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희 | 도보여행가·작가 다섯 시간 반을 날아온 비행기가 거대한 날개를 육지에 묻는다. 트랩을 내려선 순간, 훅 끼쳐오는 열대 바람. 막 소나기 지나간 후의 물비린내.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노래하는 남자들, 키가 작고 얼굴이 검은 원주민들이 걸어주는 부겐빌레아 꽃목걸이. 내리쬐는 햇살에 일렁이는 푸른 바다. 벌써부터 발바닥이 웅웅거린다. 그런데 신경을 거스르는 이 묘한 분위기는 뭐지?
나를 제외하곤 죄다 쌍쌍인 이들이 내뿜는 열기에 시달리며 숙소로 향한다. 짐을 풀어놓고 저녁노을을 보기 위해 바닷가로 간다. 모아이상 너머로 붉은 해가 진다. 모두들 말도 없이 앉아 바다로 지는 해와 모아이들을 바라보는 저녁. 서편 하늘은 붉어지고 바다를 건너온 바람이 머리를 쓸고 간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따로 떨어져 앉아 있지만 같은 마음이리라. 세상이 참 살아볼 만하다고, 지구는 정말 아름다운 별이라고 믿는 그런 마음들. 저녁 해를 보고 소나기 쏟아지는 거리를 달려 숙소로 돌아오는 길. 불빛도 없는 밤, 세계의 또 다른 끝에서 비를 맞으며 달리고 있다. 내 옆으로는 남태평양의 파도가 출렁이며 따라온다.
얼굴을 간질이는 환한 햇살에 눈을 뜬다. 아침을 먹고 작은 배낭을 메고 분화구 라노 카우를 만나러 가는 길. 태평양을 향해 내려앉은 거대한 분화구와 홀로 마주한다. 완벽한 침묵과 텅 빈 충만. 분화구의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다 돌아본 후 서쪽에 있는 오롱고 마을로 발길을 돌린다.
옛날 조인(鳥人) 의식이 열리던 곳으로 암각화와 의식을 치르던 돌집들이 남아 있다. 완벽한 격리 속에 살던 이 섬의 주민들은 경계도 없이 세상을 가로지르는 새들을 신(神)의 메신저로 받아들였던 걸까. 이 섬의 수호신 마케마케는 새의 머리를 가진 인간으로 그려진다. 해가 뜨는 동쪽으로 카누를 타고 오다가 이 섬에 도착했다고 전해지는 건국 시조 호투마투아 씨족의 수호신이다.
분화구의 움푹 파인 창 너머로는 작은 바위 섬 세 개가 떠 있다. 가장 멀리 있는 섬은 제비갈매기가 알을 낳기 위해 날아오는 곳. 그해의 첫 알을 들고 돌아오는 사람이 조인이 되었고, 조인을 낳은 부족이 1년간 섬을 통치했다. 이 까마득한 절벽을 타고 내려가 거센 바다를 헤엄쳐 갈매기 알을 품에 안고 돌아오던 그 의식은 어쩌면 바깥세상을 향한 갈망을 분출하는 창이 아니었을까.
이 섬이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건 물론 거대한 모아이 석상 때문이다. 섬에는 서 있는 모아이 288개, 채석장의 모아이 397개를 비롯해 총 887개의 모아이상이 남아 있다. 부족장이나 중요한 인물의 몸을 상징하는 모아이는 항상 바다를 등지고(단 한 곳만 예외다) 마을을 품어 안는 위치에 세워진다. 마을과 부족을 지키기 위해서다.
섬 주민들이 오랫동안 신성한 산으로 여겨온 라노 라라쿠 산은 바로 모아이를 만들던 채석장. 이곳에 있는 ‘자이언트’라 불리는 모아이는 키가 21.6m에 무게가 160t 이상에 이른다. 미완성으로 누워 있는 이 거대한 모아이를 보고 있자면 이 섬의 멸망을 둘러싼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주장에 수긍이 가기도 한다.
그는 <문명의 붕괴>라는 책에서 이스터섬의 비극이 부족 간의 과도한 경쟁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야자나무를 비롯한 자연 자원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며 치른 석상 경쟁의 결과, 자연이 완전히 파괴되고 사회의 붕괴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믿는다. 나무가 거의 없는 이 섬의 현재 모습이 바로 그런 경쟁으로 인한 거였을까.
