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오 | 환경계획학 박사
ㆍ‘2020년에 되돌아본 도시와 주거’ 가상 시나리오
2020년 5월7일. 한국대 석좌교수 한국인씨는 ‘21세기 도시주거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토론회의 사회자다. 지난 20여년의 21세기 한국도시와 주거를 결산하는 행사로 국영디지털방송국에서 생중계를 했고 국민들의 관심도 컸다. 행사에서는 수많은 의견이 나왔지만 다 정리할 순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10여개의 키워드로 지난 20년을 회고해 보았다. 개발과 성장, 빈부격차, 저출산 고령화, 참여와 협력, 환경과 주거, 대안적 삶, 지역공동체 회복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남아 있다.
이날 세미나의 주된 흐름은 지난 20년의 주거와 도시전략을 평가하는 것이었다. 21세기 들어 한국은 IMF 이후 내수진작 정책을 써 국내총생산(GDP)의 약 15% 이상을 공공인프라와 주택건설에 매진했다. 2000년에서 2010년까지 청계천 복원, 한강르네상스, 4대강사업, 각종 민자고속도로 건설, 새만금사업, 주택 100만호 건설, 뉴타운이나 보금자리주택과 같은 사업이 벌어졌다.
2010년에서 2020년까지는 기존 주거안정과 수(水)환경정비라는 관점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먼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지역의 특성과 상관없이 공통적으로 남발되는 재탕공약이나 구태의연한 주차장 증설, 재건축·재개발 추진, 수변공간 개발, 지역축제, 재래시장 활성화 등의 이슈를 내놓은 후보들이 낙선했다. 이들 공약은 2002년 3기 지방선거부터 단골 공약으로 여당과 야당에 관계없이 거의 모든 시·군·구에서 공통 공약으로 채택했던 것이다.
하지만 구체성이 결여되고 성과도 미미했다. 또 많은 지자체장이 비리에 연루됐다. 어떤 방법으로, 얼마의 예산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아무 대책도 없이 공약을 남발했고 4년 후에는 달성하기 힘든 공약이 됐다.
▲ 개발 공약 남발한 지자체장 후보들은 결국 낙선하고…
2010년 초 민선4기 기초자치단체(230개)의 공약완료도 평가를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에서 실시했다. 도시계획·개발분야(33.56%)와 주거·환경분야(41.32%)는 가장 낮은 완료율을 보였는데, 그 이유는 구먹구구식 발상과 대책없는 공약남발에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반면 시간이 걸리지만 할 수 있는 커뮤니티 비즈니스나 도시녹화, 도시환경디자인, 도시농업, 도시브랜드를 주창하는 후보들이 당선되었다. 이들 공약은 마침 도시가 주제인 상하이엑스포의 순풍을 타고 도시녹도(綠道) 연결이나 사람중심의 여유있는 주제공간을 마련하는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2010년 712만명에 이르는 베이비붐세대(1956~63년 사이에 출생한 사람)의 은퇴가 시작되면서 은퇴준비를 못한 중압감이 이들 세대에 덮쳤다. 이와 함께 복지, 교육예산의 감소 속에 저출산·고령화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13년 처음으로 평균출산율이 1.0을 밑돌았다.
2014년 팽창일로이던 경제가 급격히 추락했다. 2014년 동남아시아 17개국이 합의해 동남아 무비자 시대가 되자 노동·행복·교육을 위한 이동이 본격 시작되었다. 탈북자들이 중국국경을 넘어 저렴한 페리호를 타고 한국으로 몰려 들어왔다. 2014년에는 수십만명의 북한인이 남한으로 들어왔다. 이들을 수용할 시설이 없어 정부는 그린벨트내 보금자리 주택일부를 수용시설로 만들었다. 급작스러운 인구이동에 대비한 캠프촌 설치계획이 2010년에 정기국회에서 나왔지만 묵살되었다. 이들이 3D업종에 몰리자 외국인노동자와의 갈등이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2015년 3월 개강과 함께 대학생 10만명이 은행나무가 사라진 세종로 광장에 모여 청년실업 해소, 외국인노동자 추방, 국가경제 재편을 이슈로 연일 시위를 했고 이는 스마트폰에 찍혀 유튜브나 페이스북으로 전 세계에 중계되었다. 경찰의 강경진압은 스마트폰 동영상 때문에 엄두도 내지 못했다. 체제의 불안 속에 경제침체, 이상기후에 의한 식량과 물부족, 환경오염 등 그때까지는 크게 걱정하지 않은 과제들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 인구감소로 집값 폭락, 국가경제도 추락, 은퇴자들은 시골로…
인구 감소는 정부가 예상한 2018년보다 2년이나 빠른 2016년부터 시작됐다. 출산율은 황금돼지해인 2007년 1.25를 기록한 후 계속 하락해 2013년 0.97로 처음으로 한명 이하로 내려갔다. 신생아 숫자는 계속 떨어져 2015년에는 보건복지출생부의 노력에도 0.89를 기록, 0.9벽마저도 붕괴되었다. 보건복지부는 2012년 대통령선거 이후 보건복지출생부로 이름이 바뀌었다. 인구감소는 정치권에도 큰 충격을 주었다.
