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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종교·영토 분쟁 등 ‘장벽에 갇힌 세계’

이청솔기자 taiyang@kyunghyang.com경향신문

동독·서독 분단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0년이 흘렀다. 그러나 분쟁을 상징하는 많은 장벽이 여전히 세계 곳곳에 남아 있다. 최근 들어 시작된 갈등으로 새롭게 장벽이 설치되고 있는 지역도 있다.

중동분쟁의 상징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장벽부터 국부의 원천을 지키기 위한 ‘석유 장벽’, 곳곳에서 세워지고 있는 밀입국 방지용 장벽, 냉전체제의 유물인 한반도의 휴전선까지….

BBC 방송은 지난 5일 스페셜 리포트를 통해 갈등의 상징이 된 세계의 장벽 12곳을 소개했다.
①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장벽 = 이스라엘은 2002년부터 요르단 강 서안지역과 가자 지구, 동예루살렘 등 팔레스타인 영토와의 경계선에 장벽을 쌓기 시작했다. 울타리, 철조망, 도랑, 콘크리트판 등으로 이루어진 장벽 높이는 8m에 이른다.

국제사법재판소는 2004년 이 장벽이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결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공격으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장벽을 쌓는 목적이라고 주장하지만 팔레스타인 측은 이 장벽이 ‘인종차별 장벽’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이스라엘 국방부는 장벽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긴급군령을 내려 공사 부지의 소유권을 획득했다. 그 가운데 85%는 팔레스타인이 실효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땅이었다.

②북아일랜드 ‘평화선’ = 1969년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 서쪽에서 가톨릭과 신교 공동체 사이의 충돌을 막기 위한 임시 조치로 만들어졌다. 이후 곳곳에서 방화와 폭동 등을 막기 위해 장벽이 건설됐다. 유럽 근대사에서 30년전쟁 등으로 기억되는 신·구교도 간의 해묵은 종교분쟁이 최근까지 흔적을 남기고 있는 현장이다.

길이는 수백m부터 5㎞에 이르는 것까지 다양하며 높이는 양측 간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6m까지 높아지기도 했다.

지금은 관광지로도 인기를 끌고 있지만 지난해 두 집단 사이의 불화가 불거지며 벨파스트 북쪽의 한 초등학교 주변에 장벽이 건설되기도 했다.

③사우디아라비아 ‘석유 장벽’ = 페르시아만의 막강한 산유국 사우디가 국경선 9000㎞에 걸쳐 설치하고 있는데 완공되면 세계에서 가장 긴 장벽이 된다. 사우디는 영토와 석유자원을 지킨다는 목적을 내걸었다. 예멘, 이라크, 카타르, 아랍에미리트연합 등 모든 인접국과의 국경선에 장벽이 설치된다. 소요 비용은 30억달러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인구가 적은 사막 지역의 장벽은 허술하게 지어지기 쉽다. 그래서 침입자를 막기 위해 위성 감시체계, 카메라, 레이더, 전자 센서, 정찰기 등을 갖추게 된다.

④스페인령 세우타·멜리야의 이민 방지 장벽 = 북아프리카 모로코에 위치한 스페인령 항구 도시 세우타와 멜리야에는 90년대 들어 철조망이 설치됐다. 스페인이 지브롤터 해협을 통해 자국으로 건너오는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을 막으려 한 것이다. 세우타에는 8.2㎞, 멜리야에는 12㎞의 철조망이 둘러쳐졌다.

2000년대 들어 불법 이민이 급증하면서 스페인은 두 도시에 모두 철조망을 보강했다. 각각의 높이는 6m에 이르고 최루가스 발사장치와 소음 및 진동 탐지 센서, 감시탑 등이 설치돼 있다. 세우타와 멜리야 주민들은 이로 인해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도시에 거주하게 됐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⑤키프로스 ‘그린 라인’ = 지중해 동부 섬나라인 키프로스는 영국의 지배를 받다 1960년 독립했다. 그러나 주민의 80%는 그리스계로 그리스정교를 믿는 반면 나머지는 터키계로 이슬람교를 믿어 민족 및 종교분쟁을 피할 수 없었다. 63년 마카리오스 3세 대통령이 소수파인 터키계에 대한 지나친 우대를 철폐하겠다며 개헌을 시도하자 양측 사이에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64년 유엔 평화유지군이 파견됐고 장벽이 세워졌다.

