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팀 http://wherelive.khan.kr
ㆍ뮌헨 심야공청회 600여명 열기… 주민이 ‘도시 디자인’
지난달 22일 오후 7시. 독일 뮌헨시 19구 퓌어스텐리트(Furstenried)의 주민센터에서 공청회가 열리고 있었다. 많은 주민들이 참석하는 바람에 500개의 좌석이 모자라 좌우 통로와 뒷자리까지 주민들로 북적거렸다. 19구 주민 8만2000여명 중 600여명이 공청회에 참석, 구의원 한스 바우어의 안건에 대한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지역에 높이 100m의 쇼핑센터 건물이 세워질 예정입니다. 우리 구에 필요한 것인지, 필요하다면 얼마나 큰 크기가 필요한지 의견을 말해주시기 바랍니다. 일단 도시계획국에서 이 문제에 대한 워크숍을 제의해 왔는데, 반대하신다면 적극적인 의사 표명을 부탁드립니다.”
브리핑 이후 주민들의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이 동네에서 45년을 살았다는 마랄드 크라우트가 강단 위에 올랐다. “우리 동네는 교통량이 많아 대기오염과 소음공해가 심한 편입니다. 교통량을 완화시키도록 외곽도로를 만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초고층 건물의 유치는 모든 법적 조치를 동원해서 막을 겁니다. 그래도 들어온다면 우회로를 조성하고 신호를 조정해서 도로를 멈추지 않고 갈 수 있도록 조정해 주십시오.”
뒤이어 다른 주민이 나섰다. “뮌헨시의 라머스도프에서는 도로를 확장해 역사경관이 무너졌는데 지금 계획대로라면 우리도 그 전철을 밟게 될 겁니다. 우리 동네를 돕지 않는 정치인들에게는 표를 주지 않겠습니다.” 발언이 끝나자 방청석에서 지지의 박수가 쏟아졌다. 강단 위의 시 공무원 3명과 자치경찰은 진지한 표정으로 주민들의 의견을 들었다.
그리고 찬반투표가 시작됐다. 이날 부쳐진 안건에 대해 찬성하는 사람은 노란 종이를 들어 의사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이 의견은 공식 기록으로 남고, 시청 담당부서도 이를 공식적인 제안으로 받아들인다.
회의가 끝난 것은 3시간여가 지난 밤 10시30분. 늦은 시간임에도 주민 일부는 강당에 남아 구의원, 공무원들과 대화를 계속했다.
뮌헨시장을 대신해 참석한 시청 관계자는 “공청회에서 주민들이 의견을 내면 공무원들은 하나하나 답변할 의무가 있고, 그 답변 내용을 토대로 주민이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공청회에서는 대형 개발계획만 다뤄지는 것이 아니다. 교통계획, 어린이집과 학교 문제, 휴양시설, 주민 스포츠, 노인 복지, 주민모임 지원 등 다양한 안건이 이 같은 방식으로 토론을 거쳐 정책화된다.
문득 지난 3월 경기도 안산에서 열렸던 주민공청회가 떠올랐다. 안산시는 ‘2020년 기본경관계획’을 발표하면서 일반 주민은 참석이 어려운 오후 3시를 공청회 시간으로 잡았다. 담당 공무원이 통장 등 주민 30명을 대상으로 계획을 설명했고, 주민들은 듣는 입장이었다. 이 자리에서 주민 2명이 공무원에게 질의를 했지만 19일 현재까지 답을 듣지 못하고 있다.
독일 주민들이 공청회에 적극적으로 참석하는 이유는 뭘까. 자신들의 의견이 정책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뮌헨시청 도시계획국 동부총괄자 보임러는 “독일의 도시계획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다. 주민이 관심을 갖게 하는 것과 주민의 피드백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도시계획의 ‘구경꾼’이 아니라 ‘주인’으로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민간부문 개발에서도 공공부문은 물론 주민들과도 섬세한 의견조율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한 예로 뮌헨에 45만㎡ 부지의 공단을 소유한 지멘스사가 이곳을 주거용도로 변경하고자 했을 때 뮌헨시청 도시계획국 소속의 건축·도시계획 전문 공무원들은 개발할 경우에 어떻게 달라지는지 공간 개념도를 만들어 주민공청회에 공개했다. 그 다음 건축가·정치인·공무원·지멘스·건축사무소 등 다양한 주체가 모여 워크숍을 열었다. 이 워크숍 토의 내용이 다시 주민들에게 공개되고 논의를 거친 뒤 지구상세계획안이 마련됐다. 이 계획안은 신문공고를 통해 지역주민에게 알려지고 4주 동안 시청에 전시된다. 개발의 세세한 내용을 주민들에게 알리자는 취지다.
