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은과의 대화

[고은과의 대화](7) 이제 관념으로서의 자아는 사망한 것 아니겠나

소설가·평론가 김형수 = ‘나’는 무엇인가 하는 것은 서양의 근대를 통해 가장 끈질기게 추구된 질문의 하나입니다. 선생님도 그것을 놓치지 않고 추적한 사실이 이번에 수없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시·공간적으로 서양의 범위를 크게 넘어 고대 인도까지 이른 것을 보여줍니다. 서양도 나서 자라고 소멸하는 세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저는 왜 놓치는지 몰라요.

고은 = 서양이란 고대에는 그냥 풀밭이고 숲이었지. 북구 신화의 주신 오딘은 숲속의 맹수를 닮았지. 고대의 서양에 중동의 고대가 걸어가고, 이집트의 고대와 바다와 산악으로 소통되는 인도의 고대가 건너가서 각 지역마다 정착, 변형되어 간 것이 서양문화 아닌가. 그러니까 라틴 문화란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겠지.

김형수 = 예전에는 하나의 산야(山野)였는데 말입니다. 서양의 옛 유골에서, 훈족의 아틸라가 로마를 흔들던 시대에 그들을 닮고 싶어서 두상을 변형시키려고 했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지금의 성형수술보다 훨씬 치명적인 신체변형을 시도한 셈입니다.

그림 임옥상 화백

고은 = 사실 인간의 자기장식화는 동물의 모방이기도 하지. 이런 현상을 좀 비켜서서 말해보세. 우리가 한 사내아이를 당차게 기르기 위해서 한반도 역내로 치면 그 아이를 태어난 곳에서만 자라나게 하는 안이한 성장을 보장하지 않고 이 지방 저 지방으로 몇 년씩 옮겨 다니며 그곳의 낯선 곳에 적응시키거나 단련시킴으로써 삶의 공간에서 면역의 기능을 단련시키는 방법도 왜 없겠는가. 식물들을 이식할 때 조금씩 근거리의 이식에 적응시켜가며 거기서 죽는 것이야 죽을 수밖에 없으나 살아남은 의지로 원거리의 이식이 가능하게 하지 않나. 서양문화의 고대적 전개는 바로 이 같은 동양의 연원으로부터 다져진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동양이 있다 그 말일세.

김형수 = 그러면 ‘나’의 시대 다음에는 어떤 시대가 올까요? 자의식의 범람으로 야기되는 개인과 개인의 충돌, 개인과 사회의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지금처럼 국가나 법이 균형을 잡고자 하는 곡예가 언제까지고 계속되지는 않을 텐데요.

고은 = 전통적인 자아사상에 대한 강력한 부정이 서구의 사상적 변방에서 나온 것이 놀라워. 바로 18세기 스코틀랜드의 보잘것 없는 장사꾼이 장사를 접고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사상의 우상이 되고 말지. 그것도 28세라는 애송이로 말이야. 데이비드 흄 바로 그 사람 말이야. 그가 자아의 실체를 규명하기로 작정하고 나서 온갖 생각을 굴리고 온갖 골몰에 실패를 거듭하다가 드디어 자아는 결코 실체가 아니라는 것, 자아는 상상의 산물이라는 것, 나라는 것도 모든 감각의 통합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설파했어. 이것은 고대 인도의 자아에 대한 석가모니의 무아와 별 차이 없는 사건이기도 해. 2000년 이상의 자아논리로서의 ‘나’라는 철옹성이 단박에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지. 자아가 무아라는 선언이 유럽 벽지에서 외쳐진 것이지. 항상 진리는 변방에서 태어나는 것 아닌가.

