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평론가 김형수=어느 인터뷰에서 글 쓰는 시간을 ‘불침번’에 비유하신 기억이 납니다. 다들 잠들었을 때 깨어 있는 그런 단독자의 마음에 대해 듣고 싶은 사람이 많을 텐데요.
고은=그동안 이 ‘천일야화’의 첫머리는 에움길로 굽이쳐왔네. 내가 태어난 이래의 시대나 자네가 아직 태어나기 전의 시대를 아울러 말한다 해도 그 동시대성 안의 풍경이란 전근대적인 것과 근대적인 것의 별 도리 없는 합류로도 보일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 전통과 새로운 것들의 괴리도 여기저기 드러나는 것이었지.
김형수=저야 양 세기의 동시성을 깨닫는 과정이었습니다. 양서류가 웅덩이에서 느끼던 시간과 뭍에서 느끼는 시간이 얼마나 다른가를 생각하게 해주신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됩니다. 둘을 어떻게 하나의 감각에 통합할 것인가 하는 숙제까지 얻었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고은=그동안 이 ‘천일야화’의 첫머리는 에움길로 굽이쳐왔네. 내가 태어난 이래의 시대나 자네가 아직 태어나기 전의 시대를 아울러 말한다 해도 그 동시대성 안의 풍경이란 전근대적인 것과 근대적인 것의 별 도리 없는 합류로도 보일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 전통과 새로운 것들의 괴리도 여기저기 드러나는 것이었지.
김형수=저야 양 세기의 동시성을 깨닫는 과정이었습니다. 양서류가 웅덩이에서 느끼던 시간과 뭍에서 느끼는 시간이 얼마나 다른가를 생각하게 해주신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됩니다. 둘을 어떻게 하나의 감각에 통합할 것인가 하는 숙제까지 얻었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림|임옥상 화백
김형수=그러다가 또 다른 물줄기를 만나 시작도 끝도 없는 시간과 아무 경계도 없는 공간을 가진, 결코 미래가 그치지 않을 것 같은 유럽 정신의 한가운데로 섞여들게 되었으니 주체의식을 간수하기가 얼마나 어려웠을까요?
고은=아무리 시간이란 변이의 관념에 불과하다지만 해와 달 그리고 천공 무한 성신(星辰)의 운행에 의해서 낮과 밤이 반복될 때의 안정은 그 시간 속의 삶이 바라는 바 그대로 초대받은 시간의 보수성 아니던가. 인류가 열매 따먹고 뿌리를 캐먹던 시절 이래 씨를 뿌려서 그것을 수확한다는 농업의 시초에는 미래를 발견한 인류의 놀라운 시간 인식이 있었다네. 봄의 씨앗은 가을의 곡식이라는 미래를 확신하는 것 말이네. 고대 주역이 뭔가? 그건 농사꾼들이 보는 계절의 변화를 담은 경험 지혜의 도형임에 틀림없어. 주나라 역(易) 사상은 곧 변화의 사상이니까 말일세.
김형수=‘시간’이라는 구조물에 대해 새삼 골똘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은=아마도 처음에는 낮과 밤이라는, 밝음과 어둠이라는 두 개의 큼직한 시간 단위만이 천지의 엄숙한 주술 세계로 다가왔을 것이야. 여기에서 한 걸음 나아가 어제가 생기고, 어제의 결말인 오늘이 있고, 오늘 다음의 내일 모레가 생겨나는 과거 현재 미래에의 경험과 선험이 서로 맞닿아 있게 되었겠지. 거기서 하루의 낮과 밤에서 나아가 달의 모양이 눈썹에서 원 사이의 변모를 통해 한 달 두 달이 생겨났겠지. 그것이 간빙기에 진출한 추위가 조절되면서 온대지방의 네 계절을 알게 되었고, 그것의 합산이 1년이었을 것이네.
