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민 | 전북대 교수·영문학
ㆍ앙드레 가뇽의 ‘미완성 전주곡’
“하나의 아름다움이 익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의 슬픔과 하나의 고독도 함께 깊어져야 한다.” 김병종 화백이 진해 흑백다방과 그 주인장, “허명(虛名)에 허기진 적 없던” 자유인 유택렬 화백을 기리며 맺은 말입니다.
요즘 천안함 침몰 여파 때문인지 진해 시절의 모습들이 소용돌이로 떠오르곤 합니다. 그 중심에 ‘진해 문화의 등대’ 흑백다방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1955년 출생연도가 같아서일까, 폴 매카트니의 ‘흑과 백’(Ebony and Ivory)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과는 상관없이 고전음악만 들려주던 그곳이 그런 음악에 아직 익숙하지 못했던 그 시절에도 정겨웠습니다.
고전음악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그곳은 만남과 휴식의 장소였습니다. 뭉그적거리며 ‘한 건’을 노리는 꾼들의 사냥터이기도 했고요. 월요일 해군사관학교 교수휴게실은 그곳에서의 주말 무용담으로 항상 시끌벅적했습니다. 1980년 해군장교 훈련을 받던 시절의 얘기입니다. 5월18일 새벽 “너희 놈들 모두 광주에 침투한 무장공비의 총알받이야!” 난데없는 으름장마저 비웃으며 연병장에 나뒹굴기를 거듭하던 몇 주 후, 드디어 첫 면회가 있었으며 그 뒤로는 주말마다 상륙(외출)이 허용되었습니다. “너희 놈들이 대학교 대학원 나온 놈들이야?” 끝없는 언어폭력과 야만적 훈련방식에 단련이 되어서일까, 얼마 안되는 소위 월급, 영어과외로 충당하면 된다며(과외금지령으로 헛된 꿈이 됐지만) 겁 없이 결혼을 서두르고 있었습니다. 주말마다 이 다방에서 데이트를 즐겼었죠.
처음 그곳에 들렀을 때 다이아몬드 대신 속이 빈 육각형 모양의 계급장(‘벤젠’이라고 불렀던)을 단 채 걸음마저 어색했습니다. 그때 그곳에 귀에는 익은데 제목은 알 수 없는 음악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애인에게 차마 묻지는 못하고 다른 볼 일이 있는 척 DJ 박스에 다가가 슬쩍 확인해보니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이었습니다. 미완성의 벤젠을 위한 특별한 배려였나!
그 이후로 이 곡은 최고의 애청곡이 되었으며 미완성이라는 말 자체도 주술처럼 안겨왔습니다. 미완성의 아름다움. 그것을 채우기 위한 슬픔과 고독의 노력. 그곳을 오랫동안 지킨 화백의 “두 눈이 짓무르도록” 멈추지 않던 붓질이 바로 이것과 이어질 것입니다. ‘하면 된다!’의 군대식 구호 대신 해도 안되는 일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며 오히려 그 과정을 소중하게 여기는 삶의 태도. ‘꿈은 이루어진다!’가 아니라 북극성에 닿을 수 없는 것처럼 ‘이루어지는 것은 꿈이 아니다!’ 오기를 부리는 여유도 미완성의 묘미에 취한 후유증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흑백다방 자체가 미완의 터였습니다. 외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고유의 예술세계를 지켜낸 유택렬 화백, 그 뒤를 이어 이곳을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온 피아니스트 유경아, 이들 부녀 또한 오늘에 안주하지 않는 미완의 예술가들이었습니다. 그곳에 “숨어들”어 “오늘의 발목을 잡는 어제와/ 내일을 알 수 없는 오늘이 뇌출혈”로 싸우는 가운데 시마(詩魔)와 부단히 씨름하던 정일근 시인이나 제대로 된 짝을 찾기 위해 몸을 사리고 기다리던 많은 청춘 사냥꾼들도 완성을 꿈꾸고 있기는 마찬가지였고요.
미완은 꿈이 그만큼 드높기 때문이며 완성은 오히려 자만과 게으름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 항상 부족함을 인정하며 지속적인 노력을 해온 높은 꿈의 이들 모두를 위해, 응원가 하나 띄웁니다. 앙드레 가뇽의 ‘미완성 전주곡’이라는 매우 서정적인 곡입니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만나 만들어내는 풍성한 화음, 그 아름다운 비애에 젖다보면 섣부르게 완성을 자임하며 안주하는 일도 미완을 탓하며 한숨짓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특히, 이 곡의 슬픈 아름다움을 빌려 날벼락으로 미완의 삶을 강요당한 천안함의 젊은 후배들의 명복을 삼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빌어봅니다.