김형수 = 진리가 변방에서 태어난다는 말씀은 진리가 길에서 태어난다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도시가 대지를 낳는 게 아니라 대지 위의 길들이 모여 도시를 이루는 것이니, 그 역시 정신사적 운동들을 은유하는 측면이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고은 = 석가의 나라 카필라바스투는 대국 틈에 끼어있는 조그마한, 있으나마나한 성읍국가였어. 그것도 원시공동체 유습 그대로의 추장체제와 다를 바 없었지. 예수의 고향 나자렛은 그야말로 핍박받고 소외된 천한 두메였고 공자는 아예 어린 세습 무당의 사생아 아니던가. 아무튼 저 북해 파도소리를 듣고 자란 흄의 천재적 투시력이 자아의 허상을 본 것이지. 이에 질세라 저 중앙유럽 오지라 할 체코 헝가리 언저리에서 태어난 마흐가 나오지. 오늘날 속도의 척도로 쓰이는 용어 ‘마하’가 바로 그 마흐야. 마하1, 마하2 하는 그것 말이야. 아인슈타인도 무척이나 사숙(私淑)했지. 청년 레닌도 마흐의 이론에 사로잡혔지. 그가 데카르트 이원론에 맹공을 퍼부은 사실은 데카르트의 위대성 이후의 가공할 만한 새로운 자리의 개막을 도맡은 셈이지. 자아와 세계의 이원(二元)을 일원으로 만들어 버렸지. 여기서는 전통적인 자아는 더 이상 독립될 수 없었어. 세계의 원소와 인간의 감각은 동일한 것이 되고 말았지. 비로소 우주를 만난 것이지.

김형수 = 선생님의 언어는 가끔 철학적 개념이나 범주의 표면을 소리 없이 스쳐가는 안개처럼 옷자락을 붙들기가 어렵습니다.

고은 = 이제 관념으로서의 자아는 사망한 것 아니겠는가. 내가 달리는 쾌감은 내가 아니라 감각 그 자체라는 그 섬뜩함이라니. 반야심경의 색즉시공이나 오온개공(五蘊皆空) 바로 그거야. 실로 간담이 얼어붙었지. 본디 인도의 ‘나’ 아트만은 ‘호흡’을 뜻하지. 우리말의 목숨이 모가지의 숨을 뜻하듯이 말이네. 바로 이 숨이 붙어있다 떨어지면 죽음 아닌가. 너무나 오래 존엄스러웠던, 그리고 해묵은 불치병 같은 이원론의 보수 세력으로부터 비난과 규탄의 과녁이 된 것도 당연했지. 진실 또는 진리는 늘 불온하게 오는 것 아니겠어?

김형수 = 아, ‘목숨’이 그런 뜻이었습니까? 지금 말씀하시는 흄이 경험론자라고 외웠던 적은 있지만, 그가 놓였던 세계, 시·공간적 배경에 대한 실감은 없으니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고은 = 우리가 나라는 것에 장황한 설왕설래를 하는 것은 그간 우리에게 자아상의 충족이 없었던 것에 대한 반동인지 몰라. 우리 근대라는 것의 외피를 벗겨보면 거기에 나라는 자화상이 자리 잡지 못한 혐의가 깊은 게 사실이야.

김형수 = 사회적 비극에 대한 인식력이 떨어지는 것도 그 때문일까요? 아직도 김수영의 시가 더 많이 사랑 받아야 될 것 같습니다. 한국의 지식인들은 김수영이 출현한 이후에 반세기 동안이나 자의식에 집착하면서 이 문제와 씨름해 왔는데.

고은 = 이런 근대 자아로서의 떳떳하지 않은 상태의 지적 굴절 밖에서 현대의 자아 탐구가 실로 다양하게 파고들었던 것에도 둔감한 나날을 살아왔어.

김형수 = 근대적 자아를 얻으려는 치열성의 결여가 ‘자아의 범람’을 극복하는 일도 어렵게 만들었다고 보시는 거지요?

