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민 전북대 교수·영문학
ㆍ‘그 저녁 무렵부터 새벽이 오기까지’ 작곡 이준호·연주 정수년
다시 ‘과시용’ 산행을 다녀왔습니다. 여름에는 지리산 종주, 겨울에는 덕유산 종주. 육십령에서 향적봉까지 그 험하고 먼 눈길을 또 걸었습니다. 게을러 평소 산행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는 주제에 산 즐겨 타는 사람들도 꺼리는 험한 길을 겁 없이 택했습니다. 이것 무사히 마치면 그간 술에 시달린 몸에 대한 걱정 한꺼번에 떨칠 수 있겠지, 종합검진 받는 심정으로 감행한 것입니다.
20여㎝ 깊게 쌓인 눈 위를 걷는 것은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닙니다. 점심을 먹기 전에 이미 왼쪽 무릎이 시큰거리더니 급기야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비명을 삼켜야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뒤처져 일행들의 산행흐름마저 헝클어뜨리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심신이 피폐해진 채로 산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저녁밥상 준비가 끝난 한참 후였습니다. 미안하고 창피하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화가 나서 밥이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애꿎은 매실주만 홀짝이며 분노를 삭여야 했습니다.
그렇게 ‘그 저녁 무렵부터 새벽이 오기까지’ 그 화사한 눈꽃과 맑은 옥구슬 같은 수정 상고대마저 잊은 채 탄식과 자책을 해댔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높은 산에서의 오묘한 여명을 즐기기도 하련만 눈이 무섭고 추위가 싫어 소변마저 참고 길게 새로운 날만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날은 전혀 새롭지 않았습니다. 몇 발자국을 내딛지 않아 어제의 고통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길 자체는 어제보다 수월해 보였지만 고통은 마찬가지. 그렇게 도달한 중봉 넘어 ‘하늘정원!’ 참담함 속에서도 눈꽃의 아름다움, 그 화사함을 외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잠시 사라졌던 ‘과시욕망’도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습니다. 자연의 위대함인가, 인간의 간사함인가. 겉장갑을 벗어버리고 사진을 찍어댔습니다. 이렇게라도 해서 으스댈 게 있어야 이 부끄러운 분노를 눅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아니 앞으로 대충대충 살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슬픈 증거를 분명하게 남겨야 했습니다.
이 동영상의 배경음악은 무엇으로 할까? 겨울과 어울리는 앙드레 가뇽의 ‘겨울풍경’ 아니면 ‘눈’? 아니 좀 더 슬픈 것으로 하자. 이 심정을 제대로 증언할 수 있도록. 슬프면서 아름다운 곡이면 좋겠는데. 바이런이 노래한 상복을 입은 여인이나 포의 시에 등장하는 아름다워서 일찍 죽은 애너벨리나 레노어처럼.
그래서 택한 것이 이준호 작곡, 정수년 연주의 ‘그 저녁 무렵부터 새벽이 오기까지’입니다. ‘겨울에 눈 덮인 설악산의 밤을 지내고 동트는 새벽을 맞는 아름다움’을 그린 해금 독주곡이라니 이런 상황에 잘 어울릴 것도 같습니다. 원래는 “음악과 시와 무용의 만남”을 주제로 한 무용음악 ‘태양의 집’의 한 부분인데, 곡의 완성도가 높아 독주곡으로 더 빛을 발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신시사이저와 기타의 소편성 반주 위에 해금의 독특한 색깔과 선율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 곡은 연주자에게는 고도의 기량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듣는 이에게는 찰현악기의 매력, 그 처연한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게 해줍니다. 저로 하여금 맨 처음 음악편지를 쓰게 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곡 들으며 삶의 고단함 잠시 잊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슬퍼 아름다운 음악이 때로 위로가 됩니다. 이를 통해 너그러움도 키워갈 수 있고요. 시련의 계절에는 특히 이런 음악에 자주 귀 기울여야 한답니다. 오늘도 복된 하루!
