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발틱해운지수’라는 게 있다. 석탄, 철광석, 곡물을 비롯하여 설탕, 철강제품, 비료, 목재, 시멘트 등 산적(散積) 화물을 운반하는 부정기 외항선의 운임 동향에 관해 런던의 해운관계기관에서 매일 발표하는 수치이다. 이 수치는 세계경제가 몇 달 혹은 몇 년 뒤 어떻게 될지 미리 알려주는 경기 선행 지수가 될 수 있다. 화물선 운임 결정 요인은 기본적으로 세계 전체의 산업활동 상황에 달려있다. 석탄, 철광석, 곡물 등은 오늘날 거의 모든 산업을 뒷받침하는 기본 원료이다. 당연히 산업이 활발하면 원료를 운반하는 선박의 운임이 높아지고, 저조하면 선박의 운임이 낮아진다.
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갖는 ‘발틱해운지수’가 지금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 1985년에 지수 1000으로 시작하여 2008년 5월에 12000이라는 최고치를 기록한 이래, 몇 달 뒤 월스트리트 금융파산 상황에서 660으로 뚝 떨어졌다가 얼마 후 약간의 회복세를 보여주는 듯했지만, 다시 하락하여 마침내 최근에는 2008년 말 수준으로 추락하고 있다. 이 추세는 본질적으로 현재 세계 전체가 직면하고 있는 금융위기, 나아가 전반적 경제위기에 직결된 사태라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현재의 세계 자본주의 위기는 그동안 경제성장을 뒷받침해온 핵심요인들이 사라져 가고 있는 데에 주된 원인이 있음이 확실하다. 즉, 석유를 비롯한 값싼 자원과 값싼 식량, 값싼 노동력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특히 석유라는 ‘마법의 물질’은 결정적이다. 지난 반세기 이상 세계의 경제성장은 기본적으로 값싼 석유 덕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석유는 에너지 이외에 산업사회의 존속에 불가결한 온갖 재료와 원료의 원천이다. 그 때문에 고갈돼 가는 석유 확보를 둘러싸고 산업국가간에 갈수록 피나는 경쟁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석유가 재생불가능한 자원인 이상, 석유의 대량소비에 의존하는 산업구조를 탈각하지 않고 석유확보 경쟁에만 매달린다면 설령 일시적인 성공이 있다 하더라도 결국은 공멸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식량위기도 심히 위협적인 문제이다. 금융투기꾼에 의한 국제식량가격 조작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계의 농토가 급격히 축소되거나 사막화되고 있다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이다. 지난 몇십년간 화학비료와 농약의 대량 투입으로 엄청난 곡물증산이 가능해졌으나 동시에 토양침식과 토질악화라는 심각한 후유증이 나타났다. 게다가 식량생산에 이용되어야 할 양질의 광대한 땅이 공장식 축산 사료와 생물연료를 위해서 허비되고 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산업사회의 종말이 시작됐음을 알려주는 뚜렷한 징후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들에게는 대량생산·대량소비·대량폐기를 확대·반복해 온 산업경제 방식과는 질적으로 다른 방식, 즉 지역 중심의 자립적·자급적 생활방식을 조금이라도 많이 확보하려는 시도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것은 농사의 중요성에 대한 재인식이다. 인류사회에 미래가 있다면, 싫든 좋든 그것은 새로운 농경시대일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이 사회에는 지금 온갖 공약과 계획, 제안이 난무하고 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이러한 숱한 계획 속에 경제성장이 멈춘 상황을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전무하다는 사실이다. 무슨 근거인지 모르지만, 계속적인 성장을 암묵적인 전제로 하는 한, 그 모든 제안은 공허한 것으로 끝날 공산이 매우 높다.
지금은 재벌이 동네의 골목시장에까지 들어와서 서민들의 생계수단을 위협하는 시대이다. 재벌의 탐욕을 비난하기 전에 이게 무엇을 뜻하는 현상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재벌도 이제는 벼랑 끝에 몰려있다는 명백한 증좌인 것이다. 그러나 노골적인 약육강식의 길로 가서는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 유일한 활로는 공생의 원리를 익히고, 공생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삶의 양식인 ‘순환경제’를 실천하는 길밖에 없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오늘날 사멸 직전에 있는 농업, 농촌, 농민을 살리는 일이다.
최근 일본정부는 농사를 시작하는 젊은이들에게 연간 150만엔을 7년간 지급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주로 노인들밖에 남아있지 않은 농촌 상황이 이대로 간다면 농사를 계승할 세대가 단절될 것이라는 위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이렇듯 중대한 결단이 정부 차원에서 나오는 것을 보면 일본은 그래도 합리적인 사고력이 아직 남아있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정치판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최소한의 위기의식조차 없다. 국내의 농사를 보호하는 것보다 ‘해외농지’를 확보하거나 “농지가 아니라 곡물딜러를 확보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 나라 권력 엘리트들의 뿌리깊은 사고방식이다.
