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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과의 대화

[고은과의 대화](10) 다섯 살 때 집 대부분 불 타… 내 폐허의식은 그로부터 시작

소설가·평론가 김형수=랭보는 시인을 “길고 거대한 타락에 바탕을 둔 모든 감각을 통해 선지자가 되는 존재”라고 언명한 적이 있습니다. 그걸 인용해 선생님의 ‘파괴적 행보’가 얼마나 생산적인가를 평가하고자 했던 글이 저의 ‘오십년 동안의 사춘기’입니다. 혹시 그런 정신을 선생님의 시대가 낳은 것이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고은=굳이 나의 동시대를 말한다면 나는 지금의 나이기보다 나 이전의 나이고 싶네. 1만년 내지 몇 만년 동안 크로마뇽인으로 살았던 내 먼 인류로서의 조상이 씨족으로서의 내 조상 이전의 나일지도 모르지. 실제로 크로마뇽인의 초상과
현대인류로서의 내 초상의 차이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네. 지구 몇 10억년의 긴 시간 속에서 만년 단위란 상대적으로 촌음 아닌가.

김형수=말씀이 어렵습니다. 선생님은 마치
광대한 시간 속에 서 있는 소년 같아요. 어찌나 커다란 시간을 가지고 계신지…. 가령 우주 안의 어떤 자리를 이야기하려면 우주의 구조, 우주의 탄생과 소멸 같은 것을 알아야 하는데, 제 사고는 매우 전통적이고 질서정연한 ‘시간의 연속선상’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림 | 임옥상 화백


고은=나의 몽상은 유치하다네. 사정이 이런 바에야 우리에게 미덕으로서나 잔재로서나 아직도 우리 삶의 환경에 찐덕찐덕하게 눌어붙어 있는 전통이라는 습관의 가치를 생각해보세. 진짜배기 전통이란, 그 근원성으로 보자면 몇 천년의 역사시대에 걸쳐 다져온 그것이 아니라, 그에 앞선 저 우주와 자연의 운행에 적응해오던 선사적(先史的)인 무의식이 서려있는 그 잃어버린 세계가 아닐까 생각될 때가 있네. 전통이란 것도 전통 이전의 어미 없이 생겨날 수 없을 것 아닌가. 왜냐하면 그것은 어떤 원점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밑도 끝도 없는 진행으로서의 불완전 동사(動詞)가 아닐 수 없을 테니까 말일세. 그래서 전통이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하지 않겠나.

김형수=저번에 전생의 기억도 나중에 알아들었고, 지금도 중요한 의미를 감촉할 수는 있지만 체화할 수는 없습니다. 다시 신화적 사유로 돌아가야 하려나 봐요.

고은=지난날 누군가가 신화의 발견이 20세기 최대의 발견이라고 말한 것도 현재라는 것이 미래 쪽에서 과거를 자기조건으로 삼고 있음을 의미하지. 사실 신화란 것도 그것의 토대는 사실에 뿌리내린 것이어서 켄타우로스가 반인반마(半人半馬)의 형상인 사연은 그 신화가 태어나기 전의 상고시대 테살리아 말 사육자와 말을 굳이 구분하지 않은 데에 있기도 하지. 동양의 용이 사슴뿔에 귀신 눈깔에 소의 귀에 파충류의 몸에 맹수의 발을 가진 종합동물이고 그리스나 이집트의 스핑크스도 아리따운 인면(人面)에다 사자의 몸통 그리고 천사의 날개를 달고 있지 않나. 이런 것도 고대인의 상상력이 삶의 현실에서 이것저것 긁어모은 환경의 질료들로 구성한 우상들 아니겠나.

김형수=어떤 분이 ‘색채의 비밀’을 설파하면서 우리는 감을 감이라 하고 고추를 고추라 하지만 사실은 감이건 고추건 푸른 것은 푸른 것끼리 붉은 것은 붉은 것끼리 같다고 하는 말을 듣고,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를 열심히 들여다보던 기억이 납니다. 인간 하나하나가 만물의 척도라고 하지만 공통의 눈금을 사용할 수 없으면 공통의 길도 찾을 수 없을 거라 봅니다. 가령 꿀벌은 태양의 위치와 자외선을 이용해 길을 찾는다 하고, 비둘기는 몸속에 내비게이션 같은 게 있어서 보금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해요. 옛 사람들은 하늘을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고은=일단 이런 반영들이 상징에 대한 숭배로 자리 잡게 되면 거기에 당대의 권력의지와 함께 누누이 전통적 위업으로 굳어지지 말란 법이 없지. 융에 의하면 예수의 신성화도 그 이전의 세계 각지에 보편적으로 퍼져있는 영웅설화의 희생설, 재생설과 결부된다더군. 그럴진대 신화란 현실의 반영이고 현실은 신화창출 없이 존속될 수 없는 이야기의 속성을 낳고 있겠네. 아무튼 전통은 원시세계의 신비와 그 신비 속에 살아온 흔적 없이는 전통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 전통은 기존의 윤리범주만이 아니란 말이지.

