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원규의 길인생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길·人·생](10) 하동군 옥종딸기마을

이원규 | 시인

ㆍ“한겨울 딸기가 효자효녀 아입니꺼, 참말로 살맛납니더”

1년 동안 장장 1만리를 걸은 적이 있다. 2004년 도법·수경 스님과 함께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나부터 평화가 되자”며 ‘생명평화 탁발순례’ 길에 올랐다. 꽃샘추위 속에 지리산 노고단에 예를 갖춘 뒤 ‘밥을 주면 밥을 먹고, 돌을 던지면 돌을 맞는 풍찬노숙의 세상 공부이자 세상 구경’이었다. 지리산의 마을 마을을 돌아 45일 동안 1500리를 걷고 제주도와 부산, 그리고 경남지역 면단위 곳곳의 마을들을 모두 걸었다.

친환경 무공해 딸기가 겨울 한기를 이기며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다. | 이원규 시인 촬영


20일쯤 걸어 경남 하동군 옥종면에 도착했을 때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온 들판을 가득 메운 딸기 비닐하우스였다. 겨울철 주소득원이자 옥종면의 자랑거리였다. 대개의 농촌 면단위 초등학교는 신입생이 대여섯 명에 불과하거나 아예 폐교되는데 비해 옥종면은 37명이나 된다고 했다. 물론 중학교와 고등학교도 여타 지역처럼 폐교되기는커녕 오히려 공모제 교장을 뽑는 등 활기를 띠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을 불러온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고소득 작물인 딸기 때문이었다. 딸기가 절망에 빠져 도시로 떠나려는 젊은이들의 발목을 잡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귀농·귀촌자들을 불러들인 것이다.

옥종면의 한 마을에서 만난 할머니는 “아이고, 어젯밤 꿈에 흰 고사리 두 개가 보여서 대체 먼 일일까 궁금도 했는데, 이렇게 큰 시님 두 분을 만날라꼬 그랬다카이. 큰 시님, 옛날 산딸기 얘기는 효자 아들을 고상시켰지만, 뭐라케도 옥종 딸기야말로 목숨부지 농민들의 효자효녀 아입니꺼”하며 합장을 했다. 그리고는 서둘러 부엌에 들어가더니 한사코 두어 됫박 쌀까지 내어줬다. 그날 저녁 귀농한 젊은 부부가 직접 수확했다며 가져온 딸기는 그야말로 꽃샘추위를 단번에 몰아내는 솜사탕 같은 것이었다. 식탐이 없는 두 스님도 마치 지친 몸에 불로장생 보약이라도 되는 듯 극찬을 하며 입맛을 다셨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딸기를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지 않는 사람 중 누가 더 나은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딸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싫어하는 사람이 누릴 수 없는 행복을 맛볼 수 있다.” 단순하지만 참으로 멋진 말이다. 더구나 북풍한설 몰아치는 한겨울에 딸기를 먹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이미 옥종면에서는 지난 11월1일부터 전국에서 처음으로 딸기 출하를 시작했으며 내년 4∼5월까지 이어진다니 그 기회는 더 많아졌다.

옥종딸기마을인 북방리 비닐하우스에서 만난 하영재씨(63·전 이장)는 “초창기부터 했으니 한 20년 넘게 딸기농사를 지었지예. 참으로 1년 내내 손질이 마이 갑니더. 오죽하면 1년에 14개월 농사라 할까. 올봄에는 때 아닌 한파로 망쳤는데, 오늘은 그래도 많이 따서 50상자나 출하했다 아입니꺼. 요즘 시세가 좋아 한 상자에 만오천원이니 참말로 살맛납니더. 날마다 이 정도 나오면 좋겠지만” 하며 환하게 웃었다. 농부라기보다는 마치 성실한 공무원 인상에 가까운 하씨는 5개 동의 비닐하우스를 갖고 있다. 그는 투박한 손으로 딸기 네 개를 따서 맛 좀 보라고 자신 있게 권했다. “옥종 딸기는 그냥 먹어도 괜찮심더. 하우스마다 벌을 키우며 자연수정한 친환경 딸기, 무공해 딸기라카이.”

하씨는 20년 노하우의 딸기농법을 묻기도 전에 일사천리로 말했다. “유황오리 알지예? 농약 대신 그 유황으로 훈증을 해서 딸기에 치명적인 흰가루병 등의 병충해를 막십니더.” 그는 유기농 자재로 인정받은 유황의 훈증은 비용과 노력을 줄일 수 있는 친환경농법이라고 했다. “우리 마을은 비닐하우스 온도관리를 위해 따뜻한 지하수와 보일러를 사용합니더. 무엇보다 꿀벌 방사로 자연 수정토록 하는데다 천치식 개폐기로 환기를 철저히 해 과일이 단단하고 자연 그대로의 향과 맛이 살아있습니더. 그기 바로 우리 딸기마을의 자부심 아입니꺼. 하우스마다 꿀벌을 기르며 가급적 재배시에는 농약을 치지 않는데, 농약을 치면 벌이 고마 팍 죽어버리겠지예? 모든 식물이 그렇지만 우리 인간들도 벌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금방 죽십니더. 요즘 지구상의 벌이 자꾸 죽어간다 카는데 참말로 내사 걱정입니더.”

