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민 | 전북대 교수·영문학
ㆍ원장현의 ‘날개’
전주한옥마을이 ‘2010 한국관광의 별’로 선정되었습니다. 남이섬, 순천만, 하회마을 등 굴지의 명소들을 제치고 당당히 한국 최고의 관광지로 인정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곳을 중심으로 전통문화가 살아 숨쉬는 ‘가장 한국적인 도시 전주’를 꿈꾸어온 사람으로서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네티즌들의 인기투표만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라 전문가들의 꼼꼼한 심사를 거친 결과라니, 여간 뿌듯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걱정이 앞서는 것은 또 무슨 방정일까요? 며느리 못미더워하는 시어머니 심보일까? 사실 걱정은 작년 한해 이곳을 찾은 관광객이 200만명이 넘어섰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이곳 한옥마을은 무슨 대단한 볼거리가 있는 곳이 아닙니다. 아기자기한 전통문화가 생활 속에 녹아 있어 그냥 지나가는 구경꾼에게는 여간해서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수줍은 새색시 같은 곳입니다. 진정어린 마음가짐이 없는 이에게는 그 장한 끼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귀를 열고 추임새라도 보태려는 마음, 차의 더딘 향에 취할 수 있는 여유, 손수 비빔밥을 만들고 한지로 손거울이라도 만들어 보겠다는 적극적인 마음자세가 있어야 그 은밀한 매력을 나눠가질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문화예술을 즐길 ‘준비된’ 사람들만을 위한,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공간인 것입니다. 급하게 경력 쌓듯 쏘다니는 관광객을 반기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200만명이라니요! 수박겉핥기식에 그칠 뿐 제대로 된 체험관광은 애초 불가능한 일이 되겠지요. 오히려 급격한 상업화 등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고요.
기우가 아닙니다. 징후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땅값이 솟아오르고 전세 월세금도 천정부지입니다. 어렵게 보금자리를 텄던 공예인들이 이를 감당하지 못해 떠나야 할 판입니다. 돈벌이에 휘둘려 한옥마을의 소중한 본질이 왜곡되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고의 관광명소가 되었으니 이런 현상이 더 급하게 진행되지 않을까, 느린 성숙의 전주다움은 잃고 장사의 논리에 휘둘려 관광만 남고 문화는 사라지는 꼴이 되지 않을까, 염려가 되는 것입니다. 관광이라는 바람은 분명 문화의 비상 날갯짓에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너무 강한 바람은 힘겹게 쌓은 날갯짓 공력마저 무력화할 수 있습니다. 관광에 경도되어 그것이 목적이 되어버리면 문화는 왜곡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산을 넘고 싶은 소망이, 바다를 건너고 싶은 소망이 날개를” 갖게 하지만 “이기심과 욕심에 눈이” 어두워지면 그 날개를 잃게 됩니다. (전통)문화는 물욕의 산과 바다를 넘어 삶의 질을 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기대고 싶은 날개입니다. 거기에 관광의 상업주의가 더해지면 그 날개는 꺾일 수밖에 없습니다. 문화와 관광을 합하면 현재 문화관광부가 그러하듯 관광만 승하고 문화는 소외됩니다. 문화와 공보가 만나 공보만 남고 문화는 사라진 옛날 문화공보부처럼 말입니다.
이런 기쁨과 염려가 교차하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귀 기울이는 곡이 있습니다. 원장현의 ‘날개’라는 곡입니다. 소유에 갇혀 존재를 챙기지 못하고, 눈앞의 실용에 매몰되어 내일을 꿈꾸지 못하는 우리들 답답한 일상을 뒤돌아보게 하는 곡이 아닌가 합니다. 잃고 얻음에 너무 매달리지 말라는 뜻도 함께 새기고 싶고요. 원장현은 대나무의 고장인 담양 출신으로 전주대사습대회 장원, 전국국악대제전 대통령상 등 화려한 수상경력을 지닌 민속기악 최고의 연주자입니다.
그는 대금뿐 아니라 거문고, 태평소 등 여러 악기를 골고루 잘 연주하는 남다른 역량을 갖추고 있으며 특히 즉흥연주의 기량이 뛰어나 시나위 연주의 명인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국립국악원 수석연주자를 역임했으며 현재 금현국악원을 이끌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음반으로는 ‘원장현 대금산조’, ‘원장현 대금소리 날개’, ‘항아의 노래’ 등이 있습니다. 이 곡 들으시며 전주한옥마을의 그 고즈넉한 처마선을 즐기며 아기자기한 골목길도 천천히 돌아보는 소중한 ‘여름 꿈’에 젖어보시기 바랍니다. 득실 너무 따지지 말고요.