때마침 들른 뮌헨시청 1층 로비에서는 한스 자이델 광장(Hanns-Seidel-Platz)의 공모전이 열리고 있었다. 해당 지역 주민 10여명과 함께 이곳을 찾은 마그너스는 “공모전 작품 전시에 대한 지역신문 기사를 보고 찾아왔다. 2~3등 작품들은 공공 공간이 적은데 1등 작품은 주민센터 등 쉴 수 있는 공간이 많이 있어서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전시기간 동안 주민들은 자신의 의견을 시청에 제출하고, 도시계획국은 서신으로 답한다.
그 후에도 다시 주민 의견을 듣는 시간이 마련된다. ‘주민과의 산책’ 시간이다. 전문가들이 현장을 안내하고 도시계획국 공무원들이 개발 과정·목표 등을 알기 쉽게 주민들에게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저절로 도시계획에 대한 주민 교육이 이뤄진다. 또 30일간 주민의견서를 접수받아 시의회 자료로 보관하는데 이후 기간에도 주민의 반대의견이 나오면 계획안은 다시 수정된다. 주민들의 수정 의견이 없으면 그때서야 시의원들이 표결을 한다.
문기덕 연구원(브란덴부르크기술대학 도시환경연구소·BTU)은 “독일과 달리 한국은 미리 마련된 정책이 주민들의 의견과 큰 상관 없이 추진되는 구조여서 공청회 참여율이 낮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공청회 이외에도 뮌헨시는 여러 형태로 소통의 장을 마련한다. 주민과 전문가들이 모래를 이용해 용적률·건폐율 등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공간을 계산해보는 ‘계획 놀이’나 건축전공 학생들이 인파가 많은 쇼핑센터에서 갖는 공개 워크숍, 어린이를 대상으로 ‘멋있다고 생각하는 장소’를 사진으로 찍어보도록 하는 공모전 등이 일상적으로 열린다. ‘살아가는 공간’에 대한 시민 의식을 가꾸는 것이다.
BTU의 도시계획과 프랑크 슈바체 교수는 “독일에서 도시계획이란 행정기관과 주민들이 신뢰를 기반으로 도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며 “관청은 과정을 투명하게 보여주고 주민들을 대표하는 시의원들이 도시계획의 실질적 결정권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과정이 너무 복잡한 건 아닐까. 도시계획국 케르허는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의견을 수렴할수록 민원이 적어지고, 궁극적으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개발에 따른 이익을 일부 환수해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 분배하는 것 역시 독일 도시개발의 원칙이다.
사회적 합의에 의한 토지 사용, 즉 ‘소본(SoBoN·Sozialgerechte Bodennutzung)’이 바로 그것이다.
뮌헨시는 1990년대 초 ‘개발로 이익을 얻는 측이 공공 공간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며 개발이익 환수의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아파트를 개발할 때 용적률이 두 배로 늘어나면 그만큼 인구가 늘어나고, 이를 뒷받침할 상하수도·학교·공원 등 기반시설이 늘어나야 하는데 그 비용 전액을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는 바람에 재정적 어려움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이후 뮌헨시는 개발 당사자가 공공 공간에 대한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조례를 도입, 94년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소본’은 어떤 방식으로 적용될까. 개발 과정에서 용적률이 높아지면 토지 소유자는 상승한 토지가격만큼 이익을 추가로 얻게 된다. 이 상승가격 중 3분의 1은 소유주와 투자자의 이익으로 보장하되 나머지 3분의 2는 공공시설 확충을 위해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소본 계산법’의 얼개다. 공공시설 확충분은 구체적 사용처를 규정하고 있는데 공공면적 12%, 도로 5%, 유치원 8%, 공공주택 24% 등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공공시설 확충 부담금이 3분의 2 이상을 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 규모를 넘으면 개발할 가치가 없어지거나 개발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2009년 11월까지 뮌헨시는 소본을 통해 2억유로(약 3000억원)의 도로건설비용, 8250만유로의 녹지조성비용, 1억2000만유로의 사회복지시설, 3730만유로의 계획비용을 충당했고 387만4000㎡의 토지를 공공용지로 기부받았다.