ⓒ 경향신문 & 경향닷컴
“하나의 아름다움이 익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의 슬픔과 하나의 고독도 함께 깊어져야 한다.” 김병종 화백이 진해 흑백다방과 그 주인장, “허명(虛名)에 허기진 적 없던” 자유인 유택렬 화백을 기리며 맺은 말입니다.
요즘 천안함 침몰 여파 때문인지 진해 시절의 모습들이 소용돌이로 떠오르곤 합니다. 그 중심에 ‘진해 문화의 등대’ 흑백다방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1955년 출생연도가 같아서일까, 폴 매카트니의 ‘흑과 백’(Ebony and Ivory)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과는 상관없이 고전음악만 들려주던 그곳이 그런 음악에 아직 익숙하지 못했던 그 시절에도 정겨웠습니다.
고전음악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그곳은 만남과 휴식의 장소였습니다. 뭉그적거리며 ‘한 건’을 노리는 꾼들의 사냥터이기도 했고요. 월요일 해군사관학교 교수휴게실은 그곳에서의 주말 무용담으로 항상 시끌벅적했습니다. 1980년 해군장교 훈련을 받던 시절의 얘기입니다. 5월18일 새벽 “너희 놈들 모두 광주에 침투한 무장공비의 총알받이야!” 난데없는 으름장마저 비웃으며 연병장에 나뒹굴기를 거듭하던 몇 주 후, 드디어 첫 면회가 있었으며 그 뒤로는 주말마다 상륙(외출)이 허용되었습니다. “너희 놈들이 대학교 대학원 나온 놈들이야?” 끝없는 언어폭력과 야만적 훈련방식에 단련이 되어서일까, 얼마 안되는 소위 월급, 영어과외로 충당하면 된다며(과외금지령으로 헛된 꿈이 됐지만) 겁 없이 결혼을 서두르고 있었습니다. 주말마다 이 다방에서 데이트를 즐겼었죠.
처음 그곳에 들렀을 때 다이아몬드 대신 속이 빈 육각형 모양의 계급장(‘벤젠’이라고 불렀던)을 단 채 걸음마저 어색했습니다. 그때 그곳에 귀에는 익은데 제목은 알 수 없는 음악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애인에게 차마 묻지는 못하고 다른 볼 일이 있는 척 DJ 박스에 다가가 슬쩍 확인해보니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이었습니다. 미완성의 벤젠을 위한 특별한 배려였나!
그 이후로 이 곡은 최고의 애청곡이 되었으며 미완성이라는 말 자체도 주술처럼 안겨왔습니다. 미완성의 아름다움. 그것을 채우기 위한 슬픔과 고독의 노력. 그곳을 오랫동안 지킨 화백의 “두 눈이 짓무르도록” 멈추지 않던 붓질이 바로 이것과 이어질 것입니다. ‘하면 된다!’의 군대식 구호 대신 해도 안되는 일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며 오히려 그 과정을 소중하게 여기는 삶의 태도. ‘꿈은 이루어진다!’가 아니라 북극성에 닿을 수 없는 것처럼 ‘이루어지는 것은 꿈이 아니다!’ 오기를 부리는 여유도 미완성의 묘미에 취한 후유증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흑백다방 자체가 미완의 터였습니다. 외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고유의 예술세계를 지켜낸 유택렬 화백, 그 뒤를 이어 이곳을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온 피아니스트 유경아, 이들 부녀 또한 오늘에 안주하지 않는 미완의 예술가들이었습니다. 그곳에 “숨어들”어 “오늘의 발목을 잡는 어제와/ 내일을 알 수 없는 오늘이 뇌출혈”로 싸우는 가운데 시마(詩魔)와 부단히 씨름하던 정일근 시인이나 제대로 된 짝을 찾기 위해 몸을 사리고 기다리던 많은 청춘 사냥꾼들도 완성을 꿈꾸고 있기는 마찬가지였고요.
미완은 꿈이 그만큼 드높기 때문이며 완성은 오히려 자만과 게으름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 항상 부족함을 인정하며 지속적인 노력을 해온 높은 꿈의 이들 모두를 위해, 응원가 하나 띄웁니다. 앙드레 가뇽의 ‘미완성 전주곡’이라는 매우 서정적인 곡입니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만나 만들어내는 풍성한 화음, 그 아름다운 비애에 젖다보면 섣부르게 완성을 자임하며 안주하는 일도 미완을 탓하며 한숨짓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특히, 이 곡의 슬픈 아름다움을 빌려 날벼락으로 미완의 삶을 강요당한 천안함의 젊은 후배들의 명복을 삼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빌어봅니다.
ⓒ 경향신문 & 경향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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