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ㆍ지휘자 성시연, 말러를 말하다
ㆍ그가 겪은 세기말 불안감…현대인 파편적 삶과 통해
ㆍ4일 예술의전당서 ‘대지의 노래’ 공연
올해 음악계의 최대 화두는 역시 ‘말러’다. 탄생 150주년을 맞은 작곡가 말러를 전면에 내세운 연주회가 국내에서만 20회 남짓 이어질 예정이다. 테이프를 끊는 이는 지휘자 성시연(34). 미국 보스턴 심포니와 서울시향의 부지휘자를 겸하고 있는 이 젊은 지휘자가 4일 예술의전당에서 선보이는 교향곡 ‘대지의 노래’가 올해 펼쳐질 ‘말러 향연’의 첫 무대다. 이른바 ‘말러리안’으로 불리는 충성도 높은 애호가층을 거느린 세기말 작곡가 말러. 지난 2일 서울시향 음악감독실에서 만난 지휘자 성시연이 말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말러를 전혀 몰랐어요. 1990년대 후반에 베를린으로 유학을 가서야 비로소 말러를 접할 수 있었죠. 저는 여전히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주종목’으로 듣고 있었는데, 어느날 한 친구가 그러는 거예요. ‘너는 왜 말러를 안 듣니?’라고요. 그때 그 친구가 권해줬던 것이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한 말러 교향곡들이었죠. 완전히 빠졌어요. 특히 2번 ‘부활’에 심하게 매료됐죠. 그렇게 음반으로 듣다가 말러 콩쿠르를 준비하면서 드디어 악보를 보기 시작했는데, 아, 대단했어요. 짧은 마디 안에서도 모든 악기가 각자 개성을 갖고 제 소리를 냈어요. 인간의 내면을 흔드는, 마술 같은 음악이었어요.”
성시연은 2007년 독일 밤베르크에서 열렸던 제2회 말러 지휘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를 차지했다. 당시 지휘했던 곡은 교향곡 1번 ‘거인’. 그보다 한 해 앞선 1회 대회에서 1위를 했던 베네수엘라 출신의 구스타포 두다멜(29)은 현재 미국 LA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다.
‘한창 잘나가는’ 두다멜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좀 아쉽지 않으냐?”고 묻자 성시연은 그저 커다랗게 웃었다. 부산 태생의 그는 잘 웃는다. 하지만 그 웃음이 언제나 밝고 경쾌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말러의 허무와 비탄에 마음을 빼앗기진 않았을 터. 그는 “말러 음악에 매혹된 것은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라며 “음악은 결국 삶에서 나오는데, 이상주의자 말러의 방황과 좌절이야말로 그의 음악적 요체 가운데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
“말러는 불행했죠. 오케스트라 단원들과의 불화, 아내의 외도, 자신의 심장병에 대한 공포, 딸의 죽음 등등 정말 갖가지 고통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어요. 워낙 감성적인 사람인 데다 완벽주의적 성향까지 있었으니까 더 힘들었겠죠. 자신의 작품을 리허설하면서 다 바꿔버리고, 연주 후에 또 바꾸고…. 말러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물론 그의 음악에도 밝고 경쾌한 부분은 있지요. 하지만 그것은 슬픔을 숨기고 있는 웃음 같은 거죠.”
살아 있을 당시엔 작곡가보다 지휘자로 명성을 떨쳤던 말러. 성시연은 이런 일화를 전해줬다. 말러가 자신의 교향곡 ‘부활’의 악보를 들고 당대 최고의 지휘자로 꼽혔던 한스 폰 뷜로를 찾아갔다. 말러가 그 곡을 피아노로 연주해보이자, 당시 뷜로가 던졌던 한 마디는 “너는 그냥 지휘만 해라”였다. 하지만 말러 스스로 “나의 시대가 오고야 말 것”이라고 예견했던 것처럼 ‘작곡가 말러’는 60년대에 접어들면서 부활의 날개를 폈다. 특히 레너드 번스타인은 말러 재평가의 일등 공신으로 꼽힐 만한 지휘자였다. 물론 60년대에 접어들어 비약적으로 발전한 오디오 제작 기술도 한몫했을 것이다. 말러 교향곡의 장대하면서도 복합적인 사운드, 약음과 강음의 극단적인 대비는 고급 품질의 오디오와 어울리면서 더욱 빛났을 것이다. 거기에 성시연은 한마디를 더 보탰다.