사람들은 착각하기 시작했다. 이제 집을 더 짓지 않아도 되고, 식량이나 생활필수품을 더 많이 생산하지 않아도 되며, 도로 건설도 더 이상 필요치 않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역동적인 국민성을 가진 한국민에게 더 이상의 다이내믹을 찾기에는 어려움이 많다는 외신들의 보도가 연일 서울발로 나오고 있었다.
2016년부터 인구의 자연 감소가 시작되자 집값폭락 괴담이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베이비부머의 20% 이상이 은퇴해 농촌으로 돌아가자 서울은 썰렁한 도시가 되었다. 더 이상 집값을 감당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대신 서울은 탈북자와 외국인 노동자들이 빈자리를 채워갔다.
서울에 베이비부머들이 줄어들면서 부동산 가격은 50% 이상 폭락해 선진국 평균치에 도달했다. 부동산가격 침체는 도미노게임처럼 중소도시 상황을 어렵게 했다. 과도하게 은행돈을 빌린 사람들의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일들이 벌어졌다.
최악의 상황은 그동안 안전지대라고 여겨진 한반도에서도 지진이 일어난 것이었다. 2016년 11월 리히터규모 6.0의 강진이 인천 앞바다에서 일어나자 사람들의 주거선호도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지난 20년간 저밀도에서 고밀도로, 초고층아파트에서 주상복합단지로 이어지던 흐름이 전원지역의 타운하우스로 바뀌기 시작했다. 재해에 안전하고, 쉽게 건물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집이 선호됐다.
주택기술은 여러 역경 속에서도 급격한 발전을 거듭해 나갔다. 먼저 IT 분야에서 2010년의 광통신 속도보다 10배 빠른 초광대역 네트워크의 구축이 2012년 완료됐다. 2015년 기반망 위에 사람과 기계, 주거환경이 모두 지능적으로 데이터를 주고받는 미래네트워크 세상이 열렸다.
▲ 공동체 회복 운동, 귀농귀촌 늘어나고 출산율 오르는데…
2017년 우여곡절 속에 완공된 세종시 세종특구의 경우 미래네트워크가 국내 최초로 적용되었다. 공무원 박보람씨는 정부 제4청사 근무를 끝내고 거리를 나섰다. 휴먼자동센서가 박씨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그가 좋아하는 1990년대 김현식의 음악이 나오면서 푸른색 조명을 비춰준다. 집에 도착해 목욕을 하고 용변을 보자 모든 건강지수가 정상이라는 메시지와 내일 할 일이 거실TV에 나온다. 혁신적인 시대로 들어선 것이다.
2017년 설립된 국가녹색위원회는 녹지와 생태공원, 산과 강 등 자연친화적인 요소가 전국민의 권리가 되어야 한다는 국가녹색생활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은 과거 수출과 개발 중심의 50여년을 종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빌딩숲이 즐비하고 성냥갑 아파트가 한강변에 빼곡히 자리잡고 있는 숨 막히는 도심생활이 더 이상 국가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나왔다.
2018년 정부는 1994년 11월 남산외인아파트를 폭파 철거했던 방식으로 개발시대의 상징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를 철거했다. 야당과 일부 주민의 반대가 무척 심했지만 결국 현대아파트는 2020년 5월 공원으로 재탄생했다. 환경과 도시경관, 한강의 생태성을 시민에게 돌려준다는 취지다. 아름다운 한강을 볼 권리를 공유한다는 취지였다. 일부 조망이 좋은 아파트는 공공도서관과 압구정예술센터로 개관했다. 사람들이 새로운 교통수단인 한강 수상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이곳에 와서 시간을 보낸다.
여성연예인 출신인 김자연 서울시장은 용산공원과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국가상징공원으로 만든다고 발표했다. 동작대교 밑으로 무빙워크가 다니고 한강 아래에 대규모 지하 컨벤션센터가 조성될 예정이다. 2020년대의 주요 개발전략은 지상은 자연으로 돌려주고 인간은 지하공간을 쓰자는 것이다.
