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 소설가ㅣ경향신문
ㆍ“지리산은 참 이상해요, 어머니처럼 누구라도 품어요”
수경 스님의 소식은 없고 이 더위에 어떻게 계시는지 모두들 마음이 좋지 않았다. 지난 몇 년 동안 큰 사건이 하도 많이 터져서 죄 없는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쫓겨나고 갇히고 마치 풍랑 위를 떠도는 배를 탄 것처럼 대체 뭐가 뭔지 모르는 시간이 폭풍처럼 지나갔는데, 이제 사람들은 오늘 터지는 새로운 경악으로 어제의 충격을 잊어버리게 되어서 수경 스님 잘 계실까 물으면 아하 그런 일이 있었지? 하다가 이번 일에 대면 그건 일도 아니지, 할지도 모르겠다.
지리산에 갔던 나는 낙장불입 시인을 졸라 실상사에 가서 수경 스님 계시던 거처라도 보고 싶다고 했다. 희한하게도 해우소에 앉으면 천왕봉이 눈 앞에 곧바로 올려다보이는 실상사.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햇빛만 가시처럼 눈을 찌르며 튀어오르는 사찰에는 아무도 없었다. 너무 더웠다. 그런데 실상사를 나오다 보니 일본식으로 지은 아름다운 목조건물에 ‘소풍’이라는 카페가 보였고, 커다란 글씨로 ‘팥빙수’라고 씌어 있었다. “우리 저거 먹고 가자.” 내가 말하자 원래 먹을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낙시인은 떨떠름한 표정이었고, 내가 가는 곳마다 눈을 부라리며 너무 먹을 것을 밝힌다고 생각해서 피곤해하는 강남좌파는 “또 시작이군” 하는 얼굴이었다.
그렇다고 기가 죽을 일이 없는 나는 의기양양 그리로 들어가 주인에게 팥빙수를 시켰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낙시인과 순례 동기였다. 수원에서 콩나물국밥집 주방장을 하다 순례온 처녀와 함께 길거리에서 30~40인분의 식사를 30분이면 너끈히 해내던 요리사. 얼마 전 그가 공방 한 쪽에 카페를 낸 것이었다. 서울에서 미대를 졸업하고 유명한 광고회사에 다녔던 그는 이곳에 내려온 지 10년이 됐다고 했다. 그가 내온 팥빙수를 보자 우리 세 사람은 입이 벙글어졌다. 서울 강남의 일류 제과점 팥빙수보다 더 맛있었다. 손이 너무 많이 가고 번거로워서 그만둘까도 했지만, 사람들이 이곳에서는 큰돈인 삼천원을 현금으로 내고 좋아하며 먹는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이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팥빙수를 먹고 나자 졸음이 쏟아졌다. 미대를 나온 사람답게 아기자기하게 꾸민 공방과 카페. 그가 목공일을 하는 뒤뜰에는 개 여섯 마리-한 마리는 독신이고 한 마리는 새끼를 네 마리 낳았다. 모두 유기견 출신이다-가 졸고 있고, 갈색 호랑무늬를 가진 고양이가 게으르게 접시꽃 밑에서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정말이지 소풍을 나와 나무그늘에 더 바랄 것 없이 앉아 있는 기분인데 소풍님이 믿을 수 없이 반가운 소리를 한다. “시원하게 맥주 한잔 하시겠어요?”
우리는 ‘소풍’에 앉아 찬 맥주를 마셨다. 당연히 우리가 내야 할 돈인데 주인은 실상사 앞 슈퍼에 가더니 맥주를 그냥 들고 왔다. 월말 일괄 계산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마시면 돌아갈 때 운전은 누가 해?’ 나는 궁금했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그만 마시고 가자’고 할까봐 겁이 났던 것이다. 저녁이 되어서 내가 낙시인에게 묻자 낙시인은 별 걱정을 다한다는 듯이 “이곳은 잘 데가 천지!”라고 하는 것이었다. 소풍 주인이 입을 열었다. “이곳에 온 지 십년, 무엇이 변했는지 한번 돌아보았죠……시간, 시간이었어요. 서울에서의 시간은 내 것이 아니었는데 이곳에서의 시간은 내 것이에요. 이게 제일 큰 변화더라고요… 조각을 하고 싶으면 하고, 팥빙수를 팔고 싶으면 팔고 가게를 닫고 몇 개월씩 순례를 떠나고 싶으면 떠나죠. 지리산은 참 이상해요. 누가 와도 어울려요. 조선백자처럼요. 조선백자는 베르사유 콘솔에 올려놓아도 시골집 뒤주에 놔둬도 어울리잖아요. 중국의 자기도 일본의 도자들도 그렇지는 못하죠. 지리산은 백자처럼 누구라도 품는 그런 산인 거 같아요.”