고은 = 그렇기도 하겠네. 현대심리학도 ‘나’라는 것을 정의하는 일이 불가능해진 것을 자인했지. 일정한 기간 안에서는 아예 ‘나’라는 주체를 삭제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네. 그런 나머지 나(I)라는 주어보다 자기(self)라는 것을 구차하게 내걸기도 하는 모양이야. ‘자기’라는 인간의 의지나 정서에 의해서 의미가 주어지는 것이겠지. 저 스스로를 인지하고 제 멋에 겨워 스스로 발령내는 꼴이지. 그런데 이런 심리학 저켠에서 뇌과학 쪽은 단호하더군. “천만에! ‘나’는 없다!” “나라는 건 환상이다!” 이런 쓰라린 농담도 남겨져 있지. 19세기의 한 해부학자가 자아를 철학의 오랜 중심문제로 삼아온 것에 대해 일격을 가하는 농담이야. 수천구의 시체를 내 손으로 해부했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영혼을 발견할 수 없다고 말이야. 나는 생각한다는 ‘생각의 나’ 즉 궁극의 나는 그런 곳에서 존립될 수 없지. 이에 앞선 경험을 넘어선 ‘선험으로서의 나’로 자아철학의 완충지대를 만든 일도 있기는 했으나 이제 자아의 절대왕조는 가버린 왕조가 되기에 이르렀어.

김형수 = 자아의 절대왕조라는 표현에서 불쑥 떠오르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자아에 조금만 상처나 고통이 가해져도 그것이 영원한 중요성이 있는 것처럼 현미경을 대고 검토한다. 예술가는 자신의 고독·주관·개인주의를 거의 신성시한다. 그래서 우리는 마침내 거대한 하나의 펜 속에 모여 다른 사람의 말에는 귀 기울이지도 않고, 우리가 서로를 질식시켜 죽이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도 못한 채 우리의 고독에 대해 푸념하고 있다.” 영화감독 잉그마르 베르히만이 했던 말입니다.

고은 = 나는 가끔 우리말 ‘나’라는 1인칭은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것이 궁금해서 잠을 못 이룬 적이 있어. 날이 새면 누구한테 전화를 걸어 물어보아야 하는가 하고 국어학자나 어느 박식한 분을 손꼽아 보다가 말았지. 국어사전의 ‘나’도 있으나마나 한 풀이야. 그런 나머지 장승욱이라는 분의 ‘우리말 도사리’를 펴보다가 ‘나’는 ‘나이’라는 시간 속의 자아를 짐작케 하는 풀이가 있더군. ‘나’를 확인시키는 것은 ‘너’가 아니겠는가. 가령 부버의 ‘나와 너’라는 관계적 존재로 하여금 자아와 타아의 일치를 꿈꾸는 데서 새삼 나라는 것의 해명불능이 드러나기도 하겠네. 우리말로서의 ‘몸 나’는 육신으로서의 자아이고 그 위에 ‘얼 나’라는 정신으로서의 자아를 구별하는 편의주의 낱말도 있기는 있어. ‘니’에 점을 어느 쪽에 찍느냐에 따라 나는 나이고 너는 너인 것도 절묘한 자타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한글의 힘인지 몰라.

김형수 = 다시 눈보라 속에 서는 느낌입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영감이 날아오긴 하는데, 제 상념이 머무는 곳이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곳과 같은 장소인지도 모르겠고요.

고은 = 한자의 아(我)와 오(吾)가 있지. 둘 다 나를 뜻하지. 이 밖에도 1920년대 이광수를 싫어했던 작가 중에 염상섭 못지않게 김동인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걸핏하면 나를 여(余)라 했지. 좀 오만한 자칭이었지. 그런데 아(我)는 대타(對他)로서의 상대적인 자아라 한다네. 적군에 대해 아군이지. 그러니까 오(吾)는 기미년 독립선언서에서의 오등(吾等) 운운은 나의 집합명사인 셈이지. 그냥 우리이지. 이 오(吾)는 타자 없는 무대립의 나, 좀 더 깊은 뜻을 부여하자면 궁극적 자아가 되겠지만. 그렇다면 최남선은 그 선언문 속의 1인칭이 적극적인 자기수호로서의 자아이기보다 그저 무저항적 자아를 내세운 셈이야. 자아 사상이 그것의 본질을 밝혀내면 밝혀낼수록 실로 그저 일상의 나, 익명의 나 그리고 평면적인 차원의 신체로 사는 나를 초월하는 일은 결코 논리화되기 어려워지는 일 아니겠는가. 나라는 게 무엇이냐 할 때의 자아의식은 내 몸의 내부에 있지. 이게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의 경우이겠지.

