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과의 대화 (20) 썸네일형 리스트형 [고은과의 대화](4)양 세기의 달빛…나는 근세의 학식보다 고대의 신명을 더 믿는다네 고은 소설가·평론가 김형수 = 지난번에 호흡을 끊어서 죄송합니다. 한 시대의 지적 변화와 역동성의 현장을 제가 열쇠구멍 같은 틈으로 들여다보고 있었나 봅니다. 고은 = 우리는 지금 마주 앉았으나 이 자리는 실내가 아니네. 산야의 한 마루턱이 옳겠어. 그래서 ‘우리 차를 마실까, 술을 마실까’ 하는 오랜만의 회포에 맞는 분위기도 아니고, ‘북극의 북쪽에는 무엇이 있는가’라는 순진한 질의응답의 환경도 아닐세. 좀 더 두 세기에 걸친 신세타령을 할 필요가 있네. 김형수 = 두 세기를 주목하시는 이유는 지구의 어느 기슭에서 맞는 전환기적 감수성을 깨우기 위해서가 아닐까 합니다. 고은 = 내가 숨쉬는 시대, 즉 동시대라든가 당대라든가 하는 자신의 삶의 시간 안에서 ‘현재’라는 존재감의 즉각성은 참으로 매혹적이야... [고은과의 대화](3) 베를린서 보내온 벽돌 하나…난 울음을 터뜨렸어 소설가·평론가 김형수 = 지난번에는 한반도적 자아가 태동하는 과정을 술회하셨습니다. 고은 = 논리 정연한 외가닥 길은 삼거리나 오거리를 만나 어느 길로 들어설까 머뭇거리지. 귀뚜라미가 이따금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는 듯이 촉각을 곧추세우고 울음소리를 그치잫아. 좀 시야를 넓혀본다 해도 우리가 자신의 과거를 돌아다본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그 과거를 산 사람들이 새삼 현재로 재생해서 그들의 과거를 보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들을 대신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 과거 이후의 현재가 처음으로 과거를 내 것으로 삼아보는 행위이지. 나는 고대인도 근세인도 아니니 말이네. 김형수 = 고대인도 근세인도 아니라는 말씀은 선생님의 당대를 환기시키는 말씀인데, 맥락이 실뿌리처럼 많은 곳에 닿고 있어서 존재의 뒤쪽을 말씀하시는지 앞쪽.. [고은과의 대화](2) 나는 폐허의 자식… 50년대 전후가 내 고향이지 소설가·평론가 김형수 = 고은 정신의 원적지를 ‘전후문학’에 두어도 될까요? 시간적·공간적 범위가 광범한 분이시라 세대 구분 같은 잣대를 들이대기가 걱정되지만 말입니다. 고은 = 나 하나의 정신이 시대정신의 한계 밖으로 제멋대로 일탈하지 않을 경우나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면 1950년대 전후는 내 고향이기도 하지. 자주 나 자신을 폐허의 자식이라고 하는 까닭도 그 전후문학의 불안과 미완 속에 들어있으니까. 이 1950년대 전후세대가 바로 전통 단절을 들고 나왔지. 현대가 현대 이전의 봉건사회를 계승한 것이냐 단절된 것이냐를 두고 심심할 때면 옳다 그르다고 서로 제 주장으로 맞서는 경우와도 겹친 셈이었지. 전후세대가 전통 단절론을 외쳐댄 경우 실제로 이런 단절론의 쾌감을 벗어나면 그 단절론조차도 하나.. [고은과의 대화](1) 논쟁은 수컷, 대화는 암컷이니 달빛 같은 대화를 ※ 고은 시인의 삶과 문학, 철학을 대화 형식으로 풀어내는 ‘양 세기의 달빛’이 오늘부터 매주 토요일 연재됩니다.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김형수씨가 진행하는 고은과의 대화에서 우리 사회를 넘어 역사·세계·우주·미래로 펼쳐지는 고은 사상의 정수와 함께, 그가 아니면 불가능한 한국어의 참된 유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삽화는 임옥상 화백이 맡습니다. 소설가·평론가 김형수 = 바람이 분주해졌습니다. 여름내 무성하던 신록이 이제 귀로에 접어들었나 봅니다. 감춰진 나뭇가지들이 곧 종아리를 드러낼 테지요? 오랜 농경문명의 흔적인지 가을이 오면 우리의 몸은 불가피하게 결실에 대한 상념을 품게 됩니다. 선생님께서 언젠가 저무는 들길로 늙은 것과 어린 것이 돌아오듯이 돌아오라고 쓰셨던 기억이 나는데, 그런 탁월한 은유의 언..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