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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의 사회학

[도시·사회·시민 이야기](14)신도시는 ‘비인간적 도시’

테오도르 폴 김 theodorepaul@naver.com

ㆍ전철역·공항·병원·고층아파트… 겉과 기능으로 디자인 된 도시
ㆍ지역 특성 상실한 ‘건물 집합소’

정부는 최근 서민주택 공급을 위해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수도권 5곳을 보금자리 주택지구로 선정했다. 언론들은 이 지역의 대지·농지 시세와 건설 분양가의 시세차익이 없어 돈 많은 기업들이나 투자자들에게는 매력없는 사업이라고 예측한다.

왜 서민들을 위한 주택공급이 수지타산의 방식으로 거론돼야 하며, 누가 무슨 논리와 개념으로 이런 정책을 결정했는지 그 근거를 검증해한다. 기존 도시는 낙후된 채 수십년간 방치하고, 수도권의 환경을 위해 반드시 빈 공간으로 보전해야 할 자연을 일확천금을 노리는 노다지 땅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마치 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니다 초원을 발견하면 즉시 황무지로 초토화시키는 메뚜기떼들의 테러와도 같다.

한국의 신도시 개발은 지역민을 내쫓고, 지역 특성과 사회공동체 개념을 상실한 채 진행된다. 사진은 최근 신도시로 확정된 개발 지역 현장. | 경향신문 자료사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도시는 그 지역의 특성과 사회공동체라는 사회체제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리고 사회를 조정·통제하는 정치적·사회적 요인과 제도는 그 도시의 흥망성쇠를 결정했다. 예를 들면 유럽 고대시대의 원로정치는 로마제국의 로마네스크·비잔틴 도시를 만들었고, 중세의 봉건·군주정치는 가톨릭 고전도시로, 그리고 근세의 공화정치는 산업·공업도시로 변화시킨 것을 보면 그 유래를 알 수 있다. 오늘날의 정보사회는 수백만명 이상의 인구가 집중된 거대한 몸집의 도시, 메트로폴리스를 형성하게 했다. 도시개념에 무지한 사람들은 이 방대한 도시를 마치 경제성장, 문화발전, 주거환경의 혁신적 결과로 착각한다. 사실은 한쪽은 현대화의 첨단시설이고, 다른 쪽은 서민들을 내팽개치는 불균등한 사회의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Janus)의 괴물과 같다. 도시의 중심은 아파트의 집합체가 아니라 교육·문화·사회적 장소로 형성돼야 한다. 그러나 부동산 거래가 도시정책의 핵심이다 보니 사회, 시민이 없는 광대한 건물집합소만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도시 개념이 망각된 정책에 의해 외곽에 건설된 신도시들은 인간적 도시보다는 비인간적 도시다. 인간적 도시는 성격, 특징, 형태, 주위환경 등으로 명확하게 정의된 장소들이 도시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즉 도시의 중심은 시장, 공원, 산책로, 야외강당, 광장, 공연장 등의 사회적 공공장소로 이뤄져 시민들에게 힘차고 생동감있는 사회활동을 공급한다. 비인간적 도시는 기능은 있지만 특징과 의미가 상실된 전철역, 공항, 병원, 고층아파트 단지 등의 장소로 구성된다. 1960년대 미국 대부분의 슬럼가와 유럽 외곽도시에서 발생했다. 그러나 한국은 오늘날까지 이런 비인간적인 도시만을 반복해 건설하는 심각한 과오를 범하고 있다.

도시를 개발하는 정책은 대체도시화의 방법론으로 추진돼야 한다. 이는 도시 주위에 이미 형성된 기존의 동네·마을들을 중심으로 도시화하고, 대도시와의 연계를 통해 대도시의 높은 수준의 문화적 삶을 공유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한국의 도시개발은 5%의 강남부자와 재벌들이 60% 이상의 시민들 주거지를 점령, 흔적조차 싹 쓸어버리고 고층아파트촌을 만들어 부동산 재테크로 이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수십년 동안 살아온 시민들은 도시 외곽으로 쫓겨나 불안정하고 덧없는 하루살이의 삶을 살면서 폭력과 범죄자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정치가들은 이런 정책이 합리성의 검증보다 경제적 효과, 정치적 의지, 그리고 최종결과가 더 중요하므로 시민들은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착각하고 있다.

정책은 시민들과의 협의와 납득의 결과이지, 지배하고 다스리는 설득의 대상이 아니다. 시민들이 검증하고 동의하는 절차를 무시하는 정책은 합리성과 객관성이 결여됐다는 의미로 절대 추진해서는 안된다. 만일 그래도 강행한다면, 우리 도시의 미래는 선진국과 동일한 세계화로 향한 발전의 변화보다는 암흑과 재앙의 후퇴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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