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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행복학교

공지영의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_노고단 봉우리 향해 동요 실시!

노고단 봉우리 향해 동요 실시!
[매거진 esc] 공지영의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한겨레
» 노고단 봉우리 향해 동요 실시! 일러스트레이션 이민혜
가을날에 더 보고 싶은 지리산 시인 친구…힘들고 지친 이를 위로하는 그만의 비법

창밖으로 나뭇잎들이 뚝뚝 떨어져 내리는 가을날이면 더욱 보고 싶은 친구가 있다. 십년 전쯤 지리산으로 들어가 이렇게 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그 친구는 편지에 그렇게 썼다. “깊은 밤 나뭇잎들이 떨어져 내린다. ‘낙장불입’ ‘낙장불입'.”(에구, <한겨레> 보시는 분들 중에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시는 점잖은 분들이 계실 텐데…. 그런 분들은 네이버에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고도리'라고도 하는 민속놀이의 규율을 일컫는 용어 중 하나입니다. ) 순전히 내 개인적 취향으로 말하자면 나는 낙엽을 이렇게 탁월하게 묘사한 사람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본 일이 없다.

울고 싶을 때 그를 생각하면 힘이 난다

나는 그 친구를 일 년에 서너 번은 본다. 대개는 내가 그의 신세를 지며 그의 집에 머무는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어 살아낸 지 한 달이 지난 사람은 아실 것이다. 일 년에 서너 번이나, 그것도 몇 박 며칠씩 함께 붙어 있을 수 있는 친구가 얼마나 있는지 말이다. 나는 아직도 그 친구가 거기 지리산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세상살이가 덜 무서워진다. 힘든 일이 있거나 울고 싶을 때, 갑자기 앞날이 캄캄해져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할 때 그 친구를 생각한다. 그러면 힘이 나는 것이다.

“그래 전부 해서 일단 50만원이면 돼. 그것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어.”

그건 그 친구가 살고 있는 지리산 중턱의 멋진 집의 연세(年稅)가 50만원이기 때문이다. 방 두 개에 거실 하나, 입식 부엌과 수세식 화장실 및 목욕탕을 갖춘 멋진 집인데도 그렇다. 원래는 60만원이었는데 그가 시세를 알아보고 주인에게 항의(아니 이건 그의 말이고 내 생각에는 그답게 부드럽게 제의했을 것이다)를 했더니 퇴직한 교장선생님이신 그 집의 주인이 연 10만원을 깎아 주었다고 한다.

나와 동갑내기인 그를 안 지도 벌써 20년이 넘어간다. 출세한 촌놈의 대표선수로 서울로 올라와 번듯한 직장을 잡고 시인으로 이름을 상재했던 그는 어느 날 정말이지 어느 날, 모든 나쁜 일이 그렇듯 철저하게 자신의 인생이 걷잡을 수 없이 순식간에 꼬여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누군가 다가와 멱살을 잡고 “야, 인마 여기서 나가!” 하는 것이 차라리 편안한 나날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나쁘고 절망적인 일이 그렇듯, 믿었던 사람들이 그를 배신하고 침묵하여 그는 거의 회복이 불가능할 지경의 커다란 상처도 입었다. 그는 주변에서 일어난 모든 나쁜 일에 책임을 진 채로 서울역으로 가서 기차를 탔다. 그때 그의 손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남은 것이라고는 57㎏ 나가는 몸무게뿐이었다고 그는 가끔 말하곤 했다. 그러고는 고향과는 정 반대 방향인 곳으로 가서 정착하는데 그곳이 바로 그가 지금 사는 그 지리산이다.



술에 절어 방안 가득 쓰레기를 쌓아두고 마당에 무릎까지 오는 잡초를 키우는 초라한 사나이를 생각하면 안 된다. 그는 수염이 좀 지저분한 것을 빼고는(그런데 이건 나름 멋이란다!) 깨끗하고 부지런한 사람이다. 내가 전화를 걸어 “나 내일 그리로 갈게” 하고 말하면 그는 검은 가죽 재킷에 멋진 헬멧을 쓰고 지리산 어귀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빈손으로 낙향한 57㎏의 몸무게인 그가 어떻게 그리 됐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그는 지금은 ‘할리 데이비슨' 이라는 오토바이를 타고 우리를 마중 나온다. (사람들 말이 엄청 비싼 것이라고 한다. ) 그리고 집으로 가면 예쁘고 여우 같은 마누라도 있다. 물론 그곳에 가면 우리 술 잘 먹는 사람들의 관습법인 “거주자 우선 지불의 원칙” 같은 것은 없다. 술값과 안줏값과 그런 것들은 순전히 우리 객들의 몫이다. 한번은 걱정이 된 내가 그의 아내에게 “생활은 어떻게 해?” 하고 물으니 그보다 더 태평인 그의 아내는 대답하는 것이다.

