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팀 http://wherelive.khan.kr
ㆍ20대 - 비싼 월세 부모님 신세… 세입자 배려 정책을
ㆍ30대 - 민간아파트 너무 비싸, 공공주택 대폭 늘려야
ㆍ40대 - 임대주택 오래 거주할수록 인수 조건 유리하게
ㆍ50대 - 안정적인 노후 보내도록 소형임대 많이 지어야
소위 재테크 전문가들은 ‘20대에 20평, 30대에 30평, 40대에 40평을 마련하겠다는 목표를 세워야 한다’고들 한다. 나이와 비례해서 집을 키워야 성공한 삶이라는 얘기다. 현실에선 꿈 같은 얘기에 불과하다. 20대에 취업전쟁을 치르고 30·40대에는 내 집 마련에 허덕이다 50대에 일자리를 잃는 게 필부필부(匹夫匹婦)의 삶이다. 집 때문에 고민하는 그들은 어떤 주택 정책을 원하는가. 6·2지방선거에 출마한 정치인들은 그들의 애로점과 바람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경향신문은 20~50대 서민들의 목소리를 통해 세대별로 희망하는 주택·부동산정책의 지향점을 들어봤다.
■ 20대
혼자사는 대학생·직장인 자취보증금 대출제, 월세제한 정책 있었으면
“옥탑방 월세가 한 달에 37만원이고 용돈으로 30만원을 씁니다. 과외 아르바이트로 30만원을 벌고, 대구에 계신 부모님이 모자란 생활비를 부쳐주고 계세요. 작년부터 옥탑방에서 지내는데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엄청 더워요. 하지만 다른 곳보다 싸니까 울며 겨자먹기로 사는 거죠. 계약기간이 끝나면 다른 곳으로 옮길 생각이지만 친구들을 보니 보통 월세 45만원은 돼야 괜찮은 집을 구할 수 있다는데 걱정이에요.”
고려대에 다니는 신은정씨(22)는 대학에 들어온 뒤 비싼 방값이 늘 부담스럽다. 대구에서 장사를 하는 부모님이 매달 월세 비용을 보내주는 것도 미안할 뿐이다. 재정적으로 부담이 덜한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면 좋겠지만 학생들 수요에 비해 공급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보니 그것마저 쉽지 않다. 지방에서 온 학생들은 한결같이 신씨와 비슷한 고민들을 하고 있다.
“얼마전 신문을 보니 기숙사가 8.9%밖에 수용을 못한대요. 학교에서 재정적으로 기숙사를 더 지을 수 없다면 성북구나 서울시가 나서서 지방 학생들을 위해 살 곳을 제공해 줬으면 좋겠는데…. 그런 제도가 없는 게 늘 아쉬워요.”
신씨는 부모님이 자신 명의의 청약통장에 매달 돈을 넣어주신다고 했다. 내집 마련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막연하게는 30대 중반쯤이면 집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는 “학교에서 주택은 사적 소유의 개념과 더불어 공적 소유의 개념이 공존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일산에 사는 대학생 신승헌씨(20)도 혼자 사는 대학생들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0대 대학생들을 위해 자취 보증금을 대출해주는 제도가 있었으면 해요. 학교 총학생회가 대학생 임대주택 공약을 추진하고 있는데 꼭 실현됐으면 좋겠어요.” 신씨는 최근 정부가 건설업체들의 자금난 해소를 위해 또 한차례 미분양 주택을 매입키로 한 것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갖고 있다. 그는 “주택가격이 떨어지는 건 경제 흐름상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저소득층을 위해서도 가격이 떨어지는 게 맞는 것 아니냐”며 “정부가 미분양 주택을 사들이는 것은 시장을 왜곡하고 세금을 낭비하는 잘못된 정책”이라고 했다.
대학시절부터 서울에서 월세를 살고 있는 황모씨(28)는 매달 50만원 정도를 월세와 관리비로 낸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결혼 준비도 해야 하는데 매달 적지 않은 돈이 집세로 나가는 게 너무 아깝고 부담스럽다고 했다. “서울에 살면서 집을 다섯 번이나 옮겼어요. 돈 규모에 맞추면 지하방이고, 월세가 맞으면 보증금이나 관리비가 비싸고 해서죠. 대학때부터 월세로 살았는데 고스란히 부모님 부담으로 돌아갔어요. 20대부터 이런 불안정한 삶은 결혼 시기를 늦추고 저출산 문제에도 영향을 줄 거라고 봐요.” 황씨는 월세 제한 정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위치, 형태 등에 따라 평당 몇만원을 초과할 수 없다, 관리비는 얼마를 초과할 수 없다는 세부적인 기준이 있었으면 합니다. 월세라는 게 전세조차 얻을 수 없는 서민들이 사는 건데, 그 임대수익이 누군가에게는 투자수단이 되고 노후대책이 된다는 게 씁쓸합니다. 없는 사람 이용해 돈 있는 사람들만 배불리는 식이 돼버리는 것 아닌가요.”
