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희 | 도보여행가·작가
ㆍ하늘이 땅으로 내려와 몸을 섞다
볼리비아라는 나라가 내게 처음 다가온 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별이 유난히도 밝은 오늘 이 시간이 가면 그대 떠난다는 말이…”, 이렇게 시작되는 노래 ‘약속’. 염소창법이라 불리던, 간드러지는 바이브레이션으로 노래를 부르던 임병수가 볼리비아 교포라고 했다. 철이 든 후 볼리비아를 다시 떠올리게 된 건 체 게바라 덕분이었다. 혁명을 꿈꾸던 그가 마지막으로 들어갔던 곳이 볼리비아의 밀림이었고, 7명의 동료와 함께 눈을 뜬 채 죽은 곳도 볼리비아였다. 그를 살해한 도시의 시장이 체 게바라의 자취를 따라가는 ‘체의 길’을 만들겠다는 발표를 했을 때 씁쓸해한 기억도 있다.
볼리비아는 남미에서 천연자원이 가장 풍부한 나라이면서 가장 가난한 나라다. 1825년 독립 이후 반복되는 군사 쿠데타로 정부가 200번 가까이 바뀌었고, 어느 해인가는 1만%의 물가인상률을 기록하기도 했으며, 어느 불운한 대통령은 6일 만에 하야하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케추아, 아이마라, 과라니 족 등 원주민 비율이 60%로 남미에서 가장 높은 나라다. 지형적으로는 6000m급의 설산, 초현실적인 풍경의 우유니 소금사막, 핑크 돌고래가 사는 아마존 밀림 등 지구에서 가장 건조하고, 가장 짜고, 가장 습도 높은 지역들을 골고루 품고 있다.
그런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스의 첫인상은 서글펐다. 무슨 한 나라의 수도가 이토록 무허가 판자촌처럼 지어질 수 있는지. 집들은 철골을 드러낸 채로 혹은 조악한 붉은 벽돌 그대로 외장작업을 마쳤다. 거리에는 쓰레기들이 널려 있고, 좁은 도로에는 낡은 차들이 무질서하게 엉켜 다닌다. 독한 매연으로 금세 목이 따끔거리고 얼굴을 닦으면 누렇게 먼지가 묻어난다. 무엇보다 해발 3660m로, 걷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오른다. 이 가난하고 높은 도시에서 가난한 사람일수록 더 높은 곳에 살게 된다. 4000m까지 동네가 만들어져 있으니. 내가 아는 어떤 이는 이 도시의 야경을 보고 이렇게 써놓았다. “어려운 이들의 눈빛은 밤에 더 슬프다.” 이 도시에서 나는 밤이 오기도 전에 슬퍼졌다. 한눈에 드러나는 곤궁한 살림살이 때문일까. 속삭이듯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키 작은 사람들 때문일까. 마음이 자꾸만 가라앉았다. 함부로 가난이 불행이라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가난해도 더 행복할 수 있다고 쉽게 말해서도 안 될 것 같았다. 저녁 무렵 택시를 타고 찾아간 전망대 칼리칼리. 그곳은 라파스의 슬픈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6402m의 설산 일라마니(원주민어로 ‘큰형’이라는 뜻) 너머로 해가 지고 난 후 산동네에 하나둘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홍 불빛들이 너울너울 살아났다. 저 허술한 집에도 어깨를 마주대고 앉아 저녁을 먹는 가족들이 있겠지. 누군가는 집 앞 가파른 골목에 주저앉아 사랑 때문에 울기도 하겠지. 문득 신경림 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야경을 보고 돌아오는 길, 택시에서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슬퍼서 아름답고, 아름다워서 슬픈 곳이었다.
볼리비아라는 나라가 내게 처음 다가온 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별이 유난히도 밝은 오늘 이 시간이 가면 그대 떠난다는 말이…”, 이렇게 시작되는 노래 ‘약속’. 염소창법이라 불리던, 간드러지는 바이브레이션으로 노래를 부르던 임병수가 볼리비아 교포라고 했다. 철이 든 후 볼리비아를 다시 떠올리게 된 건 체 게바라 덕분이었다. 혁명을 꿈꾸던 그가 마지막으로 들어갔던 곳이 볼리비아의 밀림이었고, 7명의 동료와 함께 눈을 뜬 채 죽은 곳도 볼리비아였다. 그를 살해한 도시의 시장이 체 게바라의 자취를 따라가는 ‘체의 길’을 만들겠다는 발표를 했을 때 씁쓸해한 기억도 있다.