농사를 살리는 것은 당면 위기에 대한 지혜로운 대응일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난제 중의 난제, 즉 수도권 과밀현상과 지역균형발전 문제의 해결에도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중앙의 주요기관 지방이전이라는 방식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지역경제가 우선 살아나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역경제의 핵심이 농사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다. 농사를 살리면 지역의 토착 소상공업이 살아나고, 지역사회와 마을문화가 활기를 찾고, 거기에 뿌리를 박고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연히 늘어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복잡한 방법이 필요 없다. 일본처럼 농사를 지으려는 젊은이들에게 월급을 주는 것도 좋지만, 나는 농사일을 하는 사람 모두에게 기본소득으로 매월 정액을 일률적으로 평생 지급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는다. 이른바 농촌대책용 국가예산을 진정으로 농민을 위해서 쓴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재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정치적 의지이다. 물론 시대착오적인 ‘자유무역협정’ 따위를 밀어붙이는 정치상황에서 이것은 불가능하다. 합리적인 사고, 양질의 정치가 통하는 사회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갖는 ‘발틱해운지수’가 지금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 1985년에 지수 1000으로 시작하여 2008년 5월에 12000이라는 최고치를 기록한 이래, 몇 달 뒤 월스트리트 금융파산 상황에서 660으로 뚝 떨어졌다가 얼마 후 약간의 회복세를 보여주는 듯했지만, 다시 하락하여 마침내 최근에는 2008년 말 수준으로 추락하고 있다. 이 추세는 본질적으로 현재 세계 전체가 직면하고 있는 금융위기, 나아가 전반적 경제위기에 직결된 사태라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지금 자본주의 종말 운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떻든 세계경제의 전망이 어두운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현재 그리스가 겪는 비참한 상황은 예외적인 게 아니라 곧 세계 전역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의 세계 자본주의 위기는 그동안 경제성장을 뒷받침해온 핵심요인들이 사라져 가고 있는 데에 주된 원인이 있음이 확실하다. 즉, 석유를 비롯한 값싼 자원과 값싼 식량, 값싼 노동력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특히 석유라는 ‘마법의 물질’은 결정적이다. 지난 반세기 이상 세계의 경제성장은 기본적으로 값싼 석유 덕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석유는 에너지 이외에 산업사회의 존속에 불가결한 온갖 재료와 원료의 원천이다. 그 때문에 고갈돼 가는 석유 확보를 둘러싸고 산업국가간에 갈수록 피나는 경쟁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석유가 재생불가능한 자원인 이상, 석유의 대량소비에 의존하는 산업구조를 탈각하지 않고 석유확보 경쟁에만 매달린다면 설령 일시적인 성공이 있다 하더라도 결국은 공멸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식량위기도 심히 위협적인 문제이다. 금융투기꾼에 의한 국제식량가격 조작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계의 농토가 급격히 축소되거나 사막화되고 있다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이다. 지난 몇십년간 화학비료와 농약의 대량 투입으로 엄청난 곡물증산이 가능해졌으나 동시에 토양침식과 토질악화라는 심각한 후유증이 나타났다. 게다가 식량생산에 이용되어야 할 양질의 광대한 땅이 공장식 축산 사료와 생물연료를 위해서 허비되고 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산업사회의 종말이 시작됐음을 알려주는 뚜렷한 징후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들에게는 대량생산·대량소비·대량폐기를 확대·반복해 온 산업경제 방식과는 질적으로 다른 방식, 즉 지역 중심의 자립적·자급적 생활방식을 조금이라도 많이 확보하려는 시도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것은 농사의 중요성에 대한 재인식이다. 인류사회에 미래가 있다면, 싫든 좋든 그것은 새로운 농경시대일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이 사회에는 지금 온갖 공약과 계획, 제안이 난무하고 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이러한 숱한 계획 속에 경제성장이 멈춘 상황을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전무하다는 사실이다. 무슨 근거인지 모르지만, 계속적인 성장을 암묵적인 전제로 하는 한, 그 모든 제안은 공허한 것으로 끝날 공산이 매우 높다.
지금은 재벌이 동네의 골목시장에까지 들어와서 서민들의 생계수단을 위협하는 시대이다. 재벌의 탐욕을 비난하기 전에 이게 무엇을 뜻하는 현상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재벌도 이제는 벼랑 끝에 몰려있다는 명백한 증좌인 것이다. 그러나 노골적인 약육강식의 길로 가서는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 유일한 활로는 공생의 원리를 익히고, 공생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삶의 양식인 ‘순환경제’를 실천하는 길밖에 없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오늘날 사멸 직전에 있는 농업, 농촌, 농민을 살리는 일이다.
최근 일본정부는 농사를 시작하는 젊은이들에게 연간 150만엔을 7년간 지급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주로 노인들밖에 남아있지 않은 농촌 상황이 이대로 간다면 농사를 계승할 세대가 단절될 것이라는 위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이렇듯 중대한 결단이 정부 차원에서 나오는 것을 보면 일본은 그래도 합리적인 사고력이 아직 남아있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정치판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최소한의 위기의식조차 없다. 국내의 농사를 보호하는 것보다 ‘해외농지’를 확보하거나 “농지가 아니라 곡물딜러를 확보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 나라 권력 엘리트들의 뿌리깊은 사고방식이다.
농사를 살리는 것은 당면 위기에 대한 지혜로운 대응일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난제 중의 난제, 즉 수도권 과밀현상과 지역균형발전 문제의 해결에도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중앙의 주요기관 지방이전이라는 방식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지역경제가 우선 살아나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역경제의 핵심이 농사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다. 농사를 살리면 지역의 토착 소상공업이 살아나고, 지역사회와 마을문화가 활기를 찾고, 거기에 뿌리를 박고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연히 늘어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복잡한 방법이 필요 없다. 일본처럼 농사를 지으려는 젊은이들에게 월급을 주는 것도 좋지만, 나는 농사일을 하는 사람 모두에게 기본소득으로 매월 정액을 일률적으로 평생 지급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는다. 이른바 농촌대책용 국가예산을 진정으로 농민을 위해서 쓴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재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정치적 의지이다. 물론 시대착오적인 ‘자유무역협정’ 따위를 밀어붙이는 정치상황에서 이것은 불가능하다. 합리적인 사고, 양질의 정치가 통하는 사회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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