대학 졸업을 앞둔 임재홍씨(27)는 매달 5만원씩 청약통장에 넣고 있다. 큰돈은 아니지만 미래를 위해 뭔가 하고 있다는 위안이 된다고 한다. 취업을 하면 월급의 절반 정도는 주택마련을 위해 저축할 계획이다. “아파트 광고를 보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죠. 실제 그런 아파트에 살 수 있는 사람이 전 국민의 몇 %나 되겠어요. 재개발을 하면서 용적률을 높여 아파트를 높게 올리는 데에는 기본적으로 동의해요. 더 많은 사람이 들어가 살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원주민들이 다시 들어가지 못하고 세입자들이 내몰리는 문제에 대한 정부 해결책이 별로 효과적이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워요. ”
■ 30대
청약 당첨돼도 빚에 허덕, 집값하락 피부로 못 느껴… 보금자리 주택 투기 제재를
“청약에 당첨된다고 해도 1억원 넘게 대출을 받아야 하고 원금·이자 갚느라 고생할 것 생각하니 이렇게 해서 집을 꼭 가져야 하나 싶더라고요. 서민을 위한 아파트라 해놓고 분양가는 2억~3억원을 웃돌고…. 이게 무슨 서민을 위한 정책인지. 대출받아 집 갖는 거 자체가 폭탄을 껴안은 꼴이 될 것 같아서요. 친구들과도 대출이자 갚느라 허덕이는 것보다 전세금 불려가며 사는 게 낫지 않으냐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내 자식한테 물려줄 집 하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죠.”
손씨는 청약통장 불법 거래가 횡행하거나 돈 있는 사람들이 교묘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정책이 아닌 진정 서민을 위한 정책이 나오길 바란다고 했다. “집주인들은 집값이 올랐다 싶으면 전화해 몇 천만원씩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합니다. 세입자를 위한 정책이 좀 더 마련됐으면 해요.”
지방에서 대학을 나온 뒤 서울에서 취업해 6년째 혼자 살고 있는 직장인 김모씨(30)도 세입자를 배려하는 정책을 희구했다. “한달 월급이 세금 떼고 120만원 정도 됩니다. 구로동에서 월세를 사는데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30만원, 관리비 8만원입니다. 월급으로 생활비, 부모님 용돈, 교통비, 휴대폰비, 월세 내면 정말 남는 것도 없어요. 월세로 전전하고 있는 서러움이 커요. 작년에 월세 소득공제가 도입된다고 해서 집주인한테 전화했더니, 신고할 거면 방 빼라고 하더군요. 세입자들 권리 보장하겠다고 정부가 소득공제 도입한 거 좋습니다. 하지만 집주인들은 월세를 전세로 돌려버리거나, 아예 세금까지 더해 월세를 많이 받으려고 합니다. 결국 세입자들만 힘들게 되는 거죠.”
30대들은 서민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공공주택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직장인 송모씨(37·서울 염창동 전세 거주)는 “민간에서 분양하는 아파트는 너무 비싸다”며 “도시 서민들이 싼 값에 입주할 수 있는 장기공공임대주택이나 반값 아파트의 공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씨는 현 정부의 주택정책에 대해서도 매우 잘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종부세 폐지는 크게 실망스럽다. 종부세를 내는 사람이 과연 대한민국의 몇 %나 되며 그들에게 부과되는 세금이 과하다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주부 윤유경씨(36·경기 평택 전세 거주)도 보금자리주택 등 공공주택 정책에 대한 아쉬움을 피력했다.
“돈 있는 사람들이 명의만 바꿔 보금자리주택을 사두는 경우가 있다는데, 정말 화가 납니다. 정부는 종부세법도 바꿔 과세기준을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올렸는데, 이는 돈 있는 사람을 위한 정책 아닌가요. 보금자리주택을 투기 목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에 대해 강하게 제재해야 한다고 봅니다. 또 실수요자 서민들이 살 수 있도록 공공주택을 더 많이 지었으면 좋겠어요.”
반지하집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송모씨(32). 그는 없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주거환경은 갖추고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집값이 떨어진다, 종부세가 어떻다 하지만 저에겐 하나도 와닿지 않고 알 필요도 없어요. 장마철에는 물이 새서 물 퍼내는 게 일이고, 하수구가 막히면 역류해 화장실 바닥이 흥건하고…. 이런 곳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아 출산도 미루고 있어요. 저 같은 사람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근본적인 정책을 원합니다.”