아닌 게 아니라 방도 별로 없는 소풍에 저녁이 되자 기이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제일 먼저 들어선 사람은 독일인 다비드였다. 정말 다비드처럼 잘 생긴 그는 여기서 한옥 짓는 목수를 따라다니고 있다고 했다. 이 동네의 대목 말에 따르면 대목이 “저기!” 하면 다비드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아 척척 해내고 연장도 제대로 가져다준다고 했다. 대목은 “한국 사람인 그의 조수도 한국말로 이거 가져오라고 해도 다른 연장을 가져오기 일쑤인데 신기하다”고 했다.
그 다음 나타난 사람은 스페인의 프란치스코였다. 불교 그림을 연구하고 싶어 아시아를 여행하고 있는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저녁에 눈을 붙일 때까지 그림을 그렸다. 소풍 주인은 그가 하도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바람에 혼자 놀고 있기가 민망해서 하는 수 없이 뭐라도 하는 척 조각을 하다 보니 반야심경을 하나 다 팠다고 했다. 그는 한국말도 조금 할 줄 알았는데 우리가 수박을 권하자 달게 먹으며 말했다. “스페인 수박 천원, 한국 수박 만원.”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다시 말했다. “광주 잠 하루 오만원, 지리산 잠 한달 오만원. 지리산 싸다, 지리산 좋다.”
어머니 같은 골짜기들을 치맛자락처럼 펼치며 지리산이 수많은 사람들을 넉넉히 감싼다는 것을 알았지만 외국인들까지 이리 품고 있을 줄이야. 카페 소풍에서 기숙을 하다가 그의 말대로 이곳에서 한달에 오만원짜리 방을 얻어 살림을 난 프란치스코는 소풍 주인에게 라면을 한 개 얻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밤이 되자 문제의 인물이 나타났다. 안 그래도 소풍 주인이 그가 돌아올 거라며 우리에게 그를 소개하는 말을 했었다. 스스로의 주장에 따르면 콜롬비아의 래퍼 출신인 그는 제3국 노동자들이 그렇듯 어찌어찌 한국으로 와서 불법체류자가 되어 살고 있었다. 소풍 주인이 갈 곳 없는 그를 재워주고 먹여주면서 가만히 보니 그는 몰래 대마초를 피우고 있는 것 같았다.
모르는 척하고 말았는데 어느날 그가 고래고래 비명을 질러댔다. 놀라 뛰어가 보니 얼굴에 붉은 반점이 돋고 괴로워하며 뒹굴고 있었다. 식중독인가 싶었으나 서로 말도 통하지 않았다. 불법체류자이니 119 구조대를 부를 수도 없어 동네 대목을 불렀다. 대목의 트럭에 그를 태우고 무조건 남원의 병원으로 달렸다. 가는 동안 짧은 영어로 대답하는 그의 말에 따르면 원인은 소똥이었다. 소똥? 그가 되물으니 대마초가 떨어진 그는 금단현상으로 고민 고민했지만 지리산에서 대마를 구할 수가 없었다. 궁리를 해보니 고향에서는 대마초가 떨어지면 할아버지들이 소똥을 잘 말려 피우던 생각이 났다. 그는 돌아다니며 소똥을 조금씩 모아왔고 그걸 피우다가 이리 된 것이었다. 한마디로 똥독이 오른 거였다. 소풍 주인은 어이가 없었다. “야 인마, 너희 고향에서 소들은 산에 가서 대마도 먹고 양귀비 싹도 먹지만 여기 소들은 사료만 먹는단 말이야 이구구구.” 병원에 도착하자 의사가 자초지종을 물었다. “또……옹…” “네?” 의사가 짜증스레 되물었다. “똥…독인 것 같습니다. 그걸 피웠대요. 그러니까 먹은 겁니다.” 의사가 더 이상 호기심을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소풍 주인은 의료보험도 안되는 그를 치료하기 위해 적금을 깼다. 작년에는 새끼를 낳고 살이 오른 유기견의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 동물병원을 일년여 넘게 다니며 비상금을 다 써버렸는데, 그의 말대로 “어찌 의료보험 안되는 중생들만 나한테 와서 아픈지 모르겠다”였다.
