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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의 남미걷기

[김남희의 남미 걷기](7) 아르헨티나의 우수아이아

김남희|도보여행가·작가

ㆍ슬픈 기억을 다 묻을 수 있는 ‘세상의 끝’

당신, 기억하나요? 보영과 아휘를. 사랑하고 또 사랑하지만 끝내 서로에게 가 닿지 못한, 마지막까지 외로울 수밖에 없었던 두 사람의 이야기. 영화 <해피 투게더>에서 아휘의 눈물을 묻었던 붉은 등대가 생각나나요? 저는 지금 그 붉은 등대를 눈앞에 두고 뱃전에 서 있어요. 뺨을 긁듯이 모진 바람이 불어오네요. 지구 끝까지 내려와 슬픔을 묻고 갔을 사람들을 떠올리며 서 있는 지금. 닿을 듯 닿지 못했던 당신의 품 안에서 외롭던 그 시절의 내가 생각났어요.

그래요, 저는 지금 지구의 남쪽 끝 우수아이아에 와 있어요. ‘엘 핀 델 문도’, 세상의 끝이라고 불리는 곳이죠. 삶의 벼랑으로 내몰리고, 사랑에 무릎 꺾인 영혼들이 마지막으로 찾아오는 곳. 그 어떤 희망도 품지 못한 이들이 내려와 다시 삶을 일구어가는 곳. 아휘가 말했듯 여긴 슬픈 기억들을 다 벗을 수 있는 곳이랍니다.

가을 단풍과 겨울 설산을 함께 볼 수 있는 우수아이아.

저 역시 이곳에서 슬픔을 묻고 있는 여인을 만났지요. 여행을 왔다가 우연히 만난 남자로 인해 인생이 바뀐 여인이지요. 그녀를 바래다주던 길에 수줍은 그 남자가 외친 말. “오늘밤 나보다 더 행복한 놈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그 한마디에 실린 마음을 거절하지 못해 결국 이곳에 삶을 묻고 만 여인을요. 작고, 가냘픈 여인이에요. 몇 달 전 세상을 떠난 그 남자의 이야기를 할 때면 금세 검은 눈동자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지구 끝의 이 외진 마을에서 수십 년을 일구어 온 농장을 아르헨티나 지방 정부에 거의 다 뺏기고, 그 화병으로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혼자서 농장을 지키며 살아가는, 약하면서도 강인한 여인이지요. 이 나라의 수도에서 의대에 다니는 큰아들 다빈이, “엄마 곁에 있어야 하니까 이 도시의 대학에 갈게요”라던 속 깊은 둘째 래원이, 아들 둘을 먼저 떠나보낸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고 있는 여인. 나를 비롯한 여행자들은 그녀를 ‘다빈이 엄마’ 혹은 ‘이모님’이라고 부르지요. 한번 생각해봐요. 지구 끝까지 내려와 당신의 모국어를 쓰는 여인의 집에 머물 수 있다니. 그녀에게는 유배지와 같을지도 모를 이곳이 우리에게는 사막 끝의 오아시스인 셈이지요.

영화 <해피 투게더>에서 아휘의 슬픔을 묻던 등대.

마을의 100년 된 찻집에서 그녀와 차 한 잔을 나누던 어느 밤. 언제나처럼 바람이 몹시 불던 밤이었고, 저는 조금 들떠 있었지요. 식품점이었다던 카페는 옛 물건들이 그대로 남아있어 분위기가 꽤 괜찮은 데다 케이크까지 맛있는 집이었거든요. 그녀가 이 도시의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일본 남자 다나카상. 자전거를 타고 남미 여행을 왔다가 이곳에 정착한 남자예요. 이곳에서 만난 칠레 여인 로라와 사랑에 빠졌지만 그녀 집안의 반대로 헤어져야 했지요. 그 후 이 마을 여자와 결혼해 딸 둘, 아들 하나를 낳고 살던 어느 날, 아내가 떠나버리고 혼자 남았지요. 지금은 정신 지체를 지닌 아들과 살고 있죠. 다나카상이 사랑한 로라는 어떻게 되었냐고요? 그녀는 아르헨티나 선원과 결혼했지만 역시 남편이 떠나버려 혼자 아들 둘을 키우며 살고 있대요. 그녀의 아들 하나도 장애아라는 운명까지 다나카상과 꼭 닮은 채로. 아직도 두 사람은 같은 마을에 살고 있답니다. 예순의 나이가 된 지금, 어쩌다 카페나 시장 같은 곳에서 우연히 마주쳐 서로의 얼굴에서 세월을 볼 때,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그와 살았다면, 그녀와 함께였다면, 삶이 달라졌을까. 그런 생각을, 혹시라도 하게 될까요? 운명이 우리를 끌고 가는 그 무서운 힘을 생각해볼 때면, 이 세상에서 수고하고 애쓰는 것들이 아무 의미가 없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하지만 운명의 ‘운’자는 ‘움직일 운’이잖아요. 삶은 결국 내가 움직여가는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어요, 아직은. 나에게 일어났던 그 모든 실패와 패배한 사랑조차 내가 스스로 몰고 갔던 거라고, 그러니 그 책임도 내가 지는 거라고요.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는 운명 따위에게 내 삶을 속수무책으로 맡겨버리긴 싫으니까요. 이런 내 얘기에 당신은 그 시절처럼 “아직 철이 들려면 멀었네. 의지로 어쩔 수 없는 것들이 가득한 게 인생인데….” 이렇게 말할 건가요?