김형수=자연발생적이지 않은 것은 전통이 아니라는 말씀이 무척 의미심장하게 들립니다. 오늘 또 하나의 잣대를 주시네요. 문제는 인류가 지금은 대지의 운동과 인간의 삶 사이에 형성되어 있던 긴밀한 결속감을 잃었다는 겁니다.

고은=그런데 나는 이런 유구한 전통의 자연발생이나 그 지속에 끼어있지 못하고 도리어 그것으로부터 이탈상태로 살아온 느낌이라네. 특히 1940년대 후반 엄습한 이데올로기의 생경한 극단상황은 21세기의 질병이라 할 각 종교나 기득권의 집단들이 자기이익을 확대하기 위한 근본주의에 빠진 그 교만한 지능에 견준다면 훨씬 투박한 것이었지. 흰 손, 예쁜 손은 반동분자의 손이고 자색 칠피 구두를 신은 청년을, 너 빨갱이라 빨갱이 색깔 구두를 신었지 하고 불심검문하는 시대가 나의 소년시절이었어. 그것이 전쟁과 함께 전선뿐 아니라 후방에서도 학살과 보복학살이 반복되는 상황이 된 것이지. 이런 판에 내 소년시대의 순정이란 갑자기 소실되고 말지. 그것의 현실이 1950년대 나의 고향인 폐허라네.

김형수=김기진의 ‘백수의 탄식’ 같은 이데올로기적 욕망조차 잿더미로 만들었던, 전후세대의 폐허 감정에 대해서 알 수 있을 같습니다.

고은=이 폐허란 과거는 없고 미래도 없는 백척간두의 지금 밖에 없는 곳이고 무엇의 끝이고 그 끝이 끝의 시작이라면 무엇의 시작이라는 영(零)의 지대이기도 했어. 이 ‘폐허에의 초대’는 사실 나에게는 원초적이기도 하다네. 그런데 이 폐허가 이전의 폐허에 닿아있는 것을 나에게 남다른 기억으로 삼고 있네. 내가 다섯 살 때였으니까. 내가 다섯 살 때라고 하는 것도 뒷날 누군가가 알려주어서 그렇다는 것이지만 그때 나는 우리집 몸채인 초가 네 칸짜리가 불타버리는 것을 목격했지.

김형수=생의 첫 기억이 ‘불탄 잔해’가 되는 겁니까?

고은=그렇다네. 제비 뽑은 게 그거였어. 그 기억은 아직까지 잘도 기억하고 있네. 아마 늦가을의 어느 날 밤이었을 것이야. 몸채 네 칸은 뒤란의 대밭 밑에 자리 잡았지. 부엌과 큰방, 가운데 방은 마루방이었지. 대청이라고도 하지. 그리고 갓방은 거기에 잇대어져 있었지. 그 갓방이 바로 내가 태어난 방이야. 큰방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거처였고 아침저녁 식구들의 밥상이 들어오는 방이기도 했지. 그리고 대청은 쌀독이나 허드레 농짝 따위가 있으며 여름에는 앞뒤의 문을 열어 바람이 통하는 곳이었지. 갓방은 이 집안의 장남인 아버지와 며느리인 어머니의 거처였어. 그런데 이 갓방 아궁이는 울을 쳐서 아늑한 간이부엌이 되고 땔감이 가득 쌓여있었어. 그런데 어머니가 밤늦게 군불을 때는 중에 갑작스러운 산내림 바람이 굴뚝을 타고 방고래를 통과해서 아궁이로 나오는 역류로 그 불땀이 아궁이 앞의 땔감에까지 붙어서 불길이 걷잡을 수 없게 되었어.

김형수=그럼 꽤 큰불이 난 게 아닙니까?

