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취재팀 | 최민영(사회부)·이주영(산업부)·김기범(사회부)·임아영(전국부) 기자, 김설아·황성호 인턴기자
ㆍ집주인 재정착 22%뿐 ‘투자자를 위한 뉴타운’
ㆍ길음뉴타운 249가구중 원주민은 54가구 불과… 30년 거주자 9명 불과
서울시가 뉴타운 사업의 홍보를 위해 ‘강북 미니 신도시’라고 명명한 성북구 길음뉴타운. 이곳은 2002년 10월 왕십리, 은평과 함께 뉴타운 시범지구로 지정됐다. 이 중 길음5구역의 경우 길음2동 586번지 일대 2만8250㎡ 규모의 단독주택지구를 헐고 아파트 11개동과 임대아파트 1개동이 들어섰다. 2006년 6월 입주가 완료되고 3년8개월이 흐른 올해 2월 현재 이곳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경향신문은 길음5구역에 들어선 아파트의 소유권 변화를 추적해봤다. 이 분석은 ‘누구를 위한 재개발이냐’는 물음으로 시작됐다. ‘뉴타운에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누구일까’ ‘영세 가옥주와 세입자를 포함한 원주민들은 어디로 갔을까’를 자료를 통해 실증해보자는 것이었다. 뉴타운 사업이 주거환경 개선이라는 당초 목적과 달리 돈 없는 서민들을 쫓아내고, 집값 상승을 부추긴 세태를 입증하기 위해서다.
2001년 당시만 해도 이곳에 살던 주민의 71%가 향후 이 지역에 거주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현실은 냉혹했다. 7년이 지난 현재 가옥주의 재정착률이 5명 중 1명에 불과한 것이다. 현재 남은 가옥주 가운데 ‘원주민’(54가구)들은 주로 1980년대(20가구)와 90년대(22가구)에 이곳에서 땅이나 집을 구입해 보유해온 사람들이다. 가장 오래된 가옥주는 강북구의 미아동에 살다 65년 길음5구역내 62㎡의 필지를 매입한 이모씨(70)다. 이씨는 뉴타운 개발 당시 조합원 분양을 받아 현재 108.9㎡(33평형)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 이씨처럼 60~70년대에 들어와 30년 넘게 이 동네에 거주하는 원주민은 모두 9가구다.
외지인들은 언제 이곳으로 들어왔을까. 현재의 가옥주 중에서 외지인(2001년 9월24일 이후 소유권 등기가 된 가구)이 가장 많이 들어온 시기는 2002년이다. 195가구 중 56가구가 2002년 1년 동안 길음5구역에 있는 토지나 건축물을 구입했다. 이듬해인 2003년에는 32가구로 두번째를 차지했다. 길음5구역의 재개발을 통해 아파트를 마련하고 부동산 가격 상승의 이익을 보겠다는 목표로 들어왔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2002년은 사업 시행 인가(3월21일)가 나고 서울시가 길음 등 3곳을 뉴타운 시범지구로 발표(10월23일)한 해로, 2001년 조합 설립 인가 이후 재개발 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다. 외지인 195가구의 절반에 가까운 46.7%가 2001년 10월~2003년 말 사이에 들어왔다.