※음악은 경향닷컴(www.khan.co.kr)과 이종민 교수 홈페이지 http://leecm.chonbuk.ac.kr/~leecm/bbs/zboard.php?id=mletter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 경향신문 & 경향닷컴
전주한옥마을이 ‘2010 한국관광의 별’로 선정되었습니다. 남이섬, 순천만, 하회마을 등 굴지의 명소들을 제치고 당당히 한국 최고의 관광지로 인정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곳을 중심으로 전통문화가 살아 숨쉬는 ‘가장 한국적인 도시 전주’를 꿈꾸어온 사람으로서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네티즌들의 인기투표만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라 전문가들의 꼼꼼한 심사를 거친 결과라니, 여간 뿌듯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걱정이 앞서는 것은 또 무슨 방정일까요? 며느리 못미더워하는 시어머니 심보일까? 사실 걱정은 작년 한해 이곳을 찾은 관광객이 200만명이 넘어섰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이곳 한옥마을은 무슨 대단한 볼거리가 있는 곳이 아닙니다. 아기자기한 전통문화가 생활 속에 녹아 있어 그냥 지나가는 구경꾼에게는 여간해서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수줍은 새색시 같은 곳입니다. 진정어린 마음가짐이 없는 이에게는 그 장한 끼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귀를 열고 추임새라도 보태려는 마음, 차의 더딘 향에 취할 수 있는 여유, 손수 비빔밥을 만들고 한지로 손거울이라도 만들어 보겠다는 적극적인 마음자세가 있어야 그 은밀한 매력을 나눠가질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문화예술을 즐길 ‘준비된’ 사람들만을 위한,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공간인 것입니다. 급하게 경력 쌓듯 쏘다니는 관광객을 반기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200만명이라니요! 수박겉핥기식에 그칠 뿐 제대로 된 체험관광은 애초 불가능한 일이 되겠지요. 오히려 급격한 상업화 등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고요.
기우가 아닙니다. 징후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땅값이 솟아오르고 전세 월세금도 천정부지입니다. 어렵게 보금자리를 텄던 공예인들이 이를 감당하지 못해 떠나야 할 판입니다. 돈벌이에 휘둘려 한옥마을의 소중한 본질이 왜곡되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고의 관광명소가 되었으니 이런 현상이 더 급하게 진행되지 않을까, 느린 성숙의 전주다움은 잃고 장사의 논리에 휘둘려 관광만 남고 문화는 사라지는 꼴이 되지 않을까, 염려가 되는 것입니다. 관광이라는 바람은 분명 문화의 비상 날갯짓에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너무 강한 바람은 힘겹게 쌓은 날갯짓 공력마저 무력화할 수 있습니다. 관광에 경도되어 그것이 목적이 되어버리면 문화는 왜곡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산을 넘고 싶은 소망이, 바다를 건너고 싶은 소망이 날개를” 갖게 하지만 “이기심과 욕심에 눈이” 어두워지면 그 날개를 잃게 됩니다. (전통)문화는 물욕의 산과 바다를 넘어 삶의 질을 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기대고 싶은 날개입니다. 거기에 관광의 상업주의가 더해지면 그 날개는 꺾일 수밖에 없습니다. 문화와 관광을 합하면 현재 문화관광부가 그러하듯 관광만 승하고 문화는 소외됩니다. 문화와 공보가 만나 공보만 남고 문화는 사라진 옛날 문화공보부처럼 말입니다.
이런 기쁨과 염려가 교차하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귀 기울이는 곡이 있습니다. 원장현의 ‘날개’라는 곡입니다. 소유에 갇혀 존재를 챙기지 못하고, 눈앞의 실용에 매몰되어 내일을 꿈꾸지 못하는 우리들 답답한 일상을 뒤돌아보게 하는 곡이 아닌가 합니다. 잃고 얻음에 너무 매달리지 말라는 뜻도 함께 새기고 싶고요. 원장현은 대나무의 고장인 담양 출신으로 전주대사습대회 장원, 전국국악대제전 대통령상 등 화려한 수상경력을 지닌 민속기악 최고의 연주자입니다.
그는 대금뿐 아니라 거문고, 태평소 등 여러 악기를 골고루 잘 연주하는 남다른 역량을 갖추고 있으며 특히 즉흥연주의 기량이 뛰어나 시나위 연주의 명인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국립국악원 수석연주자를 역임했으며 현재 금현국악원을 이끌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음반으로는 ‘원장현 대금산조’, ‘원장현 대금소리 날개’, ‘항아의 노래’ 등이 있습니다. 이 곡 들으시며 전주한옥마을의 그 고즈넉한 처마선을 즐기며 아기자기한 골목길도 천천히 돌아보는 소중한 ‘여름 꿈’에 젖어보시기 바랍니다. 득실 너무 따지지 말고요.
※음악은 경향닷컴(www.khan.co.kr)과 이종민 교수 홈페이지 http://leecm.chonbuk.ac.kr/~leecm/bbs/zboard.php?id=mletter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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