2019년이 되자 제2롯데월드 논쟁이 다시 전문가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불이 붙었다. 2010년 착공해 2014년 완공된 제2롯데월드가 지역의 역사성이나 장소성을 전혀 담아내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잠실을 원래 섬의 모습으로 되돌리자는 주장이 롯데월드 착공시 제기됐다가 묵살된 사실이 밝혀졌다. 한강~성내천~올림픽공원~롯데월드~석촌호수~탄천~한강을 연결해 원래의 잠실섬으로 복원하지 못한 책임으로 몇몇 공무원들이 옷을 벗었다. 도시브랜드를 만드는 데 있어 서울의 중심인 한강을 시민중심으로 이끌지 못했다는 말이다. 반면 일본은 2019년 후쿠오카 캐널시티와 주변 하천을 야나가와(柳川)까지 연결하는 30㎞의 대공사를 완성했다. 후쿠오카의 야경을 보기 위해 전 세계 관광객이 연일 몰리고 있다.
한국인 교수는 지난 20년을 회고하면서 다음 20년을 위한 발전은 무엇일까를 골몰히 생각했다. 주거는 거주의 공간이지 소유의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한국 사람들은 너무 늦게 깨달았다는 것이 뇌리를 스쳐간다. 지역과 국가브랜드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건물과 주거지 모두 특성이 있어야 하지만 우리는 돈만을 앞세운 손쉬운 개발을 했다. 지금 뼈저리게 그 아픔을 공감하고 있다.
한국인 교수는 개발과 발전이라는 것은 난개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데 정치권이 공약을 남발하고 대기업이 주먹구구식 개발에 나서 한국경제를 몰락시켰다고 판단했다. 지역사회 공동체복원과 안전한 먹거리 확보를 위한 시민공동농장 조성이 필요한 상황에서, 정부가 이를 방치했던 2012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사람들은 도시에서 모든 희망을 찾던 21세기 초반과 많이 달라졌다. 2010년부터 귀농귀촌이 새로운 트렌드로 대두됐다. 2015년 이후 청년귀농이 늘어났고, 2020년에는 출생률이 0.72로 전년보다 0.04포인트 올라갔다. 2007년 이후 13년 만에 높아진 것이다.
ⓒ 경향신문 & 경향닷컴
2020년 5월7일. 한국대 석좌교수 한국인씨는 ‘21세기 도시주거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토론회의 사회자다. 지난 20여년의 21세기 한국도시와 주거를 결산하는 행사로 국영디지털방송국에서 생중계를 했고 국민들의 관심도 컸다. 행사에서는 수많은 의견이 나왔지만 다 정리할 순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10여개의 키워드로 지난 20년을 회고해 보았다. 개발과 성장, 빈부격차, 저출산 고령화, 참여와 협력, 환경과 주거, 대안적 삶, 지역공동체 회복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남아 있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이날 세미나의 주된 흐름은 지난 20년의 주거와 도시전략을 평가하는 것이었다. 21세기 들어 한국은 IMF 이후 내수진작 정책을 써 국내총생산(GDP)의 약 15% 이상을 공공인프라와 주택건설에 매진했다. 2000년에서 2010년까지 청계천 복원, 한강르네상스, 4대강사업, 각종 민자고속도로 건설, 새만금사업, 주택 100만호 건설, 뉴타운이나 보금자리주택과 같은 사업이 벌어졌다.
2010년에서 2020년까지는 기존 주거안정과 수(水)환경정비라는 관점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먼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지역의 특성과 상관없이 공통적으로 남발되는 재탕공약이나 구태의연한 주차장 증설, 재건축·재개발 추진, 수변공간 개발, 지역축제, 재래시장 활성화 등의 이슈를 내놓은 후보들이 낙선했다. 이들 공약은 2002년 3기 지방선거부터 단골 공약으로 여당과 야당에 관계없이 거의 모든 시·군·구에서 공통 공약으로 채택했던 것이다.
하지만 구체성이 결여되고 성과도 미미했다. 또 많은 지자체장이 비리에 연루됐다. 어떤 방법으로, 얼마의 예산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아무 대책도 없이 공약을 남발했고 4년 후에는 달성하기 힘든 공약이 됐다.