이들은 어디서 왔을까. 외지인 195가구의 등기 기록을 살펴본 결과 서울 시내의 다른 구에서 이동해온 경우가 97가구였다. 경기도에서 전입한 사람들은 23가구였고 대전 3가구, 충남 2가구, 경북·인천·부산이 1가구씩이었다. 24가구는 길음동내 다른 곳에서 왔고, 43가구는 전 주소지 기록이 없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서울 시내에선 노원구 20가구, 성북구(길음동 제외) 18가구, 강북구 16가구, 도봉구 9가구, 동대문구 5가구 등으로 인접 지역에서 온 전입자들이 주를 이뤘다. 강남권에서 온 경우는 3가구(서초구 1, 송파구 2가구)에 불과했다. 경기에선 고양시 7가구(덕양구 5, 일산구 2가구), 남양주·의정부·부천시 각 3가구, 성남시 분당구 2가구 등의 순으로 들어왔다. 거주지 이동이 일자리 등 생활권과 맞물리면서 기존 거주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흐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길음5구역 뉴타운에 입주한 이들은 부동산 가격 상승의 이익을 누렸다. 이곳의 래미안 2차 아파트의 가격은 몇 년 사이 급등했다. 시공사인 삼성물산은 2004년 1월 일반분양 때 3.3㎡(1평)당 분양가가 780만~960만원이라고 밝혔다. 6년이 지난 현재 시세는 최고 2배 오른 가격에 형성돼 있다. 부동산정보업체 스피드뱅크에 따르면 당시 2억1800만원에 분양된 79.2㎡(24평형)의 경우 지난달 현재 3억4750만원으로 1억2950만원(59.4%) 올랐고, 분양가가 2억7800만원이던 108.9㎡(33평형)는 2배 가까이 오른 5억5250만원이다. 135.3㎡(41평형)도 현재 7억4350만원으로 6년 전(4억200만원)보다 3억4150만원(85%) 뛰었다.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인근이 모두 뉴타운으로 개발돼 대규모 아파트촌이 형성되면서 재개발 전에 비해 가격이 2배나 오른 곳이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의 개발구조에서는 그만한 분양가 또는 분담금을 낼 수 있는 중산층 이상만이 아파트를 차지할 수 있었다. 뉴타운 지정의 혜택은 원주민들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재개발 자체가 원주민들을 다 내쫓아내는 거야. 투자자들만 왕창 몰렸어. 외지인들이 전부 다 사서 (평당) 400만원짜리를 2000만원으로 만들었지. 여기 집주인들이 이 동네사람들이 아니라 전부 다 투자자다. 원주민들은 다 나갔지. 나갈 땐 몇 푼 갖고 나갔는데 들어올 때는 싸갖고 들어와야 되니까 거기서 그냥 사는 거지. 수유리, 삼양동, 돈암동까지도 갔다. 하나 들어오는 거는 하나 헐고 그래야 되는데 여기저기 막 다 해버리니까 전셋값도 올라가 의정부까지 가서 사는 사람도 있다. 이건 보통 전쟁이 아니야.”(길음동에서 3대째 거주하는 김영식씨, ‘2009년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길음동사람들’에서)
집을 가진 가옥주의 사정이 이렇다면 세입자들은 어떨까.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전에 길음5구역에는 1699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었으며 이 중 땅이나 건물을 갖고 있는 주민은 311가구, 세입자는 308가구였다.
뉴타운 사업이 진행되자 서울시는 구역 내에 임대아파트 1개동을 함께 지어 세입자의 주거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서울시 산하 SH공사가 관리하는 ‘길음SH빌’은 2004년 9월 착공해 래미안 2차 아파트 단지 뒤편에 90가구 규모로 들어섰고, 2007년 12월부터 입주가 시작됐다. 임대아파트를 건설한 것은 재개발시 임대주택을 짓도록 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관련법은 임대주택에 대한 의무 규정만 있을 뿐 구체적인 의무 비율(전체 가구수의 17%)이 없었다. 길음5구역내 임대주택비율이 13.8%(전체 650가구 중 90가구)에 불과한 이유다.
아파트 - 마트에 점령된 ‘모둠살이 기억들’
임대아파트가 충분히 공급되지 못한 데에는 법·제도적 미비도 있었지만 사업성 저하와 집값 하락을 우려한 조합원들의 반대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서울시는 2004년 발행한 <뉴타운 만들기 과정의 기록-길음뉴타운> 책자에서 “임대아파트와 관련해선 구역내의 반대 의견과 더불어 인접 지역에서의 반대 입장도 파악할 수 있었다”고 기록했다. 책자는 또 “임대아파트가 인접한 지역에 조성될 경우 기존 아파트값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고 적었다. 좀더 일찍 재개발 사업이 추진됐던 인근 구역의 임대주택 비율도 길음2구역 12.0%, 길음4구역 14.7% 등으로 극히 낮다. 길음1·6구역은 임대주택 건설에 대한 규정이 느슨한 도시재개발법이 적용되면서 임대주택을 아예 짓지 않았다.
길음5구역의 경우 90가구의 임대아파트가 공급됐지만 이것마저 세입자 308가구 모두의 몫이 아니었다. 그때는 서울시 조례 개정 전이어서 세입자들은 임대아파트와 주거이전비 둘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었다. 그 규정에 따라 주거이전비를 선택한 139가구는 임대아파트 입주대상에서 제외됐다. 여기에다 129가구는 거주기간이나 소득 등이 법적 기준을 미달해 세입자 주거대책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결국 이들을 제외한 40가구만 임대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에 따라 길음5구역 세입자의 임대주택 정착률은 12.9%(308가구 중 40가구)에 불과했다.