드디어 그 문제의 콜롬비아인이 나타났다. 커다란 시베리아 허스키를 한 마리 데리고 있었다. 배우처럼 잘 생긴 그는 어쨌든 음악업계에 종사한 사람답게 나름 분위기도 있었다. 그가 맥주를 마시러 내 가까이 와서 앉았을 때 코를 찌르던 체취와 기름진 머리카락, 그리고 더러운 옷만 아니었다면 낮부터 맥주로 얼큰해진 내 눈이 반짝반짝 빛났을지도 모르겠다. 개가 주인보다 좀 깨끗한 지경이었다.
낙시인이 “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자네 지난번 집에 와서 자고 간 다음날, 우리 집 이불장에 벌레들이 한 줌 나오더라고. 고아르피엠 여사가 이불 빨래 하느라 고생 좀 했지, 허허.”
아무리 콜롬비아가 커피가 맛있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 가브리엘 마르케스가 살던 곳이고 무지막지한 살인독재를 겪어 가여운 나라라고 해도, 그의 바지춤에서 벌레가 기어나올 것만 같아 나는 콜롬비아가 싫어졌고 온 몸이 스멀스멀 근지러웠다. 그는 우리가 내미는 맥주를 마시다가 그가 아는 몇 안되는 한국 말로 “소주 주세요” 했다. 소풍 주인이 소주를 가지러 부엌에 가다가 소리를 질렀다. “쫀, 여기 네 개가 부엌 바닥에다 똥 싸놓았다. 네가 치워!” 쫀은 긴 팔다리를 천천히 움직이며 일어섰다. 잠시 후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가보니 주인이 정성들여 황토를 앉히고 잘 다져놓은 부엌바닥을 쫀이 삽으로 푹푹 파며 똥을 치우고 있었다. 소풍 주인은 다가가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소주병을 건넸다. “그래 파라 파, 나중에 하늘나라 가서 소풍에 가서 소풍 잘하고 왔다고 해라. 이구 이 웬수야! 지리산이 아니면 너와 내가 여기서 만났겠니?”
ⓒ 경향신문 & 경향닷컴수경 스님의 소식은 없고 이 더위에 어떻게 계시는지 모두들 마음이 좋지 않았다. 지난 몇 년 동안 큰 사건이 하도 많이 터져서 죄 없는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쫓겨나고 갇히고 마치 풍랑 위를 떠도는 배를 탄 것처럼 대체 뭐가 뭔지 모르는 시간이 폭풍처럼 지나갔는데, 이제 사람들은 오늘 터지는 새로운 경악으로 어제의 충격을 잊어버리게 되어서 수경 스님 잘 계실까 물으면 아하 그런 일이 있었지? 하다가 이번 일에 대면 그건 일도 아니지, 할지도 모르겠다.
지리산에 갔던 나는 낙장불입 시인을 졸라 실상사에 가서 수경 스님 계시던 거처라도 보고 싶다고 했다. 희한하게도 해우소에 앉으면 천왕봉이 눈 앞에 곧바로 올려다보이는 실상사.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햇빛만 가시처럼 눈을 찌르며 튀어오르는 사찰에는 아무도 없었다. 너무 더웠다. 그런데 실상사를 나오다 보니 일본식으로 지은 아름다운 목조건물에 ‘소풍’이라는 카페가 보였고, 커다란 글씨로 ‘팥빙수’라고 씌어 있었다. “우리 저거 먹고 가자.” 내가 말하자 원래 먹을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낙시인은 떨떠름한 표정이었고, 내가 가는 곳마다 눈을 부라리며 너무 먹을 것을 밝힌다고 생각해서 피곤해하는 강남좌파는 “또 시작이군” 하는 얼굴이었다.
