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희 | 도보여행가·작가
ㆍ‘마초들의 계곡’ 위로 달이 떠오른 순간 그대로 멈추고 싶었다
거리는 어두웠다. 가로등도 없는 골목에는 인적마저 끊겨 스산함이 감돌았다. 찬바람에 날리는 쓰레기들만이 골목 사이를 가로지르는 새벽 3시의 도시. 두려움에 심장이 조여들었다. 낯선 도시의 새벽 거리에 혼자 서 있다니. 누군가 내게 “여행할 때 가장 싫은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할 수 있다. “어두워진 후에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일”이라고. 겁 많고 소심한 나는 밤 시간을 피하도록 늘 신경을 썼는데 오늘은 제대로 걸린 셈이다. 바짝 긴장한 채 버스에서 내렸다.
여기는 볼리비아의 남쪽 도시 투피자. 과연 이 시간에 택시를 잡을 수 있을지, 그 택시는 안전하기나 할지, 숙소는 문이 열려있을지, 온갖 걱정으로 머릿속이 복잡하다. 남미에서는 대낮에 택시에서 몽땅 털리고 맨몸으로 내렸다는 이야기가 종종 들려오는 터였다. 그러니 새벽 3시의 택시에 두려움이 밀려들 수밖에. 길모퉁이에서 잡아탄 택시의 기사가 다행히도 숙소까지 무사히 태워다주는 인류애를 발휘해 주셨다. 숙소의 벨을 세 번쯤 누르니 졸린 눈을 비비며 사람이 나왔다. 4시간쯤 눈을 붙이고 일어나 아침을 먹고 바로 마을 구경에 나선다.
내가 투피자로 간다고 했을 때 포토시의 숙소 매니저는 이렇게 말했다. “투피자는 여기보다 훨씬 따뜻해. 고도가 엄청 낮거든.” “얼마나 되는데?” “2850미터. 3000미터도 안 되는 동네야.” 그 순간, 브라질에서 온 청년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루카스, 브라질 어디에서 왔어?” “상파울루에서 가까운 도시야.” “상파울루에서 얼마나 걸리는데?” “버스로 8시간.” 생존 조건에서 나온 이 아득한 개념 차이는 도저히 극복하기 어려운 게 아닐까.
거리는 어두웠다. 가로등도 없는 골목에는 인적마저 끊겨 스산함이 감돌았다. 찬바람에 날리는 쓰레기들만이 골목 사이를 가로지르는 새벽 3시의 도시. 두려움에 심장이 조여들었다. 낯선 도시의 새벽 거리에 혼자 서 있다니. 누군가 내게 “여행할 때 가장 싫은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할 수 있다. “어두워진 후에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일”이라고. 겁 많고 소심한 나는 밤 시간을 피하도록 늘 신경을 썼는데 오늘은 제대로 걸린 셈이다. 바짝 긴장한 채 버스에서 내렸다.
여기는 볼리비아의 남쪽 도시 투피자. 과연 이 시간에 택시를 잡을 수 있을지, 그 택시는 안전하기나 할지, 숙소는 문이 열려있을지, 온갖 걱정으로 머릿속이 복잡하다. 남미에서는 대낮에 택시에서 몽땅 털리고 맨몸으로 내렸다는 이야기가 종종 들려오는 터였다. 그러니 새벽 3시의 택시에 두려움이 밀려들 수밖에. 길모퉁이에서 잡아탄 택시의 기사가 다행히도 숙소까지 무사히 태워다주는 인류애를 발휘해 주셨다. 숙소의 벨을 세 번쯤 누르니 졸린 눈을 비비며 사람이 나왔다. 4시간쯤 눈을 붙이고 일어나 아침을 먹고 바로 마을 구경에 나선다.
내가 투피자로 간다고 했을 때 포토시의 숙소 매니저는 이렇게 말했다. “투피자는 여기보다 훨씬 따뜻해. 고도가 엄청 낮거든.” “얼마나 되는데?” “2850미터. 3000미터도 안 되는 동네야.” 그 순간, 브라질에서 온 청년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루카스, 브라질 어디에서 왔어?” “상파울루에서 가까운 도시야.” “상파울루에서 얼마나 걸리는데?” “버스로 8시간.” 생존 조건에서 나온 이 아득한 개념 차이는 도저히 극복하기 어려운 게 아닐까.
투피자는 기기묘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가득한 계곡으로 둘러싸여 있다..
