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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에 대하여

[여적]집시의 수난

김택근 논설위원

어디에도 뿌리를 내리지 않고 떠도는 사람들. 동방에서 왔지만 모든 것이 베일에 싸인 사람들. 낮보다는 밤이 더 어울리는, 까만 눈에 별빛을 담고 웃는 사람들. 그 옛날 유목민의 포효는 사라지고 이제 유랑민의 노래로 남은 사람들. 그래서 뿔나팔 대신 현(絃)의 선율에 애환을 싣는 사람들. 집시를 떠올리면 이런 생각들이 튀어나온다. 인류에게 집시라는 존재는 특이한 영감을 주었다. 그동안 집시족이 보여준 무소유의 삶과 자유로운 영혼은 인류의 자산이기도 했다.

그들의 음악과 무용은 특히 ‘집시풍’으로 인류의 사랑을 받았다. 음악에는 푸른 달빛이 스며들었고, 무용에는 갈망이 배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박자가 아무리 빨라도, 춤동작이 아무리 격렬해도 그 속에 슬픔이 있다. 달빛 아래서 춤을 추는 집시 여인, 그렇게 ‘춤추는 슬픈 여인’은 수많은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집시 여인은 가사가 다소 엉뚱해도 우리 대중음악에까지 녹아들었다.

비디오아트 창시자로 영혼이 자유로웠던 백남준은 22세기의 최강국으로 불가리아를 꼽았다. 불가리아 인구 중 집시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이란다. 백남준은 서로 ‘소통하는 자’들이 미래를 지배할 것이라고 했다. 가장 강력한 통신력은 심령력이고, 이 능력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무리가 최강국을 이룰 것이라고 예견했다. 소통 능력은 문명과 구속과 형식을 거부하는 집시에게 건강하게 남아 있다고 본 것이다.

집시가 수난을 받고 있다. 최근 프랑스 정부가 국내외의 거센 비판에도 불구하고 자국으로 흘러들어온 동유럽 출신 집시 수백명을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로 강제 추방했다. 우리의 낭만적인 생각과는 달리 유럽인들의 집시에 대한 인식은 갈수록 야박해지고 있는 것 같다. 더럽고 게으른 걸인 취급을 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부정적 인식이 유럽 전체로 확산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급기야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나서 쫓겨나는 집시를 ‘인종차별에서 비롯된 폭력의 희생자들’로 규정했다.

집시의 실상이 밝혀지면서 그들에 대한 신비감이 엷어지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도 여전히 집시들의 영혼이 건강하리라 믿는다. 집시 여인은 여전히 슬픈 춤을 출 것이고, 앞으로도 집시는 지구촌 곳곳을 떠돌면서 우리 붙박이 삶들을 향해 ‘잘 살고 있느냐’고 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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