아주 바쁠 때가 아니면 아내와 단둘이 농사를 짓는다는 그는 “모든 농사가 고되고 힘들지만서도 딸기농사는 일일이 사람이 손으로 직접 해야 하니 무지하게 힘이 들지예. 그래도 땀 흘린 만큼 보람도 있고 또 해볼 만한 농사 아입니꺼” 하며 경운기의 시동을 걸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20년째 딸기 농사를 짓고 있는 하영재 전 옥종마을 이장이 한겨울 딸기를 따고 있다. 그에게 딸기는 단순한 ‘과일’을 넘어 희망이며 보람이다. | 이원규 시인 촬영

면소재지에서 6㎞쯤 떨어져 있는 북방리는 토동(土洞)·신촌(新村)·불무(彿舞) 3개의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지리산 천왕봉의 정기가 흐르는 덕천강 유역의 기름진 땅과 맑은 물, 맑은 공기, 풍부한 햇볕으로 재배하는 옥종딸기는 풍부한 영양과 당도가 높고 향기가 좋아 전국적으로 인기가 높을 뿐 아니라 일본까지 수출한다고 했다.

딸기가 자라기에 적당한 온도는 낮 17∼18도, 밤 8도 내외인데 20도 이상이면 자라기에는 나쁘지만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 크고 맛있게 되는 데에는 좋다. 딸기는 습기를 좋아하며 비교적 추위에 잘 견디기 때문에 저온재배도 가능하다. 하동의 여러 면 중에서도 가장 추운 옥종면의 덕천강 유역이 딸기재배의 최적지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39명의 회원을 둔 옥종딸기마을 북방작목반의 신영희 반장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고품질의 딸기를 생산하기 위해 신기술 도입과 습득에 게을리하지 않고 있으며 공동출하 및 판로개척에도 힘쓰고 있다”고 했다. 부녀회장인 정연희씨는 딸기 손질과 보관법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딸기는 꼭지가 싱싱하고 광택이 있으며 붉은 기가 꼭지까지 퍼져있는 것이 잘 익고 신선한 것이라예. 저장할 때엔 꼭지를 떼지 말고 랩을 씌워 냉장고에 그대로 보관하는 게 좋지예. 물에 닿으면 곰팡이가 생기고 상하기 쉽습니더. 30초 이상 물에 담그면 비타민C가 유실되므로 씻을 때는 꼭지를 떼지 말고 소금물로 빨리 헹궈 물기를 빼는 게 좋지예.”

알칼리성 식품인 딸기는 과실 중에서도 비타민C가 가장 많이 들어있다는데, 보통 귤 100g에 비타민C가 30mg가량 들어있다면 딸기에는 80mg이나 들어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하루 필요량이 50mg, 미국에서는 60mg으로 설정하고 있으므로 웬만한 딸기 4~5개만 먹으면 성인의 하루 필요량이 충분한 셈이다. 겨울철 딸기가 조금은 비싼 듯하지만 더없이 소중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옥종딸기마을은 딸기 생산뿐 아니라 잔디와 부추·시금치·수박 등도 생산하는데, 이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이 있으니 바로 ‘딸기 체험장’을 운영해 소비자들과 직접 소통을 시도한 것이다. 가족 및 단체 방문객을 대상으로 딸기 따기·얼음썰매 타기·연날리기·짚공예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체험객이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한 참가자는 “두 번이나 갔는데 넘넘 즐거운 추억 만들고 왔습니다. 그런데 쌀까지 보내주시다니요? 아, 이 고마움을 어떻게. 더구나 택배가 한번 반송되었는데, 다시 전화해서 보내주시다니. 내년 초에도 꼭 찾아뵙겠습니다” 하고 홈페이지에 방문후기를 남겼다.

이종현 하동군 홍보계장은 “옥종딸기마을 40여 농가와 인근의 300여 농가가 177㏊에서 재배하는 하동 특산물 딸기는 연간 200억원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효자종목”이라고 했다. 하동군은 여느 군보다 더 많은 세 군데의 특산품 정보화마을이 있는데 ‘쌍계사 벚꽃 십리길’의 삼신녹차마을,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인 악양대봉감마을, 그리고 옥종딸기마을( http://okjong.invil.org)이 있다. 특히 겨울철이면 악양면 대봉감의 홍시·곶감과 옥종면 딸기의 인기가 높다.

하지만 옥종딸기마을에도 농민들의 한 서린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배추값 오르니깐 난리더만, 쌀값 떨어지니 물가안정이란다. 농민은 어찌 살꼬. 쌀이 웬수다. 나랏님이 웬수다.”(하동군농민회) 다소 격하지만 농촌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문구가 아닐 수 없다. 배가 고프면 먼저 쌀밥을 먹은 뒤에야 맛난 딸기를 먹는 법. 천덕꾸러기 쌀은 농협 창고에서 썩어 가는데 수입쌀은 자꾸 들어오고, 통일은 더 멀어졌다.

산중 깊숙이 숨어든 수경 스님은 조계종단의 때늦은 결단을 알고나 있을까. 스님에게 옥종딸기 한 상자라도 보내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진정한 ‘행불자’(行佛者)인 그의 현주소는 아직 이 땅 어디에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