■ 40대
서민 많은 비강남지역‘보금자리’ 공급 늘리고 건설폭리 철저히 막아야
관악구 중앙동에 사는 김인영씨(41)는 정치인들의 선거 공약이나 개발 소문 때문에 무주택자들은 더 힘들어진다고 느낀다. ‘2년 전 집값이 두배 뛰었어도 사뒀어야 하나, 요즘 가격이 내린다는데 안 사길 잘한 건가’ 여전히 고민이 많다.
김씨는 지난해 가을 경기도 하남 미사지구 보금자리주택의 노부모부양 특별공급에 청약을 넣었다 떨어졌다. 이후에도 보금자리주택을 눈여겨보고 있는데, 여러 면에서 아쉬운 점이 많다. “2차 지구를 보니 노부모부양 특별분양 물량이 1차 때보다 줄었더라고요. 분양가도 더 올랐고요. 부천 옥길지구와 광명시흥지구에 관심이 있는데 뉴스를 보니 분양가가 시세의 90%로 거의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3차 청약 때에는 더 많이 오르지 않을까 걱정스럽죠. 평당 10만~20만원 차이라도 없는 사람한테는 큰돈이잖아요.” 김씨는 서민들을 위한 보금자리주택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으려면 분양가가 시세의 70%선은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비싼 강남 지역보다는 서민들이 쉽게 들어갈 수 있는 비(非)강남 지역에서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장인 김일용씨(42)는 전세로 결혼생활을 시작했고 이후에도 굳이 무리해 집을 살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아내와 공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딸아이(6)가 크면서 김씨 부부는 고민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애가 크니까 이사를 하면 아이의 놀이터와 친구가 없어지는 문제가 생기더군요. 예전 살던 곳에서 불과 1㎞ 거리이고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는데도 아이는 자기가 놀던 곳이 아니니까 이사 가기 싫다고 해요. 아이 불만이 커지니까 집을 사야 하나 싶죠. 그런데 주택 가격이 너무 높으니까 엄두가 안나요. 안정적으로 오래 살 수 있는 임대주택에 들어가면 좋겠어요. 지금 나오는 보금자리주택도 서민들에게는 너무 높아요. 임대주택에 오래 산 사람이 나중에 인수하길 원하면 좋은 조건으로 살 수 있게 하는 게 진정한 보금자리 아닐까요.”
김씨는 무엇보다 부동산에 대한 시각과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동산에 대한 관점을 소유와 재산에서 거주 개념으로 바꾸고 싼 집을 많이 지어줘야 한다는 얘기다. 다주택자에 대해선 세금도 더 걷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성동구 금호동의 연립주택에 사는 김순경씨(45). 전세를 살다 결혼 8년 만인 2004년 내 집을 마련해 들어왔다. 당시 집값의 절반 정도를 대출받았고, 지금은 거의 갚은 상태다. “월 수입이 400만원 정도 되는데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6학년생인 두 아들 사교육비로 꽤 많이 나가서 주택에 다시 돈을 투자하긴 어려울 것 같아요. 지금 집이 5층짜리 연립주택의 최고층인데 엘리베이터가 없어 불편하긴 하지만 반지하 살 때를 생각하며 만족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지금으로선 다른 곳으로 이사갈 생각도 별로 없어요.”
김씨는 주변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 중 아직 자기 집이 없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운 심정이 든다고 한다. 마흔이 넘어서도 집을 마련하지 못하면 그때부터는 아이들 교육비나 생활비로 주택 자금 모으기가 더 힘들어지는 만큼 정부가 도와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얼마 전 신문을 보니 술, 담배 세금 인상한다던데 서민들이 많이 쓰는 데에서 세금 많이 걷지 말고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야 형평성이 있는 것 아니냐”며 “무주택자들을 위해 정부에서 장기임대주택이나 시프트 같은 걸 많이 제공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직장인 김명일씨(41)는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아무리 토건대통령이라지만 건설사들의 폭리를 왜 눈감아 주는지 답답합니다. 보금자리주택도 무늬만 보금자리지 최고 4억8000만원까지 간다던데 민영아파트랑 다른 게 뭡니까. 이름만 그럴듯하게 지어서 보여주기식 정책만 펴는 것 같아요. 건설사 폭리를 철저히 막고, 실수요자들이 누릴 수 있는 알찬 정책들이 나왔으면 좋겠네요.”
