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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의 사회학

[주거의 사회학]독일, 안정적 임대 어떻게 가능한가

특별취재팀 http://wherelive.khan.kr

ㆍ적정 임대료 법으로 규정… “13년동안 월세 두번 올라”

쾰링(44)네 가족은 1998년부터 베를린시 프리드리히스 하인(Friedrichs-hain)구의 5층짜리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월세는 660유로(130㎡·99만원)로 3.3㎡당 2만5000원쯤이다. 가구소득 중 주거비 부담은 8분의 1 수준이라 부담스럽지 않다고 했다. 지난 10여년간 살면서 2000년 창문과 난방 기기를 교체할 때 20유로를 더 내고, 2009년 월세가 10유로 오른 게 전부다. 2010년까지 월 30유로(4만5000원)가 오른 셈이다. 연 5% 이상 폭등하는 서울의 전셋값을 생각하면 변동폭이 미미하다. 그뿐 아니다. 월세인데도 한 집에서 12년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다는 점도 이채로웠다. 독일 GEWOS 연구소 2009년 통계에 따르면 독일 세입자의 평균 거주기간은 12.8년이고 20년 이상 한곳에서 산 세입자도 전체의 22.7%에 이른다. 이처럼 ‘안정적인 임대’는 어떻게 가능할까.

뮌헨시 19구 주택 사이에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독일은 공원 조성으로 녹지를 확보하는 동시에 주택 사이에도 ‘공공 공간’ 개념을 도입, 녹지를 조성한다. 뮌헨 | 임아영 기자


독일에서 임대는 보통 월세다. 월세의 적정가격은 집의 위치·상태에 따라 민법인 임대차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임대료 인상 범위는 물론이고, 인상 이전 15개월간 임대료가 오르지 않았어야 한다거나 임차인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 등이 이 법에 모두 들어 있다.

집주인은 집세를 올리려면 임대료 기준표(Mietspiegel)나 차임정보은행(Mietdatenbank)의 자료, 전문가의 감정서 또는 최소 3개의 비슷한 주택의 차임현황 등을 근거로 제시해야 한다. 집주인 맘대로 세입자를 쫓아낼 수 없다. 임차인이 계약상 의무를 어겼거나, 임대인의 가족 등이 해당 주택을 필요로 하거나, 오래된 건물을 고치는 경우 등이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는 사유에 든다. 단지 임대료를 올리려고 계약을 해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는 ‘임대료 기준표’가 있어 가능하다. 기준표는 공공과 민간이 함께 임대료 상·하한선을 책정한 것으로, 임대인과 임차인 단체에 주택 임대가격 정보를 제공한다. 임차인들은 이 표를 보고 월세의 적정가격을 가늠한다. 베를린의 경우 1987년부터 4년마다 전면 갱신을 하고 2년마다 수정을 한다. 총 120만개의 월세집 중 무작위로 1%를 뽑아 건축연도·주택위치·평수 등 3가지 척도를 기준으로 표를 만든다. 이때 중요한 것은 세입자 단체와 임대인 단체가 상호합의를 하는 과정이다. 지자체는 조정자 역할을 하면서 월세가격의 적정여부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조율한다. 상호합의를 통해 만들어진 기준표는 신뢰도가 높아서 이 제도를 도입한 이후 임대료와 관련한 법정분쟁은 거의 없는 편이다.

베를린시청 도시개발국의 임대료기준표 담당과장 뮌케뮐러는 “87년 이후 2년마다 수정한 것까지 합치면 16번의 조사 과정이 있었고, 매년 400여건의 민원을 해결하면서 표가 점차 더 정교해지고 정밀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 결과 2006년부터 2008년까지 2년간 물가상승률은 4.7%이나 임대료(2007~2009년)는 1.7% 상승에 그쳤다.