볼리비아는 남미에서 천연자원이 가장 풍부한 나라이면서 가장 가난한 나라다. 1825년 독립 이후 반복되는 군사 쿠데타로 정부가 200번 가까이 바뀌었고, 어느 해인가는 1만%의 물가인상률을 기록하기도 했으며, 어느 불운한 대통령은 6일 만에 하야하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케추아, 아이마라, 과라니 족 등 원주민 비율이 60%로 남미에서 가장 높은 나라다. 지형적으로는 6000m급의 설산, 초현실적인 풍경의 우유니 소금사막, 핑크 돌고래가 사는 아마존 밀림 등 지구에서 가장 건조하고, 가장 짜고, 가장 습도 높은 지역들을 골고루 품고 있다.
그런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스의 첫인상은 서글펐다. 무슨 한 나라의 수도가 이토록 무허가 판자촌처럼 지어질 수 있는지. 집들은 철골을 드러낸 채로 혹은 조악한 붉은 벽돌 그대로 외장작업을 마쳤다. 거리에는 쓰레기들이 널려 있고, 좁은 도로에는 낡은 차들이 무질서하게 엉켜 다닌다. 독한 매연으로 금세 목이 따끔거리고 얼굴을 닦으면 누렇게 먼지가 묻어난다. 무엇보다 해발 3660m로, 걷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오른다. 이 가난하고 높은 도시에서 가난한 사람일수록 더 높은 곳에 살게 된다. 4000m까지 동네가 만들어져 있으니. 내가 아는 어떤 이는 이 도시의 야경을 보고 이렇게 써놓았다. “어려운 이들의 눈빛은 밤에 더 슬프다.” 이 도시에서 나는 밤이 오기도 전에 슬퍼졌다. 한눈에 드러나는 곤궁한 살림살이 때문일까. 속삭이듯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키 작은 사람들 때문일까. 마음이 자꾸만 가라앉았다. 함부로 가난이 불행이라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가난해도 더 행복할 수 있다고 쉽게 말해서도 안 될 것 같았다. 저녁 무렵 택시를 타고 찾아간 전망대 칼리칼리. 그곳은 라파스의 슬픈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6402m의 설산 일라마니(원주민어로 ‘큰형’이라는 뜻) 너머로 해가 지고 난 후 산동네에 하나둘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홍 불빛들이 너울너울 살아났다. 저 허술한 집에도 어깨를 마주대고 앉아 저녁을 먹는 가족들이 있겠지. 누군가는 집 앞 가파른 골목에 주저앉아 사랑 때문에 울기도 하겠지. 문득 신경림 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야경을 보고 돌아오는 길, 택시에서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슬퍼서 아름답고, 아름다워서 슬픈 곳이었다.
하늘과 땅의 경계를 지운 우유니의 소금사막.
수크레에서 필, 베키와 만나 다음날 바로 우유니로 향한다. 많은 여행자가 남미 최고의 비경으로 꼽는 우유니의 소금사막으로 가는 길. 눈이 쏟아진다. 오후 6시에 우유니에 도착할 예정이던 버스가 5시 조금 넘어 고갯마루에 섰다. 눈 때문에 고개를 넘을 수가 없단다.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날은 추워만 가는데…. 설마 버스 안에서 밤을 지새우게 되는 건 아니겠지.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눈 내리는 겨울밤을 버스에서 지새우게 됐으니. 그나마 다행인 건 혼자가 아니라는 점. 우리는 유일한 식량인 종이 맛의 비스킷으로 주린 배를 달랜다. 긴 밤이 지나고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던 아침이 왔다. 세상은 하얗게 덮여 있다. 창문은 꽁꽁 얼었고, 천장에선 수증기가 녹아 비처럼 떨어진다. 어쨌든 밤은 지나갔고, 찬란한 태양이 떴으니 곧 우유니로 갈 수 있겠지라는 건 착각이었다. 길이 얼어 갈 수가 없단다. 결국 남자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가 삽을 들고 담을 무너뜨려 흙을 도로에 깐다. 30분 일해서 버스를 30m쯤 전진시키고, 다시 또 30분을 일하고. 불평하거나 항의하는 이 없이 그저 묵묵히 일한다. 이 상태로는 언제 우유니에 도착할지 모른다는 말에 우리는 여행사에 구조를 요청한다. 볼리비아 사람들이 눈을 치우는 동안 사륜구동차를 타고 빠져나가는 얄미운 외국인이 되고 만다.
여행사에 짐을 내려놓고 바로 2박3일의 우유니 투어를 시작한다. 가이드 겸 운전사 안드레스, 요리사 슐레마를 제외하고 우리 일행은 6명. 미국인 마시, 한국에서 온 대학생 성혜와 동혁(근 한 달 만에 만나는 한국인이라 어찌나 반갑던지!), 베키와 필 그리고 나. 콜차니 마을에서 소금 만드는 과정을 본 후 우유니 사막으로 들어간다.