▲ 개발 공약 남발한 지자체장 후보들은 결국 낙선하고…
2010년 초 민선4기 기초자치단체(230개)의 공약완료도 평가를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에서 실시했다. 도시계획·개발분야(33.56%)와 주거·환경분야(41.32%)는 가장 낮은 완료율을 보였는데, 그 이유는 구먹구구식 발상과 대책없는 공약남발에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반면 시간이 걸리지만 할 수 있는 커뮤니티 비즈니스나 도시녹화, 도시환경디자인, 도시농업, 도시브랜드를 주창하는 후보들이 당선되었다. 이들 공약은 마침 도시가 주제인 상하이엑스포의 순풍을 타고 도시녹도(綠道) 연결이나 사람중심의 여유있는 주제공간을 마련하는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2010년 712만명에 이르는 베이비붐세대(1956~63년 사이에 출생한 사람)의 은퇴가 시작되면서 은퇴준비를 못한 중압감이 이들 세대에 덮쳤다. 이와 함께 복지, 교육예산의 감소 속에 저출산·고령화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13년 처음으로 평균출산율이 1.0을 밑돌았다.
2014년 팽창일로이던 경제가 급격히 추락했다. 2014년 동남아시아 17개국이 합의해 동남아 무비자 시대가 되자 노동·행복·교육을 위한 이동이 본격 시작되었다. 탈북자들이 중국국경을 넘어 저렴한 페리호를 타고 한국으로 몰려 들어왔다. 2014년에는 수십만명의 북한인이 남한으로 들어왔다. 이들을 수용할 시설이 없어 정부는 그린벨트내 보금자리 주택일부를 수용시설로 만들었다. 급작스러운 인구이동에 대비한 캠프촌 설치계획이 2010년에 정기국회에서 나왔지만 묵살되었다. 이들이 3D업종에 몰리자 외국인노동자와의 갈등이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2015년 3월 개강과 함께 대학생 10만명이 은행나무가 사라진 세종로 광장에 모여 청년실업 해소, 외국인노동자 추방, 국가경제 재편을 이슈로 연일 시위를 했고 이는 스마트폰에 찍혀 유튜브나 페이스북으로 전 세계에 중계되었다. 경찰의 강경진압은 스마트폰 동영상 때문에 엄두도 내지 못했다. 체제의 불안 속에 경제침체, 이상기후에 의한 식량과 물부족, 환경오염 등 그때까지는 크게 걱정하지 않은 과제들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 인구감소로 집값 폭락, 국가경제도 추락, 은퇴자들은 시골로…
인구 감소는 정부가 예상한 2018년보다 2년이나 빠른 2016년부터 시작됐다. 출산율은 황금돼지해인 2007년 1.25를 기록한 후 계속 하락해 2013년 0.97로 처음으로 한명 이하로 내려갔다. 신생아 숫자는 계속 떨어져 2015년에는 보건복지출생부의 노력에도 0.89를 기록, 0.9벽마저도 붕괴되었다. 보건복지부는 2012년 대통령선거 이후 보건복지출생부로 이름이 바뀌었다. 인구감소는 정치권에도 큰 충격을 주었다.
사람들은 착각하기 시작했다. 이제 집을 더 짓지 않아도 되고, 식량이나 생활필수품을 더 많이 생산하지 않아도 되며, 도로 건설도 더 이상 필요치 않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역동적인 국민성을 가진 한국민에게 더 이상의 다이내믹을 찾기에는 어려움이 많다는 외신들의 보도가 연일 서울발로 나오고 있었다.
2016년부터 인구의 자연 감소가 시작되자 집값폭락 괴담이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베이비부머의 20% 이상이 은퇴해 농촌으로 돌아가자 서울은 썰렁한 도시가 되었다. 더 이상 집값을 감당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대신 서울은 탈북자와 외국인 노동자들이 빈자리를 채워갔다.
서울에 베이비부머들이 줄어들면서 부동산 가격은 50% 이상 폭락해 선진국 평균치에 도달했다. 부동산가격 침체는 도미노게임처럼 중소도시 상황을 어렵게 했다. 과도하게 은행돈을 빌린 사람들의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일들이 벌어졌다.
최악의 상황은 그동안 안전지대라고 여겨진 한반도에서도 지진이 일어난 것이었다. 2016년 11월 리히터규모 6.0의 강진이 인천 앞바다에서 일어나자 사람들의 주거선호도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지난 20년간 저밀도에서 고밀도로, 초고층아파트에서 주상복합단지로 이어지던 흐름이 전원지역의 타운하우스로 바뀌기 시작했다. 재해에 안전하고, 쉽게 건물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집이 선호됐다.