※ 음악은 경향닷컴(www.khan.co.kr)과 이종민 교수 홈페이지(http://leecm.chonbuk.ac.kr/~leecm/index.php)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다시 ‘과시용’ 산행을 다녀왔습니다. 여름에는 지리산 종주, 겨울에는 덕유산 종주. 육십령에서 향적봉까지 그 험하고 먼 눈길을 또 걸었습니다. 게을러 평소 산행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는 주제에 산 즐겨 타는 사람들도 꺼리는 험한 길을 겁 없이 택했습니다. 이것 무사히 마치면 그간 술에 시달린 몸에 대한 걱정 한꺼번에 떨칠 수 있겠지, 종합검진 받는 심정으로 감행한 것입니다.
산행과정은 예상보다 더 참담했습니다. 작년 산행에서 너무나 큰 고통과 두려움에 시달렸기에, 이보다 더 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제멋대로 짐작하고 준비를 소홀히 한 탓에 엄청난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지난번에는 다리 힘 기른다고 아파트 15층을 한 달 이상 걸어 오르고 장비도 꼼꼼하게 챙겼는데 이번에는 으스댈 마음만 앞서 예비운동은커녕 아이젠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것입니다.
20여㎝ 깊게 쌓인 눈 위를 걷는 것은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닙니다. 점심을 먹기 전에 이미 왼쪽 무릎이 시큰거리더니 급기야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비명을 삼켜야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뒤처져 일행들의 산행흐름마저 헝클어뜨리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심신이 피폐해진 채로 산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저녁밥상 준비가 끝난 한참 후였습니다. 미안하고 창피하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화가 나서 밥이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애꿎은 매실주만 홀짝이며 분노를 삭여야 했습니다.
그렇게 ‘그 저녁 무렵부터 새벽이 오기까지’ 그 화사한 눈꽃과 맑은 옥구슬 같은 수정 상고대마저 잊은 채 탄식과 자책을 해댔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높은 산에서의 오묘한 여명을 즐기기도 하련만 눈이 무섭고 추위가 싫어 소변마저 참고 길게 새로운 날만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날은 전혀 새롭지 않았습니다. 몇 발자국을 내딛지 않아 어제의 고통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길 자체는 어제보다 수월해 보였지만 고통은 마찬가지. 그렇게 도달한 중봉 넘어 ‘하늘정원!’ 참담함 속에서도 눈꽃의 아름다움, 그 화사함을 외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잠시 사라졌던 ‘과시욕망’도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습니다. 자연의 위대함인가, 인간의 간사함인가. 겉장갑을 벗어버리고 사진을 찍어댔습니다. 이렇게라도 해서 으스댈 게 있어야 이 부끄러운 분노를 눅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아니 앞으로 대충대충 살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슬픈 증거를 분명하게 남겨야 했습니다.
이 동영상의 배경음악은 무엇으로 할까? 겨울과 어울리는 앙드레 가뇽의 ‘겨울풍경’ 아니면 ‘눈’? 아니 좀 더 슬픈 것으로 하자. 이 심정을 제대로 증언할 수 있도록. 슬프면서 아름다운 곡이면 좋겠는데. 바이런이 노래한 상복을 입은 여인이나 포의 시에 등장하는 아름다워서 일찍 죽은 애너벨리나 레노어처럼.
그래서 택한 것이 이준호 작곡, 정수년 연주의 ‘그 저녁 무렵부터 새벽이 오기까지’입니다. ‘겨울에 눈 덮인 설악산의 밤을 지내고 동트는 새벽을 맞는 아름다움’을 그린 해금 독주곡이라니 이런 상황에 잘 어울릴 것도 같습니다. 원래는 “음악과 시와 무용의 만남”을 주제로 한 무용음악 ‘태양의 집’의 한 부분인데, 곡의 완성도가 높아 독주곡으로 더 빛을 발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신시사이저와 기타의 소편성 반주 위에 해금의 독특한 색깔과 선율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 곡은 연주자에게는 고도의 기량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듣는 이에게는 찰현악기의 매력, 그 처연한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게 해줍니다. 저로 하여금 맨 처음 음악편지를 쓰게 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곡 들으며 삶의 고단함 잠시 잊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슬퍼 아름다운 음악이 때로 위로가 됩니다. 이를 통해 너그러움도 키워갈 수 있고요. 시련의 계절에는 특히 이런 음악에 자주 귀 기울여야 한답니다. 오늘도 복된 하루!
※ 음악은 경향닷컴(www.khan.co.kr)과 이종민 교수 홈페이지(http://leecm.chonbuk.ac.kr/~leecm/index.php)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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