■ 50대
은퇴후 생활자금 위해있는 집도 팔아야 할 처지… 실버타운은 꿈도 못꿔
서울 강서구에 사는 김영진씨(54)도 비슷한 생각이다. 김씨는 108㎡(32평형)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다. “집값이 많이 오르는 것도, 많이 떨어지는 것도 원치 않습니다. 집을 팔고 새로 이사할 일도 없고, 또 결혼을 해야 하는 딸들이 집 때문에 고생하는 모습도 보고 싶지 않아요. 침체된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시키되 투기가 이뤄지지 않도록 하고, 실수요자를 위한 정책이 많이 나왔으면 합니다.”
대구 수성구에서 25년째 전세를 사는 김호연씨(57)는 고등학생인 둘째 아이가 대학에 진학하면 시골로 내려갈 생각이다.
중소기업에 다니다 얼마 전 건강 문제로 퇴직을 하고 지금은 아내가 버는 150여만원이 가계의 총수입이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큰아이에게 매달 100만원 정도 지출되다보니 내 집 마련은 거의 포기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청약통장에 계속 저축을 했지만 집안일과 애들 교육 투자 때문에 중간에 해약했어요. 지금은 내 집 마련을 위해 하고 있는 게 없죠. 대구는 서울보다 집값이 싼 편이긴 하지만 저 같은 계층의 사람들에게는 정부에서 장기임대주택을 제공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수성구는 대구에서도 집값이 비싼 편인데 주변에 보면 임대주택이 아예 없는 것 같아요.”
김씨는 한나라당 지지자이지만 현 정부의 주택정책에 대해선 비판적이라고 했다. “부자들 세금은 내리고 서민들 세금을 올리는 건 부당하다고 느껴요. 버는 만큼 내는 게 당연하지 않나요. 요즘 채소값도 엄청 오르고 지난 겨울엔 기름값도 상당했어요. 저 같은 저소득층은 정말 돈이 없어 못내는 거예요.”
부천에서 야채 가게를 하는 김성희씨(58)는 최근 인근 시장 일대를 뉴타운으로 개발하기 위한 추진위원회가 꾸려졌다는 소식에 한숨만 나온다고 했다. 뉴타운이 되면 부동산 가격이 올라 좋다고들 하지만 세입자인 김씨는 보상금이 얼마나 나올지, 어디 가서 다시 장사를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김씨는 “지금 그럭저럭 먹고 살 만한 편인데 개발되면 어디 가서 정착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지금 이대로가 제일 좋다”고 말했다.
경비원으로 일하는 이영호씨(59)는 노후생활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 강서구 화곡동에 빌라 하나를 갖고 있지만 노후 자금을 위해 처분할 계획이라고 했다. “나이가 들면서 심각하게 노후에 대해 고민을 하게 돼요. 벌어들일 수 있는 역량에 한계가 있으니까요. 지금이야 경비나 주차관리 일이라도 하지만 나이가 더 들면 동사무소에서 하는 공공근로 같은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올해 안에 집을 팔아 전세로 옮기고 택시 한대 사서 돈을 벌어볼까 생각 중입니다. 돈 많은 사람들은 편하게 노후 보내려고 실버타운 같은 데에 들어가지만 거긴 한 달에 250만~300만원씩 든답니다. 서민으로선 꿈도 못꾸죠.” 이씨는 노후를 안정적으로 보낼 수 있도록 임대주택의 소형 평형이라도 조건을 까다롭지 않게 해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루 4시간씩 청소일을 하며 월 60만원을 받는다는 여모씨(64)도 비슷한 소망을 갖고 있었다.
“근근이 살면서도 세금은 밀린 적 없이 꼬박꼬박 냈는데 제가 누릴 수 있는 정책은 없네요. 지금 사는 다세대주택을 팔아 둘째 아들 결혼비용 보태주고 나면 지방으로 내려가 살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방의 병원 인근으로 10평이라도 노인들이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임대주택이 많이 지어졌으면 하는 바람이죠.”
ⓒ 경향신문 & 경향닷컴
ㆍ30대 - 민간아파트 너무 비싸, 공공주택 대폭 늘려야
ㆍ40대 - 임대주택 오래 거주할수록 인수 조건 유리하게
ㆍ50대 - 안정적인 노후 보내도록 소형임대 많이 지어야
소위 재테크 전문가들은 ‘20대에 20평, 30대에 30평, 40대에 40평을 마련하겠다는 목표를 세워야 한다’고들 한다. 나이와 비례해서 집을 키워야 성공한 삶이라는 얘기다. 현실에선 꿈 같은 얘기에 불과하다. 20대에 취업전쟁을 치르고 30·40대에는 내 집 마련에 허덕이다 50대에 일자리를 잃는 게 필부필부(匹夫匹婦)의 삶이다. 집 때문에 고민하는 그들은 어떤 주택 정책을 원하는가. 6·2지방선거에 출마한 정치인들은 그들의 애로점과 바람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경향신문은 20~50대 서민들의 목소리를 통해 세대별로 희망하는 주택·부동산정책의 지향점을 들어봤다.