이 제도는 시행 초기 ‘빨갱이들의 망상’이나 ‘약탈세’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급기야는 투자자를 잃어 도시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그러나 지금은 성공적으로 정착했고, 함부르크 등 개발 압력이 큰 다른 대도시들이 이 제도를 앞다퉈 배우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공공 대 개인 파트너십(PPP·Public Private Partnership)’의 일환이자 현 시대에 적절한 도시개발 방법이라는 평가를 얻어가고 있다.
뮌헨시 도시계획국 지구계획작성 담당 베르너 로만은 “한국도 일반 시민들로부터 걷은 세금으로 빌딩과 토지를 소유한 이들을 위한 인프라를 제공하는데, 빌딩 또는 토지 소유자들이 그 이익을 독식하는 게 맞는지 질문해야 할 시점”이라며 “개발이익 환수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 변화가 있어야 새로운 시스템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 경향신문 & 경향닷컴
지난달 22일 오후 7시. 독일 뮌헨시 19구 퓌어스텐리트(Furstenried)의 주민센터에서 공청회가 열리고 있었다. 많은 주민들이 참석하는 바람에 500개의 좌석이 모자라 좌우 통로와 뒷자리까지 주민들로 북적거렸다. 19구 주민 8만2000여명 중 600여명이 공청회에 참석, 구의원 한스 바우어의 안건에 대한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지역에 높이 100m의 쇼핑센터 건물이 세워질 예정입니다. 우리 구에 필요한 것인지, 필요하다면 얼마나 큰 크기가 필요한지 의견을 말해주시기 바랍니다. 일단 도시계획국에서 이 문제에 대한 워크숍을 제의해 왔는데, 반대하신다면 적극적인 의사 표명을 부탁드립니다.”
지난달 22일 뮌헨시 19구 퓌어스텐리트 주민센터에서 열린 주민공청회에서 한 주민이 발언하고 있다. 뮌헨 | 임아영 기자 layknt@kyunghyang.com
브리핑 이후 주민들의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이 동네에서 45년을 살았다는 마랄드 크라우트가 강단 위에 올랐다. “우리 동네는 교통량이 많아 대기오염과 소음공해가 심한 편입니다. 교통량을 완화시키도록 외곽도로를 만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초고층 건물의 유치는 모든 법적 조치를 동원해서 막을 겁니다. 그래도 들어온다면 우회로를 조성하고 신호를 조정해서 도로를 멈추지 않고 갈 수 있도록 조정해 주십시오.”
뒤이어 다른 주민이 나섰다. “뮌헨시의 라머스도프에서는 도로를 확장해 역사경관이 무너졌는데 지금 계획대로라면 우리도 그 전철을 밟게 될 겁니다. 우리 동네를 돕지 않는 정치인들에게는 표를 주지 않겠습니다.” 발언이 끝나자 방청석에서 지지의 박수가 쏟아졌다. 강단 위의 시 공무원 3명과 자치경찰은 진지한 표정으로 주민들의 의견을 들었다.
그리고 찬반투표가 시작됐다. 이날 부쳐진 안건에 대해 찬성하는 사람은 노란 종이를 들어 의사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이 의견은 공식 기록으로 남고, 시청 담당부서도 이를 공식적인 제안으로 받아들인다.
회의가 끝난 것은 3시간여가 지난 밤 10시30분. 늦은 시간임에도 주민 일부는 강당에 남아 구의원, 공무원들과 대화를 계속했다.