최근에는 다른 가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 섬의 문명붕괴는 애초부터 없었으며, 유럽인들의 원주민 노예화와 폴리네시아에서 건너온 쥐떼의 극성이 이 섬을 황폐화시켰다는 이론이다. 어느 쪽이 사실이든 간에 라파누이는 여전히 신비한 매력으로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이 거대한 석상을 어떻게 바닷가로 옮겼을까 하는 문제는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여서 외계인 제작설까지 등장했었다.
실험으로 검증된 모아이 제작과정은 이렇다. 채석장에서 응회암으로 이루어진 암반을 돌망치나 정으로 쪼아 하늘을 향해 누운 자세의 모아이를 조각한다-> 바위에서 모아이를 떼어 내기 직전 등에 통나무를 대고 로프로 묶은 다음 산기슭의 경사를 이용해 미끄러뜨린다-> 통나무 굴림판으로 이동시켜 아후라 불리는 제단에 모아이를 세워 올린다. 하지만 내가 가장 혹한 이론은 섬 원주민들의 주장이다. 모아이가 오른쪽, 왼쪽으로 방향을 바꿔가며 스스로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는.
내 여행 안에 여백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게으름에 대한 변명일지도 모른다. 삶이 그렇듯 여행에서도 고요하게 흘려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스터섬에서 나는 8일을 머무르며 느린 시간을 보냈다. 섬에서 가장 높은 테레바카(511m)에 7시간짜리 트레킹을 다녀오기도 하고, 아주 작은 박물관에서 오후를 다 보내기도 하고, 동네의 도서관을 찾아가 관장과 수다를 떨기도 하고, 가이드 투어를 다녀오거나 숙소의 긴 의자에 드러누워 책을 읽기도 하면서. 어느 날은 같은 숙소에 머무는 프랑스 청년들과 차를 빌려 섬을 일주하기도 했다. 일출 명소로 꼽히는 통가리키에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는 15개의 모아이를 바라보던 새벽도 있었다.
폴리네시아에서 건너온 이 섬의 원주민들이 최초로 닻을 내렸던 아나케나 해변을 둘러보던 오후. 에메랄드그린 빛깔의 물빛에 부드러운 백사장, 야자나무가 그늘을 드리우는 곳이다. 간이매점에서 앰파나다(남미 만두)를 팔던 남자가 간단한 호구조사를 하더니 내게 물었다. “여기서 나랑 같이 살면 어때요?” “뭘 해서 먹고 살게요?” “바다가 우릴 먹여 살릴 건데 뭘 걱정해요? 게다가 난 말도 스무 마리나 있는데.” 이 남자의 가벼운 유혹에 못 이긴 듯 넘어가볼까 잠시 생각해보기도 했다. 저녁상에 올라올 물고기 몇 마리만 있으면 내일에 대한 시름도 없을 것 같은 곳이었기에.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과 달리 섬은 뜨거운 갈등의 불씨를 안고 있다. 칠레정부는 이스터섬의 3분의 1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뒤 원주민들을 한 곳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칠레정부는 수백년 전 스페인정부가 저지른 짓을 20세기에 반복했던 것이다. 단지 총칼 없이 세련된 방식으로. 현재 칠레정부를 상대로 한 원주민들의 땅찾기 소송이 진행 중이다. 몇 달 전에도 섬 주민들은 공항을 점거하고 시위를 벌이다 무력충돌이 일어났다. 정부가 추진하는 대규모 리조트 개발을 막고 환경 파괴를 앞당기는 관광객 수를 제한하라는 시위였다. 이 섬의 원주민들이 원하는 삶의 방식이 지켜질 수 있을까. 지구 어디에서건, 그 대상이 무엇이든, 지금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건 제발 좀 그대로 내버려두는 지혜이리라.
한반도까지 1만6000㎞ 떨어진 이 작은 섬 라파누이. 분화구들과 현무암 돌담과 석상들이 내가 사랑하는 섬 제주를 떠올리게 한다. 몇 년 전, 세계 신7대 불가사의의 후보지들을 놓고 투표가 한창일 때 칠레의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그 누구도 이스터섬의 경이로움을 알기 위해 투표 따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제주도를 세계7대 자연경관에 뽑히게 하기 위해 벌이고 있는 일들이 문득 떠오른다. 우리에게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가 없을까.