고은=어머니가 화상을 입지 않은 것만이 다행이었지. 우리 마을에서 불 때다가 아궁이로 역류하는 불에 얼굴을 다 태워서 소문난 미녀가 하루아침에 추녀로 된 중농가의 장녀가 논밭 한 뙈기에 얹혀 동네 머슴의 마누라가 되기도 한 적이 있어.

김형수=세상은 얼마나 크고 인간은 얼마나 미천한지요?

고은=어머니가 무사한 대신 우리집 네 칸은 불길에 싸여버리고 그 뒤의 대밭에까지 불길이 번졌지. 나는 고모의 등짝에 업혀서 그 어마어마한 불길을 다 보고 말았지. 고모는 엉엉 울고 나는 울 줄도 모른 채 내 다섯 살 동심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사태를 감당한 셈이지. 다음날 아침 집과 대숲은 시커먼 폐허가 되었어. 간밤 논물과 우물물을 떠오는 물동이로 불을 끄는 마을사람들의 광경과 함께 시꺼먼 잿더미에서 숟가락이나 놋그릇 따위를 찾아내는 광경이 지금도 기억 속에 박혀있네. 그래서 몸채와 따로 있는 별채의 단칸방과 부엌 외양간이 있는데 한동안 그 별채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두 고모가 함께 기역자 니은자로 자고 깨야 했지. 삼촌 두 분은 건넛마을의 딴 집에서 살고 있었지. 아버지가 뒷날 별채에 방 세 칸을 붙여지어서 그 별채에서 내 어린 시절의 삶이 이어졌지.

김형수=둥지조차 불타버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어린 새가 퍼덕거리기 시작했군요.

고은=그러므로 이 다섯 살의 사적 폐허 체험이 열일곱 살의 공적 폐허 체험과 겹침으로써 내 정신의 근원에 폐허가 들어차고 만 것이네.

김형수=살아 있는 모든 것은 언제나 규명되기 이전의 어둠처럼 깜깜하면서 또한 자명한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화재와 전쟁이 안겨준 잿더미가 정신적 원적지라니! 그 심연의 슬픔을 한번도 드러낸 적이 없잖습니까? 저는 김소월의 ‘옛 이야기’라는 시를 아주 좋아합니다. 임을 앎으로 해서 자신이 어떤 영원성의 일부였던 사실을 발견하게 되고, 임이 떠남으로 해서 영원할 것 같던 것이 영영 소멸되고 마는 그런 잿더미의 경험이 모든 인간에게 있으리라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됩니다.

고은=이런 폐허의식은 나에게 다른 근대의식에의 굴종이나 무조건적 맹신 따위가 없게 하는 내 강점이 되어준 바도 있다네. 이는 내가 근대적 문화장치로서의 학교교육으로부터 소외된 삶의 반동이기도 하겠지.

김형수=저는 선생님께서 어떤 교육체계에도 포섭되지 않고, 또한 어떤 유형의 가치지향성도 선험적으로 상속받지 않은 상태 그대로 곧장 세계 속으로 투신하여 정신적 향연을 펼쳐가는 광경에 늘 감탄하고 있습니다.

고은=그런 나머지 어린 시절 결핍된 책읽기에서 어쩌다 만난 이광수의 문학독본에서 본 바이칼 호수에의 그 선망이나 노자영(盧子泳)의 화려체의 난만한 감상과 낭만 분위기의 서구 분위기에 매혹되기도 했지. 나에게 유난한 이국취미의 한 시기가 있었던 것도 그런 교과서 이수과정이 없는 근대성 미비를 메우려는 행태였는지 몰라.

김형수=관광학에서는 독서가 여행을 대신한다고 가르칩니다. 시력의 기운을 안경이 대신 하듯이, 책은 인간의 신체가 미치지 못하는 장소에까지 영혼을 데려다주는 역할을 하니까요.

고은=하지만 끝내 이런 현상들이 하나하나 단명으로 끝나버리고 마는 것은 바로 내 폐허 체험이 만들어놓은 하나의 심연 때문인지 몰라. 나는 지금도 어떤 완벽한 건축물의 실내에 들어가더라도 문득 이 건축물의 실재가 그 어떤 부재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네. 그것은 어느 누구와의 만남도 그 누구를 엑스광선으로 투시하는 해골로 보는 내 악취미 버릇과도 한 통속이네. 내가 이따금 동료들에게 농담할 때도 자네 너무 저 미모에 홀딱 반하지 말게나. 저게 흙 아니고 뭔가라고 말하거나 저기에 뢴트겐 한번 쏴봐. 방사선 앞에서 그저 볼품없는 해골이고 갈비뼈고 엉덩이뼈일 뿐이야 하는 것도 농담 이상인지 몰라.