김형수=아아, 낮, 밤, 어제, 오늘, 1년…. 모두 길가의 돌멩이처럼 흔한 단어들이었는데, 갑자기 그것들이 태어나면서 내지르던 울음소리가 다시 들리는 기분입니다.
고은=지금 지구상에는 양력이라는 그레고리력(歷)으로 일관되고 있지 않나. 동양에서의 오랜 농경사회적 음력은 사실상 무형문화재 같은 향수로서의 잔재 아닌가. 그런데 이 지구를 완전 제압한 그레고리력법이란 서양 역법의 것이 아니라 실은 동양권인 바빌로니아의 점성학이 낳은 것이야.
김형수=문명도 햇볕처럼 옮겨 앉는가 봐요.
고은=고대 그리스 따위보다 몇 천 년 앞선 수메르의 역법에서는 정월 이월 삼월이 아니라 농업의 시간이 담겨 있지. ‘옥수수 수확하는 달’ ‘관개수로의 물을 여는 달’ 운운이지. 중국에서 발달한 우리네 입춘, 입하, 입추, 입동 사이의 씨 뿌리는 때, 이슬 내리는 때 따위가 끼어들지 않는가.
김형수=농경의 지력, 사고, 정신활동이 그런 언어적 도구들로 일상과 사회, 문화생활을 조정했네요.
고은=물론 동양이라고 이런 농사꾼의 손가락 산법의 시간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지. 동양이야말로 시간의 극소와 무한을 너무나 신묘하게 터득하고 ‘시간의 무’를 일찍부터 깨치고 남았다네. 불교의 겁(劫)은 뭔가? 또 우리가 흔히 형용사 구실로 쓰는 ‘홀연히’라는 그 홀연도 실로 미세한 시간 단위라네. 수유보다는 좀 긴 편이랄까, 순식간보다 더 긴 편이랄까. ‘홀연’ ‘수유’ ‘순식간’보다 더 짧은 극소가 찰나라 하는 모양이야.
김형수=무엇을 ‘명명’한다는 것은 참 오묘합니다. 좀 벗어납니다만, 일 년 중 가장 고약한 날씨에 제가 태어났습니다. 만삭의 어머니께서 눈발이 날리는 보리밭을 매다가 한 나절만 쉬게 해주면 평생 일을 시켜도 원망하지 않겠다고 할 만큼 힘들었대요. 그것을 ‘꽃샘추위’라 부르는 순간 구원이 찾아옵니다. 일 년 중 가장 기다려지는 날이 되잖습니까?
고은=‘철’이라는 자연변화가 인간의 깨달음에 스며들지. 그런데 이 시간이란 깨달음은 깨달음이 곧 해탈이라면 여기서는 속박이네. 실제로 인간은 시간 속에 갇혀 버린 것이네. 1956년인가 내가 산중에서 처음 서울에 와서 불교 종단에서 신문도 창간하고 대변자 노릇을 할 때 내 은사 효봉께서 회중시계를 주셨는데 일제 세이코였어. 그 때는 시계를 가진 사람이 삼십 명 중 한 명도 못 되었어. 어린 시절 우리 집안 10촌 내의 친척들이 모여 사진을 찍었는데, 우리 고모 한 분은 정면으로 사진 찍지 않고 측면으로 서서 얼굴만 정면으로 향하고 있었지. 왜냐하면 팔뚝에 찬 손목시계가 사진 속에 나오게 하려고 소매를 조금 걷어 올린 상태였어. 그만큼 시계는 희귀 장식이었어. 내가 은사로부터 회중시계를 받은 것은 일종의 법통을 전한다는 은밀한 의미도 있었던 것 같아. 5조(祖) 홍인(弘忍)이 똑똑하고 귀족 출신인 제자들 몰래 절의 노예였던 6조 혜능(慧能)에게 한밤중의 법통을 주어 멀리 도망치게 한 것이 떠올랐어. 물론 이런 내 생각은 망상이었지만 효봉께서는 나에게 자신의 한 부분을 양도한다는 의미를 직감했어. 선학원 조실 방에서 단 둘만 있는 새벽이었어. “아나, 이거 네가 지니고 다녀라. 이제 나를 떠났다”라고 말하며 갑자기 그것을 나에게 주셨어. 딱 한 마디 더 보태시더군. “시간에 매이지 말라. 몇 시 몇 분이란 헛 것이다.” 그야말로 나는 과분하게도 시간을 깨닫는 순간이었어. 그러나 나는 근대의 시간 분절 속에서 한 번도 벗어남으로써 시간으로부터의 자재(自在)를 누려본 적이 얼마나 되나 하고 나 자신의 삶을 반추해 볼 때 나는 시간의 미아일 수밖에 없지.