실상사 앞에 자리한 공방 겸 카페 ‘소풍’. 서울에서 미대를 나온 뒤 광고회사에 다니던 주인(오른쪽)은 10년 전 지리산에 왔다. 산사람이 다 된 그는 조각을 하고 싶으면 하고, 순례를 떠나고 싶으면 떠난다. 그는 자유인이다. 이원규 시인 촬영
그렇다고 기가 죽을 일이 없는 나는 의기양양 그리로 들어가 주인에게 팥빙수를 시켰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낙시인과 순례 동기였다. 수원에서 콩나물국밥집 주방장을 하다 순례온 처녀와 함께 길거리에서 30~40인분의 식사를 30분이면 너끈히 해내던 요리사. 얼마 전 그가 공방 한 쪽에 카페를 낸 것이었다. 서울에서 미대를 졸업하고 유명한 광고회사에 다녔던 그는 이곳에 내려온 지 10년이 됐다고 했다. 그가 내온 팥빙수를 보자 우리 세 사람은 입이 벙글어졌다. 서울 강남의 일류 제과점 팥빙수보다 더 맛있었다. 손이 너무 많이 가고 번거로워서 그만둘까도 했지만, 사람들이 이곳에서는 큰돈인 삼천원을 현금으로 내고 좋아하며 먹는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이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팥빙수를 먹고 나자 졸음이 쏟아졌다. 미대를 나온 사람답게 아기자기하게 꾸민 공방과 카페. 그가 목공일을 하는 뒤뜰에는 개 여섯 마리-한 마리는 독신이고 한 마리는 새끼를 네 마리 낳았다. 모두 유기견 출신이다-가 졸고 있고, 갈색 호랑무늬를 가진 고양이가 게으르게 접시꽃 밑에서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정말이지 소풍을 나와 나무그늘에 더 바랄 것 없이 앉아 있는 기분인데 소풍님이 믿을 수 없이 반가운 소리를 한다. “시원하게 맥주 한잔 하시겠어요?”
카페 ‘소풍’에서 파는 팥빙수. 팥은 물론 과일도 아끼지 않고 듬뿍 넣어 맛이 일품이다.
아닌 게 아니라 방도 별로 없는 소풍에 저녁이 되자 기이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제일 먼저 들어선 사람은 독일인 다비드였다. 정말 다비드처럼 잘 생긴 그는 여기서 한옥 짓는 목수를 따라다니고 있다고 했다. 이 동네의 대목 말에 따르면 대목이 “저기!” 하면 다비드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아 척척 해내고 연장도 제대로 가져다준다고 했다. 대목은 “한국 사람인 그의 조수도 한국말로 이거 가져오라고 해도 다른 연장을 가져오기 일쑤인데 신기하다”고 했다.
그 다음 나타난 사람은 스페인의 프란치스코였다. 불교 그림을 연구하고 싶어 아시아를 여행하고 있는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저녁에 눈을 붙일 때까지 그림을 그렸다. 소풍 주인은 그가 하도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바람에 혼자 놀고 있기가 민망해서 하는 수 없이 뭐라도 하는 척 조각을 하다 보니 반야심경을 하나 다 팠다고 했다. 그는 한국말도 조금 할 줄 알았는데 우리가 수박을 권하자 달게 먹으며 말했다. “스페인 수박 천원, 한국 수박 만원.”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다시 말했다. “광주 잠 하루 오만원, 지리산 잠 한달 오만원. 지리산 싸다, 지리산 좋다.”
어머니 같은 골짜기들을 치맛자락처럼 펼치며 지리산이 수많은 사람들을 넉넉히 감싼다는 것을 알았지만 외국인들까지 이리 품고 있을 줄이야. 카페 소풍에서 기숙을 하다가 그의 말대로 이곳에서 한달에 오만원짜리 방을 얻어 살림을 난 프란치스코는 소풍 주인에게 라면을 한 개 얻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밤이 되자 문제의 인물이 나타났다. 안 그래도 소풍 주인이 그가 돌아올 거라며 우리에게 그를 소개하는 말을 했었다. 스스로의 주장에 따르면 콜롬비아의 래퍼 출신인 그는 제3국 노동자들이 그렇듯 어찌어찌 한국으로 와서 불법체류자가 되어 살고 있었다. 소풍 주인이 갈 곳 없는 그를 재워주고 먹여주면서 가만히 보니 그는 몰래 대마초를 피우고 있는 것 같았다.