고도 ‘3000미터도 안 되는’ 도시 투피자는 사방이 붉은 흙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은, 납, 구리, 주석, 아연 등 광물이 풍부한 광산 도시로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의 모델이 된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가 광부들의 임금을 털어 도주했던 곳. 사살되기 직전의 마지막 며칠을 이곳에서 보낸 그들의 도주 루트를 따라가는 트레킹 코스도 개발되어 있다.
자연환경이 빼어난 투피자의 대표적인 관광 상품은 ‘삼종경기’. 모험을 즐기는 자연주의자들을 위해 특별히 고안된 프로그램으로 트레킹, 승마, 자전거타기가 결합되었다. 참여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가격이 떨어지기에 신청부터 해놓고 기다려보기로 한다. 막간을 이용해 인터넷을 쓰려고 무선 인터넷이 되는 카페를 찾아다닌다. 아무리 돌아다녀도 ‘Wi-Fi’ 글자는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물으니 이 동네에는 무선 인터넷이 되는 카페가 없단다. 궁한 마음에 인터넷카페를 찾아가보지만 한글은 읽기만 될 뿐 쓰기가 되지 않는다. 내일도 이 마을에서 자야하는데 인터넷이 안된다니. 갑자기 고립감이 밀려든다.
어쩌다 나는 이렇게 여행 중에도 인터넷에 의존하는 인간이 되어버린 걸까. 스마트폰, 미투데이, 트위터, 카카오톡 같은 우리를 이어주는 문명의 도구들. 예전의 여행자들은 꿈도 꾸지 못했던 것들이다. 나는 이곳 볼리비아에 머물고 있으면서 이 세계와 소통하기보다는 내가 두고 온 지구 반대편의 세계를 기웃거린다.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거나 몰입하지 못하는 인간의 불안정함. 그 불안정이 이런 도구들을 만들어낸 걸까? 혹은 이 도구들로 인해 우리의 서성임과 기웃거림이 가중되는 걸까.
숙소에서도 스마트폰을 들고 침대에 누워 혼자 노는 아이들이 종종 보인다. 몇 년 전만 해도 볼 수 없던, 여행의 신풍속도다. 나 역시 매일 미투데이에 글을 올리느라 무선 인터넷이 되는 곳을 찾아다니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이 마을에 무선 인터넷이 되는 곳은 딱 한 곳뿐이라고 해 결국 숙소를 옮기고 만다. 하루치 방세를 두 번 내는 셈이지만 다해봐야 7000원. 남미에서 물가가 가장 싼 볼리비아라 다행이다.
오늘은 ‘삼종경기’를 하는 날. 햇살이 따갑다. 우리 일행은 영국인, 아일랜드인, 프랑스인 등 모두 아홉 명. 사륜구동차를 타고 계곡을 찾아가 자연이 만든 기이한 풍경들을 즐기는 일로 시작한다. 누군가 깎아 놓은 듯 홀로 우뚝 선 긴 바위 ‘라포롱가’, 남성의 성기 모양을 한 바위들이 가득한 ‘마초들의 계곡’, 좁고 깊은 협곡으로 들어가는 ‘악마의 문’ 등등. 짧은 트레킹을 즐긴 후 말로 갈아탄 우리들은 느긋하게 잉카의 계곡을 둘러본다.
카우보이 모자까지 갖추어 쓴 채로. 얌전히 잘 달리던 내 말 모라가 마지막 순간, 이유도 없이 커다란 가시나무로 돌진했다. “아악!” 내 가파른 비명 소리가 계곡 사이로 번져간다. 가이드가 달려오고 나서야 이 녀석이 진군을 멈춘다. 챙이 넓은 모자 덕분에 얼굴이 긁히는 건 피했지만, 소매가 다 찢어지고 팔에 긴 생채기가 났다. 찢긴 피부야 새로 돋으면 그만이지만 옷은 새로 사야하는데…. 살보다 옷이 더 걱정인 걸 보니 곤궁한 여행자 생활을 너무 오래 한 건가. 너덜너덜해진 옷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오늘의 마지막 프로그램은 지프를 타고 3750미터 높이의 고개까지 올라간 후 산악자전거로 가파른 비포장 길을 내려오는 일. 내리막길이라 가볍게 생각했는데, 자전거 타다가 팔 부러지는 줄 알았다. 내리막길이 워낙 경사가 심한 데다 자갈이 마구 튀어 올라 죽을힘을 다해 브레이크를 쥐어야 했다. 게다가 해가 떨어지고 나니 칼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왜 돈까지 내고 이 고생을 하고 있나 스스로가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붉은 산 위로 보름을 하루 앞둔 달이 떠오르는 순간, 그 달빛에 홀려 그대로 멈추고만 싶던 순간이기도 했다.