김형수=추억담을 들려주시니 언어에서 피가 도는 것 같습니다. 근대라는 정복자가 고모님의 손목까지 진주했어요. 이제 하루가 스물네 토막으로 쪼개질 차례입니다.
고은=그런데 이런 시간에 역사감을 부여한다면 시대라든가 역사 속의 시대구분론 따위가 불가피한 것 아닌가. 1960년대 국학 분위기의 열기 속에서 시대구분론이 분분했던 것은 한국사의 통사적 안목을 넘어서 문학사의 근대성과 비근대성 따위를 정착시킬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했지. 근대문학의 기점을 통속적으로 갑오경장에 두느냐 아니면 저 근대의 단초인 실학에서의 문학행위라는 자발적 근대에 두느냐를 놓고 제법 진지했어. 술주정 싸움까지 번졌으니까.
김형수=주변부 역사에서 근대문학의 기점을 찾기란 참 어려운 일이 아닌가 합니다. 시적 토로에서도 위엄, 평온, 조화, 순리 같은 것들이 불안, 음울, 비애, 분열 같은 것들로 교체되는 경계가 그렇게 뚜렷하지 않으니까요.
고은=나는 근대의 한 시간 모서리에서 태어났으므로 근대인임이 분명하겠지만 내가 본 적이 없는 증조할아버지와 1950년대 전반까지의 내 성장기를 함께 존재했던 할아버지라는 조선 후기 내지 그리고 아버지라는 조선 말기의 그 비근대적 삶의 기초 환경을 내 발육의 장소로 삼았던 것은 부인할 수 없어. 나는 시간의 연좌제에 붙들려 있었지. 거기서부터 이미 양세기성은 시작되었는지 몰라. 늘 하나는 둘 이상의 보호색을 갖춘 생물의 복합단위였다네. 1은 1이 아닌 것 말이네. 이것은 내가 온전한 존재로 태어나지 않고 지극히 온전치 못한 상태, 미완의 상태로 다급하게 이 세상에 나온 인간 존재의 하나라는 것을 말하지. 라캉의 말대로라면 조산(早産)이지. 아니나 다를까 이 조산은 누군가의 외부구조 없이는 나올 수 없으므로 조산(助産)이 되겠네그려.
김형수=시간의 연좌제에 붙들려 있었다는 표현이 신선합니다. 한국의 시가 눈만 뜨면 서낭당 고개를 넘어야 했던 신파의 눈물 과잉 현상에 대해서 얼마나 혹독하셨습니까? 미지를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이 선생님을 광활하게 만든 게 아닌가 생각해 왔는데요.
고은=사실 난 어릴 때 팔삭둥이라는 조롱을 많이 받았어. 사실은 만삭동이인데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철저한 약골이었지. 아버지와 어머니가 마당에서 곡식을 널다가 방안에 둔 아이인 내가 하도 조용하므로 아버지는 문득 내가 죽은 것이 아닌가 하고 어머니더러 방 안에 들어가 보라고 했을 정도였어. 실제로 열 살 미만에서는 자주 병자였지. 그래서 귀신도 보여. 한밤중에 아버지가 낫을 꺼내다가 벽을 찍으며 내가 본 귀신을 쫓아내기도 하셨어.
