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팀 http://wherelive.khan.kr
■ 강남 2주택 60대 은퇴부부
- 90평 ‘돈먹는 애물’ 팔기도 곤란, 세금·분담금 등 월 700만원 적자-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사는 서모씨(60)는 1가구 2주택자다. 반포에 35억원짜리 297.521㎡(90평짜리) 아파트 한 채, 잠원동에 15억원짜리 148.76㎡(45평) 아파트 한 채를 갖고 있다. 부동산 합계로는 시가 50억원.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겠냐”며 부러워하지만 서씨에게는 애물단지일 뿐이다. 요즘엔 ‘집값이 미국·일본의 버블붕괴 직전과 비슷하다’는 뉴스로 밤잠을 설칠 지경이다.
“비싼 집이 있으면 뭐합니까? 난 은퇴해서 수입도 없는데 종합부동산세며 세금이 지난해 1000만원 나왔고, 재건축 추가분담금 등 금융비용만 한달에 175만원씩 나가요. 생활비까지 포함하면 한달에 700만원 정도 적자가 납디다. 몇 억 떨어졌다는 얘기는 나오는데 정말 죽을 지경입니다.”
서씨가 아파트로 골치를 앓게 된 것은 2000년. 그가 살던 82.645㎡(25평)짜리 주공아파트가 재건축 지정된 이후다. 당시 그의 가족은 살던 집을 전세주고 현재의 잠원동 ‘ㅎ’아파트를 구입해 이사했다. 9년 만인 지난해, 낡은 5층 아파트를 허문 자리에 초고층 ‘ㅈ’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그는 재건축단지 평형 추첨에서 중소형 평수는 다 떨어지고 90평형대에 당첨됐다. 당시엔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지만 괜히 큰 평수가 되는 바람에 부담만 커졌다.
“왜 안 파냐고요? ‘ㅈ’아파트에 7억원짜리 전세를 놨는데, 아파트를 팔자니 7억원을 내줘야 해요. 또 재건축 때 추가분담금으로 낸 돈이 8억원입니다. 세무사를 구해서 계산을 해봤더니 지금 1가구 2주택자라서 양도세가 7억원에서 8억원에 달한다고 합디다. 35억원에 아파트를 팔아도 10억원 정도밖에 안남는다는 계산이 나와요. 게다가 팔려고 내놔도 사려는 사람이 나설지도 알 수가 없어요. 강남 부동산 시장이 요즘 예전같지 않아요.”
현재 살고 있는 45평 아파트를 팔기도 망설여진다. 양도세는 90평짜리에 비해 한결 적은 3억~4억원 정도로 예상되지만, 당장 서씨 가족이 살 곳이 없어 집을 갖고 있으면서도 전세를 살아야 할 형편이다. 그는 “투기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고 어쩌다보니 살고 있던 곳이 재건축되고, 또 어쩌다보니 축구장만한 평형의 아파트를 갖게 된 것”이라며 “얼른 아파트 하나는 처분하고 마음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같은 동네에 사는 또다른 자가보유자 김모씨(51)는 투자 목적으로 집을 샀다가 은행융자를 갚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다. 그는 ‘반포주공아파트가 재건축되면 거주민들이 가까운 방배동에 집을 얻을 것’이라는 지인의 ‘투자정보’를 입수하고 3년 전 4억원을 융자받아 297.521㎡(90평형) 빌라를 12억원에 구입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반포의 대형평수는 재건축이 막막한 상황인 데다, 주변의 아파트 시세는 올라도 빌라는 별반 오르지 않았다.
그는 “집은 팔리지도 않고 이자하고 원금을 갚느라고 살림이 팍팍하다”고 말했다.
경기 과천에 거주하고 있는 한모씨(42)도 지난해 대출을 받아 집을 한 채 더 산 뒤로 원금상환 때문에 쩔쩔매고 있다. 7억원짜리 아파트를 한 채 갖고 있던 한씨는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에 3억원을 대출받아 아파트 한 채를 더 샀다. 그러나 새로 산 5억원짜리 아파트의 시세는 전혀 오르지 않았고, 가격이 떨어질 기미마저 보이고 있다. 매달 금융비용만 200만원이다.