김형수=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재로 실재를 인식하듯 실재로 부재를 찾아내는, 그리하여 인간이라고 하는 성정 안에 과잉 적재된 ‘문명’이라 하는 답답한 것을 비워내는 정신을 말입니다. 이데올로기 이전, 규정된 틀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 버리는 기질이 그렇게 해서 생겼나 봅니다.

고은=요컨대 내 현실은 인류의 최후나 이 행성의 종말이라는 그 우주적 사건으로서의 폐허에서 결코 동떨어질 수 없어. 나는 이집트나 인도의 유적지, 그리고 그리스의 유적지를 좋아하는 까닭은 현대사회의 주류 풍속인 관광객의 호기심 밖에 있는지 몰라. 실제로 이집트 가면 그리스는 아무 것도 아니지. 그리스 갔다가 로마 가면 아무 것도 아니지. 나는 이런 관광객의 유치한 비교 따위 없이 현대 인간들의 관광코스에 이런 고대 유적지를 선호하는 것 자체가 인간의식이나 정서의 안쪽에 잠겨있는 마음의 폐허와 현실의 폐허가 만나는 일이라고 생각하네.

김형수=어떤 종류의 체계나 질서도 지우고 존재의 시원성과 대면하려고 하는 사유의 순결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고은=생각해보게. 인도의 인더스강 기슭의 그 놀라운 상고시대 도시의 자취나 나일강의 아부심벨이나 그리스의 어디에나 가면 거기 기둥 몇 개만 서있는 폐허 아닌가.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이란 것도, ‘세계의 배꼽’이라는 델피 신전이라는 것도 철저한 폐허란 말일세. 이런 폐허가 무어가 좋다고 그 모처럼의 한가를 거기에 바쳐왔는가를 미루어 살핀다면 거기에서 인류의 고향으로서의 폐허에의 귀의가 있지 않겠나.

김형수=지금 불쑥, 늘 새로운 것을 낳는 고귀한 ‘폐허’를 비닐종이처럼 썩지 않는 천한 ‘영원’이 망가뜨릴 수 있다는 영감이 밀려들고 있습니다.

고은=사실 고대가 고대 그대로 보존되었다면 어디에 중세가 있고 근대가 가능하겠는가. 단군은 죽어있어서 단군이지 지금 반만년 전의 단군왕검이 생존해 있다면 어찌 되겠는가. 이른바 인류의 오랜 사자(死者) 숭배나 장례와 애도에의 의식들은 폐허에의 제례가 아니겠나. 사실 1950년대의 전후 폐허는 식민지 시대부터 유지된 근대도시들의 이층집들과 전근대의 전통시설들을 싸잡아 파괴한 것 아닌가. 또한 식민지시대 벌목과 연료 채취에 의한 민둥산에다 전 국토의 전선화(戰線化)에 의한 초토작전으로 산야마저 자연의 폐허가 되고 말았네. 화가 이중섭이 일본의 아열대적 습기로 인한 녹색환경에 비해 전후 한반도의 벌거숭이산들을 보고 ‘나는 일본의 숲보다 한국의 민둥산이 더 좋아’라고 말한 것도 거기에는 패잔의 자기애가 깔려있는 듯하지.

김형수=온통 창조와 구축을 찬양하는, 그리고 밝은 내일을 이끌 가치관을 구하는 환경에서 그것의 무용성을, 또 ‘폐허의 진정성’을 뿜어내는 참담한 허무주의를 그리워하자니 조금 어색하긴 합니다. 그러나 역사는 길을 의심할 필요를 증명하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의 옛 폐허에는 새떼 같은 야생의 아포리즘이 가득 날고 있어요.

고은=이런 폐허와 초토라는 외부는 그것으로만 있지 않고 인간의 내면에도 폐허를 만들어 놓았어. 내 허무는 서구의 근대 니힐리즘도 고대동방의 무 내지 무위사상도 아닌 살아남은 자의 본능으로서의 그것, 하나의 무의식으로서의 그것이었어.

김형수=당대의 지성이 삶을 열망할 때 죽음을 꿈꾸고, 희망에 도취될 때 회의를 찬미했던 선생님의 치열한 ‘파괴적 행보’를 다른 말로 ‘영(零)의 탈환’이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마치 자연의 보호자 자격이라도 갖는 듯한 환경적 계몽사상들과 구별되는 정신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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