■ 20대
혼자사는 대학생·직장인 자취보증금 대출제, 월세제한 정책 있었으면
고려대에 다니는 신은정씨(22)는 대학에 들어온 뒤 비싼 방값이 늘 부담스럽다. 대구에서 장사를 하는 부모님이 매달 월세 비용을 보내주는 것도 미안할 뿐이다. 재정적으로 부담이 덜한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면 좋겠지만 학생들 수요에 비해 공급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보니 그것마저 쉽지 않다. 지방에서 온 학생들은 한결같이 신씨와 비슷한 고민들을 하고 있다.
“얼마전 신문을 보니 기숙사가 8.9%밖에 수용을 못한대요. 학교에서 재정적으로 기숙사를 더 지을 수 없다면 성북구나 서울시가 나서서 지방 학생들을 위해 살 곳을 제공해 줬으면 좋겠는데…. 그런 제도가 없는 게 늘 아쉬워요.”
신씨는 부모님이 자신 명의의 청약통장에 매달 돈을 넣어주신다고 했다. 내집 마련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막연하게는 30대 중반쯤이면 집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는 “학교에서 주택은 사적 소유의 개념과 더불어 공적 소유의 개념이 공존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일산에 사는 대학생 신승헌씨(20)도 혼자 사는 대학생들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0대 대학생들을 위해 자취 보증금을 대출해주는 제도가 있었으면 해요. 학교 총학생회가 대학생 임대주택 공약을 추진하고 있는데 꼭 실현됐으면 좋겠어요.” 신씨는 최근 정부가 건설업체들의 자금난 해소를 위해 또 한차례 미분양 주택을 매입키로 한 것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갖고 있다. 그는 “주택가격이 떨어지는 건 경제 흐름상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저소득층을 위해서도 가격이 떨어지는 게 맞는 것 아니냐”며 “정부가 미분양 주택을 사들이는 것은 시장을 왜곡하고 세금을 낭비하는 잘못된 정책”이라고 했다.
대학시절부터 서울에서 월세를 살고 있는 황모씨(28)는 매달 50만원 정도를 월세와 관리비로 낸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결혼 준비도 해야 하는데 매달 적지 않은 돈이 집세로 나가는 게 너무 아깝고 부담스럽다고 했다. “서울에 살면서 집을 다섯 번이나 옮겼어요. 돈 규모에 맞추면 지하방이고, 월세가 맞으면 보증금이나 관리비가 비싸고 해서죠. 대학때부터 월세로 살았는데 고스란히 부모님 부담으로 돌아갔어요. 20대부터 이런 불안정한 삶은 결혼 시기를 늦추고 저출산 문제에도 영향을 줄 거라고 봐요.” 황씨는 월세 제한 정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위치, 형태 등에 따라 평당 몇만원을 초과할 수 없다, 관리비는 얼마를 초과할 수 없다는 세부적인 기준이 있었으면 합니다. 월세라는 게 전세조차 얻을 수 없는 서민들이 사는 건데, 그 임대수익이 누군가에게는 투자수단이 되고 노후대책이 된다는 게 씁쓸합니다. 없는 사람 이용해 돈 있는 사람들만 배불리는 식이 돼버리는 것 아닌가요.”
대학 졸업을 앞둔 임재홍씨(27)는 매달 5만원씩 청약통장에 넣고 있다. 큰돈은 아니지만 미래를 위해 뭔가 하고 있다는 위안이 된다고 한다. 취업을 하면 월급의 절반 정도는 주택마련을 위해 저축할 계획이다. “아파트 광고를 보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죠. 실제 그런 아파트에 살 수 있는 사람이 전 국민의 몇 %나 되겠어요. 재개발을 하면서 용적률을 높여 아파트를 높게 올리는 데에는 기본적으로 동의해요. 더 많은 사람이 들어가 살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원주민들이 다시 들어가지 못하고 세입자들이 내몰리는 문제에 대한 정부 해결책이 별로 효과적이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워요. ”
■ 30대
청약 당첨돼도 빚에 허덕, 집값하락 피부로 못 느껴… 보금자리 주택 투기 제재를
30대 직장인 손모씨(35)는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들을 둔 가장이다. 전세를 살고 있는 손씨는 정부의 보금자리주택 정책에 기대가 많았다. 결혼 전 가입해둔 청약통장이 있어 지난해 아내와 함께 보금자리주택 전시관을 둘러봤다. 손씨는 그러나 내 집 마련의 길이라고 생각했던 환상이 곧 깨졌다고 했다.
