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희 | 도보여행가·작가
ㆍ탱고 안보고 떠난다면, 그건 범죄다
모든 사랑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어떤 장소에 대해 우리가 품게 되는 사랑 역시. 내 영혼은 거친 들판에 더 어울린다고 믿어온 나였기에 이 도시와 사랑에 빠지게 될 줄은 정말이지 몰랐다. 이곳은 과거의 영광으로 살아가는 도시. 밤새 노래하고 춤추며 깨어있는 곳. 모든 방랑자를 품어주는 땅.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었던 ‘엄마 찾아 삼만리’를 기억하는지. 어린 소년 마르코가 돈을 벌기 위해 떠난 엄마를 찾아왔던 곳으로 한때 세계에서 가장 부유했던 도시. 세기의 불가사의라 불리는 경제위기로 온 나라가 파산한 후 아직 회복되지 못한 도시. ‘좋은 공기’라는 그 이름처럼 바람 들어 함부로 들뜨게 되는 도시. 이쯤에서 당신도 그 이름을 중얼거리고 있으리라. 부에노스아이레스.
이 도시의 약점부터 짚고 가자면, 이 도시의 운전자들이다. 전차 경기에 나선 듯 차를 모는 운전사로 인해 죽을 뻔했다가 부활한 사람이 바로 나. 이 도시에 입성한 지 나흘째 되던 날 오후,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버스에 치이고 말았으니. 사람들이 몰려들고, 버스 운전사가 겁먹은 얼굴로 다가오고, 누군가가 경찰과 구급차를 부르는 모습을 바닥에 쓰러진 채 지켜보던 나. 정신이 든 순간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죽더라도 한국에서 죽어야 하는데…’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이렌을 울리며 구급차가 도착했다. 이름을 말할 수 있는가, 몸을 움직일 수 있느냐. 드라마에서나 보던 질문이 이어지고, 곧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 의사의 진료를 받고, 엑스레이를 찍고, 결과가 나와 처방전을 받는 데까지 30분쯤 걸렸을까. 금 가거나 부러진 곳 하나 없어 당장 퇴원해도 된다는 진단. 버스에 부딪히고도 멀쩡한 몸이라니. 평소 부지런히 축적해둔 지방의 덕을 이렇게 보는구나. 그제야 정신이 들어 병원을 둘러보니 충격적일 만큼 열악하다.
낡고 지저분한 기구들이 복도와 진료실 가득 어지럽게 놓여 있다. 대통령이 진료받는 공공병원이라는데 이런 시설이라니. 그런데 의사들은 놀랄 만큼 다정하다. 병실 문을 직접 열고 닫으며 환자를 배웅하고, 가난한 환자에게 더 싼 약들을 일러주고, 환자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다 들어준다. 아르헨티나는 의료와 교육이 완전 무상인 나라다. 이 나라의 골칫거리가 페루나 볼리비아 같은 곳에서 무료 수술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라더니, 내가 온 몸으로 아르헨티나 의료시스템을 체험하게 될 줄이야.
모든 사랑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어떤 장소에 대해 우리가 품게 되는 사랑 역시. 내 영혼은 거친 들판에 더 어울린다고 믿어온 나였기에 이 도시와 사랑에 빠지게 될 줄은 정말이지 몰랐다. 이곳은 과거의 영광으로 살아가는 도시. 밤새 노래하고 춤추며 깨어있는 곳. 모든 방랑자를 품어주는 땅.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었던 ‘엄마 찾아 삼만리’를 기억하는지. 어린 소년 마르코가 돈을 벌기 위해 떠난 엄마를 찾아왔던 곳으로 한때 세계에서 가장 부유했던 도시. 세기의 불가사의라 불리는 경제위기로 온 나라가 파산한 후 아직 회복되지 못한 도시. ‘좋은 공기’라는 그 이름처럼 바람 들어 함부로 들뜨게 되는 도시. 이쯤에서 당신도 그 이름을 중얼거리고 있으리라. 부에노스아이레스.