마젤란 펭귄들의 서식지. 김남희씨 촬영

우수아이아가 속한 이 지역은 ‘티에라델푸에고’, 즉 ‘불의 땅’이라 불려요. 그 옛날 마젤란이 이곳으로 왔을 때 절벽 위에 원주민들이 피워 놓은 모닥불들이 활활 타오르는 모습을 보고 그렇게 이름을 붙였대요. 그 이름이 무척 어울린다고 생각지 않나요? 여긴 정말 불과 물과 흙 같은 가장 원초적인 것들만 남은 땅 같거든요. 이곳에서 인간은 자연을 넘어서지 못해요. 여긴 인간의 의지보다 자연의 힘이 압도적인 곳이니까요. 이곳의 대지와 하늘과 바람, 비와 구름은 인간의 계획을 비웃고, 흩트려 놓아요. 인간의 개입이 최소로 남은 곳들, 지구가 태초의 모습에 가깝게 남아있는 곳, 그런 곳이지요.

한 가지 안타까운 건 이곳에서 원주민들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거예요. 파타고니아도 그랬고, 이곳 불의 땅에서도 원주민은 몰살당하고 없으니까요. 그런데 왜 칠레와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원주민 말살에 대해 말할 때면 ‘백인(White people)’이 그랬다고 말하는 걸까요. 자신들의 선조가 바로 그 ‘백인’들인데, 꼭 완전한 타인이 저지른 일처럼 말을 하네요. 며칠 전 배에서 만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온 부부도 그러더군요. 7000년을 이 땅에 살았던 원주민 셀크남족이 70년 만에 멸종된 이야기를 하면서 ‘백인들’이 그랬다고. 그 단어 속에서 잔혹한 학살의 책임에서 면죄받고픈 욕망을 감지한다면, 제가 더 편파적인 걸까요? 우리 역시 그렇게 비겁한 면책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며 살아가는 일들이 있으니 그들만 비난할 수는 없겠지요.

이곳에서의 날들은 고요하고 느리게 흘러가요. 마을을 따라 두어 시간쯤 걸어 빙하를 보러 갔다오거나, 이모님 농장에 놀러가 장작난로 위에 해물전을 부쳐 먹기도 하고, 배를 타고 비글 해협(찰스 다윈이 타고 온 배 비글호를 따서 붙인 이름이지요)을 둘러보며 바다사자와 가마우지떼를 만나고, 펭귄 섬을 찾아가기도 하지요. 수천 마리의 펭귄들 사이를 걸어다니며 손을 뻗으면 닿는 거리에서 그들을 볼 수 있죠.

또 이곳엔 걷기 좋은 수많은 길들이 있어 저를 행복하게 해요. 어제는 국립공원에 다녀왔어요. 낙엽 지는 가을 숲에서 나무에 기대어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를 듣고 있었지요. 깊고 검은 숲에서 문득 우리집 옥상의 꽃과 나무들이 생각났어요. 작년에 현옥언니가 광릉 집에서 캐다준 애기붓꽃은 새순을 틔웠을까? 묘목 시장에서 사다 심은 할미꽃은? 추운 겨울을 옥상에서 견뎌야했던 과실수들은 다시 새잎을 냈을까? 문득 봄을 맞은 그들의 안부가 궁금해지더군요. 이곳의 나무들은 이미 붉거나 노랗게 물들어 가을빛이 완연한데… 제가 지구 반대편에 있다는 걸 실감하고 있어요.

그리고 오늘, 전 잠시 낙원에 다녀왔어요. 길을 잃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채 설산과 푸른 초원과 단풍 든 나무들 곁에 서서 가을빛에 젖어들었지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가을날의 풍경이었어요. 풀을 뜯는 몇 마리의 말들, 나뭇가지에 앉은 큰 새 두 마리,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강물. 그대로 붙잡아 두고픈 시간이었지요. 혹시 다음 생에서라도 당신과 함께일 수 있다면, 당신을 데리고 오고 싶은 길이었어요. 까미노데라뚜르베라. 기억해주세요, 이 길의 이름을.

당신, 아직도 정거장 같은 삶을 살고 있는 내가 안타깝나요? 내게도 정착하고픈 욕구가 있긴 하지만, 어쩌죠? 아직은 여행만이 내 심장을 고동치게 만들고, 살아있다는 느낌으로 가득 차오르게 하는 걸요. 나이 마흔을 넘기고도 여전히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 있다는 것, 삶이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임을 매일 느낄 수 있다니 얼마나 행운인지요! 그러니 혹시라도 안타까운 눈으로 절 보지 않길 바라요.

만약 당신이 이곳에 오신다면 시기를 잘 맞춰 오셔야 해요. 펭귄을 보러 왔는데 펭귄이 다 떠난 후일 수도 있거든요. 비글 해협 투어를 하러 왔는데 배가 다니지 않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이곳에선 굳이 애써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사실 이곳에 머문 열흘 동안 제가 제일 좋아한 일은 다빈이네 거실에 앉아 창밖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일이었어요.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몇 시간쯤은 충분히 흘려보낼 수 있는 곳이에요, 여긴. 아니, 그 모든 일과 상관없이, 당신 안에 아물지 않는 상처가 있다면 그걸 묻기 위해 찾아와도 좋아요.

전 이곳에 제 슬픔을 묻고 가진 않을 거예요. 슬픔의 기억이 없이는 기쁨을 온전히 만끽하기 어려울 테니까요. 어차피 저라는 사람은 그 모든 슬픔과 눈물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고요. 대신 전 이곳에서 당신을 묻어요. 오래도록 함께 늙고 싶었던 한때의 사랑, 당신을요. 이곳은 과거를 버리고, 미래에 기대지 않으면서, 그저 오늘을 살 뿐인 땅이니까요.

※필자의 미투데이(http://me2day.net/skywaywalker, 닉네임 ‘Ontheroad’)에서 실시간으로 남미 여행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