“응, 그거야 뭐 손님들이 가져온 안주가 늘 남아서 그걸로 반찬 해먹고 나면 또 다음 손님이 오는 걸 뭐.”

한번은 저녁에 먹을거리가 마땅치 않아 우리가 어떻게 할까 망설이고 있었다. 그는 아무 걱정 말고 집으로 가 있으라고 하더니 오토바이를 타고 휑하니 사라졌다. 잠시 후, 그는 민물고기가 잔뜩 든 작은 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새 섬진강에서 투망을 해서 잡아온 것이다. 그날 우리는 그의 집 텃밭에서 깻잎을 따서 매운탕을 끓이고 그래도 남은 물고기는 튀겼다. 매운탕에 넣을 방아 잎이 모자라자 그가 다시 말했다. “걱정 마.” 그리고 잠시 후, 그의 손에는 적당한 양의 방아 잎이 들려 있었다.

할리 데이비슨 타고 나오는 친구 마중

물론 힘들고 지칠 때 그를 떠올리는 것이 나만은 아니다. 친구들은 한술 더 떠서 서울에서 어떻게 처리가 안 되는(?) 사람들을 그리로 보내기도 한다. 한번은 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한 시인이 제자의 방황을 보다 못해 그녀를 그에게로 보냈다고 한다. 청춘을 바친 연애를 슬프고 나쁘게 끝낸 여자였다. 그는 “거주자 우선 지불의 원칙”을 하는 수 없이 지키며 없는 돈에 술도 먹이고 달래도 보았지만 그녀는 사흘이 지나도록 울기만 했다고 했다. 남자라면 한 대 때려도 보겠지만 젊은 여자라서 어떻게 해 볼 수도 없었던 그는 어느날 그 비싼 오토바이 뒷자리에 그녀를 태우고 지리산 꼭대기로 올라갔다고 했다. 섬진강변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데 산 위의 날씨는 아직도 겨울, 마침 갑자기 하늘이 컴컴해지더니 눈보라가 몰아쳤다. 아무리 실연을 당한 끝이라 죽고 싶다,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있었던 그녀도 막상 산꼭대기에서 날이 캄캄해지고 눈보라가 몰아치니 두려웠던 모양이었다.

“죽고 싶다고 했죠? 여기가 참 죽기 좋은 곳이에요. 사람도 없고 발견될 염려도 없어요. 눈이 다 녹으면 내가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시신 수습은 해 줄 테니 그것도 염려 마쇼. 난 이제 내려갈 테니 그럼 안녕히!”

그가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자 죽고 싶다던 그녀의 안색이 변하며 그에게 달려들었다고 했다. 제발 살려달라고 말이다. 그는 느긋하게 그녀에게 살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알려주었는데 그건 바로 동요를 부르는 일이었다. 그녀가 놀라자 그는 태연히 다시 시동을 걸었다. 그러자 그녀는 다시 그에게 매달렸고 그는 어서 동요를 부르라고 했다. 그것도 노고단 봉우리를 향해 크게!

그녀는 결국 산 정상의 날씨보다 모진 그의 앞에서 동요를 스무 곡이나, 그것도 목청껏 부르고 살아 내려왔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그가 살려낸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그의 집에 가면 벽마다 규칙들이 붙어 있다. 이제는 서울에서 오는 손님들을 맡기도 힘들어서 사람들이 몰려오는 여름 같은 철에는 아예 짐을 싸가지고 아내와 둘이 다른 곳으로 피신하기 때문이다. 그 메모에는 콘도미니엄처럼 집안의 기기 사용법과 청소법들이 자세히 적혀 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이런 말도 덧붙어 있다.

“편안히 지리산 품에서 쉬시다가 가십시오. 불륜관계 특히 환영!”

지난여름 그는 이제 이 집을 비워주어야 할 때가 왔다는 말을 쓸쓸히 뱉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주인이 “단순변심”을 했다고 한다. 그 이유를 물으니 주인은 괴로운 목소리로 “더 묻지 말아 달라”고 했다는데 우리 서울 것들은 그것이 혹시 그가 참여하고 있는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님의 삼보일배” 때문이 아니겠느냐며 분개했지만, 실상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손님들을 맞이하는 집안 기기 사용법

» 공지영의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어제도 나는 일상과 씨름하다가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잘 지내고 있지? 수경 스님 무릎은 어때? 문 신부님 건강은? ”

스님과 신부님 곁에서 피곤에 전 그는 멀리서 편안한 집에서 거는 내 전화도 너그럽게 웃으며 받아준다. 그러곤 덧붙인다. “한번 와.”

“응 . 나도 거기 가고 싶어. 잎 지고 이제 곧 눈도 오겠네.”

그러나 나는 안다. 나는 수일 내로는 결코 거기에 가지 못할 것이고, 그는 전화를 끊으며 중얼거릴 것을 말이다.

“서울 것들, 와야 오나부다 하지.”

공지영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