이 도시의 약점부터 짚고 가자면, 이 도시의 운전자들이다. 전차 경기에 나선 듯 차를 모는 운전사로 인해 죽을 뻔했다가 부활한 사람이 바로 나. 이 도시에 입성한 지 나흘째 되던 날 오후,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버스에 치이고 말았으니. 사람들이 몰려들고, 버스 운전사가 겁먹은 얼굴로 다가오고, 누군가가 경찰과 구급차를 부르는 모습을 바닥에 쓰러진 채 지켜보던 나. 정신이 든 순간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죽더라도 한국에서 죽어야 하는데…’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이렌을 울리며 구급차가 도착했다. 이름을 말할 수 있는가, 몸을 움직일 수 있느냐. 드라마에서나 보던 질문이 이어지고, 곧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 의사의 진료를 받고, 엑스레이를 찍고, 결과가 나와 처방전을 받는 데까지 30분쯤 걸렸을까. 금 가거나 부러진 곳 하나 없어 당장 퇴원해도 된다는 진단. 버스에 부딪히고도 멀쩡한 몸이라니. 평소 부지런히 축적해둔 지방의 덕을 이렇게 보는구나. 그제야 정신이 들어 병원을 둘러보니 충격적일 만큼 열악하다.
낡고 지저분한 기구들이 복도와 진료실 가득 어지럽게 놓여 있다. 대통령이 진료받는 공공병원이라는데 이런 시설이라니. 그런데 의사들은 놀랄 만큼 다정하다. 병실 문을 직접 열고 닫으며 환자를 배웅하고, 가난한 환자에게 더 싼 약들을 일러주고, 환자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다 들어준다. 아르헨티나는 의료와 교육이 완전 무상인 나라다. 이 나라의 골칫거리가 페루나 볼리비아 같은 곳에서 무료 수술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라더니, 내가 온 몸으로 아르헨티나 의료시스템을 체험하게 될 줄이야.
탱고의 발상지 라보카는 위험하기로 악명 높은 동네지만 탱고가 있어 늘 생기가 넘친다.
그런 시련을 겪고도 어떻게 이 도시를 사랑할 수 있느냐고? 이제부턴 이 도시의 빛나는 얼굴들을 소개한다. 편의를 위해 번호를 매겨가며 이 도시의 매력을 훑어보자.
1. 오월광장의 어머니들
축구와 탱고를 먼저 떠올릴 당신에게는 미안하다. 당신이 나를 비웃는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이 도시에서 처음 찾아간 곳이 겨우 그런 곳이냐고 어이없어 한다 해도, 말해야겠다. 내게 아르헨티나는 누에바 칸시온 운동으로 저항한 가수 메르세데스 소사와 <오월광장의 어머니들> 없이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고. 이건 내가 정치적이어서가 아니라 청춘을 보낸 시대가 그러했기 때문에 피 속에 새겨진 상흔 같은 거라고 이해해 주시길. 흰색 스카프를 두르고 이 광장에 말없이 서 있던, 자식 잃은 어머니들의 슬픔 없이는 이 도시를 기억할 수 없다. 아르헨티나 독재정권이 ‘추악한 전쟁’을 치르는 동안 3만명의 지식인과 청년이 사라져갔다. 모두들 침묵하고 굴종할 때, 어머니들은 ‘산 채로 나타나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이 광장을 돌았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목요일 오후 3시. 에바 페론이 연설을 하던 대통령궁의 발코니, 독립영웅 산 마르틴이 영면한 대성당에 둘러싸인 이 광장에서 나는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다. 흰 스카프를 두른 여인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무작정 달려가 손이라도 꼭 쥐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다. 저토록 작고 늙은 여인들이 잔혹한 독재에 맞서 싸워 왔다니. 내 대학 시절의 민가협 어머님들이 떠오른다. 아들이 수배되거나 구속되었을 때 눈물만 흘리던 나약한 어머니가 점차 전사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았던 그 시절. 남자들이 부수고 파괴한 세계에서 그들이 자신마저 망가뜨리며 쓰러져갈 때, 눈물을 쏟으면서도 끝내 서 있던 어머니들. 아버지들이 술잔에 슬픔을 묻고 침묵할 때도 끝까지 싸워온 어머니들. 어머니가 되지 못한 나는 남은 생 내내 가장 큰 결핍을 안고 살아가야 하겠지.