일본의 부동산버블이 붕괴했을 때 주택가격이 10분의 1로 떨어졌다는 전례는 한씨에게는 애써 무시하고픈 이야기다. 1997년 외환위기 때도 거뜬했던 ‘강남불패’의 신화가 있고, 해방 이래 집값이 그렇게 하락한 적은 결코 없으며, 경기가 풀리면 예전보다 더 오를 것이라고 한씨는 굳게 믿고 있다.
■ 내집 꿈 이룬 30대 신혼부부
- 월 160만원 상환, 둘이 벌어도 허덕, 커피값도 없는데… 출산 엄두 못내 -
모기지론 상환금에다 건강보험료와 연금보험료 80만원을 빼면 통장 잔액은 180만원이다.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임씨와 국책연구소의 비정규직 연구원인 부부의 교통비와 점심값, 휴대전화료, 식비, 관리비, 수도요금 등 각종 공과금을 빼면 여윳돈이 없다. 극장 가본 기억이 흐릿하고, 점심 후 커피전문점에서 입가심하던 습관도 접은 지 오래다.
부부가 무리해서 집을 산 것은 셋집살이를 벗어나고 싶어서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12년 동안 이삿짐을 싸는 데 질린 데다 전셋값 오를 때마다 속을 끓이느니 차라리 싼 이자로 대출을 받아 내 집 한칸을 장만해보고 싶었다.
어렵사리 ‘내집 장만’의 꿈을 이루고 나니 또 다른 현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출금 상환이다. 집값은 1년 사이에 오히려 2000만원이나 떨어졌다. 집값 최정점에 물건을 사는 ‘상투 잡은 꼴’이 된 것 같아 내심 불안하다. 비정규직인 아내는 재계약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혼자 벌어서는 영락없는 마이너스 인생인데 어떻게 해야 할까. 남들은 속도 모르고 “아이 언제 갖느냐. 아기는 자기 밥숟가락 갖고 태어나니까 쑥 하나 낳으라”며 참견해올 때면 임씨는 말없는 웃음으로 응대할 뿐이다.
또다른 신혼부부인 박영한씨(34·가명)의 경우 주택구입 대출을 받았다. 원금상환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매달 이자만 갚아나가고 있다. 월세를 내야 할 대상이 집주인이 아니라 은행인 ‘은행 월세’의 신세다. 재작년에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76.033㎡(23평)짜리 아파트를 2억4000만원에 사면서 은행대출을 1억원 받았다. 부모에게 9000만원, 직장생활로 모은 돈 5000만원을 합쳐봐도 집을 사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시중은행에서 연리 5.77%로 돈을 빌렸다. 이자가 비싸다고 해도 어차피 집값이 오르면 충분히 상쇄가 가능하다고 주판알을 튕겼다. 주변에서는 “앞으로 집값이 더 올라서 이번에 못사면 영영 무주택자가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신혼 초에는 상황이 나쁘지 않았다. 유통회사에 근무하는 박씨와 학원강사인 아내 소득이 적지 않았던 덕이다. 아내가 임신으로 학원을 그만두면서 사단이 났다. 월 수입은 절반으로 줄고, 매달 이자 50만원에다 양육비까지 생기면서 남는 돈이 없다. 저축은 꿈도 못꾼다. 아내는 이웃들이 육아강좌를 들으러 문화센터에 같이 가자고 채근할 때도 적자 상태인 통장잔액 숫자를 생각하면 발을 쉽게 뗄 수가 없다. 아내는 다시 학원강사로 나설까 고민 중이다.
아이는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거나 베이비시터를 고용할 생각이다. 그렇잖고서는 내집 마련과 아이의 교육 모두 무너질까 두렵다. 이들 부부의 희망은 집값이 다시 오르는 것이다. 중대형 집값은 떨어져도 소형아파트는 강세라는 뉴스를 들으면 왠지 기대가 된다. 집값이 오른다면 지금 사는 집은 팔고 근처의 30평형대 아파트로 옮길 계획이다. 하지만 장래 계획을 세울 때마다 ‘집’ 문제가 가장 큰 변수다. 집값이 떨어진다면, 집이 ‘돈먹는 하마’가 된다면, 전 재산이 허공으로 날아간다면 어떻게 될까. 앞날은 불투명하기만 하다.