※필자의 미투데이(http://me2day.net/skywaywalker, 닉네임 ‘Ontheroad’)에서 실시간으로 남미 여행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ㆍ수백년 전부터 뜨거운 갈등의 불씨
넓은 창으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배낭을 메거나 슈트케이스를 끌고 서 있는 사람들. 그들의 몸에서 묻어나는 낯선 도시의 냄새. 흔들리는 눈빛과 얼굴에 서린 홍조. 나와 같은 피를 지닌 사람들이 있는 이곳은 내게 가장 익숙한 공간이다. 이곳에서라면 내 앞에 앉아 있는 남자가 어떤 사연을 품고 어디로 가는지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몇 시간쯤은 그냥 보낼 수 있고, 배낭 속에 넣어온 책을 읽으며 하룻밤쯤은 문제없이 지새울 수도 있다.
어느 날 문득 잠에서 깨어 가방을 꾸려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 남은 생을 살 수도 있음을 일러주는 곳. 날개가 없는 내게 날개를 달아주고, 버리지 못한 꿈을 현실로 되돌려주는 곳. 나는 지금 칠레 산티아고 공항의 출국장 로비에 앉아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지구에서 가장 고립된 섬으로 나를 데려다 줄 비행기 한 대를.
300만년 전 화산 폭발로 생겨나 70여개의 크고 작은 분화구가 남아 있고, 거석문화와 폴리네시아 유일의 문자가 있었던 섬으로 1888년에 칠레령이 된, 안면도 크기의 작은 섬. 칠레 본토에서 3790㎞ 떨어진 섬의 공식 이름은 이슬라데파스쿠아. 그러나 이 섬의 원주민들은 라파누이, ‘거대한 땅’이라 부른다. 가장 흔하게는 이스터섬(1722년, 네덜란드 탐험가가 상륙한 날이 부활절이었기 때문이다)이라고 불리는 곳.
넓은 창으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배낭을 메거나 슈트케이스를 끌고 서 있는 사람들. 그들의 몸에서 묻어나는 낯선 도시의 냄새. 흔들리는 눈빛과 얼굴에 서린 홍조. 나와 같은 피를 지닌 사람들이 있는 이곳은 내게 가장 익숙한 공간이다. 이곳에서라면 내 앞에 앉아 있는 남자가 어떤 사연을 품고 어디로 가는지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몇 시간쯤은 그냥 보낼 수 있고, 배낭 속에 넣어온 책을 읽으며 하룻밤쯤은 문제없이 지새울 수도 있다.
어느 날 문득 잠에서 깨어 가방을 꾸려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 남은 생을 살 수도 있음을 일러주는 곳. 날개가 없는 내게 날개를 달아주고, 버리지 못한 꿈을 현실로 되돌려주는 곳. 나는 지금 칠레 산티아고 공항의 출국장 로비에 앉아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지구에서 가장 고립된 섬으로 나를 데려다 줄 비행기 한 대를.
300만년 전 화산 폭발로 생겨나 70여개의 크고 작은 분화구가 남아 있고, 거석문화와 폴리네시아 유일의 문자가 있었던 섬으로 1888년에 칠레령이 된, 안면도 크기의 작은 섬. 칠레 본토에서 3790㎞ 떨어진 섬의 공식 이름은 이슬라데파스쿠아. 그러나 이 섬의 원주민들은 라파누이, ‘거대한 땅’이라 부른다. 가장 흔하게는 이스터섬(1722년, 네덜란드 탐험가가 상륙한 날이 부활절이었기 때문이다)이라고 불리는 곳.
부족장이나 중요한 인물을 본떠 모아이를 만들던 라노 라라쿠 산의 채석장. 미완성의 모아이가 이스터섬의 비극을 말해준다.
주변을 둘러보니 단체 신혼여행이라도 온 듯 죄다 쌍쌍이다. 아아, 왜 아름다운 섬일수록 연인들로 가득 차는 걸까. 지옥에서도 짜릿할 수 있는 그들이 왜 굳이 지루한 낙원을 찾아오는 걸까. 지구 위 섬 하나쯤은 ‘커플 출입금지’나 ‘솔로 파격혜택’을 영업 전략으로 내걸면 안되는 걸까.
