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거의 사회학

[주거의 사회학](3부) 주거와 정치·사회…⑤ 주거문화를 말한다 - 전문가 좌담

특별취재팀 http://wherelive.khan.kr

ㆍ“재산 증식 수단으로 전락… ‘부동산 계급화’ 전국 확대”
ㆍ‘빈곤층 주거 복지·중산층 자산 불안’ 함께 고민해야

우리나라에서 ‘집’은 개개인의 삶의 질을 좌우할 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방면으로 영향을 미치는 존재다. 주거공간인 동시에 재산증식 수단으로서 집이 갖는 복합적 의미 때문에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울고 웃는 지역과 계층이 갈린다. 전문가들은 서구 선진국에 비해 사회안전망이 부족한 상황 속에서 집이 노후 대비를 위한 자산으로서 과도한 비중을 차지하는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선 사회보장 강화, 공공주택 공급 확대, 소외된 주거지에 대한 지원 등을 위한 공공의 역할이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경향신문은 지난달 26일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조명래 단국대 도시계획학과 교수,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과 함께 좌담회를 갖고 주거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해 봤다.

부동산 거품 붕괴론이 대두되고 있다. 향후 부동산 시장을 전망한다면

박철수 교수 베이비 세대 자산 90% 부동산에 투자, 고금리 정책땐 붕괴 우려

홍헌호 연구위원(이하 홍)=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이 대세 하락기로 접어들었다는 데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 같다. 핵심은 하락폭이 어느 정도까지 깊어질 것이냐인데, 일본처럼 반토막이 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1990년 전후로 일본의 주택가격 대비 대출액 비율(LTV)은 100%를 넘었으나 우리나라는 40~50% 수준이다. 또 일본은 금융구조조정이 10년 이상 되면서 실물부문과 금융부문이 동시에 불황에 빠지는 복합불황이 나타났지만 우리나라는 외환위기때 구조조정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일본처럼 이 문제가 장기화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대기업들에 상상 이상의 현금이 쌓여있기 때문에 일본식 복합불황이 실현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박철수 교수(이하 박)=얼마전 읽은 책에서 베이비붐 세대인 전 세계 40대 중반~50대 초반의 자산보유 형태를 보니 한국이 매우 특이하다고 돼 있다.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자산의 90% 이상을 부동산에 투입하고 다른 자산은 거의 없다. 33평 아파트를 하나 가지면 중간층이 됐다고 생각하는데 95%가 융자를 끼고 있다. 그래서 정부가 고금리 정책을 쓰면 실질소득이 확 줄어 경제를 지탱하는 중간층이 붕괴될 가능성이 높다더라. 반면 네덜란드, 영국, 일본은 자산의 55%만 부동산이고 나머지는 펀드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짜고 있다. 한국이 대세 하락기라 하더라도 급격히 꺾이는 걸 정부가 놔두지도 않을뿐더러 시장이 그런 충격을 받아낼 여력도 없을 것이다.

신진욱 교수(이하 신)=정부가 부동산 경기 폭락을 허용하는 정책을 펴진 않을 것이다. 정부 정책들은 상당히 정치적인 고려에서 나오고 있다. 서울시 장기전세주택, 정부 보금자리주택,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와 미분양 주택에 대한 공적자금 투여 등은 일관된 방향을 갖고 있다기보다는 서로 다른 계층을 겨냥한 정책들이다. 현 정부의 지지기반이 부동산 경기에 이해관계를 가진 토건기업과 주택보유층이라는 측면에서 큰 틀에서는 부동산 경기의 커다란 하락을 가져올 만한 정책을 펼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오히려 진보진영과 야당에서 지지를 호소할 계층을 향해 현 정권이 지지층으로 유인하려고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조명래 교수(이하 조)=현재의 부동산 상황은 2008년 경제위기의 후유증으로 보인다. 실물 경기가 나빠지면서 부동산 쪽으로 투자할 여력이 없어지는 것이다. 지난 1~2년간 소득이 줄어 집을 사야 하는 사람들이 못사고 있다. 축적된 돈이 없어 조금만 빌려도 부담이 큰 상황이다.