김형수 = 그러한 자아는 어떻게 변화하고 소멸하는지.

고은 = 흄이나 마흐 아니 2500년 전의 석가나 고대 선사(禪師)들의 방망이가 아닌 한 여느 사람들의 삶속에서 나는 확실한 주체의 역할을 하지 않는가. 누가 내 발을 밟으면 나는 그 누구한테 눈 흘기는 나로 되는 것 아닌가. 저 금강경의 아상(我相)이란 참으로 벗어나기 어려운 욕망체계 속에 푹 잠긴 자아가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생활상의 나는 사상으로서의 자아보다 훨씬 편안해지는 기본 욕망에다 제 자리를 틀고 있지. 신채호가 역사를 아와 비아와의 투쟁이라고 격렬하게 말한 그 근대민족의식으로서의 정치적 자아 역시 현실로서의 나의 욕구 아니겠는가.

김형수 = 대자적 자아를 말씀하시는 거죠? 저번에 사르트르를 언급했던 이유가, 내부가 가득 찬 것은 죽어 있는 존재이고, 계속해서 비워내는 존재가 살아 있는 존재라는 말 때문인데, 선생님은 그렇게 지속적으로 내부를 비워 간, 그리하여 끝없이 새로운 하늘을 바라보는 선생님만의 시적 화자를 가지신 것 같아요.

고은 = 이런 자아가 상실될 때의 절망이 한말 이후의 우리 사회 아니던가. 그것은 총공격을 앞둔 운명 전야에 친상(親喪)을 당하자마자 의병장직을 던지고 고향으로 가버린 이인영이나 또 한말 의병전선의 한 정신을 과시한 최익현 역시 궁극적 자아로서의 국권은 나 자신의 것이 아니라 저 명나라 조정 사대주의에 종속된 명분이었어. 어머니에 대한 시묘살이로 돌아간 이인영의 자아도 사대주의의 명나라 충효관에서 조금도 떠나본 적 없는 사람이었지. 아니 마지막 의병지도자 유인석도 압록강 건너로 망명해서 통탄한 것은 청나라 발상지인 오랑캐 땅에 발 디딘 것이야. 그곳이 단군지역이라던가 고구려 발해 지역인 것보다 청나라 오랑캐 땅인 것이 더 굴욕적이었던 것이야. 그만큼 민족문제의 차원과는 먼 사대 차원의 대의(大義)에 몸을 둔 것이지. 이런 곳에서 근대 공화제로서의 상해임시정부에 이르러서야 자아로서의 근대인간의 회포가 생겨난 것이지. 아니, 이회영 일가의 헌신적인 애국애족으로서의 자아가 끝내 확 트인 아나키즘의 자아에 도달한 일은 실로 놀라운 발전이지. 그 일가는 마당 깊은 노론 가문 아닌가. 그런데서 이 같은 근대적 자아의 쇄신이 있게 된 것 말이네.

김형수 = 그러나 다른 성격의 자아도 있다고 봅니다. 1890년대 후반에 전봉준의 농민혁명이 실패한 후에 회령에서 유학을 하던 네 가문이 두만강을 건넙니다. 국경 너머 북간도로 이주하는데, 그들이 신학문을 접하고, 또 근대의 발걸음이 빨라지는 대륙의 한 모서리에서 근대적 자아를 발견했어요. 곧 신식 학교를 만들어 문익환, 윤동주들이 태어나는 거죠. 그 때의 경험이 문익환에게 민중의 생활공동체라고 하는 ‘하느님의 것’에 속해 있는 자아를 부여합니다. 위정자들이 체제의 논리로 그것을 파괴하는 것에 반발했던 페르소나가 재야인사 문익환의 외침이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문익환의 아버지의 것이자 할아버지의 것이기도 했습니다.