4월 현재, 고층 아파트 11개동이 빼곡하게 들어선 길음5구역 주변도로는 보수공사가 한창이다. 인접한 길음8구역에서는 주상복합건물, 9구역에서는 아파트를 짓는 공사가 이뤄지고 있다. 공사장과 포장이 덜 된 도로에서 먼지가 뿌옇게 흩날리는 가운데 초등학생들이 고장난 신호등이 걸린 도로 좌우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건너고 있었다. 해질 무렵 도로변에서 마스크를 쓴 채 운동 중이던 한 주민은 “밤에는 공사가 끝나 돌아다닐 만하지만, 낮에는 분진과 먼지 때문에 대부분 차량으로 이동한다”고 말했다.
길과 동네 풍경이 변하듯, 사람의 구성도 변하고 있음을 토박이 영세상인들은 느낀다 . 길음5구역의 해맑음길에서 12년 동안 슈퍼마켓을 운영해온 상인은 “개발 때문에 동네 주민들이 다 떠나고 이제는 지나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 장사가 안된다”고 한숨을 쉬었다. 40년간 이 지역에서 미용실을 꾸려온 이모씨는 기자가 가게 문을 두드렸을 때 낮잠을 자고 있었다. “예전에는 단골손님이 꽤 있었는데 다 떠나고 나니 가게가 한산해요. 예전에는 파마 손님이 많았는데 요즘은 간간이 커트 손님만 있어요. 가겟세 내기도 힘들어요.” 기존 주민의 삶이 ‘다세대주택-시장-동네 가게-대중교통’이었다면, 새로운 삶은 ‘고층아파트-마트-상가-자가용’으로 바뀌었다. 기존의 낡은 80~90년대풍의 가게들은 점차 잊혀지는 양상이다.
길음뉴타운 9개 구역 중 가장 규모가 작은 길음5구역은 97년 10월 정비구역으로 지정, 2001년 9월 조합 설립 인가가 나면서 토지·건물 소유주들이 조합원이 됐다. 영세 가옥주들이 많았다. 조합원들이 갖고 있던 땅은 총 386필지로, 1인당 평균 63.52㎡(19.2평)의 땅이나 건물을 갖고 있었다. 386필지 가운데 평균 면적에 못미치는 필지 비율은 58.55%에 달했고, 면적이 10㎡(3평)도 안 되는 필지도 34개나 됐다.
원래 길음동 일대는 무허가 간이주택들이 밀집한 대규모 달동네였다. 58년 미아리 공동묘지 이장 후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무허가로 정착했고 도심지 일대의 철거민, 수재민 등이 정착하면서 서민 주거지를 형성했다. 80년대 중후반부터는 여러 채의 간이주택을 합쳐 다세대주택이나 빌라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2010년 현재, 과거의 기억들은 동네 주민들과 함께 사라지고 있다. 길음1구역과 5·6구역에는 삼성 래미안, 2구역에는 대우 푸르지오, 4구역에는 대림 e-편한세상 아파트가 각각 들어서 입주를 마쳤다. 두산 위브 아파트가 지어지는 7구역은 오는 7월 말, 삼성 래미안 아파트가 들어서는 8구역과 9구역은 각각 6월 말과 9월 말에 입주가 시작될 예정이다. 길음뉴타운이 모두 완성되면 총 1만4000가구가 공급된다. 이 가운데 길음의 원주민들이 살게 되는 집은 몇 가구나 될까. 과연 다른 곳의 뉴타운은 길음과는 다른 개발의 풍경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 경향신문 & 경향닷컴
ㆍ길음뉴타운 249가구중 원주민은 54가구 불과… 30년 거주자 9명 불과
서울시가 뉴타운 사업의 홍보를 위해 ‘강북 미니 신도시’라고 명명한 성북구 길음뉴타운. 이곳은 2002년 10월 왕십리, 은평과 함께 뉴타운 시범지구로 지정됐다. 이 중 길음5구역의 경우 길음2동 586번지 일대 2만8250㎡ 규모의 단독주택지구를 헐고 아파트 11개동과 임대아파트 1개동이 들어섰다. 2006년 6월 입주가 완료되고 3년8개월이 흐른 올해 2월 현재 이곳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길음의 어제 서울시가 뉴타운 시범지구로 개발하기 전인 2002년 10월 다세대주택이 밀집한 성북구 길음동의 모습. | 경향신문 자료사진
경향신문은 길음5구역에 들어선 아파트의 소유권 변화를 추적해봤다. 이 분석은 ‘누구를 위한 재개발이냐’는 물음으로 시작됐다. ‘뉴타운에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누구일까’ ‘영세 가옥주와 세입자를 포함한 원주민들은 어디로 갔을까’를 자료를 통해 실증해보자는 것이었다. 뉴타운 사업이 주거환경 개선이라는 당초 목적과 달리 돈 없는 서민들을 쫓아내고, 집값 상승을 부추긴 세태를 입증하기 위해서다.