모르는 척하고 말았는데 어느날 그가 고래고래 비명을 질러댔다. 놀라 뛰어가 보니 얼굴에 붉은 반점이 돋고 괴로워하며 뒹굴고 있었다. 식중독인가 싶었으나 서로 말도 통하지 않았다. 불법체류자이니 119 구조대를 부를 수도 없어 동네 대목을 불렀다. 대목의 트럭에 그를 태우고 무조건 남원의 병원으로 달렸다. 가는 동안 짧은 영어로 대답하는 그의 말에 따르면 원인은 소똥이었다. 소똥? 그가 되물으니 대마초가 떨어진 그는 금단현상으로 고민 고민했지만 지리산에서 대마를 구할 수가 없었다. 궁리를 해보니 고향에서는 대마초가 떨어지면 할아버지들이 소똥을 잘 말려 피우던 생각이 났다. 그는 돌아다니며 소똥을 조금씩 모아왔고 그걸 피우다가 이리 된 것이었다. 한마디로 똥독이 오른 거였다. 소풍 주인은 어이가 없었다. “야 인마, 너희 고향에서 소들은 산에 가서 대마도 먹고 양귀비 싹도 먹지만 여기 소들은 사료만 먹는단 말이야 이구구구.” 병원에 도착하자 의사가 자초지종을 물었다. “또……옹…” “네?” 의사가 짜증스레 되물었다. “똥…독인 것 같습니다. 그걸 피웠대요. 그러니까 먹은 겁니다.” 의사가 더 이상 호기심을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소풍 주인은 의료보험도 안되는 그를 치료하기 위해 적금을 깼다. 작년에는 새끼를 낳고 살이 오른 유기견의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 동물병원을 일년여 넘게 다니며 비상금을 다 써버렸는데, 그의 말대로 “어찌 의료보험 안되는 중생들만 나한테 와서 아픈지 모르겠다”였다.
드디어 그 문제의 콜롬비아인이 나타났다. 커다란 시베리아 허스키를 한 마리 데리고 있었다. 배우처럼 잘 생긴 그는 어쨌든 음악업계에 종사한 사람답게 나름 분위기도 있었다. 그가 맥주를 마시러 내 가까이 와서 앉았을 때 코를 찌르던 체취와 기름진 머리카락, 그리고 더러운 옷만 아니었다면 낮부터 맥주로 얼큰해진 내 눈이 반짝반짝 빛났을지도 모르겠다. 개가 주인보다 좀 깨끗한 지경이었다.
낙시인이 “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자네 지난번 집에 와서 자고 간 다음날, 우리 집 이불장에 벌레들이 한 줌 나오더라고. 고아르피엠 여사가 이불 빨래 하느라 고생 좀 했지, 허허.”
아무리 콜롬비아가 커피가 맛있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 가브리엘 마르케스가 살던 곳이고 무지막지한 살인독재를 겪어 가여운 나라라고 해도, 그의 바지춤에서 벌레가 기어나올 것만 같아 나는 콜롬비아가 싫어졌고 온 몸이 스멀스멀 근지러웠다. 그는 우리가 내미는 맥주를 마시다가 그가 아는 몇 안되는 한국 말로 “소주 주세요” 했다. 소풍 주인이 소주를 가지러 부엌에 가다가 소리를 질렀다. “쫀, 여기 네 개가 부엌 바닥에다 똥 싸놓았다. 네가 치워!” 쫀은 긴 팔다리를 천천히 움직이며 일어섰다. 잠시 후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가보니 주인이 정성들여 황토를 앉히고 잘 다져놓은 부엌바닥을 쫀이 삽으로 푹푹 파며 똥을 치우고 있었다. 소풍 주인은 다가가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소주병을 건넸다. “그래 파라 파, 나중에 하늘나라 가서 소풍에 가서 소풍 잘하고 왔다고 해라. 이구 이 웬수야! 지리산이 아니면 너와 내가 여기서 만났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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