고은 = 이런 근대적 자아의 여러 모습이 이제 왕조의 백성에 불과했던, 인(人)이 아니라 민(民)에 불과했던 사람들이 근대 인민의 얼굴을 하게 되었다 그 말일세. 사실 이는 서구의 근대 인간으로서의 자아가 신의 굴레를 벗어난 것을 의미하며 그 같은 근대의 수용을 체화하는 과정이 우리 근대가 아니겠는가. 바로 이 근대에 오랫동안 명명되지 못한 ‘나’의 발견이 실현된 것도 자아의 내적 가능성과 오랜 봉건의 와해를 통한 외적 충격이 맞닥뜨린 것이지.

김형수 = 데카르트, 흄, 마하, 아인슈타인, 인도, 불교, 식민지 시기의 의병장들 그리고 역사의 질곡 속에서 ‘자아’들이 숨 가쁘게 움직이고 있는데, 이것들을 관통하는 핵심어 ‘자아’가 너무 커서 자꾸 학습할 과제만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고은 = 근대란 자아의 시대라고 말할 때 그것은 산업의 시대다 무엇의 시대다라고 말할 때보다 더 정신적임에 틀림없지. 그런데 그런 근대의 자아는 자아상실을 통해서 절망적으로 형성되었지. 식민지 시대의 그 피눈물겨운 자아의 표현들이 국내외에서 갖은 시련을 무릅쓰게 되지 않았는가.

김형수 = <1950년대>라는 책에서 한강 폭파 직전의 피란민 대열 속에서 유명 문인들이 조금이라도 빨리 달아나려고, 교과서가 부여한 문학적 명성을 새치기에 사용하는 장면을 보면서 선생님께서 ‘일개 민간인에 불과했다’고 일갈합니다. 마치 그때처럼 격렬한 1980년대를 20대로 살았던 저는 그런 치욕적인 자리에 놓이지 않기 위해서, 존엄한 자아를 지키고 비겁과 싸우느라 마음의 고초를 얼마나 심하게 겪었는지 모릅니다.

고은 = 역사란 어느 시대나 영광의 역사와 치욕의 역사를 진행하는 인간의 생명현상이지만 영광으로서의 나와 굴욕으로서의 나의 차이는 주인과 노예의 차이 아닌가. 나는 이 점에서 21세기 초민족주의라 할까 탈민족주의가 나에게 베푸는 총애가 있다 하더라도 옳다 좋구나 하고 그것을 큰 입을 벌려 삼키지 않는다네.

김형수 = 그런 놀라운 균형감은 어디에서 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모더니티와 리얼리티를 동시에 충족하는 정신 말입니다.

고은 = 언젠가 제대로 얘기를 할 때가 있겠지만 민족주의는 고대에도 중세에도 없는 것, 근대가 만든 임시변통 같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태어난 땅의 제도들이 굳어온 바, 내 조상 몇백 대의 삶의 터전이었던 나의 민족의 토양에서의 나는 비세계적일수록 나다운 나란 말일세. 그야말로 타자에 에워싸인 방어적이며 확대욕망을 가진 아(我)가 아니겠는가. 나는 나를 지킴으로써 나일세. 지난 세기의 우리 중요 명제가 반외세였던 것이야말로 자아에의 열망 아닌가. 그것이 없을 때는 그것을 만들고 그것을 잃었을 때는 그것을 되찾아야 하는 열망 말일세.

김형수 = 몇 해 전 ‘민족문학작가회의’를 ‘한국작가회의’로 변경할 때의 풍경이 떠오릅니다. 저는 민주화운동을 해오던 세력이 자기정화의 능력을 보여야 할 때라고 생각하여 깃발을 내리고 내용을 얻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통일이 될 때까지 민족문학의 깃발을 내리지 않겠다’고 하시던 뜻을 새겨볼 여가가 없었습니다. 오늘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고은과의 대화 바로가기 ]
ⓒ 경향신문 & 경향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