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다는 것에 대하여

[정동 에세이]시베리아 바이칼이 말을 건넸다

박남준 | 시인 joon5419@hanmail.net

잠자는 땅, 시베리아에는 풍요로운 호수라는 이름을 가진 바다처럼 넓은 호수가 있다고 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가장 수심이 깊다는 호수, 그 신비로운 물빛은 쪽빛보다 더 푸르다고 했다. 바이칼에 언젠가는 꼭 한번 가고 싶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역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탔다. 4인 1실의 침대칸 열차를 타고 꼬박 3박4일을 달려가야 한다. 그것도 연착을 하지 않을 경우다. 바이칼로 들어가는 시베리아의 아름다운 도시 이르쿠츠크를 향해서 기차가 덜컹거렸다.

비좁은 열차 안은 낡은 침구류가 들썩일 때마다 풀썩거리며 먼지가 휘날렸다. 조금 당혹스러웠다. 객실 안의 창문을 열려고 했는데 안간힘을 써 봐도 한 뼘이 채 시원스레 열리지 않는다. 나무로 만들어진 창틀이 비바람에 비틀리고 오래되어서 그런가보다.

시베리아인들의 소박하고 단순한 삶지리산에 사는 너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산다고흰빛에 쌓인 자작나무 숲이 말을 건넸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통로 바로 앞에 있는 문은 아예 열리지 않는 문이었다. 그나마 옆쪽 창문이 조금 열려서 바람이 들어왔다. 불편하기는 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잠시 후 펼쳐질 시베리아의 초원과 이 열차가 향해 가는 바이칼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려 왔기 때문이다.

열차표를 확인한 승무원이 시트를 내민다. 하얀 면시트를 침대와 베개 등에 깔고 씌우고 나니 한결 괜찮다. 짐정리를 끝내고 문득 바라본 풍경, 물론 염려하기는 했다. 결국 지평선의 초원에 두 눈이 압류당한다.

분홍바늘꽃과 갈퀴덩굴과 솔나물과 진범과 투구꽃과 하늘말나리와 벌노랑이와 장구채와 모싯대꽃과 쥐손이풀과 쇠스랑개비와 뻐국채와 으아리와….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달린다. 끝없이 푸른 초원 위에는 흰빛과 분홍과 붉고 노란 야생화들의 한바탕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뗄 수 없었다. 언제 어떤 풍경이 순식간에 열차 밖으로 다가왔다가 멀어질지 모르는 일이었다.

잠이 들었다. 나는 꿈속에서도 열차를 타고 달리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났다. 간밤에 대취로 쓰러진 무색, 무취, 무미, 세 가지가 없다는 보드카 때문인가. 아무리 시베리아라고 해도 그렇지 눈이 왔을 턱은 없는데 창밖으로 희끗거리는 것들, 자작나무들의 숲이었다.

차이코프스키가 걸어가며 악상을 떠올렸을, 톨스토이가 사색에 잠겼을 자작나무의 숲, 흰옷의 행렬들이 이쪽과 저쪽 열차의 양쪽으로 끝없이 걸어 나와 손짓을 하고 있었다. 몽롱한 술기운 탓인가. 울컥거리며 밀려오는 것이 있었다. 눈이 또 뜨거워졌다.

이르쿠츠크로 가는 3박4일, 나는 지리산의 집에서도 잘 꾸지 않던 꿈을 계속해서 꾸었다. 눈만 감으면 자작나무 흰 숲이 어른거렸다. 기차가 자꾸만 연착을 한다. 시베리아 초원에서 어쩌다 만나는 작은 마을들, 다닥다닥 붙은 조그만 판잣집들과 빛바랜 나무 울타리 너머 아기자기한 감자밭, 옥수수 몇 포기, 정겨웠다. 어린 날 고향마을이 떠올랐다.

내일도스키, 모레도스키 소리치며 가는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하루나 이틀쯤 더 늦어졌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이르쿠츠크에 내렸다. 새벽 앙가라 강가를 거닐며 드디어 자작나무숲을 걸었다.

바이칼로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굿바이 바이 바이칼, 총과 칼을 내려놓아야만 이를 수 있다는 이르쿠츠크 바이칼 앞에 섰다. 저 푸른빛을 무어라 불러야 하나. 신비한 푸른빛 바이칼에 들어가 몸을 담갔다. 다리가 시렸다. 그리고 아팠다. 가슴까지 걸어 들어갔다. 바이칼에 몸을 담그면 10년이 젊어진다는 말 때문이 아니었다. 하늘과 산과 물빛이 다르지 않은 가깝고 먼 풍경을 바라보았다.

누구는 ‘시베리아 초원에 기계화 영농을 하면 좋을 텐데’라고 했다. 누구는 여기에 고속도로를 내면 우리나라에서보다 경비가 엄청나게 적게 들 것이라고 했다. 저 맑고 드넓은 바이칼의 물이 지척인데 왜 이렇게 물을 마음대로 쓸 수가 없냐고 했다. 사람들이 들어와서 개발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바이칼에서 가장 크다는 알혼 섬의, 50~6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방갈로촌 방에는 화장실이나 샤워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재래식 공동화장실과 쫄쫄거리며 나오는 공동 샤워실 두 개가 전부였다. 그나마 세면대와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도 집주인이 아침마다 길어와서 큰 통에 채워 넣어야 쓸 수 있는 물이었다.

아직 지구가 살 만한 것은 광활한 시베리아가 잠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본다. 물을 함부로 펑펑 쓰면 결국 그 물이 어디로 흘러가겠는가. 바이칼의 물빛이 아직 신비로운 푸른빛인 것은 거기 사는 이들이 바이칼을 소중하게 아끼고 있기 때문이다.

시베리아의 늙은 나무 집에 사는 이들의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얼핏 보았다. 누구는 게으르고 불결하며 가난한 사람들이라 하겠지만 지리산에 사는 너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산다고, 너무 많은 것을 소비하며 살고 있다고 흰빛에 쌓인 자작나무 숲이 말을 건넸다.

[ 정동 에세이 바로가기 ]
ⓒ 경향신문 & 경향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