“청약에 당첨된다고 해도 1억원 넘게 대출을 받아야 하고 원금·이자 갚느라 고생할 것 생각하니 이렇게 해서 집을 꼭 가져야 하나 싶더라고요. 서민을 위한 아파트라 해놓고 분양가는 2억~3억원을 웃돌고…. 이게 무슨 서민을 위한 정책인지. 대출받아 집 갖는 거 자체가 폭탄을 껴안은 꼴이 될 것 같아서요. 친구들과도 대출이자 갚느라 허덕이는 것보다 전세금 불려가며 사는 게 낫지 않으냐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내 자식한테 물려줄 집 하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죠.”
손씨는 청약통장 불법 거래가 횡행하거나 돈 있는 사람들이 교묘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정책이 아닌 진정 서민을 위한 정책이 나오길 바란다고 했다. “집주인들은 집값이 올랐다 싶으면 전화해 몇 천만원씩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합니다. 세입자를 위한 정책이 좀 더 마련됐으면 해요.”
지방에서 대학을 나온 뒤 서울에서 취업해 6년째 혼자 살고 있는 직장인 김모씨(30)도 세입자를 배려하는 정책을 희구했다. “한달 월급이 세금 떼고 120만원 정도 됩니다. 구로동에서 월세를 사는데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30만원, 관리비 8만원입니다. 월급으로 생활비, 부모님 용돈, 교통비, 휴대폰비, 월세 내면 정말 남는 것도 없어요. 월세로 전전하고 있는 서러움이 커요. 작년에 월세 소득공제가 도입된다고 해서 집주인한테 전화했더니, 신고할 거면 방 빼라고 하더군요. 세입자들 권리 보장하겠다고 정부가 소득공제 도입한 거 좋습니다. 하지만 집주인들은 월세를 전세로 돌려버리거나, 아예 세금까지 더해 월세를 많이 받으려고 합니다. 결국 세입자들만 힘들게 되는 거죠.”
30대들은 서민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공공주택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직장인 송모씨(37·서울 염창동 전세 거주)는 “민간에서 분양하는 아파트는 너무 비싸다”며 “도시 서민들이 싼 값에 입주할 수 있는 장기공공임대주택이나 반값 아파트의 공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씨는 현 정부의 주택정책에 대해서도 매우 잘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종부세 폐지는 크게 실망스럽다. 종부세를 내는 사람이 과연 대한민국의 몇 %나 되며 그들에게 부과되는 세금이 과하다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주부 윤유경씨(36·경기 평택 전세 거주)도 보금자리주택 등 공공주택 정책에 대한 아쉬움을 피력했다.
“돈 있는 사람들이 명의만 바꿔 보금자리주택을 사두는 경우가 있다는데, 정말 화가 납니다. 정부는 종부세법도 바꿔 과세기준을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올렸는데, 이는 돈 있는 사람을 위한 정책 아닌가요. 보금자리주택을 투기 목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에 대해 강하게 제재해야 한다고 봅니다. 또 실수요자 서민들이 살 수 있도록 공공주택을 더 많이 지었으면 좋겠어요.”
반지하집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송모씨(32). 그는 없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주거환경은 갖추고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집값이 떨어진다, 종부세가 어떻다 하지만 저에겐 하나도 와닿지 않고 알 필요도 없어요. 장마철에는 물이 새서 물 퍼내는 게 일이고, 하수구가 막히면 역류해 화장실 바닥이 흥건하고…. 이런 곳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아 출산도 미루고 있어요. 저 같은 사람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근본적인 정책을 원합니다.”
■ 40대
서민 많은 비강남지역‘보금자리’ 공급 늘리고 건설폭리 철저히 막아야
“부모님과 전세를 살다 2008년에 빌라라도 사볼까 해서 3개월 동안 관악구에 있는 부동산중개업소를 500개쯤 돌았죠. 그런데 오세훈 시장이 관악구에 교육특구를 지정하고 봉천사거리 쪽에 영어마을을 세운다는 소문에 6개월 동안 집값이 두배가 돼 있더라고요. ‘6개월 전에만 왔어도…’라며 한탄을 했죠. 산꼭대기 빌라라도 어떻게 해보려다 포기하고 다시 전세로 들어왔습니다. 영어마을이오? 2년이 지난 지금까지 된 게 하나도 없어요. 정치인들의 말 한마디 때문에 집값이 요동치는 걸 보면 비애를 느낍니다.”