부동산 계급화에 대해 어떻게 보시나

조=주택 계급 개념이 처음 적용된 게 1980년대 중랑구 개발이다. 당시 단지를 조성하면 어떤 사람들이 들어올지 예측해보니 주택이 차지하는 지위와 사회계층적 지위가 거의 일치했다. 이후 계층간 격차는 더 심해졌다. 신자유주의 논리로 주택 공급을 해왔고 사회정책도 그에 기반을 뒀기 때문에 외환위기 후 서울에서 공간적으로 강남북 격차가 생기고 그 격차는 부동산을 매개로 더욱 확대됐다. 2006년 주택 가격이 최고점일 때 강남 주상복합아파트 사는 사람과 쪽방 사는 사람간 주거 역량의 차이는 엄청나게 벌어졌다.

박=어느 소설에서 정년퇴직한 교사가 아들에게 연립주택을 사주려 하니까 며느리 될 사람이 ‘연립주택은 사주셔도 짐입니다’라고 하는 게 나온다. 주택의 유형이 시장 속에서 어떻게 위치하는가를 보여준다. 한때는 아이파크, 타워팰리스 같은 초고층 아파트에 사는 것 자체가 사회적 상징이었다. 이후 초고층이 많아져 희소성이 떨어지니까 요즘은 타운하우스 붐이 일고 있다. 80년대 실패한 전원주택이 다시 주목받는 거다. 우리나라에선 40대에 40평, 50대에는 50평대 집을 가져야 뒤처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주택 시장에서도 가장 하위시장을 점유한 게 다세대 다가구 밀집지역이다. 주택의 평당 시장적 가치도 가장 낮고 인프라도 열악하다.

신=한국이 가계 자산 중 실물자산 비중이 상당히 높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보면 서구 선진국 중에도 실물자산 비중이 한국보다 더 높은 경우도 있다. 80년대 이후 서구에서도 부동산 불평등도가 높아졌다. 그러나 부동산 자산 비중이 높거나 부동산 불평등도가 높다고 해서 이것이 총체적인 불평등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한국은 왜 다른가. 한국에선 일자리가 불안해 임금소득에 많은 걸 기대할 수 없고 사회보장이 채워주지 못하면서 자산 불평등이 모든 불평등을 낳는 주범이 됐다. 이런 구조적 맥락 때문에 한국에선 주거공간으로서의 주택보다는 자산으로서의 부동산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또 부동산은 하나의 상품이긴 하지만 특수성이 있고 주거환경과 연관돼 있다. 고가 부동산을 구매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그곳에 거주함으로써 교육환경과 여러 사회적 자본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 고가주택 밀집지역에서 교육환경을 비롯해 파생적인 계급적 불평등 요인이 함께 제공되기 때문에 부동산 불평등이 총체적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홍현호 연구위원 부유층·사회지도층 특정지역 과다 집결, 계층간 주거지 분리 심각

홍=2001년 강남 부동산가격이 폭등한 가장 큰 이유는 재건축 개발이익 때문이다. 강남구의 경우 80년대초 건설된 용적률 90~100%의 소형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 있었다. 용적률 200~220%로 재건축되면 엄청난 불로소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전국의 투기꾼, 부유층, 사회지도층이 대거 몰려들었다. 재건축 대상 소형아파트들이 강남구의 평균 평당가격을 과도하게 높여 놓자 재건축 대상이 아닌 주택 가격도 덩달아 뛰었다. 국가가 건전하게 발전하려면 여러 계층이 같은 주거지역이나 가까운 지역에 살면서 편견과 오해를 불식시키고 소통과 통합을 만들어 가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부유층과 사회 지도층이 특정지역에 과다하게 집결하면서 계층간 주거지 분리현상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신=강남과 비강남의 차이를 넘어 서울과 비서울, 수도권과 비수도권 등 다양한 층위의 구분이 있다. 몇년 전부터는 지방에서도 지역화가 나타난다. 특정 구가 대구의 강남, 부산의 강남으로 불려진다. 부동산 계급화는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한국에서 아파트는 투자상품으로 가치를 갖고 자본이 되는데, 자본의 지리적 집중이 나타나고 그에 따라 계급이 지역화되고 있다. 특권을 가진 지역에 거주하고 싶은 욕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투기적 가수요를 높이고 리스크를 줄이는 각종 금융·부동산 정책이 욕망을 유인하고 있다. 하지만 97년 금융위기 이후 고용불안, 소득불평등 문제와도 무관치 않다. 40·50대면 노동시장에서 퇴출되는 데 수명은 늘고 자식은 어려 임금소득으로는 해결이 안된다. 부동산, 주식에 대한 투기적 열망이 커가기 쉬운 삶의 조건이다. 재테크 베스트셀러를 보면 대기업의 30대 과장이지만 50대초면 회사를 나와야 하는데 80세까지 어떻게 먹고살 거냐고 묻는다. 매달 먹고사는 것 이상의 돈이 있어야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데 공적 안전망이 부재하다보니 사람들이 자산 증식에 몰릴 수밖에 없다.

