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소설가ㅣ경향신문
입력 : 2010-09-07-21:17:59ㅣ수정 : 2010-09-07 21:18:00
ㆍ“연관스님, 수경이 밉죠” “밉기는 뭘…”
고아르피엠 여사는 요즘 우울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고아르피엠을 닮아 천방지축이라고 사람들이 수군거려서 그녀가 미워하던 개 지화자가 새끼를 낳은 것도 그 원인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며칠 밤마다 이상한 소리가 난다 했더니 이 녀석이 덜컥 새끼를 배버리고 다섯 마리나 되는 새끼를 낳았다. 올해 따라 비는 자주 내리고 열대야는 계속되는데 천방지축 지화자는 중년의 여인처럼 헉헉거리며 지쳐가고 있었다. 새끼들의 아버지로 의심되는 것은 아랫집의 진돗개 잡종인데 어떻게 확인해 볼 도리가 없었다. 냉동실에 석달이나 아껴두었던 소고기를 꺼내서 미역국을 끓여주고 사람이 쓰는 선풍기를 가져다 틀어 놓아주었지만 저 두꺼운 털외투를 입고 그게 무슨 소용이랴 싶었다. 그러기에 남편 낙시인의 말을 듣지 말고 이름을 조신으로 바꾸어야 했다. 지화자라니…. 그리고 똑같은 밤을 치른 대가로 겪어야 하는 세상 모든 암컷들의 비애가 왠지 이 여름을 더 힘들게 했는지도 모른다.
고아르피엠 여사는 요즘 우울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고아르피엠을 닮아 천방지축이라고 사람들이 수군거려서 그녀가 미워하던 개 지화자가 새끼를 낳은 것도 그 원인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며칠 밤마다 이상한 소리가 난다 했더니 이 녀석이 덜컥 새끼를 배버리고 다섯 마리나 되는 새끼를 낳았다. 올해 따라 비는 자주 내리고 열대야는 계속되는데 천방지축 지화자는 중년의 여인처럼 헉헉거리며 지쳐가고 있었다. 새끼들의 아버지로 의심되는 것은 아랫집의 진돗개 잡종인데 어떻게 확인해 볼 도리가 없었다. 냉동실에 석달이나 아껴두었던 소고기를 꺼내서 미역국을 끓여주고 사람이 쓰는 선풍기를 가져다 틀어 놓아주었지만 저 두꺼운 털외투를 입고 그게 무슨 소용이랴 싶었다. 그러기에 남편 낙시인의 말을 듣지 말고 이름을 조신으로 바꾸어야 했다. 지화자라니…. 그리고 똑같은 밤을 치른 대가로 겪어야 하는 세상 모든 암컷들의 비애가 왠지 이 여름을 더 힘들게 했는지도 모른다.
왼쪽부터 수경스님, 연관스님, 도법스님.
그때 뒷집에 새로 이사 온 귀농한 젊은 새댁이 말을 걸어왔다. 여리고 곱고 태평스럽고 느린 말투로 그녀가 말했다.
“형니임… 새끼들은… 어때요?”
“응 귀여워… 그런데 더워서 큰일이다.”
“형니임 귀농생활 힘들어요. 형님은 몇 년 되셨어요?”
“난 오년.”
“그래요. 전 일년인데 힘드네요… 그나저나 형님 이번 장에 저 개들 내다 파실래요?”
고아르피엠은 잠깐 망설였다. 그런 방법도 있었던 거였다.
“그럴 수도 있겠네…그런데 새댁 설마 사람들이 그것들을 사서 잡아 먹지는 않겠지?”
그러자 야실야실한 팔다리를 버들가지처럼 휘감으며 고아르피엠 곁으로 다가오던 새댁이 고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야 … 당장은 안 먹겠죠.”
어이없는 표정이던 고아르피엠 여사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새댁이 고운 목소리로 “왜 그러세요” 물었다.
“이거… 지네… 아냐… 지네.”
