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욱 건축가·일러스트레이터
우리는 전통에 집착합니다. 스페인에는 전통 유산이 많이 남아있는 반면, 우리는 전쟁과 식민지의 경험으로 많은 유물들을 상실했던 이유가 클 것 같습니다. 이미 전통의 형상이 확고하다면 굳이 집착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아직 과거의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한 채 현재에 얽매여 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북촌의 지도를 대고 건물들의 형상만 뽑아서 그려봤습니다. 해방 전후로 전통적인 도시 조직이 파괴되었던 흔적들이 군데군데 보입니다. 그리고 요즘은 다시 옛 모양으로 되살리기 위한 노력이 한창입니다. 물론 그런 과정에서 자본이 한옥들을 잠식해가는 부작용도 나타납니다. 어떤 방향이 정답일지는 누구도 모릅니다. 북촌의 모든 거대한 건물이 사라지고 한옥으로만 이루어진 동네로 환원되는 것이 옳을지, 지금의 형상 자체가 시간의 흔적이라고 보고 조금씩 가꿔나가는 것이 옳을지는 시간이 결정해 줄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전통의 보존도 소중하고, 현재의 욕망도 중요하고, 우리의 정체성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지자체장의 임기도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이제 우리도 미래를 준비해야 할 시기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도시에 어떤 행위를 하고자 할 때 그것이 어떻게 우리가 사는 21세기의 모습을 담을 수 있고, 그것을 어떻게 미래의 후손들에게 지금의 흔적으로서 전해줄 수 있을지 진정성을 가지고 고민해봤으면 좋겠습니다.우리의 임무는 북촌을 보존하는 것 이상으로 새로운 21세기의 북촌을 만들어가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21세기의 북촌은 22세기의 한국인들에게 전통으로 계승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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