나를 제외하곤 죄다 쌍쌍인 이들이 내뿜는 열기에 시달리며 숙소로 향한다. 짐을 풀어놓고 저녁노을을 보기 위해 바닷가로 간다. 모아이상 너머로 붉은 해가 진다. 모두들 말도 없이 앉아 바다로 지는 해와 모아이들을 바라보는 저녁. 서편 하늘은 붉어지고 바다를 건너온 바람이 머리를 쓸고 간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따로 떨어져 앉아 있지만 같은 마음이리라. 세상이 참 살아볼 만하다고, 지구는 정말 아름다운 별이라고 믿는 그런 마음들. 저녁 해를 보고 소나기 쏟아지는 거리를 달려 숙소로 돌아오는 길. 불빛도 없는 밤, 세계의 또 다른 끝에서 비를 맞으며 달리고 있다. 내 옆으로는 남태평양의 파도가 출렁이며 따라온다.
얼굴을 간질이는 환한 햇살에 눈을 뜬다. 아침을 먹고 작은 배낭을 메고 분화구 라노 카우를 만나러 가는 길. 태평양을 향해 내려앉은 거대한 분화구와 홀로 마주한다. 완벽한 침묵과 텅 빈 충만. 분화구의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다 돌아본 후 서쪽에 있는 오롱고 마을로 발길을 돌린다.
옛날 조인(鳥人) 의식이 열리던 곳으로 암각화와 의식을 치르던 돌집들이 남아 있다. 완벽한 격리 속에 살던 이 섬의 주민들은 경계도 없이 세상을 가로지르는 새들을 신(神)의 메신저로 받아들였던 걸까. 이 섬의 수호신 마케마케는 새의 머리를 가진 인간으로 그려진다. 해가 뜨는 동쪽으로 카누를 타고 오다가 이 섬에 도착했다고 전해지는 건국 시조 호투마투아 씨족의 수호신이다.
분화구의 움푹 파인 창 너머로는 작은 바위 섬 세 개가 떠 있다. 가장 멀리 있는 섬은 제비갈매기가 알을 낳기 위해 날아오는 곳. 그해의 첫 알을 들고 돌아오는 사람이 조인이 되었고, 조인을 낳은 부족이 1년간 섬을 통치했다. 이 까마득한 절벽을 타고 내려가 거센 바다를 헤엄쳐 갈매기 알을 품에 안고 돌아오던 그 의식은 어쩌면 바깥세상을 향한 갈망을 분출하는 창이 아니었을까.
폴리네시아를 건너온 이스터섬의 원주민들이 최초로 닻을 내렸던 아나케나 해변.
이 섬이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건 물론 거대한 모아이 석상 때문이다. 섬에는 서 있는 모아이 288개, 채석장의 모아이 397개를 비롯해 총 887개의 모아이상이 남아 있다. 부족장이나 중요한 인물의 몸을 상징하는 모아이는 항상 바다를 등지고(단 한 곳만 예외다) 마을을 품어 안는 위치에 세워진다. 마을과 부족을 지키기 위해서다.
섬 주민들이 오랫동안 신성한 산으로 여겨온 라노 라라쿠 산은 바로 모아이를 만들던 채석장. 이곳에 있는 ‘자이언트’라 불리는 모아이는 키가 21.6m에 무게가 160t 이상에 이른다. 미완성으로 누워 있는 이 거대한 모아이를 보고 있자면 이 섬의 멸망을 둘러싼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주장에 수긍이 가기도 한다.
그는 <문명의 붕괴>라는 책에서 이스터섬의 비극이 부족 간의 과도한 경쟁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야자나무를 비롯한 자연 자원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며 치른 석상 경쟁의 결과, 자연이 완전히 파괴되고 사회의 붕괴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믿는다. 나무가 거의 없는 이 섬의 현재 모습이 바로 그런 경쟁으로 인한 거였을까.
최근에는 다른 가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 섬의 문명붕괴는 애초부터 없었으며, 유럽인들의 원주민 노예화와 폴리네시아에서 건너온 쥐떼의 극성이 이 섬을 황폐화시켰다는 이론이다. 어느 쪽이 사실이든 간에 라파누이는 여전히 신비한 매력으로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이 거대한 석상을 어떻게 바닷가로 옮겼을까 하는 문제는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여서 외계인 제작설까지 등장했었다.
