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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사 여행스케치

[오기사의 여행스케치]기억의 건축-바르셀로나

오영욱 건축가·일러스트레이터


2년 반 동안 바르셀로나에서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곳을 떠난 지 벌써 4년이 되어 갑니다. 한 도시에서 2년 이상 살아본다는 것은 가슴이 뛰는 일입니다. 마치 제2의 고향을 얻은 것 같은 느낌이지요. 서울로 돌아와 정신없이 살면서 어설펐던 스페인어마저 거의 잊어 버렸습니다.

매번 ‘다시 한 번 놀러가야지’ 하고 맘을 먹지만 짬을 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일상은 그렇게 나를 잠식합니다.

다시 바르셀로나로 돌아가면 무얼 제일 하고 싶은지 생각해 봅니다. 가우디의 성가족 성당이 얼마나 더 지어졌는지 보러 갈 수도 있고, 지중해변에서 여유롭게 미녀들을 구경할지도 모릅니다. 예전에 알던 친구들에게 연락해 밤을 불사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하고 싶은 건 그냥 천천히 걸어보는 겁니다. 특히 자주 돌아다녀 익숙했던 길들을 걷고 싶습니다. 중간에 종종 가던 카페에 들러 에스프레소 한 잔을 하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한 자리에서 20년 이상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는 주인아저씨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운 많은 길 중에서도 엘리사벳 가는 길은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곳입니다. 차량 통행이 거의 없는 이 작은 골목길은 나의 통학로이기도 했는데, 으레 그곳에서 차를 마시고 점심을 먹고 서점에 들르곤 했습니다. 길은 도시를 기억하는 방법입니다. 사람들은 작은 발에 느껴지는 촉감, 그 거리에서 풍기는 냄새, 사람들의 대화 소리, 작은 식당에서 먹었던 음식,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눈 속에 담아두며 공간의 추억을 만들어 갑니다. 덤으로 잠시 설렐 수 있는 사랑을 할 수도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