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홍규 | 소설가
남도에 취재차 내려갈 일이 있어 고향집에 들렀더니 기다렸다는 듯 밤부터 눈이 내렸다.
눈이 내리면 습관처럼 황동규의 ‘삼남에 내리는 눈’을 떠올린다. 특히 어둡고 고요한 밤이면 그 시의 ‘귀기울여 보아라’라는 구절이 절창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허공에서 소리 없는 폭발로 태어나듯 눈이 생겨나는 걸 보노라면 더욱 그렇다. 그때의 눈은 내리는 것이 아니라 탄생하는 것이다.
폭우가 사위를 침묵에 잠겨들게 하는 것과 반대로 폭설은 사위를 소리로 가득 채운다. 귀기울이면 폭설이 내리는 소리만큼 장엄한 소리도 없다는 걸 알게 된다. 나는 그 장엄한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 새벽에 깨어보니 두꺼운 솜이불만큼 눈이 쌓였다. 그 눈에 발목을 담근 채 마당에 섰노라니 어린 시절의 흥분이 되살아났다.
눈이 내리면 습관처럼 황동규의 ‘삼남에 내리는 눈’을 떠올린다. 특히 어둡고 고요한 밤이면 그 시의 ‘귀기울여 보아라’라는 구절이 절창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허공에서 소리 없는 폭발로 태어나듯 눈이 생겨나는 걸 보노라면 더욱 그렇다. 그때의 눈은 내리는 것이 아니라 탄생하는 것이다.
폭우가 사위를 침묵에 잠겨들게 하는 것과 반대로 폭설은 사위를 소리로 가득 채운다. 귀기울이면 폭설이 내리는 소리만큼 장엄한 소리도 없다는 걸 알게 된다. 나는 그 장엄한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 새벽에 깨어보니 두꺼운 솜이불만큼 눈이 쌓였다. 그 눈에 발목을 담근 채 마당에 섰노라니 어린 시절의 흥분이 되살아났다.
그 시절 나는 강설을 예고하는 밤이면 잠조차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새벽에 방문을 벌컥 열었을 때 와락 달려들던 희디흰 세상. 나는 그때처럼 넉가래를 쥐고 마당부터 시작해 사립 앞까지 쌓인 눈을 치운 뒤 잠시 숨을 골랐다가 신작로까지 길을 냈다. 되돌아와 이번에는 마을 안쪽으로 길을 냈다. 예전과 달리 시멘트 포장이 된 터라 큰 힘 들이지 않고도 넉가래로 밀고 다니면 반듯한 길이 생겼다. 그리고 갈림길에서 만났다. 저 반대편에서 시작된 길을 말이다. 마을 안쪽 누군가 벌써 그곳까지 얌전하게 비질을 했던 것이다. 이로써 마을을 관통하는 길이 생겨났다.
내가 만든 길과 누군가 만든 길이 만나 하나의 길이 되었다. 나는 그 갈림길에서 오래도록 섰다. 넉가래 손잡이 쪽 마구리에 턱을 댄 채 서로 다른 형태의 길이 어우러져 하나의 길이 되는 순진하고도 기묘한 조화에 잠시 넋을 잃었다.
길은 연작소설처럼 단편들이 모여 이룬 하나의 장편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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