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민|전북대 교수·영문학

다급하면 절실해진다던가요? 혹사당한 우리 몸에게 미안해하는 김사인 시인의 시 ‘노숙’이 예사롭지 않게 읽힙니다.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험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 제발 험하게 다루었다고 성내지 않았으면, 오기와 복수의 심정으로 미래의 4대강처럼 스스로를 해하는 일까지는 없었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이런 다짐과 기도의 심경을 잘 그린 곡 하나 보내드립니다. 막스 브루흐의 ‘콜 니드라이(Kol Nidrei·신의 날)’입니다. 브루흐는 바흐 못지않게 기독정신이 투철했던 음악가로 기악보다 합창이나 독창의 종교적 성악곡을 주로 작곡했습니다. 그는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음악박사 학위를, 베를린대학에서 신학 및 철학박사 학위를 받을 정도로 학식 또한 높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경건한 신앙심을 확인할 수 있는 많은 성악곡에도 불구하고 그를 유명하게 해준 것은 이 곡과 세 개의 바이올린 협주곡 등과 같은 기악곡입니다.
‘히브리 선율에 의한 첼로, 관현악, 하프를 위한 아다지오, 작품 47’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이 곡은 히브리 찬송가 선율을 근거로 한 변주곡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곡 중간에 독주악기의 특성을 잘 살릴 수 있는 부분들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고, 그래서 연주자에게는 상당한 기교를 요구하지만, 첼리스트라면 누구나 연주하고 싶어 하는 곡입니다.
이 곡의 원천인 ‘콜 니드레’(모든 서약들)는 원래 유대교의 무거운 속죄의 날 전야에 예배 초 부르는 기도 형식의 성가랍니다. 이 기도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들이 실행하지 못한 신에 대한 맹세를 모두 없었던 것으로 해주고 모든 율법의 위배도 용서해주기를 기원했습니다. 말하자면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출발, 즉 거듭남을 다짐하는 의미가 서려 있는 것입니다. 요즘의 제 심정처럼 말입니다.
오늘은 그중 매우 이색적인 연주 하나 보내드립니다. 아쟁을 독주악기로 끌어올리려 애를 쓰고 있는 젊은 연주자 김상훈이 대아쟁을 들고 해석한 것입니다. 피아노는 문신원이 맡았는데 2005년 6월 명동성당 대성전에서 열린 실황입니다. 곡의 앞부분(단조)만 아쟁에 어울리게 편곡 연주했습니다.
처음 화가 난 몸을 달래려는 것처럼 피아노(‘나’)가 조심스러운 손짓으로 부릅니다. 그간 숱한 서약을 팽개친 것에 분이 풀리지 않은 아쟁(몸)이 마지못해 조응을 합니다. 이렇게 서로 어르고 응대하는 가운데 대아쟁의 위세는 점점 더 당당해지고 피아노는 다소곳이 그 뒤를 받쳐줍니다. 오랫동안 참았던 울분을 토해내는 듯 아쟁의 울부짖음이 차분하면서도 제법 절절합니다. 수 틀린다고 갈라서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겠지요? 격한 감정을 다스리려 애쓰는 대아쟁의 울림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야노스 스타커나 장한나가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것, 게리 카의 콘트라베이스와 파이프오르간의 협연, 자클린 뒤 프레의 첼로와 피아노의 협연 등과 비교하며 감상하시는 것도 곡의 묘미를 더 깊이 느낄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
덥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몸을 더 세심하게 돌봐야겠지요? 이런 음악에 자주 귀 기울이는 것이 한 방편일 수 있습니다. 이 곡 들으시며 오늘도 뽀송뽀송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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