경향신문이 지난 2월16~21일 길음동 래미안 2차 아파트 560가구 중 과거 등기가 남아있는 조합원 분양 249가구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이 지역에 집을 가졌던 ‘원주민’ 비율은 21.7%(54가구)에 불과했다. 78.3%인 195가구가 이곳을 떠난 것이다. 여기서 원주민은 조합 설립 인가 시점인 2001년 9월24일 이전 이 지역내 토지나 건축물을 소유하고 있던 사람들을 말한다. 길음5구역에 거주하던 세입자 308가구는 조합 해체 등으로 자료를 확보하기 어려워 제외했으나, 세입자를 포함할 경우 원주민 정착률은 훨씬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 세입자는 물론이고 영세한 가옥주들까지 내몰리는 개발을 ‘서민 주거안정’을 위한 사업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일이다.
2001년 당시만 해도 이곳에 살던 주민의 71%가 향후 이 지역에 거주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현실은 냉혹했다. 7년이 지난 현재 가옥주의 재정착률이 5명 중 1명에 불과한 것이다. 현재 남은 가옥주 가운데 ‘원주민’(54가구)들은 주로 1980년대(20가구)와 90년대(22가구)에 이곳에서 땅이나 집을 구입해 보유해온 사람들이다. 가장 오래된 가옥주는 강북구의 미아동에 살다 65년 길음5구역내 62㎡의 필지를 매입한 이모씨(70)다. 이씨는 뉴타운 개발 당시 조합원 분양을 받아 현재 108.9㎡(33평형)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 이씨처럼 60~70년대에 들어와 30년 넘게 이 동네에 거주하는 원주민은 모두 9가구다.
외지인들은 언제 이곳으로 들어왔을까. 현재의 가옥주 중에서 외지인(2001년 9월24일 이후 소유권 등기가 된 가구)이 가장 많이 들어온 시기는 2002년이다. 195가구 중 56가구가 2002년 1년 동안 길음5구역에 있는 토지나 건축물을 구입했다. 이듬해인 2003년에는 32가구로 두번째를 차지했다. 길음5구역의 재개발을 통해 아파트를 마련하고 부동산 가격 상승의 이익을 보겠다는 목표로 들어왔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2002년은 사업 시행 인가(3월21일)가 나고 서울시가 길음 등 3곳을 뉴타운 시범지구로 발표(10월23일)한 해로, 2001년 조합 설립 인가 이후 재개발 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다. 외지인 195가구의 절반에 가까운 46.7%가 2001년 10월~2003년 말 사이에 들어왔다.
이들은 어디서 왔을까. 외지인 195가구의 등기 기록을 살펴본 결과 서울 시내의 다른 구에서 이동해온 경우가 97가구였다. 경기도에서 전입한 사람들은 23가구였고 대전 3가구, 충남 2가구, 경북·인천·부산이 1가구씩이었다. 24가구는 길음동내 다른 곳에서 왔고, 43가구는 전 주소지 기록이 없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서울 시내에선 노원구 20가구, 성북구(길음동 제외) 18가구, 강북구 16가구, 도봉구 9가구, 동대문구 5가구 등으로 인접 지역에서 온 전입자들이 주를 이뤘다. 강남권에서 온 경우는 3가구(서초구 1, 송파구 2가구)에 불과했다. 경기에선 고양시 7가구(덕양구 5, 일산구 2가구), 남양주·의정부·부천시 각 3가구, 성남시 분당구 2가구 등의 순으로 들어왔다. 거주지 이동이 일자리 등 생활권과 맞물리면서 기존 거주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흐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길음5구역 뉴타운에 입주한 이들은 부동산 가격 상승의 이익을 누렸다. 이곳의 래미안 2차 아파트의 가격은 몇 년 사이 급등했다. 시공사인 삼성물산은 2004년 1월 일반분양 때 3.3㎡(1평)당 분양가가 780만~960만원이라고 밝혔다. 6년이 지난 현재 시세는 최고 2배 오른 가격에 형성돼 있다. 부동산정보업체 스피드뱅크에 따르면 당시 2억1800만원에 분양된 79.2㎡(24평형)의 경우 지난달 현재 3억4750만원으로 1억2950만원(59.4%) 올랐고, 분양가가 2억7800만원이던 108.9㎡(33평형)는 2배 가까이 오른 5억5250만원이다. 135.3㎡(41평형)도 현재 7억4350만원으로 6년 전(4억200만원)보다 3억4150만원(85%) 뛰었다.