실험으로 검증된 모아이 제작과정은 이렇다. 채석장에서 응회암으로 이루어진 암반을 돌망치나 정으로 쪼아 하늘을 향해 누운 자세의 모아이를 조각한다-> 바위에서 모아이를 떼어 내기 직전 등에 통나무를 대고 로프로 묶은 다음 산기슭의 경사를 이용해 미끄러뜨린다-> 통나무 굴림판으로 이동시켜 아후라 불리는 제단에 모아이를 세워 올린다. 하지만 내가 가장 혹한 이론은 섬 원주민들의 주장이다. 모아이가 오른쪽, 왼쪽으로 방향을 바꿔가며 스스로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는.
내 여행 안에 여백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게으름에 대한 변명일지도 모른다. 삶이 그렇듯 여행에서도 고요하게 흘려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스터섬에서 나는 8일을 머무르며 느린 시간을 보냈다. 섬에서 가장 높은 테레바카(511m)에 7시간짜리 트레킹을 다녀오기도 하고, 아주 작은 박물관에서 오후를 다 보내기도 하고, 동네의 도서관을 찾아가 관장과 수다를 떨기도 하고, 가이드 투어를 다녀오거나 숙소의 긴 의자에 드러누워 책을 읽기도 하면서. 어느 날은 같은 숙소에 머무는 프랑스 청년들과 차를 빌려 섬을 일주하기도 했다. 일출 명소로 꼽히는 통가리키에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는 15개의 모아이를 바라보던 새벽도 있었다.
해변을 따라 모아이가 줄지어 서 있다. 원주민들은 모아이가 마을과 부족을 지켜준다고 믿었다.
폴리네시아에서 건너온 이 섬의 원주민들이 최초로 닻을 내렸던 아나케나 해변을 둘러보던 오후. 에메랄드그린 빛깔의 물빛에 부드러운 백사장, 야자나무가 그늘을 드리우는 곳이다. 간이매점에서 앰파나다(남미 만두)를 팔던 남자가 간단한 호구조사를 하더니 내게 물었다. “여기서 나랑 같이 살면 어때요?” “뭘 해서 먹고 살게요?” “바다가 우릴 먹여 살릴 건데 뭘 걱정해요? 게다가 난 말도 스무 마리나 있는데.” 이 남자의 가벼운 유혹에 못 이긴 듯 넘어가볼까 잠시 생각해보기도 했다. 저녁상에 올라올 물고기 몇 마리만 있으면 내일에 대한 시름도 없을 것 같은 곳이었기에.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과 달리 섬은 뜨거운 갈등의 불씨를 안고 있다. 칠레정부는 이스터섬의 3분의 1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뒤 원주민들을 한 곳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칠레정부는 수백년 전 스페인정부가 저지른 짓을 20세기에 반복했던 것이다. 단지 총칼 없이 세련된 방식으로. 현재 칠레정부를 상대로 한 원주민들의 땅찾기 소송이 진행 중이다. 몇 달 전에도 섬 주민들은 공항을 점거하고 시위를 벌이다 무력충돌이 일어났다. 정부가 추진하는 대규모 리조트 개발을 막고 환경 파괴를 앞당기는 관광객 수를 제한하라는 시위였다. 이 섬의 원주민들이 원하는 삶의 방식이 지켜질 수 있을까. 지구 어디에서건, 그 대상이 무엇이든, 지금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건 제발 좀 그대로 내버려두는 지혜이리라.
한반도까지 1만6000㎞ 떨어진 이 작은 섬 라파누이. 분화구들과 현무암 돌담과 석상들이 내가 사랑하는 섬 제주를 떠올리게 한다. 몇 년 전, 세계 신7대 불가사의의 후보지들을 놓고 투표가 한창일 때 칠레의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그 누구도 이스터섬의 경이로움을 알기 위해 투표 따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제주도를 세계7대 자연경관에 뽑히게 하기 위해 벌이고 있는 일들이 문득 떠오른다. 우리에게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가 없을까.
※필자의 미투데이(http://me2day.net/skywaywalker, 닉네임 ‘Ontheroad’)에서 실시간으로 남미 여행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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