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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사 여행스케치

[오기사의 여행스케치]공간의 프레임 -바르셀로나

오영욱 | 건축가·일러스트레이터


비밀이 담겨 있는 공간을 좋아합니다. 가령 밖에서 보면 3층인데 사실은 숨겨진 4층이 있는 건물 같은 것 말이지요. 비밀은 간직할 때 아름다울 테지만 솔직히 비밀을 캐는 건 즐거운 일입니다.

“너한테만 말하는 건데….”

바르셀로나 구시가에 있는 작은 건물 하나가 슬쩍 말을 걸어옵니다.

“사실 나는 과거가 있어.”

1층 카페에서 우유를 듬뿍 탄 커피를 마시다 말고 나는 고개를 듭니다. 낡은 건물에 전형적으로 모던하게 인테리어를 한 곳입니다. 문득 카페 중앙을 가로지르는 고전 양식의 기둥과 아치가 다시 보입니다. 20세기 초에 지어졌을 평범한 건물과는 어울리지 않게 재료가 대리석입니다.

“난 예전에 잘 나가는 건물이었는데 사고를 쳐서 다 부서지고 1층의 기둥만 남아서 새로운 건물을 받치고 있는 신세야. 흑흑.”

옛 건물의 흔적이 남겨진 공간에는 시간의 깊이가 담겨 있습니다. 수백년 된 기둥과 트렌디한 인테리어의 조화는 일부러 만들어낼 순 없는 거지요.

수백년 된 것들이 거리에 즐비한 유럽의 옛 도시이기에 이런 작은 발견은 개인적인 소소한 즐거움으로 끝납니다. 하지만 유명한 유적이 줄 수 없는 은밀한 기쁨이 있습니다. 나는 대통령의 비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보단 옆 사무실에 새로 들어온 예쁜 직원의 비밀이 더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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