관악구 중앙동에 사는 김인영씨(41)는 정치인들의 선거 공약이나 개발 소문 때문에 무주택자들은 더 힘들어진다고 느낀다. ‘2년 전 집값이 두배 뛰었어도 사뒀어야 하나, 요즘 가격이 내린다는데 안 사길 잘한 건가’ 여전히 고민이 많다.
김씨는 지난해 가을 경기도 하남 미사지구 보금자리주택의 노부모부양 특별공급에 청약을 넣었다 떨어졌다. 이후에도 보금자리주택을 눈여겨보고 있는데, 여러 면에서 아쉬운 점이 많다. “2차 지구를 보니 노부모부양 특별분양 물량이 1차 때보다 줄었더라고요. 분양가도 더 올랐고요. 부천 옥길지구와 광명시흥지구에 관심이 있는데 뉴스를 보니 분양가가 시세의 90%로 거의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3차 청약 때에는 더 많이 오르지 않을까 걱정스럽죠. 평당 10만~20만원 차이라도 없는 사람한테는 큰돈이잖아요.” 김씨는 서민들을 위한 보금자리주택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으려면 분양가가 시세의 70%선은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비싼 강남 지역보다는 서민들이 쉽게 들어갈 수 있는 비(非)강남 지역에서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장인 김일용씨(42)는 전세로 결혼생활을 시작했고 이후에도 굳이 무리해 집을 살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아내와 공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딸아이(6)가 크면서 김씨 부부는 고민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애가 크니까 이사를 하면 아이의 놀이터와 친구가 없어지는 문제가 생기더군요. 예전 살던 곳에서 불과 1㎞ 거리이고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는데도 아이는 자기가 놀던 곳이 아니니까 이사 가기 싫다고 해요. 아이 불만이 커지니까 집을 사야 하나 싶죠. 그런데 주택 가격이 너무 높으니까 엄두가 안나요. 안정적으로 오래 살 수 있는 임대주택에 들어가면 좋겠어요. 지금 나오는 보금자리주택도 서민들에게는 너무 높아요. 임대주택에 오래 산 사람이 나중에 인수하길 원하면 좋은 조건으로 살 수 있게 하는 게 진정한 보금자리 아닐까요.”
김씨는 무엇보다 부동산에 대한 시각과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동산에 대한 관점을 소유와 재산에서 거주 개념으로 바꾸고 싼 집을 많이 지어줘야 한다는 얘기다. 다주택자에 대해선 세금도 더 걷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성동구 금호동의 연립주택에 사는 김순경씨(45). 전세를 살다 결혼 8년 만인 2004년 내 집을 마련해 들어왔다. 당시 집값의 절반 정도를 대출받았고, 지금은 거의 갚은 상태다. “월 수입이 400만원 정도 되는데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6학년생인 두 아들 사교육비로 꽤 많이 나가서 주택에 다시 돈을 투자하긴 어려울 것 같아요. 지금 집이 5층짜리 연립주택의 최고층인데 엘리베이터가 없어 불편하긴 하지만 반지하 살 때를 생각하며 만족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지금으로선 다른 곳으로 이사갈 생각도 별로 없어요.”
김씨는 주변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 중 아직 자기 집이 없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운 심정이 든다고 한다. 마흔이 넘어서도 집을 마련하지 못하면 그때부터는 아이들 교육비나 생활비로 주택 자금 모으기가 더 힘들어지는 만큼 정부가 도와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얼마 전 신문을 보니 술, 담배 세금 인상한다던데 서민들이 많이 쓰는 데에서 세금 많이 걷지 말고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야 형평성이 있는 것 아니냐”며 “무주택자들을 위해 정부에서 장기임대주택이나 시프트 같은 걸 많이 제공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직장인 김명일씨(41)는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아무리 토건대통령이라지만 건설사들의 폭리를 왜 눈감아 주는지 답답합니다. 보금자리주택도 무늬만 보금자리지 최고 4억8000만원까지 간다던데 민영아파트랑 다른 게 뭡니까. 이름만 그럴듯하게 지어서 보여주기식 정책만 펴는 것 같아요. 건설사 폭리를 철저히 막고, 실수요자들이 누릴 수 있는 알찬 정책들이 나왔으면 좋겠네요.”