주택기술은 여러 역경 속에서도 급격한 발전을 거듭해 나갔다. 먼저 IT 분야에서 2010년의 광통신 속도보다 10배 빠른 초광대역 네트워크의 구축이 2012년 완료됐다. 2015년 기반망 위에 사람과 기계, 주거환경이 모두 지능적으로 데이터를 주고받는 미래네트워크 세상이 열렸다.
▲ 공동체 회복 운동, 귀농귀촌 늘어나고 출산율 오르는데…
2017년 우여곡절 속에 완공된 세종시 세종특구의 경우 미래네트워크가 국내 최초로 적용되었다. 공무원 박보람씨는 정부 제4청사 근무를 끝내고 거리를 나섰다. 휴먼자동센서가 박씨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그가 좋아하는 1990년대 김현식의 음악이 나오면서 푸른색 조명을 비춰준다. 집에 도착해 목욕을 하고 용변을 보자 모든 건강지수가 정상이라는 메시지와 내일 할 일이 거실TV에 나온다. 혁신적인 시대로 들어선 것이다.
2017년 설립된 국가녹색위원회는 녹지와 생태공원, 산과 강 등 자연친화적인 요소가 전국민의 권리가 되어야 한다는 국가녹색생활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은 과거 수출과 개발 중심의 50여년을 종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빌딩숲이 즐비하고 성냥갑 아파트가 한강변에 빼곡히 자리잡고 있는 숨 막히는 도심생활이 더 이상 국가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나왔다.
2018년 정부는 1994년 11월 남산외인아파트를 폭파 철거했던 방식으로 개발시대의 상징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를 철거했다. 야당과 일부 주민의 반대가 무척 심했지만 결국 현대아파트는 2020년 5월 공원으로 재탄생했다. 환경과 도시경관, 한강의 생태성을 시민에게 돌려준다는 취지다. 아름다운 한강을 볼 권리를 공유한다는 취지였다. 일부 조망이 좋은 아파트는 공공도서관과 압구정예술센터로 개관했다. 사람들이 새로운 교통수단인 한강 수상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이곳에 와서 시간을 보낸다.
여성연예인 출신인 김자연 서울시장은 용산공원과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국가상징공원으로 만든다고 발표했다. 동작대교 밑으로 무빙워크가 다니고 한강 아래에 대규모 지하 컨벤션센터가 조성될 예정이다. 2020년대의 주요 개발전략은 지상은 자연으로 돌려주고 인간은 지하공간을 쓰자는 것이다.
2019년이 되자 제2롯데월드 논쟁이 다시 전문가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불이 붙었다. 2010년 착공해 2014년 완공된 제2롯데월드가 지역의 역사성이나 장소성을 전혀 담아내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잠실을 원래 섬의 모습으로 되돌리자는 주장이 롯데월드 착공시 제기됐다가 묵살된 사실이 밝혀졌다. 한강~성내천~올림픽공원~롯데월드~석촌호수~탄천~한강을 연결해 원래의 잠실섬으로 복원하지 못한 책임으로 몇몇 공무원들이 옷을 벗었다. 도시브랜드를 만드는 데 있어 서울의 중심인 한강을 시민중심으로 이끌지 못했다는 말이다. 반면 일본은 2019년 후쿠오카 캐널시티와 주변 하천을 야나가와(柳川)까지 연결하는 30㎞의 대공사를 완성했다. 후쿠오카의 야경을 보기 위해 전 세계 관광객이 연일 몰리고 있다.
한국인 교수는 지난 20년을 회고하면서 다음 20년을 위한 발전은 무엇일까를 골몰히 생각했다. 주거는 거주의 공간이지 소유의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한국 사람들은 너무 늦게 깨달았다는 것이 뇌리를 스쳐간다. 지역과 국가브랜드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건물과 주거지 모두 특성이 있어야 하지만 우리는 돈만을 앞세운 손쉬운 개발을 했다. 지금 뼈저리게 그 아픔을 공감하고 있다.
한국인 교수는 개발과 발전이라는 것은 난개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데 정치권이 공약을 남발하고 대기업이 주먹구구식 개발에 나서 한국경제를 몰락시켰다고 판단했다. 지역사회 공동체복원과 안전한 먹거리 확보를 위한 시민공동농장 조성이 필요한 상황에서, 정부가 이를 방치했던 2012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사람들은 도시에서 모든 희망을 찾던 21세기 초반과 많이 달라졌다. 2010년부터 귀농귀촌이 새로운 트렌드로 대두됐다. 2015년 이후 청년귀농이 늘어났고, 2020년에는 출생률이 0.72로 전년보다 0.04포인트 올라갔다. 2007년 이후 13년 만에 높아진 것이다.
ⓒ 경향신문 & 경향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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