김형수=그 귀신은 시에서도 자주 나타납니다. 가령 ‘죽은 개’를 읽을 때 유럽인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한데, 집 나간 개가 구들장에서 죽었는데 울 밑에 묻자 비오는 날 그곳의 나뭇잎들이 컹컹컹 푸르더라 하셨죠? 시각과 청각이 동사로 변하는 영물의 출현입니다.
고은=동물들은 태어나자마자 하나의 생명으로 정당한 자기 활동을 시작하지. 알 속에서 나온 새 새끼 좀 봐. 한두 번 비실거리다가 날개 쳐 날아오르지 않는가. 큰 짐승도 작은 짐승도 다 마찬가지지. 그런데 오직 인간만이 미완성으로 세상에 나와 부모 슬하에서 장기간 살다가 십대 후반에서 한 인간 실존으로 서게 되지 않는가. 유교에서 자(字)를 붙여주고 성인의 관(冠)을 씌워주는 것도 그때서야 불안한 완성품으로 인정한다는 뜻 아니겠는가. 인간이란 끝내 죽을 때나 완성되는지도 모르겠네.
김형수=개인적으로, 생명의 크기란 신체의 규모가 아니라 그 신체가 감당하는 세계의 규모에 따른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민물고기는 바다를 헤엄치지 못하고, 여름 새는 겨울 하늘을 날지 못하고, 이렇게 지상의 모든 생물이 자신의 칸막이 안에서 살건만 인간은 지구를 다 깔고 앉아야 하니.
고은=나는 1933년에 태어났네. 이 우연을 그대로 방치하면 우연에서 다른 무엇으로 될 수 없지만 자연 안에 있으나 자연 밖에서 자신의 우연을 필연화할 때 나에게도 내가 태어난 시기라는 시대적 의미가 부여되지. 그런데 말이지. 사람들의 자서전이란 역사행위는 마치 그가 태어난 시대의 모든 배경들이 본인을 위한 것이고, 아니면 본인이 그 배경 하나하나에 기꺼이 참여한 역사의 주역인 것처럼 호도하는 행태가 보이더군. 한 초개(草芥)에 불과한 삶도 그가 있었던 시대의 현란한 색채로 장식함으로써 불세출의 영웅호걸로 위장될 수 있다는 말일세.
김형수=근대적 사유의 형식이 그런 어리석음을 낳는 것 같습니다. 옛 사람들은 가난하고 미숙해도 파편화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풍요 속에서 성숙해 보여도 쪼가리들뿐이어요. 천재에게 ‘오류’의 권리를 인정해주는 것도 그런 소이가 아닐까 해요. 가난한 성자가 아니라 괴팍한 천재들의 업적을 쌓아서 번영하는 문명이니까요.
고은=그래서 나는 내가 태어나서 산 시대 안의 나를 반추할 때 이런 자기 과장이나 허세의 원인을 제공하는지의 여부에 예민하다네. 나야말로 한 버러지가 태어나듯이 한 티끌이 있게 되듯이 감히 이 세계의 한 단세포적 존재로 있게 된 것 아닌가. 다만 내 핏줄 속, 아니 아버지의 단 한 개 선택받은 그 정자가 어머니의 난자를 만나서 아버지 쪽의 조상 대대와 어머니 쪽의 무한 확대로 펼쳐지는 그 조상들의 파생 유전자들이 압축되고 압축된 나머지의 나로 회임됨으로써 나라는 예측 불가능한 생명체 한 개가 된 것 아닌가. 그럴진대 나의 그 무궁무진한, 처음도 끝도 없을, 아니 어디에도 중심을 둘 수 없는 그 하염없는 시간의 무한개념을 다 아우르는 생명들의 축도 아니겠는가. 거기에는 연속도 불연속도 그리고 돌연변이도 끼어들 여지가 많았겠네. 또 이런 나 하나의 시간적 확대와 함께 우주 공간의 총애를 입어 오늘의 나에 이르는 그 우주의 원소와 원소 그 중력과 동력의 기운들이 이 빈곤한 내 몸 안에 이어진 것을 생각해 보게. 그래서 천인합일이나 범야일여의 소리는 뜬구름이 아니라 내 신체 과학의 기본이란 말일세. 나는 진정코 우주와 우주 외계의 먼 핏줄임에 틀림없어. 내 조상은 남아프리카의 암컷 고생 인류의 그 이브라는 이름을 내세운 유골의 자손만이 아니란 말일세.