74년 양측 간에 전쟁이 발생했다. 터키계는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북키프로스터키공화국’의 독립을 주장했다. 180㎞ 길이에 달하는 철조망은 이로 인해 더욱 넘기 힘든 경계선이 됐다.

⑥파키스탄·이란 국경선 = 이란은 2007년부터 파키스탄과의 국경지대인 발루치스탄 주에 담을 쌓고 있다. 이란 측은 상품 밀거래와 마약 유통, 불법 이민 등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하지만 파키스탄으로부터 극단주의자들의 유입을 막는 것이 진짜 목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란이 시아파 이슬람 국가라면 파키스탄은 탈레반과 알카에다 등 수니파 조직의 활동 무대다.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란은 길이 700㎞, 높이 3m까지 담을 확장하려 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이란과 파키스탄 양쪽에 걸쳐 살고 있는 발루치족 공동체는 분열된 상태다.

⑦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판자촌 장벽’ = 최근 2016년 하계 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브라질 리우시는 올 초부터 도시의 언덕을 따라 빈민가 판자촌 둘레에 담을 치고 있다. 작업이 마무리되면 빈민가 13곳이 80㎝~3m 높이의 콘크리트 장벽에 둘러싸이게 된다.

행정 당국은 빈민가가 팽창해 세계에서 가장 큰 국립공원인 티쥬카를 잠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담을 쌓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을 부유층 거주 지역으로부터 분리시키기 위해 장벽을 만드는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⑧미국·멕시코 국경선 = 미국은 멕시코와 기타 중미 국가들로부터의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해 약 25억달러를 들여 3200㎞에 달하는 멕시코와의 국경선 약 3분의 1에 금속으로 된 장벽을 쌓았다.

첫 번째 장벽은 1991년에 세워졌으며 94년에는 감시가 강화되고 장벽도 확대됐다. 최근에는 센서, 카메라, 레이더, 감시탑 등의 첨단 장비를 갖춘 ‘가상의 장벽’도 도입되고 있다. 멕시코 인권위원회는 장벽 건설 후 5600명 이상이 미국과의 국경선을 넘으려다 사막 등지에서 목숨을 잃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⑨인도·파키스탄 국경선 = 힌두교 국가 인도와 이슬람교 국가 파키스탄 사이의 장벽은 세계에서 충돌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2900㎞의 국경선 절반가량에 담장과 철조망, 바리케이드가 설치돼 있으며 인도는 국경선 전체로 장벽을 확장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80년대 말 테러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인도가 펀자브, 라자스탄 지역에 장벽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특히 인도령 잠무카슈미르와 파키스탄령 아자드카슈미르 사이의 ‘통제선’에는 철조망을 따라 지뢰와 첨단 장비 등이 설치돼 있다.

⑩서사하라 ‘치욕의 장벽’ = 사하라 사막 서부지역은 ‘스페인령 사하라’라는 행정단위로 스페인의 지배를 받다가 75년 스페인·모로코·모리타니 간의 협정에 의해 76년 북부는 모로코에, 남부는 모리타니에 귀속됐다. 사라위족이 ‘폴리사리오 전선’을 조직해 독립운동을 벌이자 모리타니는 79년 영유권을 포기했지만 모로코는 80년대 들어 사막 한가운데에 장벽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후 폴리사리오를 중심으로 ‘서사하라’가 건국됐지만 70여개국만 독립국가로 인정하고 있다. 경계선은 87년에 완성됐으며 2700㎞에 걸쳐 있다. 철조망을 따라 대인지뢰가 매설돼 있어 ‘치욕의 장벽’으로 불린다.

⑪보츠와나·짐바브웨 ‘위생장벽’ = 아프리카 남부 내륙 보츠와나와 짐바브웨 사이의 장벽은 보츠와나가 쌓아올린 것이다. 보츠와나는 2003년 가축 전염병을 막는다는 목적을 들어 짐바브웨와의 국경선에 전기 울타리를 설치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짐바브웨 정부는 자국으로부터의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한 장벽으로 보고 있다. 살인적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짐바브웨와 달리 보츠와나는 아프리카의 부유국으로 꼽힌다. 500㎞에 걸쳐 2m 높이의 철조망이 설치돼 있지만 곳곳에 강이 흘러 가축들이 넘나들고 있는 등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다.

⑫한반도 휴전선·비무장지대 = 1950년 6월25일 발발한 한국전쟁의 휴전협정에 따라 53년 7월27일 설정된 군사분계선이다. 동서냉전이 낳은 부산물로 간주되고 있으며 남북한 사이의 잠재된 긴장 관계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