소금사막에 쌓여 있는 소금의 결정체(사진 위)와 소금기둥들.
먼 옛날 바다였던 이곳이 호수가 되고, 그 호수가 말라 소금사막이 되었다는 곳. 하늘이 개면서 쌓아둔 소금기둥과 차량이 물에 비친다. 눈 때문에 ‘물고기의 섬’까지는 들어갈 수가 없단다. 소금호텔 앞의 소금으로 만든 테이블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온다.
다음날, 아침부터 또 눈이 내린다. 붉은 호수 라구나 콜로라도나 초록빛 호수 라고 베르데까지 갈 수 있을까. 몇 번이나 눈길에 바퀴가 끼어 길을 다지거나 차를 밀어야 했다. 무엇보다 마시의 신경질적인 반응이 더 문제다. 눈이 시야를 가리며 쏟아져 내릴 때부터 그녀의 패닉 상태가 시작됐다. “난 여기서 죽기 싫어. 돌아갈래”라며 소리를 지르는 그녀. “여기서 죽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 조금만 기다려 보자”라며 달래야 했다. 스페인어를 조금이나마 할 줄 아는 사람이 나뿐이어서 졸지에 가이드 안드레스와 일행들 사이에서 통역을 하는 처지가 됐다. 안드레스가 차를 돌리자는 말을 듣지 않아 몇 번의 승강이를 해야 했다. 도대체 안드레스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무허가 판자촌처럼 남루한 라파스의 밤풍경. 허름하고 슬픈 불빛들이 일렁이고 있다.
필과 베키는 그가 코카잎을 너무 많이 씹은 데서 나오는 ‘코카 자신감’이란다. 점심을 먹은 후 다른 길을 통해 라구나 콜로라도에 가보기로 하지만 결국 다시 고갯마루에서 차를 돌리고 만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본 풍경만큼은 최고였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흰 산, 하늘가에 걸린 솜털 같은 구름들, 풀을 뜯는 라마들. 우리가 보는 풍경을 다른 이들도 봤을까. 이토록 비현실적인 아름다움 속에 그들도 서 있었을까. 그들도 우리처럼 어쩔 줄 모른 채 서 있었을까. 어딘가 이 모든 풍경을 만든 이가 있다면 이런 우리를 보며 웃고 있을까.
마을로 돌아와 쉬고 있자니 마시가 오늘 최고의 순간을 이야기해 보잔다. 나는 돌아오는 길에 10여마리의 야생 사슴떼를 본 것을 꼽았고, 동혁은 아침에 했던 눈싸움, 성혜와 필은 오늘 오후에 본 설산의 풍경, 베키는 차를 돌렸을 때 본 파란 하늘을 최고의 순간으로 꼽는다. 다시 마시가 묻는다. “그럼 최악의 순간은?” “가자는 사람과 안 가겠다는 사람 사이에서 어쩔 줄 몰랐던 순간”이라고 내가 답하니 베키가 끼어든다. “그보다 더 나쁜 순간 있었던 사람 있어?” 모두들 웃으며 동의한다.
마지막 날 우리는 태양이 빛나는 화창한 날씨 속에 ‘잃어버린 도시’라 이름 붙은 거대한 바위들의 성채를 지나 까마득한 발밑으로 구불구불한 냇물이 흘러가는 계곡을 넘어 간다. 마침내 2박3일의 파란만장했던 투어가 끝났다. 원래 예정되어 있던 코스는 거의 방문하지 못한 채. 하지만 우리에게는 고난을 함께 헤쳐온 이들에게 주어지는 단단한 우정이 선물로 남았다. 따스한 추억과 함께.
다음날 모두들 떠난 후 나는 혼자 1일 투어를 신청해 소금사막의 ‘물고기의 섬’까지 들어간다. 소금사막에 비가 내리면 하늘이 땅으로 내려와 몸을 섞는다더니, 사위가 온통 하늘로 가득 찼다. 내가 선 자리의 경계도 희미해져 꿈과 현실마저 아련해진다. 나보다 먼저 이곳에 왔던 이들은 무엇을 보고 떠났을까? 소리 내면 달아나 버릴까, 움직이면 사라져 버릴까. 그저 숨 죽인 채 바라만 본다. 이곳에 베키와 필, 성혜와 동혁, 마시가 없다는 게 안타까울 뿐. 결국 여행에서 우리를 흔드는 건 사람이다. 길에서 만나 사랑하고 길에서 헤어지는 사람들. 오늘은 울어야 한다 해도 결국은 깨닫게 되리라. 그 눈물로 조금 더 아름다운 사람이 되었음을.
※필자의 미투데이(http://me2day.net/skywaywalker, 닉네임 ‘Ontheroad’)에서 실시간으로 남미 여행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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