독일의 민간임대 시장은 비율로만 따지면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2007년 통계에 따르면 독일의 민간임대 비율은 49%로 다른 유럽 국가인 네덜란드(11%), 스웨덴(21%), 영국(11%) 등에 비해 매우 높다. 자가소유·민간임대·사회주택 비율도 45 대 49 대 6으로 우리나라(55 대 43 대 2, 2005년 기준)와 유사하다.

하지만 민간임대라도 시장주의에 휘둘리진 않는다. 독일에는 조합 임대주택이란 독특한 형태가 있다. 민간의 자발적 조직인 주택조합이 집을 지어서 조합원(회원)들에게 임대하는 형식이다. 베를린 외곽 코트부스시의 조합(GWG Stadt Cottbus) 주택에 사는 스콜레(69·여)는 조합 주식(1200유로) 8주를 갖고 있다. 그는 “조합주택에 살기 위해서는 사용권을 맺는 월세 계약과 주식 지분을 사는 회원권 등 2가지 계약을 맺어야 한다. ‘방이 하나일 때는 주식 6주(900유로), 방이 하나 반이면 주식 7주(1050유로)’라는 식으로 주식 지분을 사고 따로 월세 계약을 맺는다”고 설명했다.

코트부스의 총인구 중 25% 이상이 이 같은 조합주택에 거주한다. 이곳의 주택조합 운영회장 하트리히는 “집을 투기하려는 게 아니라 안정적으로 ‘거주’하기 위해 주민들이 직접 만들고 발전시켜온 단체”라며 “조합주택은 투기 현상을 잠재우는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집값은 물론 세입자들의 주거권 안정에도 기여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조합주택은 독일 전역에 걸쳐 240만가구에 달한다.

독일 베를린 근교의 코트부스에 들어선 조합임대주택의 전경. 독일 전역에는 민간이 조성한 이 같은 조합주택이 240만가구나 있다. 코트부스 | 임아영 기자 layknt@kyunghyang.com


뮌헨시의 경우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부문의 주거안정대책도 다양하다. 자녀가 12살 이하, 소득이 연간 7만3000유로 이하인 경우 집을 살 때는 30%의 금액을 보전해준다. 대신 10년 동안 매매금지 등 까다로운 조건으로 투기를 방지한다. ‘뮌헨 모델’이라 불리는 세입자 지원책은 세입자가 조합에서 집을 빌릴 때 조합은 빌려줄 수 있는 임대주택의 50%를 먼저 저소득층에게 우선권을 주도록 했다. 장애인 주거는 시가 직접 건설회사에 시유지를 싸게 공급하고, 건설회사가 법에 따라 지어야 하는 지원 주택(30%)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해결한다.

그중에서도 주거 빈곤층에게 지원하는 가장 고전적인 방식은 독일 전역에서 실시하고 있는 주거보조금, ‘본겔트(wongeld)’이다. 본겔트는 가족구성원 수·소득·주거비용·주거지의 월세 수준·주택의 노후화와 설비에 따라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월세의 10% 정도를 보조받는다. 주민들은 12개월 단위로 해당 지자체에 보조금을 신청한다. 베를린의 경우 3만3300여가구가 이 본겔트 혜택을 받고 있다.

독일의 세입자들에게 ‘이사 공화국’ 한국의 세입자들은 어떻게 비쳐질까. 1~2년마다 이사를 다니고 수천만원씩 임대보증금이 오르는 한국의 상황을 전해들은 쾰링은 “가혹하다”며 놀라워했다. 그는 “이사를 많이 다녀야 하는 한국의 아이들은 뿌리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임대료가 해마다 올라 외곽으로 계속 내몰리는 상황이라면 나라도 무리해서 집을 사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사는 곳에서 계속 살겠느냐고 묻자 가볍게 웃으며 “Ja(네)”라고 답했다.

■ 특별취재팀 = 최민영(사회부)·이주영(산업부)·김기범(사회부)·임아영(전국부) 기자, 김설아·황성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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