미완성작 한 곡을 포함해 생전에 말러가 남긴 교향곡은 모두 11곡. 성시연이 4일 서울시향을 지휘해 선보일 ‘대지의 노래’는 말러의 아홉번째 교향곡이다. 하지만 말러는 베토벤, 슈베르트, 브루크너가 자신의 교향곡에 ‘9번’이라는 번호를 붙인 후 더 이상 교향곡을 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사실에 늘 강박감을 느꼈다. 결국 이 곡은 번호 없이 ‘대지의 노래’라는 제목만으로 발표됐고, 말러가 세상을 떠난 6개월 후인 1911년 11월20일 브루너 발터의 지휘로 초연됐다. 대편성의 오케스트라를 반주로 해 테너와 알토가 모두 3곡씩 6곡을 번갈아 부르는 곡. 일반적인 교향곡의 틀을 넘어선, ‘노래로 이뤄진 교향곡’이다. 중국의 이백, 맹호연, 왕유 등의 한시를 한스 베트케가 독일어로 번안한 가사에 말러가 곡을 붙였다. 말러의 허무적이고 낭만적인 세계관이 짙게 반영된 이 곡에 대해 성시연은 “다만 허무와 절망으로 음악이 끝나는 건 아니다. 마지막 순간에 여섯번 반복되는 ‘영원히’라는 가사에 이 곡의 메시지가 담겼다”고 말했다. 성시연이 지휘하는 서울시향과 함께 테너 사이먼 오닐과 메조소프라노 예카테리나 구바노바가 무대에 오른다.
ㆍ그가 겪은 세기말 불안감…현대인 파편적 삶과 통해
ㆍ4일 예술의전당서 ‘대지의 노래’ 공연
올해 음악계의 최대 화두는 역시 ‘말러’다. 탄생 150주년을 맞은 작곡가 말러를 전면에 내세운 연주회가 국내에서만 20회 남짓 이어질 예정이다. 테이프를 끊는 이는 지휘자 성시연(34). 미국 보스턴 심포니와 서울시향의 부지휘자를 겸하고 있는 이 젊은 지휘자가 4일 예술의전당에서 선보이는 교향곡 ‘대지의 노래’가 올해 펼쳐질 ‘말러 향연’의 첫 무대다. 이른바 ‘말러리안’으로 불리는 충성도 높은 애호가층을 거느린 세기말 작곡가 말러. 지난 2일 서울시향 음악감독실에서 만난 지휘자 성시연이 말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말러를 전혀 몰랐어요. 1990년대 후반에 베를린으로 유학을 가서야 비로소 말러를 접할 수 있었죠. 저는 여전히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주종목’으로 듣고 있었는데, 어느날 한 친구가 그러는 거예요. ‘너는 왜 말러를 안 듣니?’라고요. 그때 그 친구가 권해줬던 것이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한 말러 교향곡들이었죠. 완전히 빠졌어요. 특히 2번 ‘부활’에 심하게 매료됐죠. 그렇게 음반으로 듣다가 말러 콩쿠르를 준비하면서 드디어 악보를 보기 시작했는데, 아, 대단했어요. 짧은 마디 안에서도 모든 악기가 각자 개성을 갖고 제 소리를 냈어요. 인간의 내면을 흔드는, 마술 같은 음악이었어요.”
성시연은 2007년 독일 밤베르크에서 열렸던 제2회 말러 지휘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를 차지했다. 당시 지휘했던 곡은 교향곡 1번 ‘거인’. 그보다 한 해 앞선 1회 대회에서 1위를 했던 베네수엘라 출신의 구스타포 두다멜(29)은 현재 미국 LA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다.