김형수=개체의 수명 바깥을 종교처럼 신에게로 떠넘겨버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몰라라 해버리지도 않는…. 무한에 가까운 과거와 무한에 가까운 미래의 경계를 잇는 길 같은 존재라 생각하고 계셨군요.
고은=그렇다 해서 내 생애를 역사 진행의 정통적 기억으로 삼을 의도는 전혀 없네. 나야말로 저 푸코의 반기억(反記憶)의 자유 속에서 여기저기 나타나다 말다가 하는 그 기억의 명멸 안에서 인간 정체성을 털어버리고 싶기까지 하네. 나는 남성 중심과 가부장 체제의 그 바보 같은 기억의 지속적 존엄성이 강제성을 가차 없이 저버리네. 기억은 기억의 구조를 거부할 때 진정한 자유로서의 기억이지. 이 기억이란 기억 이후의 상상에 이미 마음 가 있는 기억 생산인지 몰라. 생각해보세. 역사 속의 기억들이 얼마나 조작된 것들 투성이인가. 모든 객관은 주관의 이면 아닌가.
김형수=마르크스주의가 역사발전의 합법칙성을 갖듯, 또 변증법이 정반합이라는 구조를 갖듯, 모든 인식론은 틀 혹은 법칙 같은 구조물을 갖습니다. 모든 찰나를 그런 틀의 부속품으로 보지 않는 것이야말로 ‘시인’의 풍모가 아닌가 합니다. 사랑, 절망, 슬픔, 공포의 모습이 어찌 틀에 갇히겠습니까?
고은=나는 톨스토이처럼 네 살 때 기억이 불가능하네. 또한 나는 이문구가 나에 대해서 쓴 것처럼 5세 신동 아니네. 그것은 김시습이라는 기재(奇才)에나 해당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내 기억의 원천은 내 상상 속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었지. 그래서 내 50대 이후에야 나는 내 연대기의 선사(先史)로서의 전생 연보를 만들었다네. 그래서 기원전 언제부터 카스피해 흑해 언저리의 생물로부터 기원후의 언제 언제의 무엇 무엇으로 살다가 심심파적인지 무슨 숙제의 이유인지 모르게 1933년의 식민지 조선 반도의 한 비옥한 농토의 아이로 태어난 것이네. 본디 내 할아버지 때까지는 상당한 자작농이었는데 젊은 아버지대의 보증의 재앙을 만나 내가 태어났을 무렵에는 비옥한 농토의 빈민의 자식이었네. 아버지는 우정에 겨운 나머지 결의형제의 친지들이 많았네.
김형수=종으로, 횡으로 열린 세계를 보여주시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고은=내 현생은 전생의 온갖 변방의 삶 그대로 변방의 존재였으므로 전생과 현생은 별다른 진화 없는 상태였는지 모르지. 내 고향은 명승지가 아니라네. 범용의 풍경이라네. 박현채가 나를 두고 두렁 정기를 탔다고 한 것 재미있지.
김형수=두렁 정기라니 참 격조 높은 비유입니다. 급격한 산업화의 융단폭격 속에서도 전통사회의 공동체 양식이 해체되는 고통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른 분들의 문화적 피와 살이 단 네 글자에서 느껴지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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