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좋아하는 것들

‘탄광촌 화가’ 3년 만에 나들이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ㆍ황재형 개인전… 5일부터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탄광촌 화가’ 황재형(58)이 3년 만에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연다. 5일부터 열리는 개인전에서 태백의 자연과 경관, 탄광촌 사람들의 삶을 그린 60여점을 선보인다.

황재형 ‘산허리 베어물고’(캔버스 혼합재료, 162.2X112.1㎝ <1997~2003>) | 가나아트센터 제공

“광부의 집, 바닥에 구르는 돌멩이 하나, 나무로 만든 욕실용 슬리퍼 하나도 사사로이 보이지 않아요. 무심한 사물의 존재감이 내게 다가와요. 아무 데서나 들썩 주저앉아 기쁘게 그립니다.”

1일 가나아트센터에서 만난 황씨는 한결 여유로워 보였다. 그는 “예전에 아이들이 그림 그리는 걸 방해하면 ‘정신 사납다’고 내쫓았는데, 요즘은 그리는 걸 멈추고 같이 놀곤 한다”고 했다.

황재형은 1982년 민중미술 단체 ‘임술년’ 창립 회원으로 활동하는 등 80년대 민중미술 운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었다. 공장노동자, 야학교사 활동과 그림을 병행하다 83년 돌연 태백으로 갔다. “서울에서의 화가 행세는 매양 헛짓이라는 느낌” 때문이었다. 태백으로 가서도 탄광촌 사람들의 모질고 힘든 삶을 화폭에 담아왔다.

황씨는 “(민중미술을 하던 때) 철학과 예술의 시발점은 노동이라고 알았다. 사회주의 사상과 상관없이 노동이 진정한 가치를 가질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고 했다.

그는 80~90년대 탄광촌에 사는 사람들을 근접 촬영하듯 얼굴 근육과 이마의 주름, 땀방울을 냉철하게 담아낸 리얼리즘 작가였다.

2007년에 이어 올해 선보인 작품들도 사람과 풍경에서 한발짝 물러선 ‘관조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들이다. 그렇다고 태백과 탄광의 현실과 리얼리즘이 캔버스에서 온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현실에 대한 직접적 발언은 줄었지만 2000년 중반 들어 주목한 ‘풍경’에도 탄광촌의 고단하고 을씨년스러운 삶의 분위기가 깔려 있다.

개인전 제목인 ‘쥘 흙과 뉠 땅’은 84년 첫 개인전 이후 줄곧 사용해왔다. “쥘 흙은 우리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뉠 땅은 우리의 상황과 환경에 대한 문제를 말하는 겁니다. 쥘 흙은 있어도 뉠 땅은 없는 현실말입니다.”

‘쥘 흙’과 ‘뉠 땅’에 대한 문제 의식은 재료 선택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전국 곳곳에서 수집한 흙 50여종에 모래와 톱밥, 석탄 가루를 재료로 이용한다. 80년대 유화 물감 살 돈이 없어 마련한 궁여지책의 재료이기도 했지만, 그는 “우리 흙은 본질적 생명력이 있다. 흙은 담담하고 차분하며 정직, 소박한 색”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28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