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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민의 음악편지

[이종민의 음악편지]슬퍼도 비탄에 잠기지 않는

이종민 | 전북대 교수·영문학
ㆍ오펜바흐의 ‘자클린의 눈물’

벌써 1주년! 작년 이맘때쯤 동학농민혁명 기념 고등학생 백일장을 치르다가 접한 청천벽력, 부엉이 바위의 비보. 노란 바람이 거침없이 불어닥치던 2002년, 거리를 뒤덮던 붉은 함성이 요즘 다시 울려퍼지고 있는데 혼자 차가운 흙 속에서 분권민주주의의 거름됨을 자부하고 있을까? 조작된 북풍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민초들의 가슴 저린 승리 소식을 전해 듣기는 한 것일까? 그래도 “운명이다!” 되뇌고 있을 것인가?

탱탱하게 익은 매실 수확이 뿌듯하면서도 가슴 한 구석 응어리가 영 풀리지 않습니다. 매실주 홀짝이며 접하는 남아공 월드컵 승리의 환호와 패배의 안타까운 탄식도 잠깐, 가시지 않는 허전함이 숙취 뒤끝처럼 끈질기기만 합니다. 가장 한국적인 도시 전주. 우리의 전통문화가 살아 숨쉬는 전주한옥마을에도 그와 관련된 잊지 못할 추억 한 자락이 서려 있습니다. 2006년 2월21일. 참여정부 핵심정책의 하나인 혁신도시 출범식이 있던 날. 전국 시장·도지사와 각 부처 장관은 물론 청와대 주요 인사들도 전주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그 중요한 잔치의 축하자리에 가지 않고 한옥마을을 찾았습니다. 전통문화도시 조성을 위해 애쓰는 전주문화예술인들과의 오찬 간담회를 택한 것입니다. 이 이례적인 배려로 전주전통문화도시 조성사업은 큰 탄력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정리가 된 유네스코 아·태무형문화유산센터와 한스타일진흥원 건립사업이 올 봄 기공식을 시작으로 착착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국전통문화 연수와 체험교육의 중심으로 거듭나겠다는 꿈도 가시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님은 갔습니다!’ 남북관계는 깨진 옹기 신세가 되었고 지역균형발전도 노란 풍선 따라 멀리 날아가 버렸습니다. 이제 됐다 싶었던 민주주의마저 퇴행성관절염 환자가 되어 시도 때도 없이 비척거리니 답답하고 허전한 맘 주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월드컵의 붉은 유혹에라도 휩싸여 그 ‘노란 슬픔’을 잠시 지워버리고 싶은데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요즘 자주 귀 기울이는 연주가 하나 있습니다. 오펜바흐의 ‘자클린의 눈물’(Les Larmes du Jacqueline). 요절한 영국의 첼리스트를 떠올리게 하는 서정 어린 곡. 전도양양한 젊은 첼리스트와 할 일 많은 국가 지도자의 때 아닌 죽음으로 인한 안타까움 때문일 것입니다. 슬픔을 차분하게 속으로 다스리고 있는 곡 분위기에 이끌려서이기도 할 것이고요.

이 곡을 작곡한 오펜바흐는 ‘호프만 이야기’나 ‘천국과 지옥’ 등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 제2제정 시대의 오페라 작곡가입니다. 이 곡은 그의 작품 목록에도 없는 희귀한 레퍼토리였는데, 베르너 토마스라는 독일의 젊은 첼리스트에 의해 발굴 연주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제목도 없었는데 베르너가 비운의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를 기리기 위해 이런 이름을 붙이게 되었답니다.

오늘 보내드리는 것은 베르너가 이끄는 쾰른 필하모니 소속 6명의 첼로 주자가 첼로합주 형태로 편곡 연주한 것입니다. 첼로합주나 피아노를 반주로 한 연주들은 첼로와 실내악단이 협연한 것에 비하여 비장감이 분명 덜합니다. 하지만 첼로합주의 경우 이 악기의 장기라 할 수 있는 부드러움과 유장함을 한껏 음미할 수 있어 좋습니다. 피아노 반주의 경우에도 담백한 서정이 깔끔한 느낌을 주고 있어 나름 매력적입니다.

“어떻게 하면 삶을 견딜 수 있을까요?” 비운의 첼리스트 자클린의 절규, ‘운명이다!’ 바보 대통령의 남을 탓하지 않으려는 자기 단속의 화답, 모두 절망의 탄식이 아니라 자기 추스름의 다짐으로 새기고 싶습니다. “님은 갔지만은 나는 님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도는 이 사랑의 노래 들으시며 슬퍼도 비탄에 잠기지 않는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지혜 소중하게 키워가시기 바랍니다. 어느덧 여름입니다.

※음악은 이종민 교수 홈페이지 http://leecm.chonbuk.ac.kr/~leecm/bbs/zboard.php?id=mletter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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