새댁은 낭창한 목을 빼서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지네네요오 형니임. 그런데 지네는 죽여야 해요.”
그리고는 그 가느다란 발목에 달린 섬세한 발로 지네를 퍽퍽 눌러 죽이는 것이었다. 고아르피엠은 왠지 새댁이 좀 무서워져서 “음 내가 가볼 데가 있어서 말이야”하며 집을 나섰다. 낙시인은 며칠째 낙동강 살리기를 한다고 경상도로 떠나고 집에 없었다. 그녀는 차를 몰아 노고단 휴게소로 갔다. 새삼 사춘기인가 싶게 눈물이 나왔다. 이럴 때 은니라고 부르는 꽁지작가에게 전화를 하면 “사춘기는 무슨 사춘기 갱년기지. 그런데 낙시인 밥은 해주는 거지?”하며 쏘아붙일 게 뻔했다. 낙시인을 먼저 알았다고 시누노릇을 하려 들어 한번은 대판 싸운 적도 있었다.
지리산 천지에 혼자인 것 같은 이런 때 전화를 걸 곳은 한 곳밖에 없었다. 연관스님이었다. 연관스님은 전화를 받자마자 모든 레퍼토리를 알고 있다는 듯 “그래 낙시인하고 싸웠는가?” 물었다. 아니라고 하자 “그럼 예쁜 여자가 낙시인네 시창작반에 제자로 들어왔는가?” 했다. 아니라고 하자 “그러면 곡차가 먹고 싶은가 보구만 어여 오게 내가 마주 앉아 있어줄 테니.” 아르피엠 여사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맞다, 그거였다. 갱년기가 아니라. 아르피엠은 나비같이 차를 몰고 산 밑으로 내려가 실상사로 들어갔다. “스님도 목 타실 거 같아서 호호.” 두 사람은 맥주를 꺼내놓고 마셨다. 아르피엠 여사의 아르피엠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시님 제가 안주도 변변히 못 사왔는데 가서 냉면이나 드실래요?” 평소에 모든 종류의 국수 특히 냉면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연관스님이 잠시 머뭇하시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 여름 하안거에 들어갔던 연관스님은 수경스님이 승적을 모두 내려놓고 잠적하신 데 충격을 받고 선방을 나오셨다. “도반을 중노릇도 못하게 하는데 참선은 해서 뭐하노?” 연관스님은 홀로 수경스님이 있을 만한 곳을 찾아 강원도를 헤매셨다고 낙시인이 말했다. 그렇게 수경스님을 찾아냈는지 아닌지 연관스님은 수경스님의 처소에 와서 경전을 번역하고 계셨다.
사진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수월사 연관스님 거처, 실상사 석등, 수월암 우체통. | 사진촬영 이원규
그렇게 수경스님이 잠적하신 다음 불교의 3총사라고 불리던 나머지 도법과 연관스님은 수경스님이 그토록 좋아하시던 냉면을 입에 대지 않았다. 아르피엠은 연관스님의 서글한 눈매가 젖어드는 것을 보고 얼른 말을 바꿨다. “스님 수경스님이 미우시죠?” 그러자 연관스님의 눈가에 화색이 확 피어났다. “밉기는 뭘” “그런데 세분은 만나기만 하면 5분도 지나지 않아 바로 싸우시잖아요. 사이 나쁜 우리 부모님도 그래도 한 15분은 있다가 싸우시는데 그러니까 사람들이 전생에 세분이 각기 부부였다고 하지요.” 연관스님은 껄껄 웃었다. 해인사 수덕사 금산사 경상 충청 전라 이렇게 다른 문중에서 출가하고도 이렇게 도반이 된 것은 기이한 인연이었다. 사람들은 도법스님을 머리를 쓰는 지장, 수경스님을 마음을 쓰는 용장, 그리고 연관스님을 연륜이 깊은 덕장이라고 불렀다. 지장 용장도 멋지지만 누구나 힘들고 울먹일 때 찾아가는 것은 연관스님이었다. 수녀님들 팬 클럽도 알게 모르게 있다고 들었는데 연관스님은 입이 헤벌어지게 웃으실 뿐 부정도 긍정도 안했다.