함께 삼종경기를 치른 피오나, 이델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갔다. 올 4월까지 노량진의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피오나는 비빔밥과 삼겹살을 좋아하는 아일랜드 처녀. 한국에서의 추억담을 들으며 즐거운 저녁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 지갑을 연 순간, 10만원이 넘는 돈이 사라진 걸 발견했다. 미국 달러와 아르헨티나 페소와 볼리비아 돈 등 골고루 조금씩 빼갔다. 어제 숙소에서 잃어버린 게 틀림없다. 지갑이 든 손가방을 그냥 올려놓고 다닌 건 어제뿐이니. 휴. 벌써 두 번째다. 버스에서 소매치기를 당하고, 다시 또 이런 일을 겪다니.
필수 체험 코스인 가우초(남미의 목동들) 흉내내기.
사실 볼리비아는 남미에서 도난이나 절도 사건이 가장 많은 나라로 꼽힌다. 가짜경찰이 가짜 경찰서로 데려가 제대로 털기로 악명 높은 나라이기도 하다. 이런 일로 이 나라에 대한 좋은 감정들이 희석되어서는 안 되는데…. 한 나라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여행하는 지역에 대한 편견만을 쌓게 되는 게 아닐까? 짧은 경험, 깊은 선입견. 결국 우리에게 남는 건 그것뿐인지도. 코끼리의 다리 한쪽을 더듬고선 코끼리를 다 봤다고 우기는 게 우리들이 아닐까. 서글픈 인상을 지우고 이곳에서 있었던 좋은 기억만을 지닌 채 떠나자고 다짐해본다.
볼리비아에서 아르헨티나로 국경을 넘는 날. 볼리비아 쪽 국경검사는 십여 분 만에 끝났는데 아르헨티나 쪽에서 한 시간이 넘도록 기다리고 있다. 볼리비아는 마약 카르텔로 악명 높던 나라라 깐깐하게 검사를 하기 때문이다. 외국인 여행자들의 가방은 형식적으로 열어볼 뿐인데 볼리비아 사람들의 짐은 철저하게 다 풀어헤친다. 몇 번에 걸쳐 속속들이 파헤쳐지는 짐들. 신산한 살림살이가 그대로 드러난다. 낡은 옷가지, 담요 몇 장, 아이들을 위한 볼품없는 장난감들이 책상 위로 쏟아진다. 가난해서 힘없는 나라의 국민들은 서럽다. 그들의 삶은 자신들의 나라에서뿐 아니라 국경을 넘어가서도 고단하고 힘겹기만 하니. 그들보다 좀 잘 사는 나라에서 온 나는 가방을 열어 보이는 시늉만으로 짐 검사를 마친 후 국경을 넘는다.
다시 아르헨티나 땅이다. 이곳에서 며칠을 보낸 후 페루로 넘어갈 예정이다. 이제 여행은 육개월째로 접어들고 있다. 여행자는 어디까지 한 나라를 들여다볼 수 있을까.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시간의 속도, 우리가 건너가는 공간의 거대함. 그 안에서 마주치는 제한된 범위의 사람들, 지극히 파편적인 경험들. 어쩌면 우리는 아무것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지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체게바라가 말했듯, 내가 만난 세계는 동전의 앞면이 열 번 나올 동안 오로지 한 번밖에 나오지 않은 뒷면만을 본 것일 수 있고, 또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내가 살던 세상 바깥의 다른 세계를 들여다보고 싶은 내 욕망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나 자신을, 내 삶을, 내 운명을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 나를 둘러싼 세계를 들여다보려는 이 몸짓을 멈추지도 않을 것이다. 단지, 내가 이 세계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추하고 남루한 얼굴까지 다 들여다볼 수 있기를 바랄 뿐. 그들이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는 것들까지 보게 된다 해도 이 세계에 대한 내 애정이 식지 않기를 바랄 뿐. 다시 새로운 나라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페루의 쿠스코, 그곳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나를 울고, 웃게 만들까.
※필자의 미투데이(http://me2day.net/skywaywalker, 닉네임 ‘Ontheroad’)에서 실시간으로 남미 여행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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