 돌아가까 이. 천재여 천재! 먼양이라고 아예 이름을 붙여 부렸구마. 안 그러면 지가 나이가 많아 아무도 안 찾은께. 우리 겉이 기억력 없는 사람들 맨날 먼양이냐 거시기냐 갸가 하니께 … 그걸 이용해 부렸다 … 하하. 대단하다 대단해. 우리는 선진국에 들어갈 머리들을 타고 났어 야….”
처녀(?)들이 그렇게 ‘자기 다방’ ‘오빠다방’ ‘센스 다방’ ‘미희 단란주점’ 등에서 화장을 고치고 있는 동안 지리산 장터에는 며칠 만에 노총각 하나가 나타났다. 낙시인의 오토바이를 보자 그가 손을 흔들었다.
“형, 나 전주서 노가다하고 돈 쪼깨 벌어왔소. 지금 가서 사우나 좀 허고 오늘 연애 좀 해보려고….”
이래저래 결혼이 늦어진다는 총각 목수 박문수씨가 한옥을 지을 재목들을 다듬고 있다.
얼마나 못생기고 성격 더러우면 그럴까 싶은데 마침 나를 기다리는 청년은 자그마한 키에 적당한 체격, 귀엽게 생긴 외모를 가진 아마 서울에 있었다면 그냥 평범하지만 성실한 회사원으로 소개받으면 딱 좋을 그런 청년이었다. 내가 무슨 힘이 될까 싶어 밍밍하게 앉아 있다가 직업적인 질문을 던져보았다. “한옥 지으려면 평당 얼마 들어요?” 그러자 이 동네에서 솜씨 좋은 목수로 소문이 자자한 그의 얼굴이 마치 들어서는 안될 질문이라도 들은 것처럼 귀까지 빨개졌다. 내가 의아해하자 낙시인이 대답했다. “에구 그런 걸 물으면 안돼. 저 목수는 다 잘하는데 두 가지는 안돼. 하나는 계산이고 하나는 지붕에 올라가는 거야.” 그러자 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소공포증이 있어요. 그래서 지붕은 제가 절대 못 올려요.” 곁에 있던 사람들이 와와 웃었다. 나는 왈칵 그에게 연민이 생겼다. “저는 추리소설을 쓰겠다고 십년 전부터 공언해 왔는데 시신 생각만 하면 무서워서 못 쓰고 있답니다. 비슷하네요.”
우리는 그렇게 친해졌다. 어쨌든 눈앞에는 술이 있고 솜씨 좋은 ‘소풍’ 주인이 가격 생각 않고 비싼 재료로 만들어 내는 맛있는 안주가 있었다. 술이 좀 들어가자 수줍던 목수는 다시 말했다.
“여자들은 참 이상해요. 저보고 가진 게 뭐냐고 물어요. 이 몸뚱이밖에 없다 그러면 화를 내면서 다음부터 전화를 안 받는 거예요. 실은 부모님이 지으신 집도 있고 논도 좀 있고 밭도 있는데 없다고 하고 시집와서 있는 걸 알면 더 좋은 게 아닐까요?” 목수는 꿈을 꾸는 듯했다. 나로서도 그 방면은 시신보다도 더 무서워하는 바라서 더욱 모르니 할 말이 없었다. 목수는 이제는 맥주를 치우고 소주를 마시며 한숨을 쉬었다.
“여기 동네에 큰 당구장 주인이 있어요. 저보다 열 살 위인 총각인데 장가갈 생각을 안 해요. 돈만 주면 매달 새로 오는 20대 초반 여자애들하고 연애하는데 뭐 하러 한 여자랑 결혼을 하느냐는 거예요. 돈 좀 있는 그런 부류 총각들도 꽤 있어요. 여기 말이에요. 그리고 우리 같은 총각들이랑 … 그래도 결혼을 하려면 정이 좀 있어야 하는데 전 사진 보고 외국 가서 찍어다 결혼하는 -그것도 돈이 꽤 든대요- 그런 건 싫고 부모님들이 저 장가가기 바라시다가 병들고 늙으시는데 그땐 정말 내가 꼭 이곳에서 살아야 하나 싶어요.”
우리가 한숨을 쉬고 있는데 누군가 벌컥 카페 ‘소풍’의 문을 밀고 들어섰다. 아까 낮에 만났던 그 총각이었다. 그는 벌건 얼굴로 소주를 찾더니 ‘글라스’에 따라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곤 울먹이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형, 이럴 수가 있어? 내가 노가다해서 모은 돈으로 사랑 한번 해보려고 갔는데 이 기집애가 저녁 먹고 맥주 마시고 노래방 가자는 거야. 그래도 연앤데 싶어서 하자는 대로 다 하다 보니까, 그만 노래방에서 그 기집애가 최신곡을 다 부르는 바람에 티켓 끊은 시간이 다 되어 버렸어. 더는 돈도 없고 그래서 내가 이왕 이렇게 된 거 날도 좋은데 어디 대숲에서라도 한번 주라니까, 그 전까지 맥주 마시고 노래 부르고 애교 떨던 기집애가 눈을 부라리면서 억센 경상도 사투리로 그러는 거 있지 … 모기 물려서 엉뎅이 밤탱이 되라고 이기 미쳤나? 그러면서 가버렸어. 내가 한번 하려고 점심도 안 사먹고 꼬박 모은 돈인데, 엉엉.”
곁에 있던 목수가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듯 뭐라 말을 하려다 말고 술을 마셔버렸다. 여름은 가는데 그렇게 대숲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소풍’ 주인이 맛있는 청국장을 내어주며 그를 툭 쳤다. “괜찮다. 그래도 오늘은 뽀뽀는 한번 했나보네,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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