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원규의 길인생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길·人·생](12) 위기의 구례군 섬진강 둑길

이원규 | 시인

ㆍ“멀쩡한 길에 쎄멘 퍼붓고, 이런 놈의 사업이 어디 있으까이”

길이란 무엇인가. 누군가 먼저 걸어가고 다시 가면 그 발자국들이 모여서 마침내 길이 된다. 길이 길을 부르는 것이다. 길을 파보면 그 속에 옛길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길이나 도(道)나 마찬가지. 어쩌다 길 위에서 길을 잃어도 그 또한 길이다. 옛말에 ‘일어나 걷는 자는 동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하여 길은 여전히 ‘발자국들의 살아 있는 화석’으로 존재한다.

그런데 오늘의 길은 그 순결성을 잃어가고 있다. 점점 더 폭력적이며 야만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자동차의 길에 사람의 길이 막히고 야생동물의 길이 막히고 있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위험천만한 길을 걸어서 가려면 먼저 목숨부터 내놓아야 한다. 길이 길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단절의 길, 불통의 길이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발명한 탈것 중에 가장 친환경적인 자전거마저 작금의 대한민국에선 참으로 이상한 ‘불명예’를 안게 됐다. 자전거가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존 라이언의 <지구를 살리는 7가지 불가사의한 물건들>을 보면 자전거가 명예롭게도 그 첫 번째로 등장한다.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유한한 지구의 자원을 황폐화시키지 않으면서도 사용할 수 있는’ 기준을 통과한 것으로 자전거·콘돔·천장선풍기·빨랫줄·타이국수·무당벌레·공공도서관을 들고 있다. 특히 이 중에서 자전거는 친환경적인 교통수단이자 최소한의 동력으로 최대의 효율성을 발휘하는 경제적인 교통수단이다. 일산화탄소·먼지로 해를 끼치지 않고 지구온난화나 교통 혼잡을 일으키지도 않는다.

그런데 인류 최고의 발명품인 자전거가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부터 ‘변질’되기 시작했다. 4년 전 추석 무렵 ‘대운하 전도사’인 이재오 특임장관이 ‘한반도 대운하 자전거 탐방’을 하면서부터 그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기자들까지 대동하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폼나게 달린 것은 좋았지만 서울의 한강에서 망신을 당했다. 쫄바지에 헬멧을 쓰고 한강을 내려다보는 멋진 포즈의 사진을 공개했다가 한 네티즌에게 딱 걸리고 말았다. 사진 속의 그곳은 자전거가 들어갈 수 없는 자동차전용도로인 올림픽대로였던 것이다. 결국 그는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범칙금을 물어야만 했다. 그는 또 미국에서 돌아온 뒤 “워싱턴에서 자전거대회에 출전해 600명 중 8등을 했다”고 자랑한 적이 있다. 알고 보니 ‘경주’가 아니라 그냥 ‘자전거 함께 타기 행사’였다고 한다. 발상이 참으로 갸륵하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사업이 ‘역주행의 폭주 기관차’로 돌변하고 있음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아름답던 구례군 섬진강의 잔디밭 강둑길이 ‘직격탄’을 맞고 말았다. 왼쪽이 시멘트 자전거도로 공사 전, 오른쪽은 공사 후의 모습. | 조성봉 감독 제공


‘자전거 전도사’를 자처한 이명박 대통령과 이재오 특임장관의 자전거로 상징되는 녹색성장 사업은 안타깝게도 바로 이런 발상으로 가속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손주와 함께 직접 자전거를 탄다”며 “페달을 굴리는 한 쓰러지지 않는다. 우리도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대통령의 멋진 말이 ‘관성의 법칙’을 넘고 넘어 걷잡을 수 없는 ‘역주행의 폭주 기관차’로 돌변하고 있음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섬진강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반도 대운하’에서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명패를 바꾼 채 밀어붙이는 단기간의 집중포화 속에서 그 ‘유탄’이 섬진강까지 날아든 것이다. 아니, 유탄이 아니라 그토록 아름답던 구례군 섬진강의 잔디밭 강둑길이 그 ‘직격탄’을 맞고 말았다.

섬진청류에 노니는 물고기들과 온갖 철새들을 바라보다 눈을 들면 지리산 노고단이 한눈에 들어오는 섬진강 풀밭 강둑길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기 시작했다. 허연 시멘트를 쏟아 부어놓고 자전거도로라고 우기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 세상에서 가장 삭막한 길로 순식간에 바뀌기 시작했다. ‘자전거’가 아니라 ‘토목공사’에 방점이 찍혔다. 또 다른 ‘토목 건설’의 아이템으로 자전거도로가 ‘도용’된 것이다.