조=주택은 주거 수단과 자산축적 수단이라는 두가지가 복합돼 있다. 주택이 과다하게 자산축적 수단으로 일반화되면 나머지 반쪽 기능이 위축된다. 우리나라에서 재개발 재건축 하는 걸 보면 공공이 전혀 돈을 안쓴다. 거기에 주택가격, 평수, 분양방식이 따라가고 그 조건을 갖지 않은 사람들은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 조명래 단국대 도시계획학과 교수,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왼쪽부터)가 지난달 26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주거문제 관련 대담을 가진 뒤 환담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우리나라의 주거 형태는 아파트 중심으로 돼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박 = 대한민국은 사적 오아시스를 만들고 있다. 아파트 단지로 지구지정되고 개발되는 순간 모든 비용은 입주자 부담이다. 용인의 어느 아파트는 9홀짜리 골프장을 단지 안에 만든다고 한다. 단지가 완공되는 순간 그 동네의 다른 주거공간과 인프라 격차가 엄청나게 커진다. 서구에선 단독주택도 주변 인프라를 충분히 갖고 있어 사람들이 특별한 주거영역으로 몰릴 이유가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단독주택은 자치구가 어떤 시혜를 베풀어야 공원이나 주차장이 생긴다. 아파트 안에서도 중대형, 대단위 개발이 갖는 우위가 있다. 상가 분양광고를 보면 수천가구 단지가 지어져 여러 시설이 완벽히 제공된다는 걸 강조하지 않나. 20호의 미학이란 게 있다. 우리나라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을 보면 20가구 이상 주택은 공개 분양해야 하며 법적으로 무조건 갖춰야 하는 규정들이 있다. 60년대 이후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한 번도 체험하지 못한 노인정, 어린이놀이터 등을 갖춘 건 아파트밖에 없었고 종류와 내용의 풍요로움도 아파트만 커져갔다. 그래서 70년대 이후 모든 사람들이 아파트로 몰려가고 아파트의 일반화 요인이 생겼다. 단독주택지에도 별도로 힘이 배분돼야 하는데 단독주택에는 힘을 안 주고 있다. 아파트에 계속 힘을 모으니까 단독주택은 지속적으로 열악해지는 거다. 아파트는 모든 비용을 입주자가 부담해야 하니까 평형이 커질수록 현금 동원능력이 높은 사람들만 몰리고, 비용 부담을 못하는 사람들은 주거비가 낮은 곳으로 내려간다. 공간적 극화가 생기는 거다. 이는 아파트 자체가 범인이 아니라 국가가 해야할 기본적 책무에 관한 문제다. 예산을 어떻게 분배하느냐의 문제다. 단독주택지에 가면 늘 하는 얘기가 아이들 통학로가 안전하지 못하다는 거다. 공간적으로 나뉘면 상대방에 대해 질시하거나 우월감을 갖게 된다. 좋게 말하면 자기 발전의 동력이 되지만 나쁘게 보면 헛된 욕망을 불지르는 구조다. 다만 앞으로는 아파트 이탈 세력이 점차 증가할 것 같다.

징후들이 몇가지 있다. 길을 자기 생활공간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많아졌다. 길거리 공용공간을 쓰는 커피점이 많아졌고, 아파트나 학교 담장 허물기 등 지금까지 구분되어온 공용공간과 사적공간을 섞는 곳이 늘어났다. 아파트에서도 테라스 주택의 인기가 높다. 단독주택 용지에 대한 구매수요가 많고 스스로 자기 집을 지으려는 욕구가 분출되고 있다. 또 아파트 최상층이 과거에는 기피층이었지만 지금은 선호층이 됐다. 아파트에 갇혀진 생활에 이젠 질린 것이다.