뮌헨시장을 대신해 참석한 시청 관계자는 “공청회에서 주민들이 의견을 내면 공무원들은 하나하나 답변할 의무가 있고, 그 답변 내용을 토대로 주민이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공청회에서는 대형 개발계획만 다뤄지는 것이 아니다. 교통계획, 어린이집과 학교 문제, 휴양시설, 주민 스포츠, 노인 복지, 주민모임 지원 등 다양한 안건이 이 같은 방식으로 토론을 거쳐 정책화된다.
문득 지난 3월 경기도 안산에서 열렸던 주민공청회가 떠올랐다. 안산시는 ‘2020년 기본경관계획’을 발표하면서 일반 주민은 참석이 어려운 오후 3시를 공청회 시간으로 잡았다. 담당 공무원이 통장 등 주민 30명을 대상으로 계획을 설명했고, 주민들은 듣는 입장이었다. 이 자리에서 주민 2명이 공무원에게 질의를 했지만 19일 현재까지 답을 듣지 못하고 있다.
독일 주민들이 공청회에 적극적으로 참석하는 이유는 뭘까. 자신들의 의견이 정책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뮌헨시청 도시계획국 동부총괄자 보임러는 “독일의 도시계획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다. 주민이 관심을 갖게 하는 것과 주민의 피드백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도시계획의 ‘구경꾼’이 아니라 ‘주인’으로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민간부문 개발에서도 공공부문은 물론 주민들과도 섬세한 의견조율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한 예로 뮌헨에 45만㎡ 부지의 공단을 소유한 지멘스사가 이곳을 주거용도로 변경하고자 했을 때 뮌헨시청 도시계획국 소속의 건축·도시계획 전문 공무원들은 개발할 경우에 어떻게 달라지는지 공간 개념도를 만들어 주민공청회에 공개했다. 그 다음 건축가·정치인·공무원·지멘스·건축사무소 등 다양한 주체가 모여 워크숍을 열었다. 이 워크숍 토의 내용이 다시 주민들에게 공개되고 논의를 거친 뒤 지구상세계획안이 마련됐다. 이 계획안은 신문공고를 통해 지역주민에게 알려지고 4주 동안 시청에 전시된다. 개발의 세세한 내용을 주민들에게 알리자는 취지다.
때마침 들른 뮌헨시청 1층 로비에서는 한스 자이델 광장(Hanns-Seidel-Platz)의 공모전이 열리고 있었다. 해당 지역 주민 10여명과 함께 이곳을 찾은 마그너스는 “공모전 작품 전시에 대한 지역신문 기사를 보고 찾아왔다. 2~3등 작품들은 공공 공간이 적은데 1등 작품은 주민센터 등 쉴 수 있는 공간이 많이 있어서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전시기간 동안 주민들은 자신의 의견을 시청에 제출하고, 도시계획국은 서신으로 답한다.
그 후에도 다시 주민 의견을 듣는 시간이 마련된다. ‘주민과의 산책’ 시간이다. 전문가들이 현장을 안내하고 도시계획국 공무원들이 개발 과정·목표 등을 알기 쉽게 주민들에게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저절로 도시계획에 대한 주민 교육이 이뤄진다. 또 30일간 주민의견서를 접수받아 시의회 자료로 보관하는데 이후 기간에도 주민의 반대의견이 나오면 계획안은 다시 수정된다. 주민들의 수정 의견이 없으면 그때서야 시의원들이 표결을 한다.
문기덕 연구원(브란덴부르크기술대학 도시환경연구소·BTU)은 “독일과 달리 한국은 미리 마련된 정책이 주민들의 의견과 큰 상관 없이 추진되는 구조여서 공청회 참여율이 낮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공청회 이외에도 뮌헨시는 여러 형태로 소통의 장을 마련한다. 주민과 전문가들이 모래를 이용해 용적률·건폐율 등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공간을 계산해보는 ‘계획 놀이’나 건축전공 학생들이 인파가 많은 쇼핑센터에서 갖는 공개 워크숍, 어린이를 대상으로 ‘멋있다고 생각하는 장소’를 사진으로 찍어보도록 하는 공모전 등이 일상적으로 열린다. ‘살아가는 공간’에 대한 시민 의식을 가꾸는 것이다.