지리산 댐 계획이 발표되면서 이 세 사람은 사회에 전면으로 나섰다. 지리산을 살리기 위해 가장 먼저 지리산에서 죽어간 그 모든 생명들을 위한 위령제를 지내기 위해 세 사람은 각기 3년씩을 준비하기로 결의한다. 도법스님은 실상사 안에서 출입을 삼가는 수도를, 수경스님은 지리산 850리 낙동강 1300리 순례를, 그리고 연관스님은 백두대간을 종주한다. 위령제 하나를 지내기 위해 3년을 희생과 공을 바치는 수도자의 모습을 요즘에는 그리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르피엠이 말을 잇지 않자 연관스님은 괜히 아르피엠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처럼 수경스님의 말을 꺼냈다.
“내가 미워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게 말이야. 젊을 때 우리가 셋이서 외딴 곳에 선방을 잡고 정말 용맹정진하기로 결의를 했단 말이야. 그래서 일단 도법이 밥을 맡고 내가 나무를 하고 수경이 군불을 때기로 했지. 그런데 이 도법이가 말이야 머리를 굴리더니 어느 날 국수를 잔뜩 삶아서 바구니에 가득 건지더니 그러는 거야. 밥하는 것 때문에 수행에 지장이 있어서 보름치를 삶았네 알아서들 드시게, 하더란 말이야, 그랬더니 수경이가 대뜸 그래? 그럼 나도 보름치 군불을 한꺼번에 땔 테니 그리 알게 하는 거야. 그러더니 나보고 보름치 나무를 해오라는 거야. 생각해보게 백번 양보해서 국수도 보름치 삶을 수 있고 군불도 보름치 땔 수 있지만 어떻게 보름치 나무를 한꺼번에 해오겠냐는 말이야. 그러더니 수경이 그럼 내가 안 하는 게 아니라 나무가 없어서 나는 못 때네 이러더란 말이야. 에잇.”
연관스님은 혀를 끌끌 찼다. 그렇게 싸우시면서 붙어 다니는 이유는… 아르피엠은 안다. 그것이 불교를 위한 일이면, 그것이 생명을 위한 일이면, 그것이 권력에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일이면 세 분은 두말 않고 한몸이 된다. 그때 세 사람을 갈라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욕망이 있어야 유혹이 생기는 것, 돈도 권력도 여자도 그 세 사람이 한몸이 되어 나서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런데 한 가지 그들이 정말 못이기는 유혹이 하나 있다. 그건 국수, 그중에서도 냉면이다. 젊은 시절 하안거를 마치고 나온 세 사람은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바로 냉면집으로 들어가 각 16그릇씩을 먹었다는 일화가 있다. “하안거 나오셔서 스님들이 무슨 돈이 있다고 냉면을 그리 잡수셨대요?” 고아르피엠이 묻자 스님이 대답했다. “글쎄 말이야. 그런 걸 다 미리 계산할 줄 알면 내가 중이 되었겠나. 어쨌든 먹었어.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걸 곁에서 보던 불자가 정말이지 몇 그릇이나 먹나 세고 있다가 나중에 입을 딱벌리고 계산을 하고 갔다 하두만.”
연관스님은 시익 웃었다. 고아르피엠이 말했다.
“스님 지금 꽁지작가가 쓰는 ‘지리산 행복학교’가 책으로 나오면 낙시인도 인세를 반 받아요. 그러면 나도 좀 줄 테니까 그때 수경스님 모시고 우리 꼭 냉면 먹어요. 이번엔 각 스무그릇씩 먹어요 네?”
연관스님은 빙그레 웃으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강물이 강물따라 자연스레 흘러가게 하기 위해 선승이 거리로 나섰다가 승적을 버리고 잠적하는 이 세상을 오래도록 바라보기가 힘겨우셨기 때문인가 보았다.
