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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에 대하여

[여적]표절

김태관 논설위원

몇 년 전 어느 학교에서 있었던 실화라고 한다. 국어선생님이 시를 지어 오라는 숙제를 냈는데, 눈에 확 띄는 시가 있었다. 학교에서도 문제아로 소문난 학생이 제출한 시였다. 선생님은 감동어린 목소리로 그 시를 낭송했다. “어려서부터 우리집은 가난했었고/…어머님이 비상금으로 시켜주신 자장면/ 하지만 어머님은 왠지 드시질 않았어/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선생님은 진지한데 학생들은 자지러졌다. “야이야아아/ 그렇게 살아가고…”하는 대목에선 교실이 뒤집어졌다. 누구나 다 아는 god의 ‘어머님께’라는 노래인데, 고지식한 선생님만 몰랐던 것이다.

이런 표절은 장난기 가득한 학생만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볼테르 같은 작가도 종종 남의 글을 은근슬쩍 베꼈다고 한다. 한번은 볼테르의 비극 공연을 본 한 시인이 자신의 시를 도용했다며 항의했다. “당신처럼 재주 많은 사람이 왜 남의 재산에 손을 대시오?” 볼테르가 태연하게 맞받았다. “아, 그래요? 그렇다면 안심입니다. 이 연극은 제 작품들과 달리 실패를 했으니 말입니다.”

“미숙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능숙한 예술가는 도용한다”는 말이 있다. 예술의 세계에서 모방과 표절 사이의 경계는 모호하다. 그래서인가. “한 작가에게서 도둑질하면 표절이요, 여러 작가에게서 도둑질하면 명작이다”라는 명언(?)도 널리 회자된다. 걸작과 졸작의 차이는 어쩌면 남의 것을 훔치는 기술의 차이인지도 모른다.

해 아래 새것은 없다고 한다. 솔로몬의 잠언을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도 표현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중고품이다.” 풍자가였던 그에 따르면 “표절 운운하는 것은 웃기는 호들갑”이다. 세상에 독창적인 것은 없으며, 내 생각도 실은 누군가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은 자신의 글도 자기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과거에 읽은 책들로부터 빌려온 이런저런 문장들, 그런데도 우리 것이라고 착각하는 문장들로 우리의 문학이 채워지고 있다.”

소설 <강남몽>의 표절 의혹에 대해 황석영씨가 “출처를 안 밝힌 것은 불찰”이라고 해명했다고 한다. 황석영의 오랜 독자들에게는 찜찜한 게 또 있다. <강남몽>이 왠지 그의 작품 같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황석영 없는 ‘황석영 소설’이라는 비판이다. 그렇다면 표절 논란 또한 정색하면 할수록 우스워지는 호들갑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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