■ 50대
은퇴후 생활자금 위해있는 집도 팔아야 할 처지… 실버타운은 꿈도 못꿔
의정부에 사는 이창민씨(52)는 부동산 투기에 대한 제재가 제대로 안되고 있는 데에 문제의식을 느낀다. “우리나라에선 일을 열심히 해선 돈을 벌 수 없어요. 친구들 사이에서도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부동산 투기랑 사기 치는 것 두 가지밖에 없다고 할 정도죠. 현 정부의 주택정책을 보면 부동산 투기를 야기하는 정책이 넘쳐나요. 가진 자들은 계속 자기 재산을 불려나가고 서민층은 점점 더 갈 곳을 잃어가는 것 아니겠어요.”
서울 강서구에 사는 김영진씨(54)도 비슷한 생각이다. 김씨는 108㎡(32평형)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다. “집값이 많이 오르는 것도, 많이 떨어지는 것도 원치 않습니다. 집을 팔고 새로 이사할 일도 없고, 또 결혼을 해야 하는 딸들이 집 때문에 고생하는 모습도 보고 싶지 않아요. 침체된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시키되 투기가 이뤄지지 않도록 하고, 실수요자를 위한 정책이 많이 나왔으면 합니다.”
대구 수성구에서 25년째 전세를 사는 김호연씨(57)는 고등학생인 둘째 아이가 대학에 진학하면 시골로 내려갈 생각이다.
중소기업에 다니다 얼마 전 건강 문제로 퇴직을 하고 지금은 아내가 버는 150여만원이 가계의 총수입이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큰아이에게 매달 100만원 정도 지출되다보니 내 집 마련은 거의 포기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청약통장에 계속 저축을 했지만 집안일과 애들 교육 투자 때문에 중간에 해약했어요. 지금은 내 집 마련을 위해 하고 있는 게 없죠. 대구는 서울보다 집값이 싼 편이긴 하지만 저 같은 계층의 사람들에게는 정부에서 장기임대주택을 제공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수성구는 대구에서도 집값이 비싼 편인데 주변에 보면 임대주택이 아예 없는 것 같아요.”
김씨는 한나라당 지지자이지만 현 정부의 주택정책에 대해선 비판적이라고 했다. “부자들 세금은 내리고 서민들 세금을 올리는 건 부당하다고 느껴요. 버는 만큼 내는 게 당연하지 않나요. 요즘 채소값도 엄청 오르고 지난 겨울엔 기름값도 상당했어요. 저 같은 저소득층은 정말 돈이 없어 못내는 거예요.”
부천에서 야채 가게를 하는 김성희씨(58)는 최근 인근 시장 일대를 뉴타운으로 개발하기 위한 추진위원회가 꾸려졌다는 소식에 한숨만 나온다고 했다. 뉴타운이 되면 부동산 가격이 올라 좋다고들 하지만 세입자인 김씨는 보상금이 얼마나 나올지, 어디 가서 다시 장사를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김씨는 “지금 그럭저럭 먹고 살 만한 편인데 개발되면 어디 가서 정착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지금 이대로가 제일 좋다”고 말했다.
경비원으로 일하는 이영호씨(59)는 노후생활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 강서구 화곡동에 빌라 하나를 갖고 있지만 노후 자금을 위해 처분할 계획이라고 했다. “나이가 들면서 심각하게 노후에 대해 고민을 하게 돼요. 벌어들일 수 있는 역량에 한계가 있으니까요. 지금이야 경비나 주차관리 일이라도 하지만 나이가 더 들면 동사무소에서 하는 공공근로 같은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올해 안에 집을 팔아 전세로 옮기고 택시 한대 사서 돈을 벌어볼까 생각 중입니다. 돈 많은 사람들은 편하게 노후 보내려고 실버타운 같은 데에 들어가지만 거긴 한 달에 250만~300만원씩 든답니다. 서민으로선 꿈도 못꾸죠.” 이씨는 노후를 안정적으로 보낼 수 있도록 임대주택의 소형 평형이라도 조건을 까다롭지 않게 해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루 4시간씩 청소일을 하며 월 60만원을 받는다는 여모씨(64)도 비슷한 소망을 갖고 있었다.
“근근이 살면서도 세금은 밀린 적 없이 꼬박꼬박 냈는데 제가 누릴 수 있는 정책은 없네요. 지금 사는 다세대주택을 팔아 둘째 아들 결혼비용 보태주고 나면 지방으로 내려가 살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방의 병원 인근으로 10평이라도 노인들이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임대주택이 많이 지어졌으면 하는 바람이죠.”
■ 특별취재팀 = 최민영(사회부)·이주영(산업부)·김기범(사회부)·임아영(전국부) 기자, 김설아·황성호 인턴기자
■ 공식 블로그 = http://wherelive.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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