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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사 여행스케치

[오기사의 여행스케치]기억의 건축 - 라스베이거스

오영욱 | 건축가·일러스트레이터

도시는 건물들의 집합입니다. 그 건물들은 각각의 역사와 사회구조, 문화와 관습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를 띱니다. 모든 도시들이 다른 모양을 갖는 이유입니다.

라스베이거스는 보다 특이한 경우입니다. 도시를 이루는 건축은 이미지로 지어졌습니다. 가장 번화한 스트립 거리의 카지노 호텔들은 과거로부터의 연속성이나 미래를 향한 지향성을 의도적으로 배제합니다. 오롯이 현재만을 생각하고, 현재의 사람들에게 어떤 이미지를 줄 수 있는가가 유일한 관심사입니다. 현재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은 과감하게 뜯어고칩니다.

이미지는 때론 막강한 힘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너무도 손쉽게 무너진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이미지로 건축된 도시는 자칫 위태로워 보입니다. 환상의 이미지는 더 큰 환상에 의해 붕괴됩니다.

이 영리한 도시는 그럴 가능성을 다분히 의식합니다. 그리고 자체적으로 더 화려한 이미지들을 양산해내지요. 라스베이거스의 초기 카지노 호텔들은 이제 많이 사라져가고, 같은 자리엔 보다 세련되고 호화로운 리조트 호텔이 들어섭니다.

물론 장점은 있습니다. 이미지로 구축된 도시이기에 기억에 잘 남습니다. 건축적 대상을 이미지화하여 기억하게 되는 일련의 프로세스를 단축시키기 때문에, 사람들은 도시로부터 직접적으로 이미지를 받아들여 기억하게 됩니다.

덕분에 라스베이거스의 도시 스케치는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기억의 자취로 그릴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