주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어떤 정책적 노력이 필요한가

조명래 교수 재개발·재건축에 신자유주의 논리 만연, 공공의 돈 투자 해야

조 = 탈상품화된 주택 비중을 20~30%까지 늘려야 한다. 임대주택도 쓸 만하다는 생각이 커져야 한다. 탈상품화 주택은 주택의 소유와 임대권 전반을 공공이 갖는 것이다. 주택 뉴딜 정책이 필요하다. 주택 공급은 시장에 맡기되 정부가 시장의 투명성을 조절하면 된다. 또 정부가 땅을 많이 가져야 하며 이를 위해 토지 비축부터 해야 한다. 스웨덴 스톡홀름은 주택공급에 필요한 토지의 60%를 공공이 비축해둔 것에서 조달한다. 주택행정도 보건복지부나 그 산하에 주택청을 만들어야 한다. 선진국을 보면 복지정책의 최고 영역이 주택 부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주택정책은 공급주의자와 시장을 위한 것이었다. 이를 계속 한다면 자산 불평등 문제도 해결 안된다. 공공주택 공급을 통해 투기적 가격 대신 적정한 가격이 형성되고 투명한 절차를 만들면 해결될 수 있다. 탈상품화 정책은 구제만 하는 게 아니다. 주택시장의 투기와 불법을 줄여 자산이 없는 사람도 자산 계층으로 진입할 여력을 만들어주자는 의미다.

박 = 68년 제2차 경제개발계획에 대한민국 주택은 민간이 공급한다고 돼 있다. 그때부터 정부는 인허가와 사업승인권만 휘둘러왔다. 탈상품화가 말로는 쉽지만 대한민국을 다시 만드는 일이다. 구체적인 대안은 무엇이냐. 공공주택 공급기관이 자기 역할을 회복하는 거다. 주택은 민간이 공급하게 두더라도 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기관이 제 역할을 하면 된다. 토지 비축이든 임대주택관리든 소외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 저소득층의 거주 안전성을 확보해주는 것이다. 지금은 아파트단지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단독주택지가 열악하다고 하니까 정부가 새로 만든 게 도시형 생활주택인데 그것도 단지로 하는 거다. 300호까지 확장해서 지하주차장 파고 단지로 만드는 것이다. 그건 정부가 인프라를 제공할 의향이 없다는 얘기다. 공간적으로 어떻게 하면 단지성을 해체할까. 국가가 인프라와 자원을 균등하게 배분해야 한다. 김영삼 정부 때 주민 동의율을 확 낮추면서 재개발 재건축의 룰이 흐트러졌다. 국민의 실생활과 관련된 부분을 친시장적으로 계속 만들어온 게 주택정책의 역사다.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성찰했으면 좋겠다.

신 = 거시 산업구조의 개혁, 자산 불평등 완화, 주거복지 개선책이 필요하다. 각 영역에서 핵심적 해법이 동일하지 않고, 한 영역에서의 국지적 해결책은 의도하지 않은 효과를 낼 수 있으므로 이들 간 연관을 고려한 종합적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먼저 주거복지 개선을 위해 주택에 대한 광범위한 공적 공급이 필요하다. 중산층 일부와 저소득층에게 최소한 안정적 주거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런 주택은 투자가치가 없기 때문에 자산 불평등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주택을 보유한 중산층과의 경제적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부동산은 미래의 자산 증식과 신용 증대를 위한 중요한 조건이다. 버블 해소가 중산층의 저항을 받지 않으려면 부의 대안적 원천을 제시해야 한다. 산업적 측면에서는 토건산업이 주범 아닌가.

한국에서 연간 투자액 중 토건산업 투자 비중이 20%가 넘는다. 부동산 경기를 냉각시킬 경우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 하청업체 노동자도 영향 받는다. 비생산적이고 독점화된 산업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홍 = LH와 서울시 SH공사의 손익계산서를 분석해보면 국민임대주택이나 장기전세주택을 짓는 재원을 분양주택 수입으로 충당한다. 문제는 이런 공기업 수익구조가 고분양가의 주범이 되어 민간기업 분양가를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앞으로 주택청 등을 만들어 공영임대주택 공급을 전담케 하여 공기업들이 고분양가를 선도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노후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고령층들이 지나치게 부동산에 집착한다. 노후 보장이 안되면 사람들이 투기에 관심 가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국민들이 투기에 몰두하기보다 땀 흘려 일하는 데 열중하도록 자산시장 거품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보여주어야 한다.