ⓒ 경향신문 & 경향닷컴
- 90평 ‘돈먹는 애물’ 팔기도 곤란, 세금·분담금 등 월 700만원 적자-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사는 서모씨(60)는 1가구 2주택자다. 반포에 35억원짜리 297.521㎡(90평짜리) 아파트 한 채, 잠원동에 15억원짜리 148.76㎡(45평) 아파트 한 채를 갖고 있다. 부동산 합계로는 시가 50억원.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겠냐”며 부러워하지만 서씨에게는 애물단지일 뿐이다. 요즘엔 ‘집값이 미국·일본의 버블붕괴 직전과 비슷하다’는 뉴스로 밤잠을 설칠 지경이다.
“비싼 집이 있으면 뭐합니까? 난 은퇴해서 수입도 없는데 종합부동산세며 세금이 지난해 1000만원 나왔고, 재건축 추가분담금 등 금융비용만 한달에 175만원씩 나가요. 생활비까지 포함하면 한달에 700만원 정도 적자가 납디다. 몇 억 떨어졌다는 얘기는 나오는데 정말 죽을 지경입니다.”
서씨가 아파트로 골치를 앓게 된 것은 2000년. 그가 살던 82.645㎡(25평)짜리 주공아파트가 재건축 지정된 이후다. 당시 그의 가족은 살던 집을 전세주고 현재의 잠원동 ‘ㅎ’아파트를 구입해 이사했다. 9년 만인 지난해, 낡은 5층 아파트를 허문 자리에 초고층 ‘ㅈ’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그는 재건축단지 평형 추첨에서 중소형 평수는 다 떨어지고 90평형대에 당첨됐다. 당시엔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지만 괜히 큰 평수가 되는 바람에 부담만 커졌다.
“왜 안 파냐고요? ‘ㅈ’아파트에 7억원짜리 전세를 놨는데, 아파트를 팔자니 7억원을 내줘야 해요. 또 재건축 때 추가분담금으로 낸 돈이 8억원입니다. 세무사를 구해서 계산을 해봤더니 지금 1가구 2주택자라서 양도세가 7억원에서 8억원에 달한다고 합디다. 35억원에 아파트를 팔아도 10억원 정도밖에 안남는다는 계산이 나와요. 게다가 팔려고 내놔도 사려는 사람이 나설지도 알 수가 없어요. 강남 부동산 시장이 요즘 예전같지 않아요.”
현재 살고 있는 45평 아파트를 팔기도 망설여진다. 양도세는 90평짜리에 비해 한결 적은 3억~4억원 정도로 예상되지만, 당장 서씨 가족이 살 곳이 없어 집을 갖고 있으면서도 전세를 살아야 할 형편이다. 그는 “투기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고 어쩌다보니 살고 있던 곳이 재건축되고, 또 어쩌다보니 축구장만한 평형의 아파트를 갖게 된 것”이라며 “얼른 아파트 하나는 처분하고 마음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같은 동네에 사는 또다른 자가보유자 김모씨(51)는 투자 목적으로 집을 샀다가 은행융자를 갚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다. 그는 ‘반포주공아파트가 재건축되면 거주민들이 가까운 방배동에 집을 얻을 것’이라는 지인의 ‘투자정보’를 입수하고 3년 전 4억원을 융자받아 297.521㎡(90평형) 빌라를 12억원에 구입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반포의 대형평수는 재건축이 막막한 상황인 데다, 주변의 아파트 시세는 올라도 빌라는 별반 오르지 않았다.
그는 “집은 팔리지도 않고 이자하고 원금을 갚느라고 살림이 팍팍하다”고 말했다.
경기 과천에 거주하고 있는 한모씨(42)도 지난해 대출을 받아 집을 한 채 더 산 뒤로 원금상환 때문에 쩔쩔매고 있다. 7억원짜리 아파트를 한 채 갖고 있던 한씨는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에 3억원을 대출받아 아파트 한 채를 더 샀다. 그러나 새로 산 5억원짜리 아파트의 시세는 전혀 오르지 않았고, 가격이 떨어질 기미마저 보이고 있다. 매달 금융비용만 200만원이다.
일본의 부동산버블이 붕괴했을 때 주택가격이 10분의 1로 떨어졌다는 전례는 한씨에게는 애써 무시하고픈 이야기다. 1997년 외환위기 때도 거뜬했던 ‘강남불패’의 신화가 있고, 해방 이래 집값이 그렇게 하락한 적은 결코 없으며, 경기가 풀리면 예전보다 더 오를 것이라고 한씨는 굳게 믿고 있다.
