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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사 여행스케치

[오기사의 여행스케치]기억의 건축 05-인천공항

오영욱 | 건축가·일러스트레이터

사실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출발 당일 공항에 도착하는 때입니다. 풍선의 헬륨가스처럼 막 부풀어 오르던 여행에 대한 기대와 흥분이 공항에 들어서는 순간 그 정점에 오르는 것이지요. 그리고 곧 고행이 시작됩니다. 긴 줄을 기다려 체크인을 하고, 기분 나쁘게 몸수색도 당하며, 돈을 써가며 면세점 쇼핑도 합니다. 이코노미 클래스의 비좁은 좌석은 나를 짐짝처럼 취급하고, 인내 끝에 막상 새로운 장소에 도착할 때면 몸은 이미 녹초가 되어있지요.
그런 의미에서 공항 자체도 여행의 목적지가 될 만합니다. 공항에서의 기억 역시 추억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지요. 바쁘지 않다면 공항에 일찍 가보려는 것도 가급적 많은 시간을 여유롭게 공항에서 보내고 싶은 욕구 때문입니다.

요즈음의 공항은 단지 비행기를 타는 곳만은 아닙니다. 마치 하나의 도시처럼 많은 기능들이 그곳에 모여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항이 가장 매력적으로 보이는 순간은 역시 비행기를 타기 위한 때입니다. 이 일상적이지 않은 건축 속에서 나는 새로운 장소를 상상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한껏 들뜨게 되지요.

인천공항은 많은 여행의 시작을 함께한 곳입니다. 과도한 형태를 드러내는 디자인은 없습니다. 일상에서 보기 힘든 높고 깊은 공간이 존재할 뿐입니다. 그런 일상적이지 않은 공간은 여행의 흥분을 느끼게 해주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나는 인천공항에서 종종 여행의 하이라이트를 경험하고는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