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인근이 모두 뉴타운으로 개발돼 대규모 아파트촌이 형성되면서 재개발 전에 비해 가격이 2배나 오른 곳이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의 개발구조에서는 그만한 분양가 또는 분담금을 낼 수 있는 중산층 이상만이 아파트를 차지할 수 있었다. 뉴타운 지정의 혜택은 원주민들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재개발 자체가 원주민들을 다 내쫓아내는 거야. 투자자들만 왕창 몰렸어. 외지인들이 전부 다 사서 (평당) 400만원짜리를 2000만원으로 만들었지. 여기 집주인들이 이 동네사람들이 아니라 전부 다 투자자다. 원주민들은 다 나갔지. 나갈 땐 몇 푼 갖고 나갔는데 들어올 때는 싸갖고 들어와야 되니까 거기서 그냥 사는 거지. 수유리, 삼양동, 돈암동까지도 갔다. 하나 들어오는 거는 하나 헐고 그래야 되는데 여기저기 막 다 해버리니까 전셋값도 올라가 의정부까지 가서 사는 사람도 있다. 이건 보통 전쟁이 아니야.”(길음동에서 3대째 거주하는 김영식씨, ‘2009년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길음동사람들’에서)
집을 가진 가옥주의 사정이 이렇다면 세입자들은 어떨까.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전에 길음5구역에는 1699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었으며 이 중 땅이나 건물을 갖고 있는 주민은 311가구, 세입자는 308가구였다.
뉴타운 사업이 진행되자 서울시는 구역 내에 임대아파트 1개동을 함께 지어 세입자의 주거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서울시 산하 SH공사가 관리하는 ‘길음SH빌’은 2004년 9월 착공해 래미안 2차 아파트 단지 뒤편에 90가구 규모로 들어섰고, 2007년 12월부터 입주가 시작됐다. 임대아파트를 건설한 것은 재개발시 임대주택을 짓도록 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관련법은 임대주택에 대한 의무 규정만 있을 뿐 구체적인 의무 비율(전체 가구수의 17%)이 없었다. 길음5구역내 임대주택비율이 13.8%(전체 650가구 중 90가구)에 불과한 이유다.
아파트 - 마트에 점령된 ‘모둠살이 기억들’
임대아파트가 충분히 공급되지 못한 데에는 법·제도적 미비도 있었지만 사업성 저하와 집값 하락을 우려한 조합원들의 반대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서울시는 2004년 발행한 <뉴타운 만들기 과정의 기록-길음뉴타운> 책자에서 “임대아파트와 관련해선 구역내의 반대 의견과 더불어 인접 지역에서의 반대 입장도 파악할 수 있었다”고 기록했다. 책자는 또 “임대아파트가 인접한 지역에 조성될 경우 기존 아파트값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고 적었다. 좀더 일찍 재개발 사업이 추진됐던 인근 구역의 임대주택 비율도 길음2구역 12.0%, 길음4구역 14.7% 등으로 극히 낮다. 길음1·6구역은 임대주택 건설에 대한 규정이 느슨한 도시재개발법이 적용되면서 임대주택을 아예 짓지 않았다.
길음의 오늘 뉴타운 개발이 완료되거나 진행중인 지난달 14일 서울 성북구 길음동 일대에 고층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정지윤 기자
길음5구역의 경우 90가구의 임대아파트가 공급됐지만 이것마저 세입자 308가구 모두의 몫이 아니었다. 그때는 서울시 조례 개정 전이어서 세입자들은 임대아파트와 주거이전비 둘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었다. 그 규정에 따라 주거이전비를 선택한 139가구는 임대아파트 입주대상에서 제외됐다. 여기에다 129가구는 거주기간이나 소득 등이 법적 기준을 미달해 세입자 주거대책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결국 이들을 제외한 40가구만 임대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에 따라 길음5구역 세입자의 임대주택 정착률은 12.9%(308가구 중 40가구)에 불과했다.