BTU의 도시계획과 프랑크 슈바체 교수는 “독일에서 도시계획이란 행정기관과 주민들이 신뢰를 기반으로 도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며 “관청은 과정을 투명하게 보여주고 주민들을 대표하는 시의원들이 도시계획의 실질적 결정권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과정이 너무 복잡한 건 아닐까. 도시계획국 케르허는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의견을 수렴할수록 민원이 적어지고, 궁극적으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개발에 따른 이익을 일부 환수해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 분배하는 것 역시 독일 도시개발의 원칙이다.
사회적 합의에 의한 토지 사용, 즉 ‘소본(SoBoN·Sozialgerechte Bodennutzung)’이 바로 그것이다.
뮌헨시는 1990년대 초 ‘개발로 이익을 얻는 측이 공공 공간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며 개발이익 환수의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아파트를 개발할 때 용적률이 두 배로 늘어나면 그만큼 인구가 늘어나고, 이를 뒷받침할 상하수도·학교·공원 등 기반시설이 늘어나야 하는데 그 비용 전액을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는 바람에 재정적 어려움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이후 뮌헨시는 개발 당사자가 공공 공간에 대한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조례를 도입, 94년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소본’은 어떤 방식으로 적용될까. 개발 과정에서 용적률이 높아지면 토지 소유자는 상승한 토지가격만큼 이익을 추가로 얻게 된다. 이 상승가격 중 3분의 1은 소유주와 투자자의 이익으로 보장하되 나머지 3분의 2는 공공시설 확충을 위해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소본 계산법’의 얼개다. 공공시설 확충분은 구체적 사용처를 규정하고 있는데 공공면적 12%, 도로 5%, 유치원 8%, 공공주택 24% 등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공공시설 확충 부담금이 3분의 2 이상을 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 규모를 넘으면 개발할 가치가 없어지거나 개발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2009년 11월까지 뮌헨시는 소본을 통해 2억유로(약 3000억원)의 도로건설비용, 8250만유로의 녹지조성비용, 1억2000만유로의 사회복지시설, 3730만유로의 계획비용을 충당했고 387만4000㎡의 토지를 공공용지로 기부받았다.
이 제도는 시행 초기 ‘빨갱이들의 망상’이나 ‘약탈세’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급기야는 투자자를 잃어 도시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그러나 지금은 성공적으로 정착했고, 함부르크 등 개발 압력이 큰 다른 대도시들이 이 제도를 앞다퉈 배우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공공 대 개인 파트너십(PPP·Public Private Partnership)’의 일환이자 현 시대에 적절한 도시개발 방법이라는 평가를 얻어가고 있다.
뮌헨시 도시계획국 지구계획작성 담당 베르너 로만은 “한국도 일반 시민들로부터 걷은 세금으로 빌딩과 토지를 소유한 이들을 위한 인프라를 제공하는데, 빌딩 또는 토지 소유자들이 그 이익을 독식하는 게 맞는지 질문해야 할 시점”이라며 “개발이익 환수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 변화가 있어야 새로운 시스템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 = 최민영(사회부)·이주영(산업부)·김기범(사회부)·임아영(전국부) 기자, 김설아·황성호 인턴기자
■ 공식 블로그 = http://wherelive.khan.kr
■ 공식 블로그 = http://wherelive.khan.kr
ⓒ 경향신문 & 경향닷컴
'주거의 사회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거의 사회학]독일, 안정적 임대 어떻게 가능한가 (0) | 2010.05.24 |
---|---|
[주거의 사회학]“임대료 부당 인상 막아 세입자 보호” (0) | 2010.05.24 |
[주거의 사회학](3부) 주거와 정치·사회…⑤ 주거문화를 말한다 - 전문가 좌담 (0) | 2010.05.24 |
[주거의 사회학]“도시만이 희망은 아니었는데… 너무 늦게 깨달았어” (0) | 2010.05.07 |
[주거의 사회학](3부) 주거와 정치·사회…④ 주거의 오늘과 내일 (0) | 2010.0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