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민 전북대 교수·영문학
중국 캉딩(康定)에 다녀왔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히는 인류 최고(最古)의 교역로 차마고도! 그것의 일부를 볼 수 있다는 말에 ‘현혹되어’ 나선 여행인데 그렇게 멀고 험할 줄은 몰랐습니다.
해발 2500m에 위치한 티베트와 쓰촨 간 교통의 요지로 청두(成都)에서 버스로 여섯 시간, 실제로는 빙판길 때문에 가다 서다를 계속하여 열 시간 넘어 조바심과 두려움에 시달려야 도달할 수 있습니다. 고단한 여정 자체가 삶이었던 차마고도 마방들의 자취를 찾아보는 여행이라지만 초조와 긴장의 연속으로 마음마저 뻐근했습니다.
그러고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그곳이 그리운 것은 또 무슨 변덕일까요? 제2의 주자이거우(‘산은 황산이요 물은 구채구라’는 그 구채구!)라 불리는 해발 3700m 무거춰(木格措), 그 설산과 어우러진 파란 신비의 산정호수가 그리워서일까요? 야인해라고도 불리는 이곳에 서려 있는 청춘남녀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잊지 못해서일까요? 추억은 아름답다더니 그곳에 오르면서 빙판길 때문에 또 그렇게 마음을 졸였던 것들까지도 지나고 나니 그리움의 원천이 되는가 봅니다.
그러나 이것들보다는 한 노래로 인한 안타까움이 더 크게 작용했을 것입니다. 우연히 호텔 텔레비전에서 보고 들은 ‘캉딩정가’(康定情歌). 중국 전통의상을 입은 한 중년 사내가 드넓은 초원에 서서 하얀 설산을 배경으로 절절하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 제목은 자막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고요.
이때부터 제 관심은 온통 이 노래가 담긴 음반을 구하는 데 집중되었습니다. 우리가 묵은 호텔 이름도 캉딩정가. 예사로운 노래가 아님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음반 구입을 약속한, 통역을 맡은 대학원생들로부터 해외에까지 널리 알려진 노래라는 얘기를 듣고 제 조바심은 도를 더해갔습니다. 그러나 구하지 못했습니다. 낙산, 아미산 등 들르는 곳마다 찾아보았지만 실패했습니다. 한국에서도 구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체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그 학생들이 음반을 구해왔습니다! 무거춰를 중심으로 한 캉딩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노래로 그린 음반입니다. 그래서인지 가수에 대한 소개도 없습니다. 다만 이런 글이 시처럼 실려 있습니다.
“이곳에는 신성하고 영험하고 길상한 설산, 호수들이 있네/ 맑고 깨끗하며 드넓은 창공이 있네/ 오색의 찬란한 숲의 기이한 경관도 있다네/…/ 이곳이 바로 세상 사람 모두가 알고 있는 절창 캉딩정가의 고향/ 이곳에 와야만 비로소 알 수 있다네/ 빙설로 둘러싸인 물처럼 맑고 투명한 이 사랑노래가 왜 다른 곳이 아닌 이곳에서 나왔는지!”
노래 내용은 소박합니다. 이씨 집 어여쁜 큰딸과 장씨 댁 잘생긴 큰아들이 캉딩의 아름다운 성에서 마음껏 사랑을 나눈다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달이 구불구불 빛나는 가운데” 서로의 아름다움을 구한다는 후렴으로 마감됩니다. 일종의 ‘갑돌이와 갑순이’라 할 수 있겠는데요, 중국 서북부 지역에 널리 퍼졌을 뿐만 아니라 유의훤이라는 가수를 통해 일본에도 소개되고 이를 계기로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답니다. 음악성이야 제가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지만 지역민들이 매우 자랑삼아 한다는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그것도 모른 채 멍하니 캉딩을 다녀왔습니다. 그러게 어디를 여행하려면 사전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인데…. 아는 만큼 보인다 했는데 게으름으로 제대로 느끼지도 못하고 돌아왔으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무거춰 산상호수 가를 거닐면 감흥이 전혀 다를 것 같습니다. 차마고도의 대표적인 역 상리고진의 고즈넉한 옛 풍광도 훨씬 멋스럽게 다가올 것이고요. 그러니 혹 캉딩 아니면 쓰촨성에 가실 때도 이 노래 꼭 익혀 가시기 바랍니다.
겨울바람이 제법 매섭습니다. 이처럼 소소한 일상을 챙긴다면 하루하루가 더 풍요롭게 이어지지 않을까, 동티베트의 정겨운 사랑노래 들으며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 음악은 경향닷컴(www.khan.co.kr)과 이종민 교수 홈페이지(http://leecm.chonbuk.ac.kr/~leecm/index.php)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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