‘한창 잘나가는’ 두다멜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좀 아쉽지 않으냐?”고 묻자 성시연은 그저 커다랗게 웃었다. 부산 태생의 그는 잘 웃는다. 하지만 그 웃음이 언제나 밝고 경쾌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말러의 허무와 비탄에 마음을 빼앗기진 않았을 터. 그는 “말러 음악에 매혹된 것은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라며 “음악은 결국 삶에서 나오는데, 이상주의자 말러의 방황과 좌절이야말로 그의 음악적 요체 가운데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
“말러는 불행했죠. 오케스트라 단원들과의 불화, 아내의 외도, 자신의 심장병에 대한 공포, 딸의 죽음 등등 정말 갖가지 고통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어요. 워낙 감성적인 사람인 데다 완벽주의적 성향까지 있었으니까 더 힘들었겠죠. 자신의 작품을 리허설하면서 다 바꿔버리고, 연주 후에 또 바꾸고…. 말러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물론 그의 음악에도 밝고 경쾌한 부분은 있지요. 하지만 그것은 슬픔을 숨기고 있는 웃음 같은 거죠.”
살아 있을 당시엔 작곡가보다 지휘자로 명성을 떨쳤던 말러. 성시연은 이런 일화를 전해줬다. 말러가 자신의 교향곡 ‘부활’의 악보를 들고 당대 최고의 지휘자로 꼽혔던 한스 폰 뷜로를 찾아갔다. 말러가 그 곡을 피아노로 연주해보이자, 당시 뷜로가 던졌던 한 마디는 “너는 그냥 지휘만 해라”였다. 하지만 말러 스스로 “나의 시대가 오고야 말 것”이라고 예견했던 것처럼 ‘작곡가 말러’는 60년대에 접어들면서 부활의 날개를 폈다. 특히 레너드 번스타인은 말러 재평가의 일등 공신으로 꼽힐 만한 지휘자였다. 물론 60년대에 접어들어 비약적으로 발전한 오디오 제작 기술도 한몫했을 것이다. 말러 교향곡의 장대하면서도 복합적인 사운드, 약음과 강음의 극단적인 대비는 고급 품질의 오디오와 어울리면서 더욱 빛났을 것이다. 거기에 성시연은 한마디를 더 보탰다.
“서양은 60년대 이후, 한국에서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말러 붐이 일었는데, 어찌 보면 그건 당연한 거죠. 말러의 음악은 논리적이기보다 감성적이잖아요. 요즘처럼 몸으로 먼저 반응하는 감성의 시대에 아주 잘 어울리는 작곡가라고 할 수 있죠. 말러의 음악에는 예측하기 어려운 극단적 표현들이 자주 등장해요. 게다가 세기말에 겪었던 말러의 불안감이 현대인들의 파편화된 삶과도 연결되는 것 아닐까요?”
미완성작 한 곡을 포함해 생전에 말러가 남긴 교향곡은 모두 11곡. 성시연이 4일 서울시향을 지휘해 선보일 ‘대지의 노래’는 말러의 아홉번째 교향곡이다. 하지만 말러는 베토벤, 슈베르트, 브루크너가 자신의 교향곡에 ‘9번’이라는 번호를 붙인 후 더 이상 교향곡을 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사실에 늘 강박감을 느꼈다. 결국 이 곡은 번호 없이 ‘대지의 노래’라는 제목만으로 발표됐고, 말러가 세상을 떠난 6개월 후인 1911년 11월20일 브루너 발터의 지휘로 초연됐다. 대편성의 오케스트라를 반주로 해 테너와 알토가 모두 3곡씩 6곡을 번갈아 부르는 곡. 일반적인 교향곡의 틀을 넘어선, ‘노래로 이뤄진 교향곡’이다. 중국의 이백, 맹호연, 왕유 등의 한시를 한스 베트케가 독일어로 번안한 가사에 말러가 곡을 붙였다. 말러의 허무적이고 낭만적인 세계관이 짙게 반영된 이 곡에 대해 성시연은 “다만 허무와 절망으로 음악이 끝나는 건 아니다. 마지막 순간에 여섯번 반복되는 ‘영원히’라는 가사에 이 곡의 메시지가 담겼다”고 말했다. 성시연이 지휘하는 서울시향과 함께 테너 사이먼 오닐과 메조소프라노 예카테리나 구바노바가 무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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