2. 탱고
“스탭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라오.”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카를로스 가르델의 명곡 ‘포르 우나 카베사’에 맞춰 탱고를 추던 알 파치노가 한 말이다. ‘춤추는 슬픈 감정’이라 불리는 탱고는 1860년께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옆나라 도시 몬테비데오에서 생겨났다. 이민자들이 향수를 달래던 항구의 사창가와 술집에서 하층민의 오락거리로 태어나 세계적인 문화 상품이 되어버린 탱고. 가장 가난한 이들의 절망과 고독, 향수와 사랑에 대한 갈망을 담은 춤. 반도네온 연주에 맞춰 탱고를 추는 모습을 보노라면 가슴이 조여든다.
세상에 이토록 슬프고 격정적인 춤이 또 있을까. 탱고의 발상지인 라보카는 위험하기로 악명 높은 동네지만 활기와 음악으로 가득 찬 거리다. 컬러풀한 집들과 탱고를 공연하며 사람들을 끄는 식당들, 거리의 화가들로 생기가 넘친다. 영화 <해피 투게더>의 양조위가 일하던 ‘바 수르’에서 즐기는 탱고든, 최고급 백화점 갈라리아스 퍼시피코의 대형 공연이든, 밀롱가의 보통 사람들의 탱고든, 당신이 이 도시에 와서 탱고를 보지 않고 떠난다면 그건 범죄다. 이 도시에 온 많은 이들이 탱고에 빠져 과거를 잊고 새 삶을 시작했다. 내가 만난 부산 아가씨는 평생 춤 한 번 춰본 적 없는 몸치였는데 여행을 왔다가 탱고에 빠져 석달째 이 도시에 살고 있다. 그녀가 꿈꾸는 듯한 눈빛으로 한 말. “탱고는 내 안에 있던 모든 것을 부쉈어요. 이제부터 난, 춤추며 살 거예요.” 밀롱가 라 카테드랄을 그녀와 함께 찾은 날. 처음으로 춤을 추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뜨거워지던 나를 기억한다. 하드보일드 원더보디로 다이아몬드보다 단단한 경직성을 자랑하는 내 몸을 한없이 원망하던 순간도. 탱고는 여행과 닮았다. 20분간 뜨겁게 사랑하고 헤어지는 밀롱가의 탱고처럼 길 위에서 우리는 순간에 마음을 열고 미련을 남기지 않고 돌아선다.
3. 에비타
첩의 딸로 태어나 아버지의 장례식에도 참석할 수 없었던 미천한 소녀가 이 도시에서 대통령 부인의 자리까지 올랐다. 여성에게 최초로 선거권을 부여하고 ‘에바 페론 재단’을 설립해 새벽 6시부터 밤 12시까지 일했다는 그 여자. 그 시절, 원하면 누구든 그녀를 만날 수 있었기에 가난한 이들의 성녀로 불린 여자. 아직도 여전히 아르헨티나인들의 가슴속에 살아있는 여자. 그녀가 묻힌 레콜레타는 파리의 페르라세즈 못지않은 어여쁜 공동묘지. 화려한 무덤들 사이를 거닐며 삶과 죽음에 대해 사색하기 좋은 곳.
4. 엘 아테네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20세기 초의 극장을 개조한 서점으로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박스석의 가죽의자에 앉아 책을 읽거나 카페로 변한 무대에서 차를 마실 수도 있다. 이 도시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극장을 짓고 싶었던 이민자 막스 글룩스만은 극장 이름도 ‘더 그랜 스플랜디드’로 지었다. 최초의 유성영화를 상영한 곳이기도 하며 라디오 방송국이 들어서 20세기 초의 위대한 탱고 시디들이 이곳에서 녹음되기도 했다. 2008년 영국의 가디언지가 뽑은 ‘세계의 10대 서점’ 2위에 올랐다. 세상의 모든 길이 흘러들어오는 곳에서 수십만그루의 나무였던 책들과 만나는 오후. 이 도시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보낸 곳으로 내가 세 번을 찾아간 곳.
1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카페토르토니는 이 도시 명사들의 단골카페다.
5. 카페 토르토니
1858년 문을 연 이 카페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문화계의 과거이자 현재. 여덟살에 단편소설을 쓴 천재 작가 보르헤스가 즐겨 찾던 곳이다. 도서관에서 태어나 도서관장으로 일했던 보르헤스는 책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고 했으나 결국 책읽기로 시력을 잃고 말았다. 탱고 음악에 가사를 붙인 탱고 칸시온의 개척자이자 전설적인 가수 카를로스 가르델과 시인 알폰시나 스토르니 역시 이 카페의 단골고객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들이라고? 아인슈타인, 가르시아 로르카, 힐러리 클린턴도 이곳을 찾아왔다. 이 기품 있는 카페에서 마시는 코르타도 한잔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꼭 해야 할 일.