주거가 정치 지형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신진욱 교수 열악한 주거환경, 인프라도 열악‘불평등’ 악순환

신 = 한국에서 부동산 값이 폭등한 건 주기적으로 있었던 일이지만 정치적으로 영향이 컸던 건 2000년대 중반 이후 두드러진 현상이다. 2006년 5·31 지방선거가 그랬고, 2008년 18대 총선에서 부동산과 정치성향 사이에 뚜렷한 연관관계가 드러났다. 과거의 부동산 폭등은 주로 토지와 관련됐으나 2000년대 들어 아파트 중심으로 변하고 사람들의 정치적 선택과 밀접한 연관을 갖게 됐다. 또 97년 외환위기 후 고용 불안이 심해지면서 부동산을 잠재적 자산으로 간주하게 된 정도가 과거에 비해 훨씬 커졌다. 특히 부동산 값 폭등이 모든 계급·계층에 동일한 영향을 미치진 않았다. 전통적으로 한국에서 저소득층, 저학력층은 보수성향이 강하고 30·40대 대졸자는 진보성향이 강하면서 중심지가 수도권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중산층과 386세대가 보수로 돌아서면서 한국 정치 전반의 보수화에 큰 변수로 작용했다. 2000년대 들어 영호남 ‘출신 지역주의’와 수도권의 새로운 ‘거주 지역주의’가 중첩된 현상이 나타난다. 전통적으로 중요한 건 출신 지역주의였으나 2002년 대선에서 이념·세대 변수가 커지고 출신지역 변수가 약화됐다. 2007년 대선에서는 이념·세대 변수가 약해지고 거주 지역주의가 강해졌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지역주의 투표를 상수로 놓을 때 가장 중요한 지역이 수도권이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 이후 수도권이 부동산 정치에 포섭되고, 이 측면에서 진보진영이 보수진영에 패배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정부의 여러 대책들이 이런 다이내믹을 보여준다. 진보진영은 전통적으로 빈곤층의 주거 문제를 중시한다. 그러나 중산층에게는 자산가치로서의 문제도 중요한 게 현실이다. 진보진영이 저소득층의 주거복지 문제만 주목할 경우 중산층을 놓칠 가능성이 크다. 중산층은 내 집 마련의 욕망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부동산이 자산가치를 상실하게 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진보진영이 뉴타운 하겠다고 하면 더 이상 진보가 아니다. 주택의 상품으로서의 의미를 축소시키는 정책을 펴되, 중산층의 불안과 저항을 상쇄시킬 안전망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 노동시장이건 사회안전망이건 중산층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다른 경로를 함께 제시해야 집을 부동산 자산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약화될 수 있고, 거품 해소에 대한 불안과 저항을 완화시킬 수 있다.

홍 = 중산층은 부동산 가격이 과도하게 올라가도 싫어하고 과도하게 내려가도 싫어한다. 과도하게 올라갈 때는 자신들 소신에 안 맞기 때문에 싫어하고, 내려갈 때는 손해가 나기 때문에 싫어한다.

경제위기나 거품붕괴가 온다고 진보진영에 반드시 유리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오히려 우경화할 소지도 많다. 따라서 진보진영에서도 부동산 시장 연착륙 방안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진보진영의 공공택지 확보 방안과 연착륙 방안을 결합하면 좋은 대안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공공택지는 부동산 시장이 과다하게 냉각되어 일본식 복합불황의 우려가 있을 때 확보하는 게 좋다. 정부가 싼값으로 토지를 확보할 수 있고, 과도한 침체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 특별취재팀 = 최민영(사회부)·이주영(산업부)·김기범(사회부)·임아영(전국부) 기자, 김설아·황성호 인턴기자
■ 공식 블로그 = http://wherelive.khan.kr


ⓒ 경향신문 & 경향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