■ 내집 꿈 이룬 30대 신혼부부
- 월 160만원 상환, 둘이 벌어도 허덕, 커피값도 없는데… 출산 엄두 못내 -
지난해 초 결혼한 임상윤씨(35·가명) 부부. 집이 있고 두 사람의 월소득을 합치면 400만원이 조금 넘는다. 하지만 늘 쪼들린다. 한푼이라도 아껴보려고 즐겨마시던 원두커피를 끊고, 좋아하는 술은 한달에 한번 날을 잡아서 마신다. 월급통장에 돈이 들어오기 무섭게 모기지론 상환금으로 월 160만원씩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경기 고양시 행신동에 장만한 85.95㎡(26평) 아파트를 구입하기 위해 받은 대출금이 1억2000만원. 원래 갖고 있던 전셋방 보증금과 직장생활을 하며 모은 돈을 합쳐서 2억6000만원이 들었다.
모기지론 상환금에다 건강보험료와 연금보험료 80만원을 빼면 통장 잔액은 180만원이다.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임씨와 국책연구소의 비정규직 연구원인 부부의 교통비와 점심값, 휴대전화료, 식비, 관리비, 수도요금 등 각종 공과금을 빼면 여윳돈이 없다. 극장 가본 기억이 흐릿하고, 점심 후 커피전문점에서 입가심하던 습관도 접은 지 오래다.
부부가 무리해서 집을 산 것은 셋집살이를 벗어나고 싶어서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12년 동안 이삿짐을 싸는 데 질린 데다 전셋값 오를 때마다 속을 끓이느니 차라리 싼 이자로 대출을 받아 내 집 한칸을 장만해보고 싶었다.
어렵사리 ‘내집 장만’의 꿈을 이루고 나니 또 다른 현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출금 상환이다. 집값은 1년 사이에 오히려 2000만원이나 떨어졌다. 집값 최정점에 물건을 사는 ‘상투 잡은 꼴’이 된 것 같아 내심 불안하다. 비정규직인 아내는 재계약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혼자 벌어서는 영락없는 마이너스 인생인데 어떻게 해야 할까. 남들은 속도 모르고 “아이 언제 갖느냐. 아기는 자기 밥숟가락 갖고 태어나니까 쑥 하나 낳으라”며 참견해올 때면 임씨는 말없는 웃음으로 응대할 뿐이다.
또다른 신혼부부인 박영한씨(34·가명)의 경우 주택구입 대출을 받았다. 원금상환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매달 이자만 갚아나가고 있다. 월세를 내야 할 대상이 집주인이 아니라 은행인 ‘은행 월세’의 신세다. 재작년에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76.033㎡(23평)짜리 아파트를 2억4000만원에 사면서 은행대출을 1억원 받았다. 부모에게 9000만원, 직장생활로 모은 돈 5000만원을 합쳐봐도 집을 사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시중은행에서 연리 5.77%로 돈을 빌렸다. 이자가 비싸다고 해도 어차피 집값이 오르면 충분히 상쇄가 가능하다고 주판알을 튕겼다. 주변에서는 “앞으로 집값이 더 올라서 이번에 못사면 영영 무주택자가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신혼 초에는 상황이 나쁘지 않았다. 유통회사에 근무하는 박씨와 학원강사인 아내 소득이 적지 않았던 덕이다. 아내가 임신으로 학원을 그만두면서 사단이 났다. 월 수입은 절반으로 줄고, 매달 이자 50만원에다 양육비까지 생기면서 남는 돈이 없다. 저축은 꿈도 못꾼다. 아내는 이웃들이 육아강좌를 들으러 문화센터에 같이 가자고 채근할 때도 적자 상태인 통장잔액 숫자를 생각하면 발을 쉽게 뗄 수가 없다. 아내는 다시 학원강사로 나설까 고민 중이다.
아이는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거나 베이비시터를 고용할 생각이다. 그렇잖고서는 내집 마련과 아이의 교육 모두 무너질까 두렵다. 이들 부부의 희망은 집값이 다시 오르는 것이다. 중대형 집값은 떨어져도 소형아파트는 강세라는 뉴스를 들으면 왠지 기대가 된다. 집값이 오른다면 지금 사는 집은 팔고 근처의 30평형대 아파트로 옮길 계획이다. 하지만 장래 계획을 세울 때마다 ‘집’ 문제가 가장 큰 변수다. 집값이 떨어진다면, 집이 ‘돈먹는 하마’가 된다면, 전 재산이 허공으로 날아간다면 어떻게 될까. 앞날은 불투명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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