이는 당초 길음뉴타운 세입자들이 원했던 수준에 한참 못미치는 수치다. 서울시가 본격적인 뉴타운 계획 수립에 착수하기 전인 2003년 2~3월 길음뉴타운 구역 전체를 대상으로 한 주민의식 조사결과에 따르면 이 지역 세입자의 75%가 임대주택 입주를 희망했다. 임대아파트의 적정 규모에 대해선 세입자의 45%가 18~25평형을 원했다. 18평 미만의 아파트를 원하는 세입자는 31%, 25평 이상은 24%였다. 그러나 실제 길음SH빌에 들어선 90가구는 모두 15평의 단일 평형으로 지어졌다. 수요자의 요구와 상관없이 일괄적으로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작은 규모로 결정한 것이다. 이 조사결과는 길음뉴타운 9개 구역 전체를 대상으로 하긴 했지만 임대아파트에 대한 세입자들의 수요와 실제 공급 간 괴리를 가늠해볼 수 있는 지표다. 결국 저렴한 전셋집은 개발로 사라지고, 세입자들은 집 한 칸을 빌리려 더 높은 임대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4월 현재, 고층 아파트 11개동이 빼곡하게 들어선 길음5구역 주변도로는 보수공사가 한창이다. 인접한 길음8구역에서는 주상복합건물, 9구역에서는 아파트를 짓는 공사가 이뤄지고 있다. 공사장과 포장이 덜 된 도로에서 먼지가 뿌옇게 흩날리는 가운데 초등학생들이 고장난 신호등이 걸린 도로 좌우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건너고 있었다. 해질 무렵 도로변에서 마스크를 쓴 채 운동 중이던 한 주민은 “밤에는 공사가 끝나 돌아다닐 만하지만, 낮에는 분진과 먼지 때문에 대부분 차량으로 이동한다”고 말했다.
길과 동네 풍경이 변하듯, 사람의 구성도 변하고 있음을 토박이 영세상인들은 느낀다 . 길음5구역의 해맑음길에서 12년 동안 슈퍼마켓을 운영해온 상인은 “개발 때문에 동네 주민들이 다 떠나고 이제는 지나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 장사가 안된다”고 한숨을 쉬었다. 40년간 이 지역에서 미용실을 꾸려온 이모씨는 기자가 가게 문을 두드렸을 때 낮잠을 자고 있었다. “예전에는 단골손님이 꽤 있었는데 다 떠나고 나니 가게가 한산해요. 예전에는 파마 손님이 많았는데 요즘은 간간이 커트 손님만 있어요. 가겟세 내기도 힘들어요.” 기존 주민의 삶이 ‘다세대주택-시장-동네 가게-대중교통’이었다면, 새로운 삶은 ‘고층아파트-마트-상가-자가용’으로 바뀌었다. 기존의 낡은 80~90년대풍의 가게들은 점차 잊혀지는 양상이다.
길음뉴타운 9개 구역 중 가장 규모가 작은 길음5구역은 97년 10월 정비구역으로 지정, 2001년 9월 조합 설립 인가가 나면서 토지·건물 소유주들이 조합원이 됐다. 영세 가옥주들이 많았다. 조합원들이 갖고 있던 땅은 총 386필지로, 1인당 평균 63.52㎡(19.2평)의 땅이나 건물을 갖고 있었다. 386필지 가운데 평균 면적에 못미치는 필지 비율은 58.55%에 달했고, 면적이 10㎡(3평)도 안 되는 필지도 34개나 됐다.
원래 길음동 일대는 무허가 간이주택들이 밀집한 대규모 달동네였다. 58년 미아리 공동묘지 이장 후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무허가로 정착했고 도심지 일대의 철거민, 수재민 등이 정착하면서 서민 주거지를 형성했다. 80년대 중후반부터는 여러 채의 간이주택을 합쳐 다세대주택이나 빌라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2010년 현재, 과거의 기억들은 동네 주민들과 함께 사라지고 있다. 길음1구역과 5·6구역에는 삼성 래미안, 2구역에는 대우 푸르지오, 4구역에는 대림 e-편한세상 아파트가 각각 들어서 입주를 마쳤다. 두산 위브 아파트가 지어지는 7구역은 오는 7월 말, 삼성 래미안 아파트가 들어서는 8구역과 9구역은 각각 6월 말과 9월 말에 입주가 시작될 예정이다. 길음뉴타운이 모두 완성되면 총 1만4000가구가 공급된다. 이 가운데 길음의 원주민들이 살게 되는 집은 몇 가구나 될까. 과연 다른 곳의 뉴타운은 길음과는 다른 개발의 풍경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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