6. 산텔모의 골동품 시장
산텔모는 페드로 데 멘도사가 첫 정착촌을 건설한 곳으로 이 도시가 과거에 어떤 영광을 누리고 살았는지 그 흔적을 찾아낼 수 있는 곳이다. 디펜사 거리 양쪽으로 늘어선 골동품 가게들과 일요일이면 도레고 광장에 서는 노천시장으로 유명하다. 거리를 따라 늘어선 온갖 노점에는 볼리비아에서 온 척하는 중국제 털모자, 밤이 오면 귀신으로 변할 것 같은 헝겊인형, 우울한 날 들면 기분 좋아질 파스텔 컬러의 가죽가방, 얼핏 봐도 저건 아니지 싶은 핸드페인팅, 할머니 옷장에서 막 벗겨온 것 같은 바바리, 딱 봐도 티가 나는 인도산 방석커버 등 없는 것 빼고 다 있다.
7. 축구
“축구팀 빼고는 다 바꿀 수 있어!” 이 도시의 남자들이 종종 선언하듯 던지는 말이다. 종교도, 국적도, 성별도, 심지어 마누라도 바꿀 수 있지만 좋아하는 축구팀만은 하늘이 두 쪽 나도 포기할 수 없다는 신념을 굳게 지켜왔다. 축구는 이 나라 사람들에게 열정의 분출구이자, 영원한 사랑을 바치는 제단이자, 꺾이지 않는 자존심이다. 모든 치욕과 수치를 지워주는 수단이자 나라를 하나로 묶는 가장 튼튼한 끈이다. 이 도시의 영원한 라이벌 팀은 노동자를 대변하는 보카주니어스(마라도나, 리켈메, 테베스가 이 팀 출신)와 중산층을 대변하는 리버 플레이트. ‘수페르클라시코’라 불리는 이들의 대결을 볼 수 있다면 운기충천했다고 봐도 될 듯. 참고로 말하자면 보카주니어스의 경기를 보러간 여행자들의 90%는 표를 사기당하고 욕설을 내뱉으며 돌아온다.
8.마테와 아사도
남한의 28배가 넘는 면적의 이 나라는 3분의 1이 초원. 그 초원의 주인은 바로 소들로 무려 6000만마리의 소가 산다. 인구 1인당 두 마리라나. 양질의 소고기를 가장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곳이 이 도시. 장작불에 천천히 구운 소고기인 아사도를 먹어보지 않고서는 이 나라를 겪었다고 말할 수 없다. 채식주의자인 나도 문화체험이라 생각하고 맛만 봤다. 그리고 마테차. 남미의 녹차라 불리는 이 차는 빨대 하나로 돌려가며 함께 마신다. 비위생적이라고? 김치찌개 그릇에 일제히 숟가락을 꽂아 넣는 우리 식문화도 비위생적으로 보일 수 있음을 생각해보자.
책 한 권 분량으로도 모자랄 이 도시의 나머지 매력은 직접 찾아올 당신의 몫으로 남겨둔다. 시간이 없는 여행자는 이 도시에 함부로 발을 들이지 말아야 한다. 통제할 수 없는 열정에 종종 휘말리는 이 또한 이 도시를 피해 갈 것. 파리보다 덜 세련됐지만 파리보다 더 따뜻한 이 도시에 내가 다시 돌아온다면…. 그건 춤추기 위해서일 것이다. 조르바처럼 살기 위해서. 처음 밀롱가를 찾은 당신에게 “키에레 바일라르 콘미고?(나와 함께 춤 추실래요?)”라고 내가 묻더라도 놀라지는 말기를. 보르헤스가 말했듯, 이 도시는 ‘우리가 오래전에 들어와 살고 있어 잊게 된 거대한 서고, 알지 못하고 흥얼거리는 그리고 우리도 모르게 우리를 춤추게 하는 밀롱가의 돌풍’이기에.
※필자의 미투데이(http://me2day.net/skywaywalker, 닉네임 ‘Ontheroad’)에서 실시간으로 남미 여행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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