‘4대강 살리기 마스터플랜’을 보면 4대강과 섬진강 등 자전거도로의 전체 길이는 1728㎞에 이른다. 상류에서 하류까지 단절 없이 이어지는 자전거도로는 한강 305㎞, 낙동강 743㎞, 금강 248㎞, 영산강과 섬진강 432㎞ 등이다. 그럴 듯하다. 현재 4대강 사업의 170개 공구별로 따로 설계돼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 중에서 국토해양부와 전남도는 섬진강 곡성~광양 구간 둑길 52.6㎞를 내년 12월 말까지 시멘트로 포장할 계획이다. 현재 구례 구간 20.22㎞ 중 25%가 포장됐고, 곡성 구간은 19.85㎞ 중 28%가 진척됐으며, 광양 구간 12.53㎞는 내년에 착공할 예정이다.

그러나 시멘트 자전거도로 사업은 구례군의 섬진강 둑길에서 제동이 걸렸다. 관광특구 구례군의 슬로건 ‘자연으로 가는 길’처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자연으로 가는 길’을 바라던 구례주민들이 반기를 들었다. 느닷없이 시멘트로 포장하는 데 반발, 민원 제기 등 거세게 들고 일어서는 바람에 현재 중단된 상태다. 구례군농민회와 지리산사람들 등 10여개 단체가 참여한 ‘섬진강 시멘트 자전거도로 반대 구례군민협의회’는 전남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주민의견 무시, 생태경관 파괴, 관광자원 포기하는 섬진강 둑길 시멘트 포장 반대한다”며 “당장 시멘트를 걷어내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구례군청과 장터에서 1인 시위 및 서명운동을 전개하며 지난 18일에는 경찰서 앞 로터리에서 섬진강문화제를 열기도 했다.

구례 구간의 잔디밭 둑길은 섬진강과 지리산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구례군의 자랑이자 생명줄과도 같은 곳이다. ‘수달 서식지 생태경관 보전지역’인 데다 상수원 보호구역이기도 하다. 이미 오래전부터 걷거나 자전거를 타기에 너무나 멋진 둑길이었기에 지리산 둘레길이 개통된다면 지리산과 섬진강이 만나는 이 길이 가장 인기를 끌 수밖에 없는 길이었다. 문척면 죽마리 강둑길 바로 옆에 사는 조성봉 감독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 길을 걷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잘 다녔는데 국민 혈세로 시멘트를 처바르고 이 무슨 미친 짓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7년 전부터 이 마을에 들어와 다큐멘터리 <진달래 산천>을 찍고 있다. “저들의 말을 그대로 쓰더라도 이 강둑길은 이미 ‘저탄소 녹색’이었으며 ‘자전거 타는 재미를 색다르게 느낄 수 있는 이미 충분히 환경친화적’인 곳이다. 구례군마저 ‘자연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자연을 말아먹는 길’을 선택했다.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죽마리 이장도 한 말씀 했다. “그런 식으로 시골에 산다고 얼렁뚱땅 넘어가려 한다면 큰 오산이제. 흙을 돋궈가지고 잔디를 더 잘 살려부러서 자전거 길을 만들야제 이 무슨 놈의 행패여”라고 하자, 구성리 이장 또한 “이런 놈의 사업이 어디 있으까이. 아 멀쩡한 길에 쎄멘을 퍼붓고, 뭔 지랄이여. 이 정부가 워낙 쎄멘을 좋아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나 참”하며 한숨을 쉬었다. 1인 시위에 나선 김세리씨는 “난 이 길을 정말 사랑해요. 그래서 오늘도 나왔어요. 사랑은 가슴이 시키는 대로 그렇게 지키고 가꾸는 거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지리산과 섬진강을 보며,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강둑길을 거닐 때면 참으로 행복했어요”라며 끝내 울먹거렸다.

나 또한 문척면 죽마리와 토지면 용두리에 몇 년간 살아봤다. 강둑길을 산책하며 시를 쓰고 ‘지리산 편지’를 썼다. 언제 어느 때든 행복한 길이었다. ‘지리산 둘레길’의 미개통 구간을 제안하며 지난 2년간 세 바퀴를 걸어서 돌 때도 구례구간의 순환코스인 이 강둑길을 적극 추천했다. 아무리 보아도 구례군의 섬진강 둑길은 축복받은 길이었다. 그러나 ‘축복’이 ‘재앙’으로 변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구례군민들은 단지 섬진강 둑길이 예전처럼 안전하고, 걷기 좋고, 아름다운 길로 남아 있기를 바랄 뿐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고 섬진강 시멘트 자전거도로는 4대강 사업의 ‘바로미터’가 아닐 수 없다. 이 시멘트 자전거도로를 보면 4대강 사업의 진면목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전국의 모든 비포장 강둑길이 사라지고 자전거도로의 이름으로 포장된다니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7일 “4대강 사업이 되면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강산개조의 꿈이 이뤄지는 것이고, 그러한 꿈에 도전하는 긍지를 가지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 후보 시절 ‘안창호씨’라고 해 물의를 빚은 그가 국가 백년대계인 ‘강산개조’를 단 3년 만에 해치우는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 아전인수와 곡학아세를 넘어 왜곡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죽더라도 거짓이 없으라.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안창호 선생의 말씀이 귓전을 울린다. 아무 죄도 없는 자전거, 그들만의 자전거가 무서운 거짓말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