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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에 대하여

[여적]루쉰 작품 퇴출

김택근 논설위원

루쉰(魯迅·1881~1936)은 중국 현대문학의 아버지로 추앙을 받고 있다. 그가 병사했을 때 그의 관을 덮은 것은 하얀 천에 쓴 ‘民族魂(민족혼)’이라는 검은 글씨였다. 혁명 동지 마오쩌둥은 그를 ‘위대한 무산계급의 사상가’로 기렸다. 그의 문학세계는 어두웠지만 그 속에는 투쟁, 정열이 들어 있었다.

<아큐정전(阿Q正傳)>은 그의 대표작이다. 최하층민 아Q라는 품팔이꾼을 통해 중국인을 구제할 수 없는, 절망적인 민족으로 묘사하고 있다. 아Q는 무기력하고 비겁하다. 희롱을 당하고 매를 맞으면서도 정신적으로 승리하면 된다며 위안을 삼는다. 이른바 ‘정신 승리법’이다. 약자에겐 잔인하고, 강자에게는 아첨하며, 스스로의 책임을 남에게 미루고, 지난날의 영광을 부풀려서 곧잘 환상에 젖는다. 루쉰은 그것들을 당시 중국인들이 지니고 있던 노예 근성과 자기 위안으로 파악했다. 아편전쟁 이후 모든 것을 잃었으면서도 옛 영화를 떠올리며 비굴하게 하루하루를 연명해 나가는 현실을 풍자한 것이다.

그는 민중의 세상을 꿈꾸었던 신해혁명이 실패로 돌아가자 민중이 깨어있지 않으면 어떤 혁명도 성공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현실에 대한 비극적인 자기 확인이었다. 그의 문학 속에는 분명 혁명이 들어 있었지만 안이한 이념의 도구로 전락시키지 않았다. 그래서 매우 빛났다.

<아Q정전>을 포함한 루쉰의 여러 작품이 중국의 초·중·고 교과서에서 줄줄이 퇴출당했다는 소식이다. 거의 100년 동안 지속된 루쉰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성급한 전망도 내놓고 있다. 교과서 편찬담당자는 “더는 이데올로기가 교과서 수록을 결정하는 잣대가 될 수 없다”고 했단다. 대신 이제 막 50줄에 들어선 현대작가 위화(余華)의 단편소설이 새로 실렸다. 그는 인간의 심리와 감정을 손에 잡힐 듯 묘사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많은 작품들이 번역되어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장이머우 감독, 궁리 주연의 영화 <인생>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민족혼을 일깨우며 거대한 대륙의 내일을 염려했던 루쉰의 문학이 섬세한 감각으로 인간 관계를 탐구하는 위화의 작품에 밀려나고 있다. 루쉰의 작품들이 교과서에서 퇴출된 것은 문학을 뛰어넘는 상징적 사건이다. 이념이 퇴색했고, 결국 중국이 변했음이다.

오늘의 중국은 더 이상 천하고 나태한 아Q들의 세상이 아니다. 루쉰은 “민족이 무엇인가”를 엄숙하게 외쳤다면 위화는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은밀하게 묻고 있다. 중국인들은 더 이상 한갓 구호(口號)로 나부끼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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