지리산 댐 계획이 발표되면서 이 세 사람은 사회에 전면으로 나섰다. 지리산을 살리기 위해 가장 먼저 지리산에서 죽어간 그 모든 생명들을 위한 위령제를 지내기 위해 세 사람은 각기 3년씩을 준비하기로 결의한다. 도법스님은 실상사 안에서 출입을 삼가는 수도를, 수경스님은 지리산 850리 낙동강 1300리 순례를, 그리고 연관스님은 백두대간을 종주한다. 위령제 하나를 지내기 위해 3년을 희생과 공을 바치는 수도자의 모습을 요즘에는 그리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르피엠이 말을 잇지 않자 연관스님은 괜히 아르피엠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처럼 수경스님의 말을 꺼냈다.
“내가 미워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게 말이야. 젊을 때 우리가 셋이서 외딴 곳에 선방을 잡고 정말 용맹정진하기로 결의를 했단 말이야. 그래서 일단 도법이 밥을 맡고 내가 나무를 하고 수경이 군불을 때기로 했지. 그런데 이 도법이가 말이야 머리를 굴리더니 어느 날 국수를 잔뜩 삶아서 바구니에 가득 건지더니 그러는 거야. 밥하는 것 때문에 수행에 지장이 있어서 보름치를 삶았네 알아서들 드시게, 하더란 말이야, 그랬더니 수경이가 대뜸 그래? 그럼 나도 보름치 군불을 한꺼번에 땔 테니 그리 알게 하는 거야. 그러더니 나보고 보름치 나무를 해오라는 거야. 생각해보게 백번 양보해서 국수도 보름치 삶을 수 있고 군불도 보름치 땔 수 있지만 어떻게 보름치 나무를 한꺼번에 해오겠냐는 말이야. 그러더니 수경이 그럼 내가 안 하는 게 아니라 나무가 없어서 나는 못 때네 이러더란 말이야. 에잇.”
연관스님은 혀를 끌끌 찼다. 그렇게 싸우시면서 붙어 다니는 이유는… 아르피엠은 안다. 그것이 불교를 위한 일이면, 그것이 생명을 위한 일이면, 그것이 권력에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일이면 세 분은 두말 않고 한몸이 된다. 그때 세 사람을 갈라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욕망이 있어야 유혹이 생기는 것, 돈도 권력도 여자도 그 세 사람이 한몸이 되어 나서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런데 한 가지 그들이 정말 못이기는 유혹이 하나 있다. 그건 국수, 그중에서도 냉면이다. 젊은 시절 하안거를 마치고 나온 세 사람은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바로 냉면집으로 들어가 각 16그릇씩을 먹었다는 일화가 있다. “하안거 나오셔서 스님들이 무슨 돈이 있다고 냉면을 그리 잡수셨대요?” 고아르피엠이 묻자 스님이 대답했다. “글쎄 말이야. 그런 걸 다 미리 계산할 줄 알면 내가 중이 되었겠나. 어쨌든 먹었어.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걸 곁에서 보던 불자가 정말이지 몇 그릇이나 먹나 세고 있다가 나중에 입을 딱벌리고 계산을 하고 갔다 하두만.”
연관스님은 시익 웃었다. 고아르피엠이 말했다.
“스님 지금 꽁지작가가 쓰는 ‘지리산 행복학교’가 책으로 나오면 낙시인도 인세를 반 받아요. 그러면 나도 좀 줄 테니까 그때 수경스님 모시고 우리 꼭 냉면 먹어요. 이번엔 각 스무그릇씩 먹어요 네?”
연관스님은 빙그레 웃으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강물이 강물따라 자연스레 흘러가게 하기 위해 선승이 거리로 나섰다가 승적을 버리고 잠적하는 이 세상을 오래도록 바라보기가 힘겨우셨기 때문인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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